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February 2015

마23:25-39 주님의 탄식소리

들어가는 말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님이 언제 탄식하게 됩니까?
1] 자녀가 죄 가운데 빠질 때입니다.
2] 부모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입니다.
3] 부모의 호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입니다.

이런 주제를 놓고 다락방에서 체험담들을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많이 이해할 수 있거든요.
오늘 주님께서 탄식하시는 탄식소리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진단을 받으시고 순종하심으로 탄식 대신에 주님의 칭찬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삶 중에 무엇이 주님을 탄식 속에 있게 하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탄식소리를 깨닫는 복을 받기 원합니다.


1. 그 자녀가 죄에 빠져 살 때입니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정말 자랑스런 자녀이기를 원했는데, 그 기대치와 영 딴판인 죄의 종노릇을 하며 살 때, 탄식하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하나님의 탄식을 만납니다. 노아시대, 심판이 있기 바로 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지으셨음을 탄식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함으로 에덴에서 내어 보내신 후, 하나님께서 토하신 한탄의 재발입니다.

crime은 살인 강도 등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를 말합니다. sin은 종교 도덕적인 죄를 말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저촉될만한 위반행위를 좀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간음을 하지 않습니다.
살인을 하지 않습니다.
도적질을 하지 않습니다.
계명을 어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죄(crime)를 범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잔과 대접이 깨끗합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 죄(crime)는 범하지 않았지만, 죄(sin)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적질하지 않았지만, 탐욕이 여전히 있습니다.
이웃이 나보다 잘 될 때, 배가 아픕니다.
간음은 하지 않았으나, 음심을 품고 있습니다.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모든 본성이 죄로 인하여 뒤틀려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백의민족이라고 자랑합니다. 사실 하얀 한복과 두루마기를 단정하게 입은 사람을 보면 참 아름답고 좋습니다.
그러나 그 한복을 입은 사람들의 내면이 깨끗하지 않습니다. 궁중에서 사는 사람들의 의상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일상은 더러워서 참 봐주기 힘듭니다. 한복은 예쁘지만 그 한복을 입은 사람들의 마음이 추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평양을 다녀오신 김진홍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평양 단군릉은 대리석으로 잘 꾸몄습니다. 17층 건물 높이의 대리석으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는 입구 화장실은 너무 지저분합니다. 거미줄이 즐비하여 사용하기 너무 지저분합니다. 단군릉을 지을 때는 화장실까지 지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면적인 더러움을 보셨습니다.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나의 영적 수준은 어떠합니까?
내면을 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니까 영적 수준을 이렇게 측정하고 있습니다.

1] 홀로 스스로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가?
‘감옥 안에 감옥(징벌방)이 있답니다. 일반 죄수들은 독방에 가면 어쩔 줄 모릅니다. 정치범 사상범은 독방을 좋아 합니다. 정신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년에 얼마의 기간을 이런 특별한 기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속사람이 강건한가? 내면의 세계가 충실하여야 합니다. 심지가 굳어야 합니다. 안을 다지고 내면을 치중해야 합니다. 속이 알찬 사람이 귀합니다. 바른 신념이 밖이 요란한 시대입니다.
오뚝이가 있습니다. 오뚝이는 중심이 확실하니까 눕혀도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흔들어도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중심이 분명합니다.

3] 작은 일에 충성하는가?(마25:21)
큰 일을 잘하는 것도 귀하지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일이 결코 덜 귀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작은 걸 견딜 수 없어 한다.
작은 건 축복일 수 없어 한다.

권세자 앞에서 저자세가 되는 사람으로부터
큰 기업 앞에 위축되는 중소기업
부자 앞에서 움츠러드는 가난한 자
커야만 축복인 줄 아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작다는 것은 저주가 아니다.

작은 겨자씨가 커다란  복숭아씨 앞에서 움추러 들 이유가 없다.
그만큼 자랄 수 있고
그만큼 유용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심겨질 수 있느냐이고
자랄 수 있느냐이고
그 씨 안에 생명을 담고 있느냐는 것.

현재의 크기일 수 없느니

그 분은
작은 자를 소중하게 보시는 분

기드온의 300명 용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신 분
작은 자, 갈릴리 어부를 제자로 부르신 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크게 보신 분
작은 일에 충성하라신 분
과부의 두렙돈을 칭찬하신 분
작은 겨자씨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담아두신 분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움직일 수 있게 하시는 분

일어나라.
너, 작은 사람아!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
그러나 크신 창조자의 손에 들리운 자

어느 큰 교회 홈페이지에 이 시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께서 덧글을 다셨는데 이렇게 쓰셨습니다.

"아니야, 나는 하나님 눈에는 큰 사람이야!"

백 번 그렇습니다. 옳으신 말씀이세요. 그러나 큰 것만이 선이라는 생각은 위험천만의 사고 방식입니다. 어떤 분은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작은 나라에 태어나서 그런지 큰 것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진 듯"하다는 말을 합니다. '작은 일 하나에 인격과 명예를 걸 수 있어야 합니다. 낮은 데로 내려와서 분수를 지키고 살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날이 옵니다. 예수님은 작은 자, 곧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약4:10 말씀을 보면,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높이시리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낮은 자리에서 분수를 지키고 때를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높이실 날이 옵니다.

4] 청빈과 청결함이 있는가? 자신의 주변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담 넘어가는데 도사 왈, 신발장이 깨끗한 집은 나온답니다. 현찰도 없고, 보석도 없답니다. 인간관계, 이권에 매여 아무렇게 살지 말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이 깨끗이 살아야 합니다. 한국 지도자 중에 큰 비극은 Mr. Clean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5]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가?
가족을, 친구를, 직장 동료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가슴이 통해야 합니다. 실존적 교제(칼 야스퍼스)가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권을 떠나서 혼과 혼이 통할 수 있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2. 말씀이 거부될 때 탄식하십니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선지자는 그 백성을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입으로 보내신 사람입니다.
그러나 죄 아래 있는 사람들의 본성은 살리시기를 원하셔서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원하지 않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받지 않는 그 백성을 보시고 탄식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보내신 독생자, 참 빛으로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건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은 깊은 탄식을 하고 계십니다.

가인이 처음부터 멸망의 길을 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 안에 동생 아벨을 죽이려는 마음이 있음을 아시고 경고 하셨습니다. 악한 사탄의 음모를 알려 주셨습니다. 살인하고 나서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생각이 없었기에 하나님 앞을 떠나버렸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당할 때,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께서 전해주신 구원의 소식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 진노 아래 있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외치다가 성전 뜰 안에서 돌에 쳐죽임을 당했습니다.(대하20:20-)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같은 대 선지자가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톱에 켬을 당해 죽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밤새도록 애곡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거부당했습니다. 시위대 뜰 웅덩이에 던짐을 당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히11:36-37)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의 불의를 지적하다가 목이 베임을 당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영생의 길을 알리시다가 십자가 형을 당했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런 저들의 중심을 보시고 예수님은 한탄하십니다.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더욱 놀라운 것은 저들이 이런 자신들의 행위를 전혀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선지자들에 대하여 선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지금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만일 이들의 무덤이 있다면 굉장히 꾸밀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많은 재산을 헌신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엔 많은 사람들의 그 선지자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길이 없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20대에 교육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 갔습니다.
생활에 찌든 우리 교포들은 집을 가꾸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게다가 술먹고 노름하고 지저분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당시는 일본 감독관이 많았는데, 더럽고 게으르다고 말하여 일본 감독관이 더욱 쓰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답니다.
안창호 선생님은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들이 집안 청소부터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인들의 집을 청소해주고, 잔디를 깎아주고, 커튼을 달아주고, 페인트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농장을 관리하는 갑부 한 사람이 조선인들의 외적인 변화를 감지하고 질문했습니다.

“본국에서 지도자가 왔느냐?”
“예!”
그 사람이 지도자라는 분이 안 선생님을 만나보니 새파란 청년입니다.
- 당신이 리더냐?
-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어떤 뜻에서냐?
- 압제받는 나라에서 나와 자유가 있는 나라에 와서까지 자유를 잃고 사는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노동 감독관으로 안창호 선생님을 세웠습니다.
술 먹고 낭비하고 집안 더럽게 하는 것을 고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 너희 민족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하랴?
- 2만불을 빌려주시면 교회를 세워 주일은 예배 드리고 평소에는 교육을 위해 쓰겠습니다.
한달 만에 모두 갚아버렸습니다.
조선 사회에 활력이 생기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떼어 상해에 독립 자금으로 보냈습니다.

도산 정도의 선구자 말만 들어도 그 마을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하물며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의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반드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세우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온 인류에게 구원을 복음을 전하도록 말씀의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맡겨주신 복음을 온 세상에 알려 온 백성들이 진노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임무를 무시한 채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파수꾼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는 선지자들을 죽여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깊은 탄식을 가져왔습니다. 나팔을 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팔 부는 선지자를 죽여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탄식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결국 35절에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아벨이 누굽니까?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사가랴는 누굽니까? 역대하 24장 21절에 보면 그도 역시 순교를 당한 인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 '사가랴'라는 순교자를 언급했습니까? 우리 성경에서 제일 마지막은 말라기이지만 유대인들의 히브리 성경 배열상 제일 마지막은 역대기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아벨과 사가랴를 언급하신 것은 구약성경 최초의 순교자 아벨과 구약 성경 마지막 순교자 사가랴를 은급함으로써 모든 순교자들을 말씀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이 내 본성을 거스릴지라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죄를 지적하는 말씀이 내게 달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바로 나를 살리는 말씀인 줄 믿고 기쁨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3.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탄식하십니다.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동생을 죽인 가인까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날개 아래 품으려 하십니다. 그러나 끝내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나가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탄식소리를 듣게 됩니다.
호세아는 고멜을 수 차례 찾아 날개 아래 품으려 합니다. 그러나 방탕한 고멜은 남편의 날개를 무시합니다.
주님께서는 여러차례 가룟 유다를 안으려 깨우쳐 주십니다. 그러나 유다는 끝내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그러나 범죄한 다윗은 나단의 지적에 주님의 날개 아래 돌아옵니다. 옷을 찢으며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감당하고 못 받으시리오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317)

하나님의 날개 아래 참 삶이 있습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몰아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평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놀라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땅에 글씨를 쓰시는 손
문둥병자를 만지시는 손
제자의 발을 씻기시는 손
오병이어를 축사하시는 손
그 손아래 나아오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자녀로 부르심을 입은 백성이 죄 가운데 죽어갈 때, 주님께서 탄식하시는 소리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거부될 때 주님께서 탄식하십니다.
주님의 날개를 거부하고 제 고집대로 떠나갈 때, 주님의 탄식소리가 있습니다.

원종수 권사님을 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없이 어머니와 함께 하늘이 훤히 보이는 천막집에서 추운 겨울을 지나는데 어머니가 거지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그런데 목욕을 시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딱딱하게 떡처럼 굳어있는 떼의 가죽을 벗겨드렸씁니다. 그리고는 먹을 것도 없는데 음식을 먹게하고 옷가지 주어서 보냅니다.그런데 그 사건 이후로 놀라운 축복이 임했습니다.갑자기 지식과 지헤의 은사가 임했습니다.그래서 서울대 의대를 들어갔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수술비가 없어서 수술을 못하는 사람,추위에 떨고 있는 할아버지....그런데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네가 배고 플 때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추울 때 입을 것을 주었기 때문에 내 평생에 내가 먹고 입는 것을 책임지리라..'
그래서 그분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을 천사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죄를 떠나 말씀대로 살며 주님 날개를 사모하며 살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내가 산 것이 아니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선포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과감히 죄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제임스 칼 비트>가 야만인 지역에 선교사로 가려고 영국 상선에 승선했는데 선장은 거기로 가는 것은 죽으로 가는 길 !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임스 칼 비트는 "나는 이미 여기 오기 전에 죽은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