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인생을 나그네요, 미완성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인생을 작품으로 생각한다면, 서론 본론 결론으로 짜여있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서론을 잘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론을 매끄럽게 전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론이 참 아름다운 사람도 있습니다.
서론과 본론이 좋은 그런 사람이 결론까지 좋다면 하나의 걸작품이 나오는 거죠.
우리는 오늘 빌라도의 인생을 만납니다.
빌라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신 일들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예수님을 사형 집행자들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건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을 만난다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하여줍니다.
결론을 버린 빌라도의 실패가 그 인생의 결론의 실패와도 맞물려 있어서, 예수님을 만난 우리로 하여금 결론이 되시는 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겁니다.
1. 빌라도는 서론을 잘 썼습니다.
(13)빌라도가 대제사장(大祭司長)들과 관원(官員)들과 백성(百姓)을 불러 모으고 (14)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百姓)을 미혹(迷惑)하는 자(者)라 하여 내게 끌어 왔도다 (14)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對)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罪)를 찾지 못하였고 (15)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行)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바로 평가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어야 할 대상으로 평가하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처형할 권한이 있는 유대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무고하신 분을 빌라도가 처형해 주도록 고소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을 사형시키도록 사주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들은 예수님 평가서에 서론을 정말 잘못 썼습니다.
인류 역사상, 예수님만큼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신 분은 없습니다. 누가 감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자로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죽어야 할 대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비극입니다. 예수님이 사형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인생,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미 바른 시각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 예수님께 대한 바른 시각을 소유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유다 총독 빌라도 입니다.
그의 생애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빌라도는 역사적인 사건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사건의 서론에 예수님께 대하여 매우 아름다운 문장을 남겼습니다.
이 사람에게서 죄(罪)를 찾지 못하였다!
보라, 저의 행(行)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정말 아름다운 예수님 평가서의 서론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참으로 확실한 선언입니다.
인류역사에 영원히 빛날 선언입니다.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벌떼처럼 일어나 반론하는 무리 중에서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
예수님께는 죽일 일이 없다!
무죄하심을 선포한다!
이 선언은 빌라도가 인류에 남긴 가장 정직하고 아름다운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 평가서에 무엇이라고 적으시겠습니까?
그런데 흥미 있는 점은 바라바에 대한 평가서 내용입니다.
(18)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이 바라바는 성중(城中)에서 일어난 민란(民亂)과 살인(殺人)을 인(因)하여 옥(獄)에 갇힌 자(者)러라
그들은 바라바를 달라고 합니다. 바라바는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못박게 하소서 외치던 수많은 무리들이 바라바를 내놓으라 하십니다. 어떻게 살인자를 받아들이고 인류 역사에 가장 귀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의아한 겁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시각이 파탄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요셉의 형님들은 요셉의 평가서에 서론을 잘못 쓰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요셉을 노예로 팔아 넘기는 일생일대의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바나바는 조카 마가 요한에 대한 평가서에 서론을 잘 쓴 사람입니다. 그가 첫 번째 선교 여행에서 선교팀을 낭패에 빠뜨리는 잘못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마가에 대한 평가서의 서론에는 바나바의 후한 점수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초대 교회는 참으로 귀한 마가 요한의 헌신의 덕을 입게 됩니다. 사도 바울 같은 이까지도 놓친 그 평가를 바나바는 해냈던 것입니다.
때로 평가는 중요합니다. 1923년 히틀러는 단 한 표 차이로 나치당의 당수가 되었습니다. 히틀러에 대하여 좋은 평가를 하였던 사람 중에서 한 사람만이라도 부정적 평가를 해주었더라도 600만명의 애매한 희생을 막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바른 평가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서론적 평가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겁니다.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서론적 평가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선포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지만 예수님은 흠도 없고 점도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죄 없으신 분이 오직 한분이신데, 그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시란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귀한 점은 예수님의 죄 없으신 사실을 세상적인 관점에서 바로 평가하여 굴절된 세상에 전파하였다는 점입니다.
2. 빌라도는 예수님의 본론도 잘 썼습니다.
(16)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없음 (18)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 하니 (19)이 바라바는 성중(城中)에서 일어난 민란(民亂)과 살인(殺人)을 인(因)하여 옥(獄)에 갇힌 자(者)러라 (20)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21)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十字架)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十字架)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빌라도가 세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惡)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罪)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빌라도는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對)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罪)를 찾지 못하였고 (15)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行)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없음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 없으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죄가 없으심을 알았기 때문에 죄인의 자리에서 놓아주려고 여러모로 시도를 합니다.
그는 예수를 헤롯에게 보내 그 죄 없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유월절 특사로 풀어주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때려서 놓아주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 모든 시도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무고한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하라는 종교지도자들의 압력 때문에 빌라도가 곤혹스러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 본문에서 보는대로 그러한 부당한 음모를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서론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본론이 참 아름답습니다. 어떤 고난도, 죄의 유혹도 그 인생의 본론을 망가뜨리지 못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본론을 잘 씀으로 인하여 성공의 지름길을 발견하였습니다.
삼손은 그 인생의 서론을 잘 못 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만나서는 아니 될 사람을 만나서 본론이 망가져버렸습니다. 두 눈이 빼이고 낭패를 당했습니다.
서론이 좋았던 다윗 역시 본론이 망가졌지만, 결론을 극적으로 잘 추스림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서론이 정말 아니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는 본론이 살아났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인생이 빛을 발하였습니다.
3. 그는 결론을 망쳐버렸습니다.
(23)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기를 구(求)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24)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求)하는대로 하기를 언도(言渡)하고 (25)저희의 구(求)하는 자(者) 곧 민란(民亂)과 살인(殺人)을 인(因)하여 옥(獄)에 갇힌 자(者)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향한 처음 생각이 좋았습니다. 나름대로 본론을 건강하게 관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좋은 열매를 맺어야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14절), '죽일 일이 없느니라'(15절)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그는 예수께서 죄인이 아니며 결코 십자가 처형 따위의 형벌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인이 아니며 처형받을 이유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 19:6).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맙니다. 유대의 총독으로서 예수님을 놓아 줄 권세를 소유했던 빌라도, 그는 무엇이 옳은가를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의 결론이시오, 온 인류의 결론이신 예수님을 사형수로 판결하는 일에 책임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그에게 원했던 대로 예수님께 결국 불의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저들의 뜻대로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는 인류의 결론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인생의 결론이신 예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한 판결을 내린 재판관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재판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내적인 번민을 했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최종적인 판결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판결이 올바른 것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형이면, 그는 사형언도자가 됩니다. 그때 무죄면, 무죄를 언도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 고백 중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빌라도의 이름은 그날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님을 처형한 책임자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오늘 빌라도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서론을 잘 쓰고 본론까지도 잘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론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의 작품은 망가지고 맙니다.
이런 빌라도의 삶은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교훈이 됩니다. 아무리 서론 본론이 좋더라도 결론을 버리면 작품은 망가진다는 겁니다.
사울은 서론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본론과 결론은 영 아닙니다. 결론이 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은 실패한 작품일 뿐입니다.
가룟 유다는 본론이 좀 삐딱한가 하였더니 결론이 망가지고 맙니다. 결론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에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누구도 그를 하나님의 작품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하여 베드로는 본론이 흔들렸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 인생은 한편의 작품일 수 있습니다. 서론 본론 결론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이루는 하나님의 작품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좋은 열매 맺으며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결론이시오, 우리 인생의 결론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영접하여야 합니다. 빌라도처럼 결론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려선 안됩니다.
또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만 왕의 왕이십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이 예수'를 어떻게 하랴 망설이고 있는 빌라도와 같은 결론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 통치 아래 들어가야 합니다. 그분과 동행하고, 그분께 순종하여야지요.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여야 합니다.
평생을 기울여 금맥을 찾아다니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원하고 바라던 금맥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미친 듯이 그 금맥을 찾아 곡괭이를 휘둘렀습니다. 그들은 금맥에 정신이 팔려 안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참 파내려가고 있는데 굴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안전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가까스로 몸을 피한 친구가 금맥에 몰두한 친구를 독촉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오직 금맥을 파는 일만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 굴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 위로 돌무더기가 덮쳤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내 가족에게 말해주게. 내가 금맥을 발견했다고!"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우리는 금맥보다 소중한 보배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빌라도처럼 어두움의 권세에 결론을 넘겨주면 안됩니다. 버리면 안됩니다. 영접해야죠. 그리고 그분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날에 우리의 인생에는 놀라운 열매가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부분을 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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