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February 2015

마가2:1-12 죄사함의 권세를 덧입으라

들어가는 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중풍병자는 병환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모습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몇 단계를 거쳐 예수님의 앞에 이릅니다.
결국 영적으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육신적으로도 병 고침을 받습니다.
메시아의 영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축복을 받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삶도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는 축복을 얻을 수 있기 바랍니다.


1. 벽이 되지, 말고 다리가 되십시오.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 새

거동이 불편한 중풍병 환자가 예수님의 영광 앞에 도달하게 된 것은 이웃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중풍병 환자는 신체적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오기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몸을 자유롭게 움직여 나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 환자가 예수님의 영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웃 의 도움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습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까지 데려올 사람(친구)들이 필요했습니다.
강을 건너고 싶은 자에겐 건너 줄 나룻배가 필요합니다.
다리가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징검돌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영광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여도 나아올 수 없는 사람들의 나룻배가 되어주고,
다리가 되어주고
징검돌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이것이 세상의 장애를 극복하는 첫 단계입니다.
중풍병자의 장애는 기꺼이 그의 다리가 되어주고, 나룻배가 되어주고 징검돌이 되어주는 이웃에 의하여 극복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길이 되시려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도 나룻배가 되어주고 다리가 되어줄, 하다못해 징검돌이라도 되어 줄 사람을 우리 안에서 기대하십니다.

두 번째 장애는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던 수많은 무리들에 의해서였습니다. 그 무리들은 세상의 누구보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까운 곳에 머물고 싶어하는 그들의 열정이 오히려 오늘 주님을 만나러  찾아온 중풍병자에게는 큰 장애가 되고 있었습니다.

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정말 힘들게 결단하였던 것이었는데.....  .
어렵게 나아온 사람들인데  ......  .
먼저 온 자들에 의하여 막혀 있습니다.
더 건강한 자들에 의하여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먼저 된 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금석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주님의 가까운 곳에 거하면서 은혜를 받는 일이 좋습니다.
다만, 내가 주님을 가까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장애인이 예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나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길이 되어 주지는 못할 망정 막는 담이 되고 있다면, 분명 그건 문제입니다.
지붕을 뚫기보다 어려운 인간의 장벽, 이것이 예수님께 나아올 수 없게 하는 인간장벽입니다.
사람들이 집안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운신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이 모여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주님께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붕을 헐어야만 하는 막힌 장애였습니다.
삐딱한 마음으로 예수님과 환자를 판단하는 서기관들의 시기심 또한 심각한 장애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먼저 된 우리 신자들에게 이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만나고 나서 자신은 하나님께 장애인을 인도하는 다리가 아닌 벽이 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슈바이쳐 박사는 아프리카 밀림에 들어갈 때, 신학,음악, 철학, 의학 등의 분야에서 정상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그는 예수님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인들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자신은 저들의 다리가 되는 일을 자원했습니다.
이 일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기자의 질문에 간단한 말을 남겼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제 인생이 온통 빚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철이 들어서야 깨달았습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온통 빚을 지고 살았습니다. 이제 이 빚을 갚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적용] 우리 주변에는 늘 주님께 나아와야 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저들의 다리가 되고 있는가 혹은 저들이 주님 가까이 나아오는 길목을 막는 담은 아닌가?


2. 병 낫는 것보다 죄 사함이 중요합니다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세상에서 병 낫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중풍병은 한 번 쓰러지면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더구나 오늘 환자는 상당히 중증입니다. 네 사람이 들것에 매고 올 수밖에 없는 중환자입니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웬만하면 어깨에 매고 사람 사이를 뚫고 나아갈 만 하지만 이 환자는 이렇게 건강한 상태가 아닙니다. 몸의 장애는 심각했습니다.
이 환자에 있어 예수님을 만나 치유함을 받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대신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중풍병자 입장에서 보면,
너무 형이상학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구름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병을 고치러 왔다가 많은 사람 앞에서 죄 지적을 받았으니 오히려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주시는 예수님의 중심은 뜨거우셨습니다.

모든 병이 죄 때문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에게 이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병은 죄로 인하여 옵니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중대한 발표를 하셨습니다.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오늘 예수님이 중풍 병을 고치신 목적은 예수님께 죄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시려 하심입니다. 예수님께 죄사함의 권세가 있으심을 알리시는 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오늘 말씀의 주제는 중풍병을 고치시는 의사로서의 주님이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을 고치시는 것으로 머물기를 원하였습니다. 중풍병을 고치시는 예수님, 이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한 분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은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의사들이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등 분주하게 보내신 것은 사실이지만 목적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낚는 것이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능력이 있으심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1절의 수일 후는 막1:45의 한적한 광야에서 있던 기간을 말해 줍니다. 무리들이 모일 때 예수님의 우선적인 사역은 2절의 도를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중풍병자를 데려왔을 때도 병을 고치기 보다는 4절의 죄사함을 선포하는 것은 그 가르침의 핵심이 죄사함과 연결됨을 암시합니다(R.H.Gundry). 저희의 죄를 먼저 사해 주신 것은 모든 병의 원인이 죄로 인한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Bede).
그러므로 온 세상에 예수님은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임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죄인을 용서하시는 권세를 보이십니다
(R.H.Gundry).

예수님은 이 세상을 심팜하러 오신 인자일 뿐만 아니라 이미 이 땅 위에서 인자로서 죄를 사하는 하나님의 메시야이십니다(막2:28;14:62 F.C.Grant).
12절의 '곧'은 회복의 즉각성을 통해 예수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본 절의 핵심은 불쌍한 중풍병자가 고침받은 데 있지 않고, 예수께서 죄하사는 권세를 가지셨다는 데 있습니다(W.W.Wessel).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죄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야이심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람하도다'(7절)

그러한 서기관들의 시각에 의하면 죄사함을 선포하는 나사렛 출신 목수 예수야말로 명백히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자였습니다.
'이 사람이'라고 번역된 후토스는 예수의 존재를 비하시키는 경멸조가 반영된 표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은 예수께 신성모독 죄를 뒤집어 씌우는 행동이 당연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죄사함 선포로 인해 사람들의 오해를 받는 줄 잘 알면서도 반드시 그 사실을 선포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죄사하는 권세가 하나님만의 고유 권한이므로 하늘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이신 예수에 의해서 땅에서도 죄사하는 권세가 있게 된 것을 그들이 이제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인자'(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란 그리스도의 자칭 호로서 본서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이렇게 죄사함을 선포함으로 자신의 메시야성을 드러낸 구절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 더욱 인상적입니다. 단7:13,14을 배경으로 하는 이 칭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임을 알리는 적절한 칭호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질병만을 고쳐 주시는 분이 아니라 죄를 사해주시는 영적 구원의 주님이심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이제 자신이 바로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적과 죄사함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했습니다.

오늘 주님 앞에 나아오신 성도 여러분,
주님께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복은 많이 있습니다.
병의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한 마음을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현실의 여러 곤고한 일들로 인한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말씀에 입각하여 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심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죄 용서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죄 용서함을 받으면 영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면, 영혼이 건강하게 됩니다.
영혼이 건강하게 되고, 잘되면 범사가 잘됩니다.
영적 건강은 신체적으로도 강건할 수 있습니다.



3. 믿음은 은혜의 나라에 도달하게 합니다.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여기 말없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중풍병으로 쓰러져 침상에 매어 온 환자입니다.
이 환자는 아무런 말이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시종 말이 없습니다.
중풍병자니까 말을 못했나 싶기도 합니다.
병을 치유 받은 후에도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겐 믿음이 있습니다.
 지붕이 뚫리고 중풍병자가 실림 침상이 달려 내려오는 것을 지켜 본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5a절)

'저희의' 믿음이란 누구누구의 믿음이겠습니까?
중풍병자를 데려온 네 사람의 믿음만이라고 본다면 곧 이어서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시는 것이 이상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죄사함을 주실 수는 없습니다. 중풍병자를 포함한 믿음입니다.
그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 시간,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수동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단어가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형인 것은 그 순간이 죄사함받는 순간이라는(V.Taylor) 의식적인 행동을 뜻합니다(A.T.Robertson). 믿음은 이렇게 놀랍습니다

말은 없지만 믿음이 있습니다.
말은 없지만 순종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알려진 아인슈타인 박사는 과학의 근거는 믿음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조차 없었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침상에 뉘일 때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를 메고 예수님이 계신 집 앞에 왔을 때도 말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운신할 만큼 많아서 예수님 앞에 들어갈 수 없었을 때도 말이 없었습니다.
지붕으로 그를 메고 올라갈 때도 말이 없었습니다.
지붕을 뚫고 그를 침상 채 달아 내릴 때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란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는 어떤 형편에서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유를 묻지도 않고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환자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께 갔다가
자신의 병이 죄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병이나 고쳐주시지 왜 자신의 죄를 들추는가 항의하지도 않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홀로 있을 때, 자신의 죄를 시인하다가도 남이 죄를 지적하면 화를 내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말입니다.

김삼환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첨가합니다]

믿음과 열심은 좀 거리가 멉니다.
열심이 있다고 꼭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믿음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생명에 영접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보내 주신 외아들 예수님을 나의 죄를 위해 죽어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영접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일이 바로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인격과 사고와 경험과 생활을 주관하는 일이 믿음입니다.

고국의 치부를 기술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대형 서점에서 도난 당하는 책값이 3-5억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서점에서 책을 훔치는 분을 붙들었는데 전직교장선생님이시더랍니다.
그분 댁에 가서 보았더니 3,500권의 장서가 있는데요, 그 중 천권이 훔친 책이랍니다.
이 내용을 인정해야 합니까? 아니면 점잖고 품위 있는 도둑이라 해야 합니까?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란 말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믿는다는 사람들 안에도 허구가 많습니다.

유명한 가수가 한 간증인데요.
그분의 어머니는 날마다 새벽기도를 다녀오셔서 가짜 꿀을 만든답니다.그리고 병에 담아 맨 위에는 꿀을 좀 붓는 일을 하여 시장에 내놓는 일을 한답니다. 그 일을 하면서 늘 부른 찬송이 있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벽에 부딪힐 때 포기하지 않고 일을 진행시킵니다. 주님을 믿기 때문이지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행합니다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실 때, 죄 용서함을 받은 것으로 믿고 일어났습니다.
믿음이란 자신이 용납된다는 것을 용납하는 일이다(폴 틸리히)
그는 계속 말합니다.
죄란 하나님의 능력도 사랑도 용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와 선행에서 구원을 찾으면서,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능력을 받은 감격
사랑을 받은 감격
용서를 받은 감격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네 사람에게서도 믿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받드시 낫게 해주시리란 믿음이 없이 남의 지붕을 뜯고 환자를 달아내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는 행동은 예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결사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죄사함을 얻게 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마무리하는 말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사람들은 중풍병자와 그를 매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온 사람들입니다.
중풍병자는 몸의 일부분이 마비됨으로 온몸의 기능이 불완전해진 환자입니다.
그는 조흔 이웃을 만나 자신의 내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외적인 장애도 극복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치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다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까지 인도하였습니다.
죄사함의 권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은혜를 입었습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영적 중풍병자였을 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다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세상의 좋은 다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복을 받을 수 있기 원합니다.




[성경본문)


1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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