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하나님 나라의 왕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천하만민에게 나누어주시려고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하나님나라의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런 축복을 받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좋은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오는 통로가 막혀 있어서 화를 당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 채 화를 당하며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사람들은 왜 복을 받는 대신, 화를 당하며 사는 것일까요?
꼭 온유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꼭 마음이 청결한 사람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가난해도 복을 받는데,
애통한 사람도 복을 받는데,
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화를 당하는 것입니까?
신분 때문입니까?
그들이 맡은 사역 때문입니까?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하나님 축복이 넘쳐오는 통로를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막힌 축복의 통로가 열리기 바랍니다.
1. 외식이 천국 축복을 막습니다.
하나님께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원하십니다.
천국에는 문이 있습니다.
천국의 문에는 천국문지기가 있습니다.
천국 문지기는 천국에 들어오는 열쇠를 맡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을 때, 천국의 열쇠를 맡기기셨습니다.
천국 문지기는 천국 주인의 뜻을 따라 문을 열어 줄 수도 있고 천국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열면 닫을 자가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문지기는 매우 소중한 존재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낼 주의 얼굴 같은 존재입니다.
천국의 왕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천국을 향해 오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얼굴과 같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천국의 문지기로 생각했습니다.
천국 문지기의 임무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문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과 뜻과 성품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본이 되어 앞장서 나아가야 합니다.
문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자들을 경고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천국을 세상에 보여주는 존재가 천국의 문지기입니다.
칸트에 의하면 행복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직접 목적으로 삼지 말고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행동을 하고 또, 그러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왜 복을 받지 못하고 화를 받는다는 말입니까?
외식 때문입니다. 그들 내면에 무엇이 있습니까?
1] 교만이 있습니다.
2] 남을 실족케 함이 있습니다(15)
3] 물질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다.
4] 작은 자에 대하여 무자비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천국이 자기들의 집인 양 행동합니다.
외식이 무엇입니까?
외식(Hypocrisy, Hypocrite)은 자기가 가지고 있지 못하는 덕성(德性), 또는 자질(資質) 등을 가지고 있는 듯이 가장하는 일입니다. 특히 종교인에게 흔한 일로서, 겉으로는 종교적 경건을 가장하고 있으나, 안으로는 세속적이며, 불경건한 바리새인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서 연출하는 배우를 가리킵니다. 외면으로는 아주 종교적이나, 내면으로는 참된 종교적 정신에 어긋나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외식은 의식적으로 행해지기도 했는데(마 6:2, 5, 16, 22:18 기타).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경우도 있었다(마 7:5, 막 7:6, 눅 6:42, 12:56 기타). 예수께서는,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이거나를 불문하고, 참으로 종교적이 아니면서, 종교적인 체하는 자를 외식자로 보시고, 엄하게 비난하셨다(마 23장). 외식이라는 말은 복음서의 기록(마 23:28, 막 12:15, 눅 12:1) 외에는, 다만 서신(편지)에 한해져 있다(갈 2:13, 딤전 4:2, 벧전 2:1). 바울은 베드로가 유대인을 겁내어 [같이 외식하였음](갈 2:13 sunupokrivnomai)과, 믿음의 용장 바나바도 외식에 있었던 적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갈 2:13),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외식(위선)은 크리스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부덕(不德)의 하나입니다(딤전 4:2, 벧전 2:1).
사람들은 외식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고 혼란에 빠집니다.
하나님 나라에 저런 사람들이 살고 있나?
그렇다면 우리가 잘못 찾아왔구먼!
천국 문에 서서 천국 왕이신 그분의 뜻을 거스리고 있는 저들의 행태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문지기가 가장 치명적인 때는 소경일 때입니다. 문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을 정확하게 분별하기 위해서는 통찰력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는 우맹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영적 지도자의 타락과 부패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웅덩이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나무라십니다.
16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가득한, 온갖 부정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속 사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야 합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와 논리와 이성만 가지고 는 결코 깨끗케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안을 깨끗이 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성령께서 우리 속에 임하셔서 우리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제하시고 불태워 없애주시고 우리를 정결케 하심으로 깨끗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전도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수고를 한다고 해서 그들을 모두 천국백성이 되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게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 일입니까? 그렇게 힘들여서 전도한 사람을 지옥에 보내야 한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천국의 문지기로 있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외식은 신앙인들이 벗어버려야 할 옷입니다.
2. 믿음이 천국 문을 엽니다.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분명 문지기가 지키고 서 있는 곳은 성전 문입니다. 그러나 성전이란 건물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막 안에 단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 번제단 위에는 번제물이 놓여집니다.
그래서 제단이 있어도 번제물이 없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제물을 매우 소중히 생각했습니다.
제물을 바치겠다고 맹세하고 바치지 않을 때, 큰 결례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이해는 갑니다.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여 단을 준비하였는데 제물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제물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얼마나 큰 낭패일까 짐작이 넉넉히 됩니다.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온전케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제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수단입니다.
19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의 문이십니다.
우리의 중보자 되십니다.
그 놀라우신 분 앞에 서있는 존재가 문지기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문지기입니다.
따라서 누구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밀레란 화가를 기억합니다. 그가 평범한 화가요 생활인이었을지라도 그의 그림에는 하나님을 그렇게 존중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안병욱 교수는 이런 글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습니다.
밀레는 램브란트나 고호나 루벤스나 세잔 같은 대가에 비하면 이류의 화가밖에 안 된다 . 그러나 나는 밀레 그림을 좋아한다. 그 소박성이 좋고, 그 진실성이 마음에 든다. 밀레 그림의 테마가 더욱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밀레는 일생 동안 일하는 농부들을 그의 화제 (畵題)로 삼았다. 동리 사람들이 푼푼이 모아 준 노자로 파리에 가서 그림 공부를 하였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밀레는 위대한 화가는 결코 아니다 . 그러나 밀레의 소박하고 정직한 그림은 우리에게 인생의 시와 진실의 세계를 가르쳐 준다 .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가면 밀레의 <만종(晩鐘)>이란 작품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반다이크는 밀레의 〈만종〉을 평하여 ,
"사랑과 노동과 신앙을 그린 인생의 성화(聖畵)."
라고 했습니다 .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높이십니다.
3. 양면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나님의 문지기가 붙들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다. 그 법은 율법으로 대표가 됩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법의 정신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열어주신 믿음입니다. 성도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하는 잘못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킨다고 할지라도 계명의 근본 정신인 하나님의 의와 사랑,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관심은 어떻게 행동규정을 잘 지키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그 율법의 정신을 바르게 받아드리고 그 정신을 잘 표현하느냐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율법의 근본 정신을 `사랑'이라 하셨습니다. 사랑은 속 사람인 마음, 정신, 영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사랑은 속 사람과 관련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겉 사람이 강건하게 되게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속 사람이 강건하게 되기를” (엡 3:16) 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한다 (롬 7:22)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겉 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오히려 속이 유대 사람인 사람이 유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롬2:28, 29).
어떤 교회를 짓는데 세 사람의 석공이 대리석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느냐고 물은 즉, 세 사람의 대답이 각각 달랐습니다.
첫째 사람은
"죽지 못해서 이놈의 일을 하오."
둘째 사람은
"돈 벌려고 이 일을 하오."
셋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대리석을 조각하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있습니까? 본질을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많은 관중들 앞에서 연기하는 무대 위의 배우의 연기는 겉 사람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겉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몸입니다. 그러한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의 정신, 마음, 영은 속 사람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어느 흉악범만 수감하는 교도소에 새로운 교도소장이 부임했습니다. 그 교도소에는 교도관 이외에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심이 많은 교도소장의 아내는 교도소에 운동회와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아이들을 데리고 재소자들 틈에 끼어서 함께 응원도 하고 친교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는 앞을 못 보는 맹인 재소자들에게는 점자를 가르쳐 주고, 그리고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수화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그 교도소에는 점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교도 소장 부인이 교통 사고로 숨졌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장례식을 위해 소장은 고참 간수에게 책임을 맡기고 교도소에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 날 교도소 안에 있는 모든 재소자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교도소 정문에 모여 있었습니다. 고참 간수가 놀라서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와 보니 재소자들의 눈은 모두 붉게 충혈 되어 있었습니다. 간수장은 즉시 규정을 어기고 문 앞에 모인 재소자들 모두가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교도소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재소자들 전원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깊이 슬퍼했습니다. 그날 장례식이 끝나고 거기에 참석하였던 재소자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교도소로 다시 다 돌아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전이나 제단보다도 성전의 재산이나 제물에 더 비중을 두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숭배한 것입니다.
형식주의는 신앙의 본질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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