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22:47-62 인내와 구원의 관계

들어가는 말

요즘은 3S 시대라는 말을 곧잘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스피드입니다. 
스피드(속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스피드(속도)에 회사와 제품의 생명이 달렸습니다. 
컴퓨터도 스피드(속도)가 빠를수록 값이 높습니다. 
느리면 갑갑하고 값이 떨어집니다. 
음식도 빨리 나오는 Fast Food가 잘 팔립니다. 
증명사진을 찍어도 즉석에서 나와야 합니다. 
엘리베이터도 문이 열리기까지 참지 못합니다. 안절부절입니다. 
신호등 앞에서 빨간 불을 참기 힘들어합니다. 
군대간 남자 친구를 몇 년 기다리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시집가는 자매도 있고, 다시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기다리면 기회가 올텐데 그 기간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살다보면 조금 어려움이 오게 마련인데, 고난의 그 기간을 참지 못하여 삶을 포기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모두 스피드(속도) 병에 고통 당하는 세대의 양상들입니다.

스피드(속도)에 구원이 있습니까? 아니지요.

우리 교회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데 지금 몇 달 째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No Problem!"
하나님께서는 숲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는 듯이 보이는 한 그루 나무를 수백 년 동안 기르십니다. 

(눅 21:19)에서 주님은 어떤 말씀을 듣습니까?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스피드(속도)에 구원이 있지 않고 인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소중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까지 참이라 

원수의 칼날 앞에서 참고 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멸시와 십자가의 고난을 끝까지 참으시며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여러분의 인내하는 믿음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참으시는 주님을 만나시는 가운데 인생의 바른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1. 기도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기를 원하셔서 감람산에 오르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비상 기도 체제로 돌입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냥 시험에 나가떨어질 것이 뻔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타셨겠습니까? 오죽 안타까우셨으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겠습니까? 사탄의 공격이 눈에 보이시는데, 무방비 상태로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보실 때,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셨겠습니까? 

김삼환 목사님의 여헹담입니다.

브란슨이라는 곳으로 가니 거기에  유명한  뮤지컬 공연장이 있었어요. 그 뮤지컬은 뭐냐 하면 예수님의 일생을 일 년 내내 거기서  공연을 하는  거예요. 수많은 미국 사람들이  그걸 보려고 비행기를 타고 거기까지  오는 거예요. 일년 내내  그 자리가 꽉 차는  거예요. 거기서 두  시간  정도 좀 더  가면 유레카라는  곳이  있는데 클린턴 대통령 고향인 아칸소 지역이에요. 거기에도 한 지역 이 완전히 홀리타운이예요. 전부 교인들만 모여 가지고 거기 성막도 있고 야외  무대를 설치해   놓았어요.  한 오 천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만들었는데 밖인데도  너무너무  잘  해놓았어요. 겟세마네 동산 같이 해  가지고 예수님이 동산에서 기도하고  생활하는 데  그 무대가   야외예요.  무대가  한 150m 되니까 어디서 누 가 나오는지 모를 정도예요. 이쪽으로 갔다가 로마 군인이 저기에서 말  타고 막 올라오고 또 헤롯왕이 나왔다가 빌라도가 나왔다가 어디로  누 가 나오는지 몰라요. 집  전체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는 무슨 기계로  올리는 지 하늘까지 구름 타고 올라가게 만들어서 금방  예수님이  올라가시는  것 같고, 세례를 받을 때는 정말 비둘기가 날아오고요. 나귀를 타고 입성하고, 너무  너무 장엄해요.  집이  수 십 채가  있어서 이쪽  저쪽에서  사람이 나오고 정신이 없어요. 그걸 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뮤지컬  하는 데 서 보니까, 너무  놀라운  것을 발견했어요.  예수님이 태어나셔서 공생애 들어가시기까지 사탄이  항상 접근하는 거예요. 사탄이 떠나 는 법이 없어요. 기도하러  가셨는데  거기에 사탄이 있잖아요. 사십일 금식기도 하는데도 사탄이 거기  있는  거예요. 어떤  때는 나무  위에서 쭉   내려다보고,  제자들과 모여서 기적을 행할  때도  항상 보고 있고, 언제라도 넘어뜨리려고 하는 거예요. 제사장의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예수님을 팔도록 만들고  가룟 유다의 마음에  역사해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도 하고 끊임없이  역사하는 거예요.

작년에 우리 교회에 조그마한 바람이 스쳐갔습니다. 장로님들이 기도원에 올라갑시다 나서더라구요. 다른 교회 장로님이 그렇게 부러워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기도처,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까지 따라갔지만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였습니다. 기도하려고 했겠지만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그는 동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다른 제자들은 물어서 뭐하겠습니까? 이하 동문이지요.
가룟 유다는 제자 중에 가장 똑똑한 제자들인데, 기도하기는커녕 예수님의 원수들을 찾아갔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으로부터도 이미 경고를 받았으니, 기도해야 했는데, 아예 감람산 기도 처소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애라, 이 못난 놈들아!'
적어도 이 한마디쯤은 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사탄은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베드로라고 하여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재정을 맡은 제자라고 하여 예외로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해야할 때 기도합시다. 습관을 좇아 기도합시다.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못하여 혹시 베드로처럼 시험에 드는 일이 있더라도 기도하기를 기다리면서 참으시는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야할 때, 기도하지 못하고 그 결과 여지없이 사탄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데도 주님께서는 참으셨습니다. 



2. 입맞춤으로 배신하는 제자를 참으셨습니다.(47-51). 

(47)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 둘 중(中)에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者)가 그들의 앞에 서서 와서 (48)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人子)를 파느냐 하시니 (49)좌우(左右)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主)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50)그 중(中)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大祭司長)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51)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예수님을 잡으러 온 많은 무리 중 유다가 앞장서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잡도록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예수를 찾을지 몰랐으나 유다가 그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소로 찾아왔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 장소를 밤에도 익숙히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해두고 기도하시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유다는 비밀 싸인을 주었습니다. 자신이 입맞추는 자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입맞춤은 팔레스틴 지방에서 행해지던 전통적인 인사법으로, 이는 사랑과 존경의 표시였습니다(창 50:1;삼상 10:1). 그러나, 가룟 유다가 예수를 잡아줄 군호(軍號)로 이것을 이용하여 그의 간사한 계략을 드러냈습니다(막 14:44). 이런 사람을 제자라고 3년을 키웠습니다. 돈궤를 맡겼어요. 그런데 그가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적에게 넘겨주고 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귀썀을 갈겨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배반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간 유다에게 예수님께서는 질문하셨습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人子)를 파느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그를 배반해야만 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사랑의 표시인 입맞춤으로 그를 배반한다는 것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호하러 나섰습니다

주(主)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우리에게 검 둘을 가지라고 하셨으니 이제 그 칼을 쓸까요?' 
에라, 이 망할 놈의 배신자야! 성질이 급하고 불같은 베드로는 대답을 들을 겨를도 없이 검을 휘둘렀습니다. 가룟 유다가 재빠르게 피합니다.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원수에게 넘겨줄 때, 그는 피할 준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대제사장 종의 머리를 향해 칼이 날아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칼은 빗나갔습니다. 그러나 말고의 오른편 귀는 이미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는 그 떨어진 말고의 귀를 주워 제자리에 붙여주었습니다.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61절).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51절)  

오늘 이 말씀을 가슴판에 새기고 생활 현장에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만은 절대 참을 수 없습니다. 생각되는 일이 있으십니까? 말고의 귀를 주워 귀에 붙여주시면서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것까지 참으라."(51절)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기도를 할만큼 했으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재능도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참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능통해도 참고 인내할 때가 있습니다.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7-8).”


3. 세 번이나 부인한 제자를 참으셨습니다.

(54)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大祭司長)의 집으로 들어갈 쌔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한 비자(婢子)가 베드로의 불빛을 향(向)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注目)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베드로가 부인(否認)하여 가로되 이 여자(女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조금 후(後)에 다른 사람이 보고 가로되 너도 그 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壯談)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주(主)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主)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前)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否認)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밖에 나가서 심(甚)히 통곡(痛哭)하니라

기도할 때, 기도하지 못하고, 따라갈 때 확실히 따라가지 못하고 멀찍이 따라가던 베드로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을 한번도 아니도 두 번도 아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그럴 수 있다 해도 베드로는 그러면 안돼지요. 그런데 베드로가 부인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잡혀 가시는 예수님을 멀찍이 따름으로 도망쳤던 다른 제자들보다는 대담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역시 세번이나 반복적으로 부인함으로 다른 제자들의 실패와 죄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죄는 유다의 죄와는 어떤 면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배교(背敎)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날 베드로에게 시험이 있을 줄을 알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61-62)

분명히 말씀해주신대로 그는 배반했습니다.
수제자가 배신했습니다. 

'줄리어스 시저'가 숙적인 '폼페이'의 군대를 격파하고 '로마'로 개선할 때에 그를 시기한 '케시어스'라 고 하는 사람이 동지를 규합해서 시저를 살해 모의를 합니다. 그때 시저의 친구고 둘도 없는  충신이었던 '부르터즈'를 포섭합니다. 그 다음날 시의회 앞에 시저가  들어올 때 전부 칼을 가지고  시저를 찌릅니다. 마지막에  이 부르터즈 라고 하는 신하가 칼로 시저를 찌릅니다. 그때까지도 살아 있던 시저가 부르터즈를 보고
"부르터즈, 너까지.......  ."
마지막  그 말을 하고 시저가  죽습니다. 
부르터즈는 시저를 죽인 후, 온 로마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시저보다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죽였다"
그는 온 로마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습니다.  

우리는 부르터스가 아름다운 명분을 내세울지라고 씁쓸합니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쏘아 죽였습니다. 비극입니다. 배반은 인간으로서 못할 행위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부끄러운 치부입니다. 배반당해 보셨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배반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배신감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말 참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잠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으셨습니다.

참고 기다리기 잘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농부입니다. 농부는 땀흘려 일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추수의 기쁨과 보람을 생각하면서 참고 견딥니다. 황금 물결을 이른 들판을 생각하면 지금의 고생을 참을 수 있습니다. 
영혼의 농부이신 예수님께서는 세 번을 부인하고 저주하면서 부인하는 제자들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참으심은 무능해서였습니까? 실수였습니까? 아닙니다. 말씀의 열매가 익어가는 기간이었습니다.

시험을 당하였을 때, 베드로는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상기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의 실수만 생각하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하고 돌아 왔습니다. 베드로의 장점은 "말씀을 의지하여(눅5:5)" 살았던 것입니다. 유다처럼 어찌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열매가 맺힐 날이 있습니다. 유다가 시험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은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사노라면,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경우처럼, 말씀의 열매, 회개의 열매가 맺히기도 합니다. 베드로에게는 실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통곡이 있었습니다. 실수를 깨달은 날이 있습니다. 유다는 실수가 나타났을 때, 통곡하는 회개 대신에 자살을 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인내에는 좋은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간에 묵상하신 롬5:1-2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롬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롬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어떤 인내가 여러분의 삶에서 소망을 이루었습니까?

마무리하는 말

성경은 인내로 가득합니다.
아브라함, 요셉, 욥, 모세, 엘리야,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재림이 인내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인내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믿음, 사랑 소망이 인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열매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인내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애굽 궁중에서 빼어난 무술과 학문에 능통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애굽 사람을 쳐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40년 동안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속에서 그는 민족을 구원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습니다.

욥은 기적을 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욥의 믿음은 많은 은사나 재능에 있지 않습니다. 
욥은 고난받을 때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였습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다” 하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인내를 고난 가운데서도 꽃피운 사람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욥은 고난을 참고 인내한 결과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LA에는 서울 명문대 출신으로 19년 교회생활 중에 23번 교회를 옮긴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분은 예수님께서 목사님으로 계신 교회를 찾으시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보는데요. 분명한 사실은 그가 인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어느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다  왔느냐 무엇이라 말씀드려야 합니까?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예수님께서 인내하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이 왔고,
베드로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왔습니다.
한번 더 인내하십시오. 
조금 더 인내합시다.
주님의 약속이 좋은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살후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그리스도의 인내 가운데 거하십시오. 언제가 온전하여진 모습을 만날 것입니다.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주님의 재림도 하나님의 인내 안에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선지자들을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의 인내를 세상에 꽃피운 사람들입니다. 내가 어떻게 참고 견디나 하지만 하나님이 힘 주시면 능히 감당합니다. 오늘날도 성공적인 목회자나 선교사님들은 그리스도의 인내 가운데 거하신 분들입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주님의 인내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됨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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