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21:5-19 종말의 주자여!

들어가는 말

마라톤에서 마지막 역주가 중요하듯, 릴레이 경주에서는 마지막 주자가 참 중요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우리는 마지막 주자(走者)들입니다.
소계시록이라 불리우는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멸망과 가까이 다가온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시고 장차 다가올 인류의 종말에 성도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하는가를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살펴보시면서 마지막 경주를 의미있게 이루기 원합니다.


1. 교만할 때 성전은 무너집니다.(눅 21:5-6 )

(5)어떤 사람들이 성전(聖殿)을 가리켜 그 미석(美石)과 헌물(獻物)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6)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교만할 때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전 곁을 지나고 계셨습니다.
이 성전은 세 번째로 지어진 헤롯 성전을 가리킵니다.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두매 사람 헤롯이 분봉왕으로 책봉되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지은 크고 화려한 성전입습니다.  B. C. 19년에 짓기 시작하여 예수님 당시까지도 준공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A.D.67년에야 완공이 됩니다. 86년만에야 완공된 것입니다.
성전 입구에 서 있는 미석(아름답고 화려한 흰 대리석)의 크기는 가로 11.4mx 세로 3.7m x 높이5.5m였습니다. 기둥의 높이는 12m였습니다.
성전은 부자들이 드렸던 휘황찬란한 귀금속과 보석들로 장식되었습니다. 예로 헤롯이 헌금한 황금 포도나무는 사람  키만 하였습니다. 성전 앞에 떡 버티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돌과 돌 사이에 금을 끼워 세윘습니다.
이런 예루살렘 성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성전의 전경을 보며 어떤 사람들이 감탄해서 말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도 자기들처럼 성전 외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시라고 그들은 생각했을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그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6절).  왜입니까?
이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헤롯 정권의 교만을 뽐내며 서있는 허우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2살 이하의 어린이를 모두 죽여버린 악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요한의 목을 베어 헤로디아를 기쁘게 한 바로 그 사람 아닙니까? 그런 자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찰 성전을 지었다고 하니 그 성전에 하나님께서 거하시겠습니까?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하였어도 허락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헤롯에게 성전을 지으면 그 안에 거하시겠다고 하셨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채찍을 들고 저주하는 성전이 아무리 아름답고 웅장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성전은 아직 무너지지만 않았을 뿐 무너지도록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세운 성전은 이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그 백성들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속화되었을 때, 그 성전 또한 바벨론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됩니다.
성전은 그 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실 수 있어야 성전입니다. 그 성전은 다툼과 허영, 그리고 교만이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막과 비교해보십시오. 한나절이면 뚝딱 세우고 허물 수 있는 그 성막 말입니다. 그러나 그 성막 안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들어갈지언정 방울을 달고 들어가야만 하는 겸손이 있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자라면 죽을 수 있다는 겸손 말입니다.
헤롯 성전은 다시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파괴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파괴하기 원하시진 않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성전이 파괴되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전했습니다. 대선지자 소선지자를 세우시고 수백 년 동안 하나님 성전을 회복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이 전해준 메시지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의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헤롯 성전 또한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성전의 주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찾으셨고, 깨끗이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하여 성전의 주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도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 내면에 있던 영적 교만이 그들로부터 성전을 무너지게 하였습니다.

고전 3:16절에 보면,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신 우리가 바로 성전이라 선포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경정신과 의사 데이비드 훅(David H. Find) 박사가 신경과민증에 걸린 환자 1,000명과 건강한 사람 1,000명을 비교해서 성격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신경과민증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교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날카로운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들은 남을 비판할 줄 모르는 온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대개 열등감, 불행감, 불안감, 우울감에 잘 빠집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병들기 쉽습니다. 반면 겸손한 사람은 병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병에 걸렸다 할지라도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열왕기상·하를 보면 남 유다의 왕이 20명 나옵니다. 그 중, 겸손하여 하나님을 잘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한 선한 왕 8명은 통치기간이 평균 33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교만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린 악한 왕 12명은 통치 기간이 평균 11년밖에 안됐습니다.(인용)

어느 회사의 사장과 전무가 유명한 일식당에 가서 함께 회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장은 비브리오(Vibrio) 균에 감염되어 죽고, 전무는 몸 속에서 비브리오 균이 검출되었는데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조사했더니 두 사람의 성격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죽은 사장은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아파트에 A동과 B동에 각각 경비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A동 경비원은 아주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민들이 “수고하십니다.” 하고 인사를 해도 마지못해 눈만 끔뻑이고는 TV만 쳐다봤습니다. 그래서 주민들도 나중에는 ‘너는 평생 그 짓만 해서 먹고살아라.’ 하고 욕을 했습니다. 반면 B동 경비원은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파트 주민이 오면 먼저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짐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겸손한 B동 경비원은 벼락 출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파트에 살던 사장님 한 분이 평소 B동 경비원이 성실하게 근무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큰 회사의 경비과장으로 발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여야 합니다. 겸손한 성전일 때에 우리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겸손을 회복합시다.


2. 미혹이 성전을 무너뜨립니다.(눅 21:7-8)

(7)저희가 물어 가로되 선생(先生)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徵兆)가 있사오리이까 (8)가라사대 미혹(迷惑)을 받지 않도록 주의(注意)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마지막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은 미혹당함으로 영적 건강을 잃는 것입니다. 미혹으로 인하여 성전기능을 잃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일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가 가득한 이 세상 종말은 정한 일입니다. 죄악된 이 세상 질서는 붕괴됩니다. 그 중심부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미혹이란 영적 혼란이 일어납니다.

(요이 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그러므로 죄 아래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미혹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미혹당해 살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미혹당해 살고 있습니다.
돈에 미혹당해 삽니다.
자아에 도취하여 미혹 당해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혹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요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속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바로 배우고 순종함으로 미혹당하시 않는 성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두려움이 성전을 무너뜨립니다.(눅 21:9-11)

(9)난리(亂離)와 소란의 소문(所聞)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 (10)또 이르시되 민족(民族)이 민족(民族)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對敵)하여 일어나겠고 (11)처처에 큰 지진(地震)과 기근(饑饉)과 온역(瘟疫)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徵兆)들이 있으리라


성전 멸망에 대한 말씀을 듣자마자, 제자들이 바짝 긴장하여서 그 때가 언제냐고 묻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徵兆)가 있사오리이까

왜일까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성전 기능은 살아납니다. 그러나 세상을 두려워할 때, 성전 기능을 잃습니다.

사람들이 언제 두려워합니까?

- 난리(亂離)와 소란의 소문(所聞)을 들을 때
- 민족(民族)이 민족(民族)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對敵)하여 일어날 때
- 처처에 큰 지진(地震)과 기근(饑饉)과 온역(瘟疫)이 있을 때
-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徵兆)들이 있을 때
-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逼迫)하며 회당(會堂)과 옥(獄)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官長)들 앞에 끌어갈 때

이와 같은 때에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서 암으로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암세포를 가지고 있다 합니다. 다만 건강이 약할 때 그 암세포에게 무너집니다.
영적 원리가 이와 비슷합니다.

이런 두려움을 치유 받을 길이 없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죄 아래 있는 이 세상의 종말은 정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천국이 보장되어 있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이런 얘기를 남겼습니다. "삶의 문제는 환경이 얼마나 어려운가가 아니다. 삶의 진정한 문제는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이다.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 그것이 진정한, 중요한 삶의 문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은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시 27:4 - 시 27:5 (4)내가 여호와께 청(請)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求)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生前)에 여호와의 집에 거(居)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仰望)하며 그 전(殿)에서 사모(思慕)하게 하실 것이라 (5)여호와께서 환난(患難) 날에 나를 그 초막(草幕) 속에 비밀(秘密)히 지키시고 그 장막(帳幕) 은밀(隱密)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시27:4절에서 6절까지도 반복되는 단어가 몇 가지 있어요. 비슷한 단어를 반복해 놓았는데 첫 번째는 "여호와의 집"입니다. "그의 전" "그의 초막" "그의 장막"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詩)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자신은 과거에도 하나님과 가깝고 친밀해서 그 흉악한 사람들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자신은 여호와의 집에서, 여호와의 전에서, 여호와의 초막과, 여호와의 장막에서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가지겠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마무리하는 말

믿음과 인내로 성전을 채웁시다.(눅 21:12-19)

(12)이 모든 일 전(前)에 내 이름을 인(因)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逼迫)하며 회당(會堂)과 옥(獄)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官長)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13)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證據)가 되리라 (14)그러므로 너희는 변명(辯明)할 것을 미리 연구(硏究)치 않기로 결심(決心)하라 (15)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對敵)이 능(能)히 대항하거나 변박(辯駁)할 수 없는 구재(口才)와 지혜(知慧)를 너희에게 주리라 (16)심지어 부모(父母)와 형제(兄弟)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中)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17)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因)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8)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傷)치 아니하리라 (19)너희의 인내(忍耐)로 너희 영혼(靈魂)을 얻으리라

종말의 때를 달리는 마지막 주자가 명심해야 할 세 번째 진리는 핍박 속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는 일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법으로 인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아벨부터입니다.

겔 38:21
(21)나 주(主)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모든 산(山) 중(中)에서 그를 칠 칼을 부르리니 각(各) 사람의 칼이 그 형제(兄弟)를 칠 것이며

창 4:8
(8)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告)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창 27:41 - 창 27:41
(41)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祝福)한 그 축복(祝福)을 인(因)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心中)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哭)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히 11:4 - 히 11:4
(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祭祀)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義)로운 자(者)라 하시는 증거(證據)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禮物)에 대(對)하여 증거(證據)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악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에 의한 성도들의 고난이 있습니다.

손을 대어 핍박(逼迫)하며 회당(會堂)과 옥(獄)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官長)들 앞에 끌어갑니다
(16)심지어 부모(父母)와 형제(兄弟)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中)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17)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因)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당할 박해가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 형제, 친척, 벗들에 의해 관청에 고발되어 죽임을 당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말세의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골인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주자는 더욱 힘이 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기서 주자가 마음에 '변명(辯明)할 것을 미리 연구(硏究)'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모든 대적(對敵)이 능(能)히 대항하거나 변박(辯駁)할 수 없는 구재(口才)와 지혜(知慧)를 너희에게 주리라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내하면 됩니다.

예화]
종말을 사는 자세

매사를 여유 있게 일하시는 아버지와 서두르는 수완가 아들이 채소를 경작하여 가까운 도시에 내다 팔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그들은 수레 가득 야채를 싣고 시장을 향했습니다. 아들은 온종일 밤낮으로 가면 내일 아침 일찍 시장에 도착하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황소를 몰았습니다.
"얘야, 좀 천천히 하렴."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시장에 도착하면 더 비싼 값에 채소를 팔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는 모자를 눌러쓰고 잠이 드셨습니다. 한 나절이 지나자 깨어나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작은아버지 집에 들렸다 가자."
아들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자주 만날 수 없는 작은아버지를  지나쳐 갈 수는 없다는 아버지 말씀을 거역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두 노인들이 담소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들은 분통이 터집니다. 아들의 마음을 아시는 지 모르시는 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하십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소를 모실 차례입니다.  분기점에서 아버지는 닦여진 지름길을 두고 오른 쪽 길로 돌아가십니다.
"아버지 왼쪽 길이 지름길입니다."
"나도 안다. 그러나 오른쪽 길이 더 아름답단다."
"아버지는 시간이 아깝지 않아요?"
"아깝지!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매 순간을 온전히 즐기면서 시간을 사용하고 싶단다."
아름다운 초장, 야생화들, 그리고 잔물결이 이는 냇가를 따라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집니다. 일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 그들은 아름다운 정원처럼 보이는 곳에서 황소를 멈춥니다. 그리고 향기를 맡습니다.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기서 자고 가자."
아들은 날카롭고 단호하게 쏘는 듯한 말대꾸를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아버지는 돈을 버는 것보다는 일몰을 바라보고 꽃 향기를 맡는 일에 더 흥미를 갖고 계셔요."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시더니 이내 코를 골며 잠이 들었습니다.
별을 노려보던 아들은 자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해가 뜨기 전에 아버지를 깨워 길을 재촉합니다.
2Km쯤 갔을까? 구덩이에 처박힌 수레를 빼내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농부를 만났습니다.
"저 사람을 좀 도와주자,"
"시간을 더 소비하자구요?" 아들은 폭발했습니다.
"여유를 자져라. 얘야. 너도 때로는 구덩이에 들어가 있을 때가 있을 거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단다."
소년을 화가 나서 다른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구덩이에 바진 그 수레를 도와주고 나니 거의 아침 8시가 되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에 번개같은 것이 번쩍했습니다. 천둥소리 같은 것이 뒤따라 들려 왔습니다. 언덕 너머 하늘이 어둡게 되었습니다.
"도시에 큰비가 오는 것 같구나."
"우리가 서둘렀으면 지금쯤은 모두 팔았을 겁니다."
"여유를 가져라. 그래야 오래 견디는 거다. 그리고 인생을 훨씬 더 즐기게 된다."
그들이 도시가 보이는 언덕에 올랐을 때는 늦은 오후였습니다. 그 언덕에 멈추어 서서 오랫동안 도시를 응시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들이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말씀을 이제야 이해하겠어요."
그들은 수레를 돌려 천천히 돌아 나왔습니다. 그 도시는 히로시마라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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