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더 무서운 게 없습니다. 아무리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도,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도, 죽음 앞에 떱니다. "나는 죽는구나!"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기독교인들입니다. 왜입니까? 다시 사는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가 125년에 친구에게 쓴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는데, 그는 그 당시 기독교도들에 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기독교도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새 종교 집단이다.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고 기뻐하며 그들의 신에게 감사의 예식을 드린다. 그들은 장례를 위해 묘지로 줄지어 갈 때도 마치 즐거운 소풍이나 가듯 노래를 부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말하며 행진한다."
초대 교회교인들은 부활의 신앙, 영생의 확신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남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남겼으며,
예수는 영원한 생명을 남겼다."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유산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부활의 축복,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그러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에는
1.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세상에서 내노라는 사람들입니다. 다윗, 솔로몬 시대 때 대제사장직으로 있었던 사독 계열에 선 제사장들이었습니다(참조,삼하8:17; 15:24).
그들은 기록된 문서, 특히 모세 오경에 충실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하는 질문도 모세 5경인 신명기 25:5-10 말씀에 근거한 겁니다. 모세 5경을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성전을 관리하였으며 백성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 숫자가 비록 소수였으나 대체적으로 부유하였습니다. 로마 정부와 부드러운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부와 권력도 누리고 살았습니다. 예루살렘의 귀족과 대제사장 대부분이 여기에 속하였습니다.
다만 그들은 부활을 거부하였습니다.
모세 오경에 부활이 문자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사의 존재, 영혼 불멸 등도 이런 이유로 모두 부인하였습니다(참조, 행 4:1 ; 5:17). 천사나 사탄 같은 영적 존재를 부정한 거죠.
내세나 영혼의 세계가 있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내세에 보상과 형벌이 있음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와 사후 세계를 무시했습니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한 거죠.
그런데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어떤 질문을 하고 있습니까?
(28)물어 가로되 선생(先生)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兄)이 만일(萬一) 아내를 두고 자식(子息)이 없이 죽거든 그 동생(同生)이 그 아내를 취(取)하여 형(兄)을 위(爲)하여 후사(後嗣)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9)그런데 칠 형제(兄弟)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取)하였다가 자식(子息)이 없이 죽고 (30)그 둘째와 세 째가 저를 취(取)하고 (31)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子息)이 없이 죽고 (32)그 후(後)에 여자(女子)도 죽었나이다 (33)일곱이 다 저를 아내로 취(取)하였으니 부활(復活) 때에 그 중(中)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이 질문의 배경은 성경적 배경은 신명기입니다.
이 질문은 오늘 날 우리에게는 낯설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기업을 분배해주신 일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받은 기업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가 저렇게 풀수 없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까닭도 그 기업정신과 상관이 있습니다.
기업을 받은 형이 자녀가 없이 죽으면 기업 이을 사람이 없어지고 그렇게 되면 그 기업을 감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동생이 형님의 가정에 자녀를 낳아 줌으로써 형의 후사를 세워 주고 하나님께서 그 형에게 맡기신 기업을 상속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이 맏형 엘의 후손 세워주는 게 싫어서 그 의무를 회피함으로써 하나님이 진노를 받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슬로보핫의 딸들이 아버지가 죽자 그 기업을 잃지 않도록 호소하는 장면도 봅니다.
나봇이 죽기까지 아합에게 그 기업을 내놓지 않는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의 이런 율법을 생각하면서 물었던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한 사두개인의 원 의도는 무엇일까요?
부활이 있다면, 한 여인의 남편이 여럿이 될 것인데, 이 난감한 사태를 상상이나 할 수 있느냐? 그렇기 때문에 부활 그 자체가 불합리하다, 부활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들이 계대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예수님이 전하시는 육체의 부활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강변하려는 것입니다. 당시 부활은 그들의 대적관계에 있었던 바리새인들도 지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들까지 견제하는 이중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가르치는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 생각을 하였습니다. 주님을 책잡아 시험에 빠뜨리려 하는 의도였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이 세금 문제를 들고 예수님을 책잡으려 한 것처럼 서기관들은 부활 문제로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였습니다.
이런 사두개인들이 삶에서 맺은 열매가 무엇입니까?
(46)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願)하며
시장에서 문안(問安) 받는 것과
회당(會堂)의 상좌(上座)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書記官)들을 삼가라
(47)저희는 과부(寡婦)의 가산(家産)을 삼키며
외식(外飾)으로 길게 기도(祈禱)하니 그 받는 판결(判決)이 더욱 중(重)하리라 하시니라
살아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두개인의 삶 속에는 외식만 남아 있었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높이는 대신 자신이 높아지는 겁니다. 약한 자가 보이지 않구요.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우리 삶의 모습은 많이 달라집니다.
2. 부활은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34)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世上)의 자녀(子女)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저 세상(世上)과 및 죽은 자(者) 가운데서 부활(復活)함을 얻기에 합당(合當)히 여김을 입은 자(者)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天使)와 동등(同等)이요 부활(復活)의 자녀(子女)로서 하나님의 자녀(子女)임이니라
부활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장가도
시집도
죽음도 없다!는 겁니다.
일곱 남편을 가진 여자는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별 걱정을 하였습니다. 세상 자녀는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지만 천국에서는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고 따르는 모세 5경을 보여주십니다. 모세가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37)죽은 자(者)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關)한 글에 보였으되 주(主)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稱)하였나니 (38)하나님은 죽은 자(者)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者)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그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모두 살았다고 하시지요?
[답]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과 같은 진정한 신자들이라면 그들이 비록 죽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I was)"고 말하지 않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I am)"고 말씀하십니까?
[답] 그 당시 그들은 이 세상에서 죽은 자였지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끝난 다음에는 또 하나의 세상이 분명히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결코 죽음의 냄새, 시체의 썩는 냄새가 아닙니다. 빈 무덤의 냄새를 맡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사신 주님의 향기를 맡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에녹을 죽지 않고 데리고 가셨습니다. 엘리야를 불병거를 탄 채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또 앞으로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부활의 은총은 새롭게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부활이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일어남을 뜻하는 아나스타시스입니다. 성경적 의미의 부활은 죽은 사람의 몸과 영을 되살아나게 하는 하나님의 기적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6:58에는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위해 선물로 주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십니다.
3. 오늘도 예수님은 부활의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에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라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마 28:9, 요 20:16-17). 베드로에게 나타났습니다(눅 24:34, 고전 15:5).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와 그의 친구들에게 나타났습니다(눅 24:13-32).
도마가 빠진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요 20:19-23).
도마와 제자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 나타났습니다(눅 24:30-43, 요 20:26-29, 고전 15:5).
오백여 형제에게도 나타났습니다(고전 15:6). 해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요 21:1-26).
야고보에게(고전 15:7)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 사도들에게(고전 15:7, 마 28:16-20, 눅 24:50, 행 1:8-11) 나타났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친히 자신의 사심을 나타냈습니다.
(41)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子孫)이라 하느냐 (42)시편에 다윗이 친(親)히 말하였으되 주(主)께서 내 주(主)께 이르시되 (43)내가 네 원수(怨讐)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右便)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主)라 칭(稱)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子孫)이 되겠느뇨 하시니라
제자들이 훗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행2),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살아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 왕 때에도 살아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로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믿는 자 안에 살아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리빙스턴은 누가 보아도 그는 늙었고 쇠약해서 이제는 은퇴해서 쉬어야 할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염려하는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살아 계신 주님이 나의 길동무로 원시림과 광야를 함께 걸어가 주십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국민일보에서 참 시원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선한 이웃 좋은 세상]에 소개된 전북 완주 세인高 송재신 교장입니다.
선한 선생님 한 분이 수많은 학생의 미래를 바꾼다.
전북 완주군 화산면에 있는 세인고등학교의 송재신 교장(69)은 2년 전 전북의 한 대학 학장자리를 마다하고 월급 50만원을 받는 이 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했다. 세인고는 대안교육에 뜻 있는 몇 사람이 폐교하게 된 산간마을의 운산초등학교를 인수해 1999년 3월 개교한 학교.
입학자격은 ‘학교성적이 중하위권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으로 국한하고 있다. 교육자로 정년 퇴직한 송교장은 대학 학장보다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자신감을 잃은 청소년들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교장으로 부임해보니 온갖 색깔로 머리에 물을 들인 아이, 귀고리는 물론 코고리와 눈고리를 한 아이까지 있었고 학교에 흡연실도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계획을 가진 아이도 있었다.
송교장은 첫 강의에서 아이들에게 ‘성공할 수 있는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반항심과 실수를 감싸안았고, 패배감이나 열등감을 가진 사람도 바른 자세를 갖게 되면 얼마나 크게 성공할 수 있는지를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의 정서를 순화시키기 위해 생활지도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전교생 120명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까지 뒤져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과 장점을 낱낱이 파악했다.1학년은 기초교육에 힘쓰고 2학년 때는 수많은 검사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파악한 다음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하도록 해 거기에 맞는 맞춤식 교육을 받도록 했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를 하다보면 학습동기가 유발되고 그러다 보니 인접교과까지 흥미를 갖게 돼 실력이 부쩍 향상됐다.
그 과정에서 송교장은 인간은 누구나 좋은 삶을 살려고 애쓰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절망해 있던 아이들도 차차 변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교실에서 신발을 벗었고 단정한 차림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번은 학생 3명이 밤중에 모의, 목검을 들고 교무주임 선생을 습격하려한 사건이 일어났다. 송교장은 아이들을 교장실로 불러 부러진 목검을 앞에 놓고 무릎을 꿇게 했다. 두 명의 학생은 반성하며 무릎을 꿇었으나 한 명은 “세상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을 수 없다”며 “퇴학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맞섰다. 송 교장은 화를 누르고 성경 말씀 한 구절을 마음속에 새겼다.“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
그리고 그 학생 앞에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오늘을 기억하라”고 호소했다. 제자를 바로잡기 위해 선생이 무릎꿇고 빌었다는 사실을 그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겨주고 싶었다. 다음날 새벽 학생은 교장을 찾아와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그후부터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한 그 학생은 현재 목사가 되기 위해 외국의 명문대에 유학해 있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교장을 비롯한 14명의 교사가 모두 1주일에 4일은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한다. 교장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과자를 들고 오는 녀석도 있다. 학생들과 교장이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스스럼이 없다.
이런 교육 덕분에 올해 처음 배출한 졸업생 36명중 33명이 대학에 진학했고 1명이 취업했으며 2명이 재수하고 있다. 이같이 높은 진학률이 알려지자 올 봄에는 전국에서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이 대학진학을 겨냥해 입학신청을 했다. 그러나 세인고는 성적이 중하위권 이하인 학생만을 입학시킨다는 원칙만큼은 버릴 수 없다. 희망을 잃은 아이들을 희망의 사회인으로 만들기 위해.
완주=임순만 전문위원 soon@kmib.co.kr
주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살만한 곳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전형적인 바리새인이었던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까닭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보십시오. 예수님의 기적이 이해됩니다. 성경이 그대로 믿어지고, 예수님의 신성이 믿어집니다.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믿습니다.
모든 고통과 근심에서 자유케 하심을 믿습니다.
다른 생이 있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요 14:2-3)
예수님 말씀이 모두 참이심을 믿습니다.(요 2:19-20)
사흘만에 부활하신다는 약속을 지키셨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무죄한 분이심을 믿습니다.(히 4:15)
죄의 값은 사망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음을 믿습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롬 1:4)
그런고로 기독교 교리의 기초이자 출발이 이 부활진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오늘도 살아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권능을 갖고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성도를 안전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권세를 이길 분이심을 깨닫게 해줍니다.
낙심 중에서 희망을 갖게 해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기쁨, 감사, 만족함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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