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February 2015

마가2:13-17 죄인을 불러 무엇에 쓰시려나!

들어가는 말


서머나교회의 나이가 이번 주일로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이는 우리 서머나 모든 교우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과제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과 부름을 받은 레위의 반응을 통해 이 시대에 부름을 받은 교회의 사명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복음을 전하는 진리의 공동체입니다.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예수님께서 왜 바닷가에 나오셨습니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수없이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 나온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믈론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이적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병을 고친 소식이 퍼져나갔기 때문에 병을 가진 사람들은 병이 낫고 싶어서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닷가에 나오신 목적은 그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시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우선 순위로 하신 일이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가르치신 것이었습니다.

이 귀한 진리를 전하시다가 고소를 당한 주님께 빌라도가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35)

주님께서는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고 힘썼음을 말씀하십니다.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요18:38)고 묻습니다.
그 똑똑한 사람이 진리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일반으로 말하는 진리란
(1) 참된 도리(true reason),
(2) 논리의 법칙에 일치하는 지식(truth),
(3) 철학에 있어서는 누구나 인정하여야 할 보편 타당한 지식(truth)을 말합니다.
현대에 있어서는 진리라는 말이 과학적 또는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진리로 이해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4) 성경에서 진리(에메스)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리킵니다. (시 25:10).
하나님의 말씀(율법과 같은 하나님 의지의 나타나심)이 바로 진리입니다(시19;9, 86:11).
신약에 있어서 진리[알레세이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말합니다(요 14:6). 진리는 계시(그리스도)에 의해 보여진 하나님 및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말씀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바로 답을 주지는 않으셨지만,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주님께서는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자유케하시는 이 진리를 증거하시다가 잡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시면서까지 진리를 전하신 이유는 진리만이 바로 인간을 죄에서 자유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리를 하나님의 사도로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이 진리만이 가능하거든요.
그러므로 오늘날 주님의 몸 된 교회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 또한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가진 우선적인 사명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쓰임을 받아야 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진리 전하는 일에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로마서에 남기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사랑하는 서머나교우 여러분,
우리가 진리를 받을 줄 아는 교우들이 될 수 있기 원합니다.
진리를 전할 수 있는 증인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행하는 교우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는 고우들이 되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2.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 되기를 원하십니다.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전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찾아가십니다.
진리를 계속적으로 전할 증인이 필요하신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하필 당시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세리를 찾아 부르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그때 말입니다.
레위가 진리를 증거하기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레위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한 살아있는 모델이었습니다.
레위는 세리였습니다.
죄인 중에서도 민족반역의 죄를 저지르면서 자기 재산을 증식해 가는 치사한 죄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상대도 해주지 않은 죄인이었습니다.
법정에 증인으로도 채택하지 않던 사람 취급을 하지 않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찾아가십니다.
그의 집까지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부르신 세리의 집에 찾아가셔서 그의 집에 찾아온 많은 세리와 어울려 식사를 하시면서 교제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이 죄인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쓸모 있는 자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르게 하시는 것을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 가운데 살아오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빛 되신 하나님을 알게됩니다.
그들을 예수님께서는 초청하십니다.

나를 좇으라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두움 가운데 거하는 백성들을 찾아가시고 그들로 참 빛 가운데 초대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본문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저자로 변했습니다.
진리를 기록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죄인이 참 빛을 만나 진리의 증인이 되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진리라는 증거입니다.

16세기 초, 이텔리의 플로렌스 지역에는 도나텔로라는 유명한 조각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생에 유명한 조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카레라라는 지방에서 값비싼 대리석을 주문해왔습니다. 그러나 가져온 대리석을 검토해본 그는 쓸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성당 뒤뜰에 버렸습니다.
무명의 조각가가 그 대리석 중 몇 개를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대리석을 2년 동안 열심히 쪼아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1504년 1월 25일 프로렌스의 시민들 앞에 이 조각을 덮은 베일을 거두었습니다.
그것이 유명한 미캘란젤로의 다비드상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여러분은 이 대리석보다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존재의미를 찾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안에서 빚어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으로 이 마지막 세상에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바로 이런 주님의 일을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마태와 같이 세상에서 유리되고
손가락질 당하여 고독하고
하나님이 필요한 죄인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공통체입니다.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저들 속에 파고 들어가는 공동체입니다.
문제 속에 있는 저들과 삶을 함께 나누는 공통체입니다.
저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시키는 공동체입니다.
저들로 하여금
일어나 예수님을 위해 살기까지 초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마태와 같이 하나님의 작품을 만들기까지 변화시켜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해 가진 선교의 사명입니다.

100여년 전에 한국 땅에 복음이 전하여졌을 때, 교회는 이런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조선 사람들의 아픔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 사이에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복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일어나 예수님을 좇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지난번 말씀드린 윌리엄 J. 맥켄지 선교사님의 경우를 말씀드립니다.
1893년 12월 12일 제물포에 도착한 그는 서울을 거쳐 소래 땅으로 들어갑니다.
조선인 옷을 입었습니다.
조선 음식을 입었습니다.
조선 말을 배웠습니다.
동학란에도 소래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서 전쟁으로 다친 사람들을 돌봐주었습니다.
조선사람들의 힘으로 세워진 두 번 째 교회를 세웠습니다.
조선사람들이 수백년 동안 서낭제를 지내던 바로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80일간, 교인들이 무료로 노동을 하였습니다.
조선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다가 1895년 6월 22일 거의 읽어볼 수가 없을 정도로 필체가 흐려진 필체로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래 사람들은 그를 보내고 "그처럼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은 없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런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선교의  결과
지금 한국에는 6만교회, 10만 목회자, 1,000만 신자가 있습니다.
새벽부터 하나님을 예배를 하는 백성들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교회마다 성도들이 십일조를 비롯한 헌신 생활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세계 많은 교회가 굉장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한국교회는 일상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복을 받은 것은 12,0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이런 좋은 선교정신을 계승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좋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선교관을 교회당을 하나님께서 우리 서머나 교회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난 100여년 동안, 캐나다가 한국에 파송한 184명의 선교사의 발자취를 우리는 그 선교관에 담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세계 160여국에 파송되어 있는 12000명 이상의 한인 선교사님들의 흔적을 담을 수 있기 원합니다.
선교사님들이 쉬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선교사님들이 재충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나아가 선교사님들을 양성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사명은 선교하는 공동체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3. 죄인을 불러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오게 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병원에 가서 환자가 무엇을 느낍니까?
'와, 병든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입니다.
암병동을 가면, 그렇게 암환자가 많은데 놀랍니다. 세상이 온통 암환자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낍을 받습니다.
병원에는 병자의 집합소이기 때문입니다.
병원은 환자들 때문에 존재합니다.
환자들이 없으면 병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환자들을 받아서 건강하게 만드는 곳이 병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위해 오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의인만을 만나러 오신 것으로 생각하였다면 이는 바리새인들의 오해입니다.
죄인들을 받아들여 의인이 되게 하려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거든요.
병원이 환자를 절대로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필요로 하실 뿐만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존재하시는 구세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죄 가운데 있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불러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로 초대하셨습니다.

요3:16을 함께 암송해 봅시다.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를 영접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의인의 회중에 들도록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인으로 살 때, 하나님의 외아들을 주셔서 믿는 자로 하여금 의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은 교회가 할 일입니다.

죄인들이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천국을 버리고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하신 사랑,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과 세리들을 찾아오신 사랑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사랑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대신 주시는 사랑
보혈을 대신 흘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죄인들은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몸된 서머나 교회가 는 누구를 위한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서머나 교회는 죄인들을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덧입게 하고 그들을 의인이 되게 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레위를 부르신 사건은 죄사람의 권세가 중풍병자에게만 임하신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죄인이라 손가락질을 당하던 레위에게 임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버림받은 사람들과 연합(하나)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죄인으로 버림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가 되시기 위하여 임마누엘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돌감람나무와 같이 버려진 우리를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께서 그분의 가지로 우리를 붙여주셨습니다. 하나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죽으심까지 우리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기까지 우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 꿈이셨습니다.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는(하나되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마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의 내면이나 외적으로 선한 무엇이 있기에 그 무엇을 보고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부름을 받은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본문에서 세번이나 반복된 세리와 죄인들은 당시 유대인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집단이었습니다.
세리는 정치적 도의적 이유로 배척을 당했습니다.
죄인은 종교적인 이유로 배척을 당하였습니다.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TEV 성경은  죄인을 ‘버림을 받은 사람’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세리와 죄인들이 우글거리는 그 중심으로 찾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향해 눈을 향하고 있다가 그를 안아 집안으로 맞아들인 것처럼 세리와 죄인들과 연합하셨습니다.
의인을 자처하는 바리새인의 서기관과 연합한 것이 아니라, 죄인과 연합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시고 죄인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연합하고 계십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버려둔 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였습니다.
그리고 레위는 자기 집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죄사함의 권세자에게 접목된 자의 기능이 회복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사랑이 받아들여진 증거입니다.


주님께 용서함을 받으셨습니까?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고 영접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형제를 찾아가서, 우리도 그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로 기도해보십시오.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주옵시고”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눈썹이 없는 여성 이야기입니다.
늘 눈썹에 신경을 써서 눈썹을 잘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3년이 지나도록 눈썹을 그리고 보존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다 남편은 사업에 실패를 하다가 연탄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연탄리어카를 뒤에서 밉니다.
그러던 어느날 땀에 젖은 아내의 얼굴에 연탄가루가 날아와 온통 얼굴이 까맣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줍니다.
이마를 닦고
볼을 닦고
얼굴을 닦습니다.
그러나 눈썹을 닦지는 않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서머나 교회가 설립 7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들어야 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행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진리의 공동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저는 치과에 다녀왔습니다. 어금니 하나가 고장이 나서 환자로 치과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아주 친절한 의사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를 치료하는 일이 어느 의사라고 유별난 것이 있었겠습니까만, 그분은 매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를 하루 세번 닦기 힘들지요?
이를 닦을 때 치솔을 너무 센 치솔을 쓰지 마시고 부드러운 것을 치시기 바랍니다.
괜히 쓸데없이 너무 강하게 옆으로 닦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하지 마세요.
치실을 사용하시나요? 익숙하게 사용하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제가 한 번 해보이겠습니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하다보면 됩니다.
시간이 돈일텐데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는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환자로 병원에 갔지만 건강한 사람이 거의 다 되어 병원을 나왔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라야 쓸 데 있다!
병든 자가 나아와 건강한 자로 나갈 수 있다면 분명 그 병원은 좋은 병원이지요

서머나 교회가 설립 7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들어야 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필요한 죄인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공통체입니다.
세상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저들 속에 파고 들어가는 공동체입니다.
저들의 문제를 함께 나누는 공통체입니다.
저들을 하나님의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저들로 하여금
일어나 예수님을 좇아가기까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병원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건강해지는 것처럼 서머나 교회에서 교회생활을 잘 하면,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복음을 영접하고 순종함으로 의인이 되게 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마음을 새롭게 하고
정진하는 서머나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마가2:13-17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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