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기회를 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빌라도와 헤롯은 좋은 기회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기회를 사기는커녕 못박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도 파울볼처럼 멀리 날아갔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빌라도와 헤롯을 추구하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그 같은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복된 기회를 받고서도 파울볼만 날리고 퇴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빌라도와 헤롯은 우리에게 좋은 반면 교사로서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열매를 얻을 수 있는가 열쇠를 주십니다.
1.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1)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百姓)을 미혹(迷惑)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禁)하며 자칭 왕(王)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유대인들 중의 무리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소했습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처벌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고소 내용이 무엇입니까?
(2) - 우리 백성(百姓)을 미혹(迷惑)하고
-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禁)하며
- 자칭 왕(王)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왜 산헤드린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으로 판결했습니까?
1) 우리 백성을 미혹한다(2절)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특히 백성들에게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지 말라고 가르쳤다 합니다.
3) 예수님이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한다 합니다.
예수님을 정말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해와 명백한 거짓 고발 투성이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이런 무지가 예수님을 죽이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란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신성 모독 죄인으로 단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신성 모독 죄라고 하는 것은 로마인 법에는 하등 중형을 받을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로마법은 유대인과 달랐습니다. 그런 것을 중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로마 정부의 손을 빌어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로마인의 손을 빌어 예수님을 사형시키는 방법은 예수님께서 로마 황제에 반역죄를 범한 것으로 몰아가는 것이었습니다.
- 백성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대항한 자다!
- 로마에 세금을 내지 못하도록 거부했다!
-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하며 황제 통치를 거부했다!
이런 반역자이니까 잔인하게 처형하는 로마법을 적용해달라 요청하였습니다. 로마인의 손을 빌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이 악한 거짓을 사용한 것이지요.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빌라도는 누구보다 이런 죄인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람입니다. 특히 사형 당할 만한 로마 반역자에 대하여서는 분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1] 예수님 안에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빌라도는 유대지도들과 그 무리의 악한 의도를 간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분명히 잘라 말했습니다.
(4)빌라도가 대제사장(大祭司長)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罪)가 없도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사역에 샅샅이 조사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죄가 있었다면 누구보다 정확히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 사람에게 죄(罪)가 없도다
어떤 사람이 꿈에 하늘 나라에 갔습니다. 하늘 나라에 갔더니 천사가 큰 책을 그의 앞에 갔다 놓습니다. "이것이 무슨 책입니까?" 물어 보니까 "그 책에 네가 세상에서 행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대답합니다. 보니 책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갈수록 부피가 많습니다. 첫 부분을 들추니까 작은 글자로 가득 씌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기록입니까?" 물으니 천사가 "네가 세상에서 행동으로 지은 죄들이다." 대답합니다. 그 다음 부분을 들쳐보니 첫 부분보다 부피는 많은데 글씨는 더 작습니다. "이것은 무슨 기록입니까?" "이것은 네가 세상에 살 때 말로 지은 죄들이다." 셋째 장을 들여다보니 둘째 장보다 부피는 더 많은데 글씨는 훨씬 더 작습니다.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기록입니까?" "이것은 네가 마음으로 생각으로 지은 죄들이다." 마지막 부분을 들추니 아예 글자는 보이지 않고 전부 새까맣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너의 마음이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대하여 들었습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결론으로 그는 유대인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罪)가 없도다
2] 또한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란 사실까지 묻고 그 대답을 들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人)의 왕(王)이냐
대답(對答)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3)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습니다(3절). 이 질문은 '자칭 왕(王)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라고 고발한 유대인들의 고소를 근거로 질문한 말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말하는 그리스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로마가 통치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말하는 무력으로 로마에 반역한 그런 왕이 아닌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예수님께는 세상 왕이 거느리는 군사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군사는커녕 경호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창과 방패는커녕 식칼 한 자루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에 거짓 선지자나 정치 지도자들이 나타나서 로마를 반역한 어떤 모습도 예수님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속적 유대인의 왕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왕은 평화의 왕이요, 진리의 왕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人)의 왕(王)이냐?
그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대답(對答)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네 말이 옳다"고 답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에게 평화를 주시는 그리스도, 곧 평화의 왕이십니다.
빌라도는 이 놀라운 사실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구원에 이르기까지는 보완되어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20세기 최고의 명배우 마릴린 몬로가 마지막에 남긴 유명한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다. 그가 자살하게 된 동기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세상을 포기한 것도 바로 이것 하나입니다. "나의 일생에 단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라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몬로는 결혼도 여러 번 했습니다. 정말 그를 사랑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몬로의 마음은 늘 비어 있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도 그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참 사랑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는 부귀영광을 다 누렸습니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하루에 우리나라 돈으로 수억이 매일 매일 그냥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몬로가 죽은 지가 벌써 40년이 되었습니다. 그 때 그의 재산이 몇 억불이 있었습니다. 명예가 있습니다. 돈이 있습니다. 인기가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건강이 있습니다. 그를 사랑해 주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은 늘 허전했습니다.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사랑 없는 세상을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찾는 사랑은 없었습니다.
무엇이 그녀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갔습니까? 죄입니다.
이 죄를 이기는 비밀은 죄 없으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입니다.
영원한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을 아는 데까지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무죄를 선포했습니다.
이 사람에게 죄(罪)가 없도다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이심을 아는 자리까지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렀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 보셨습니까?
예수님께 대하여 들으습니까?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계십니까?
그래서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알고 계십니까?
그래서 그분께는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시는 평화의 왕이심을 아십니까?
빌라도가 바로 그런 경지까지 와 있었습니다.
2. 헤롯은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6)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7)헤롯의 관할(管轄)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8)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甚)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所聞)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異蹟) 행(行)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緣故)러라
헤롯은 예수님을 본 사람입니다.
환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본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오랜 동안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심히 기뻐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 계신 곳을 가리키는 별을 만났을 때, 기뻐한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헤롯의 감정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뻤습니다.
헤롯은 죄도 많고 허물도 많은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여우!'라 불리운 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기뻤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감정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쁘십니까? 감사한 일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헤롯이 그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3. 그러나 그들은 알고 느낀 것과는 전혀 다르게 결단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보고 듣고 대화함으로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행동은 다릅니다.
(5)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百姓)을 소동케 하나이다 (6)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7)헤롯의 관할(管轄)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헤롯에게 보내버린 것입니다.
영접한 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주시는 평화를 누린 것도 아닙니다.
헤롯에게 보내버렸습니다.
헤롯 또한 예수님을 기뻐한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가 기대했던 이적을 보여주시지 않자 그가 예수님을 만난 기쁨은 즉각 식어버렸습니다.
그의 기쁨은 업신 여김과 희롱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보내버렸습니다.
(11)헤롯이 그 군병(軍兵)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戱弄)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당대 팔레스타인 지경을 맡았던 두 사람의 지도자를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만납니다.
그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팔레스타인 지역의 통치를 위임받은 정치 지도자들입니다.
2] 그들은 막강한 권력을 양손에 쥐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 지도자들이 받을 수 없었던 특권을 받았습니다.
인류의 영원하신 왕, 죄 없으신 평화의 왕, 인류에게 근본적인 행복을 주실 수 있으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알았습니다.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복된 기회를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친구였습니다.
(12)헤롯과 빌라도가 전(前)에는 원수(怨讐)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親舊)가 되니라
그들이 만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영접하였다고 한다면 그들 생애는 너무도 아름답게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빌라도는 자기 인생의 한계에 있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와˙사마리아와˙이두매를 다스린 제 5대 로마 총독입니다(AD 26- 36).
디베료 황제는 그를 총독에 임명할 때, 유대인을 확실히 로마 통치 아래 들어오게 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의 전임자 발레리우스 그라투스(Valerius Gra\tus, AD 14- 25)는 가이사랴에 안주(安住)하면서 대제사장의 직임을 돈을 받고 팔고, 또 다른 것으로 사복을 채우는데 만족하면서 유대인의 미신까지도 숭배했었습니다.
빌라도는 이러한 전임자의 처사에 반대했으며, 군대의 본영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의 헤롯 궁전(관저, 막 15:16, 기타)으로 옮겼습니다. 이때 빌라도는 독수리 그림의 군기와 황제의상이 그려진 기를 든 일대의 병사를 밤에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이때까지 성중에 들인 일이 없는 군기였습니다. 이는 유대인에게는 제 2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흥분한 군중은 5일간이나 그의 관저를 둘러싸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엿새째 빌라도는 만일 해산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응하지 않고 군사들 앞에 목을 내 놓았습니다. 빌라도는 어찌할 수 없이 그들의 탄원을 들어주어 군기를 성내에서 철수시켰습니다(고대사, 전기).
두 번째 마찰은 솔로몬의 못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끌기 위해 성전고(聖殿庫, 고르반)에서 바쳐진 거룩한 금을 쓴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은 하나님에게 바친 금을 세속 목적을 위해 도용(盜用)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 소란을 일으키어 그를 둘러쌌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런 일을 예기하고 있었으므로 흉기를 가진 사복 차림의 부하를 군중 속에 몰래 잠입시켰다. 소란이 최고조에 달하자 신호에 따라 일제히 폭도를 습격하여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세 번째는 마찰은 헤롯의 궁전에 조각을 한 방패를 걸어 놓은 일입니다. 유대인은 디베료 황제에게 호소하였고, 그의 명에 의해 방패는 가사랴의 아구스도 성전으로 옮겨졌습니다.
29년 유월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는데, 총독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당시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럴 때 헤롯의 궁전에서 묵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이때 갈릴리 사람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빌라도는 갈릴리 사람들을 습격하여 그들의 피를 희생의 피에 섞었습니다(눅 13:1, 2).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빌라도 총독이 유대인을 통치의 한계를 알려줍니다.
그는 권력은 가졌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의 지지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총독 직분까지 잃어버리고 역사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알았을 뿐 아무런 의지적 결단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에 예수님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잘 아십니까?
예수님만 생각하면 기쁘십니까?
감사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아시는 지성과 예수님을 기뻐하시는 감성 위에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 말씀에 순종하는 의지적 결단을 합하기실 권면합니다. 이는 마치 삼각형과 같아서 이 세 가지가 연결될 때, 넓이는 넓혀지게 됩니다.
빌라도와 헤롯의 실패는 한 가지밖에 가지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버스 지나간 뒤에 손 들기' 등 이런 속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 하는 말입니다.
기회가 가기전 더 이상 내 인생에 낙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죄없으신 예수님, 평화의 왕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새롭게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삼으시고, 우리 죄를 위해 죽게 하시고, 우리 안에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까지 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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