바디매오란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바디메오는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신신체적 장애인입니다. 그는 시각을 잃어버리고 말할 수 없는 아픔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35절). 그는 소경이었을 뿐 아니라 가난했습니다. 시각을 잃었더라도 부유하고 가정적인 환경이 좋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지만, 가난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앉아서 구걸하여 살수밖에 없습니다. 재정적인 장애가 그를 참으로 힘들게 하였습니다.
인간 사회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39)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앞서 갔던 자들은 주님을 성가시게 한다고 공개적으로 나무랐습니다. 잠잠하도록 명했습니다. 당시 장애인들은 사회적으로 멸시를 당하고 살았습니다.
소란하고 무례한 자라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상황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도 ??諍?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조차 차단 당하는 몰지각한 사회 속에서 사는 억울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스케이트장을 몇 차례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케이트장은 약 100m의 원 안에 경주하는 인간 사회를 잘 요약해 놓은 듯합니다. 장애인이란 잘 타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스케이트장에서 사람들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보는 건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넘어지는 사람은 대체로 스케이트를 제대로 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앞에 장애물이 있을 때 넘어집니다.
멀리보지 못할 때 넘어집니다.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할 때 넘어집니다.
방향을 바꿀 때, 넘어집니다.
욕심이 앞설 때 넘어집니다.
몸을 너무 뻣뻣이 세울 때 넘어집니다. (스케이트는 겸손케 하는 운동입니다.)
남과 비교할 때 넘어집니다. (사람마다 제 페이스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남이 넘어질 때, 본성대로 그걸 즐겨서는 안됩니다. 붙들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디매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35)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求乞)하다가
(36)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바디메오는 소경이 된 채, 비록 구걸하고 있었지만, 그의 관심은 단지 구걸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에겐 예수님을 향한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단지 구걸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 이외의 다른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절망적인 병자를 고치신 사실을 들어 왔던 그 안에 예수님 만나기를 원하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가시는 길목을 알아 그곳의 길목을 지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36절). 하나님께서는 주를 구하는 그에게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을 들려 주셨습니다.
(37)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무엇만을 사랑하지 말라 명하십니다.(요일2:15-16)
영적인 일에 대한 관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
위엣 것에 대한 관심!
로마서 12:2이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예화]
넘어지지 않고 스케이트 타는 법을 몇 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것으로 신앙생활과 연결시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넘어질 때, 사람을 의지하려 하지 말라.] 함께 넘어지거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좀 먼 곳을 바라보라. 장애물을 피해 갈 수 있다. 넘어지는 일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겸손하게 허리를 굽혀라.] 허리가 좀 아프더라도 뻣뻣하게 서는 건 조심해야 합니다. 뒤로 넘어지는 날에는 크게 다칩니다.
위엣 것에 대한 그의 관심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어떻게 표현되었습니까?
(37)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38)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믿음의 간구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믿음으로 외쳐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38)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다윗의 자손이여!" 이 말씀은 메시야여! 외친 것입니다. '그리스도시여!' 이렇게 외쳤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쳐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구할 수 있는 사람은 Ab.나 바디매오와 같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롬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노니(롬4:20)
그의 간구에 대하여 그가 받은 첫 반응은 무엇입니까?
(39)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러나 앞서 가는 사람들이 그에게 잠잠하라 꾸짖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무시당했습니다. 인격에 모독을 입었습니다.
여기서 소경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앞서 가는 자들' 곧 제자들이 막고 있는 것을 봅니다. 소경이 주께 오는 것을 도와주는 징검돌이 되어야 할 앞서가는 자들이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주께 나오는 것을 도와야 했을 때, 막았던 그들의 안타까움이 여기에 또 있습니다.
무시당한 그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지만 그런 장애물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향해 더욱 크게 외쳐 간구했습니다.
저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39절).
그는 선한 열심으로 그리스도의 은총과 축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비록 반대와 비난에 부딪히게 된다 할지라도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모든 형편을 아시는 주님께서 왜 다시 물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의 모든 궁핍을 알고 계십니다. 그가 눈을 보지 못하는 소경인 것을 보고 계십니다. 그의 곤고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중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묻습니다. 왜일까요?
(40)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41)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願)하느냐
그 사람의 입에서 간구의 내용을 듣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구하는 무엇을 구체적으로 말하라 하십니다.
찾는 무엇을 구체적으로 찾으라 명하십니다.
구하고 찾는 무엇을 구체적으로 알고 문을 두드리라 하십니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그 목적을 듣고자 하십니다.
우리 여선교회원들이 다음 주 금요일 산상 기도회를 간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기다리십니다. 그 시간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알기 원하십니다. 자녀 위해 구체적으로 구합시다.
가로되 주(主)여 보기를 원(願)하나이다
그는 보고자하는 열망을 그대로 아뢰었습니다.
예화] 아돌프 히틀러와 아이젠하워(국26-2)
1889년,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들은 사촌 남매였기 때문에 불법 부부였습니다.
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주부로서의 일이나 엄마로서의 일에는 흥미가 없고 바깥 사교 생활에만 흥미를 가지고 나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달아났습니다.
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했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연명하다가 결국 독일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후 그는 정치계에 투신하여 극렬분자가 되었습니다.
반란음모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어, 다시는 정치계에 나서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감형 출옥의 혜택을 받았으나 더욱 맹렬히 정치 활동을 했고, 결국 1933년 독일 국민의 절대 영도자인 총통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로 그로 인해 독일과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렸고, 그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인류가 이 아이가 내뿜은 독기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같은 1889년에 다른 한 아이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소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흡족히 받고 자라났습니다. 부모는 이 아이를 데리고 캔자스 농촌으로 이사했는데, 그 이유는 농촌 생활이 아이의 신앙 교육에 유익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훈을 전해 주었고, 가족 모두가 교회의 가장 적극적인 봉사자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소년은 어른으로 성장해서도 어머니의 두 팔에 안겨 간곡하게 기도하던 매일 저녁의 일과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도 군대에 흥미를 느끼고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 졸업하였습니다.
1944년 6월 6일, 이들 동갑내기는 전투에서 대면하였습니다. 11개월에 걸쳐 히틀러는 연합군 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싸웠습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한편 아이젠하워는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그의 죽음을 전 세계가 애석해했습니다.
이 두 동갑내기의 이야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
그의 간구를 들으신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이와 같은 믿음의 간구를 주님께서는 결코 헛되이 여기지 않습니다(42절). 응답하십니다.
(42)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求)하였느니라 하시매
예수님께서는 참된 믿음의 간구에 구원의 열매로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비천한 거지일지라도 그를 향해 호의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데려오라 하셨습니다(40절). 간청하는 자에 대해 온유와 긍휼로 응답하셨습니다. 믿음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응답을 받은 바디메오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43)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榮光)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그리스도의 은혜로 눈을 뜨게 된 바디매오는 무엇보다 먼저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옛 옷을 던져버리고!
예화]
한 억만장자가 있었다.
그는 자기의 외아들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만을 의지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비행기 사고로 그만 그 외아들이 죽고 말았다. 이 아버지는 깊은 슬픔에 잠겨서 병이 들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병이 깊어진 부자는 마지막으로 변호사를 불러 자기의 유언을 정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도 죽었다.
별다르게 친척도 마땅하지 않았던 이 부자에게 전국에서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들은 전부 부자와 자기의 관계가 특별한 것이었다고 주장을 하며 재산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변호사는 유언을 이행하기 이전에 그의 유품들 중에 얼마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드디어 그 부자의 쓰던 물건들이 먼저 경매에 붙여졌다.
낡은 의자, 아끼던 옷가지, 손목시계, 카페트... 부자가 평소에 애정을 쏟았던 물건들이 경매에 붙여지고 사람들은 이 낡은 물건들을 저마다 얼마의 돈으로 사들였다. 그때 한 액자가 나왔다. 그 부자의 아들이 그려진 초상화였다. 사람들은 화려한 옷과 멋진 가구들에게 보이던 관심을 감추고 아무도 그것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 냉담했다.
그때 뒤에서 초라하게 서 있던 한 흑인 하인이 손을 들었다.
"나도 살 수 있을까요?"
"물론이요. 그래 얼마를 낼 수 있지요?"
그 하인은 자기의 모아 두었던 손때 묻은 돈을 꺼내서 100달러나 지불하고 그 초상화를 샀다. 자기가 사랑했던 젊은 주인의 모습을 가슴으로 그리면서....
그때 변호사가 억만장자의 유언을 공개했다.
그것은 경매에서 자기 아들의 초상화를 사는 사람에게 남은 재산의 전부를 준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자를 원했고, 그에게 재산이 돌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
점검] 우리 믿는 자들은 사실 많은 응답을 받고 삽니다. 어떤 다락방 순장에게서 기도응답을 즉각 받은 간증을 어제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헤아려 보면 많은 기도응답을 받고 삽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옳습니다.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바디매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무엇을 행하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어두운 세상에 영원히 좌절할 수밖에 없는 바디메오와 같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보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볼 수 있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임박한 그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의 영화로운 면에 대해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두 가지를 보게 됩니다. (1) 그리스도의 고난 당하심이 성경의 성취입니다.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31절).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셨습니다. 성경은 정확하고도 완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셨습니다.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다만 제자들이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34절).
왜 제자들은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을까요?
- 그들이 메시야와 그의 나라에 대해서 가졌던 개념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 그들의 선입관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
-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정신을 판 나머지 그의 고난 당하심은 지나쳐 버렸습니다.
- 그들이 성경을 한 쪽만 편파적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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