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미국에서 가석방된 92세의 노인이 출소하게 되자 감옥생활에서 받은 인간적인 대우를 잊을 수 없어 출소를 거부하다가, 결국 출소한 후에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여 강물로 뛰어내려 죽었습니다.
이 사람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그분은 92세가 되도록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매우 심각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 문제를 생각했을 법한데,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죽음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세상은 골고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비인격적인 대우를 당하시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사형지를 향해 걸어가십니다.
제자의 쓰라린 배신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토록 사랑하셨던 무리들의 차가운 등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십니다.
죄도 허물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극악한 사형수가 지는 십자가란 형틀을 지고 언덕길을 올라가십니다.
어떤 복음 성가의 가수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
골고다의 거친 언덕 길
지치신 주님의 모습
우리의 허물과 죄를 인하여 주님께서 이런 무서운 십자가 형틀을 지셔야 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이 아픈 십자가의 의미를 '아이삭 왓츠'의 찬송시를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 왕의 왕 예수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138장)
자기가 죄를 지었으면서도 지기 싫어하는 죄인의 십자가를 예수님께서는 지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누구도 지기 싫어하는 죄의 십자가를 예수님께서는 지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것만이 죄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은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그러나 모두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없으신 분이시지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기 죄없이 십자가를 진 또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구레네 시몬이란 사람입니다.
2. 너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으라.
(26)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十字架)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는 그 길목에서 구레네 시몬을 만납니다.
그는 북아프리카 지역의 구레네 출신이었습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의 애굽 서쪽에 점하고, 대유사(大流砂, Syrtis Major)의 동쪽에 있는 반도 구레나이가(Cyrenaica) 국의 수도였습니다.
희랍 식민지 중에서 가장 큰 지역입니다.
그곳에는 디아스포라의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습니다.
시몬은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던 중이었을 것입니다.
오순절 때 예루살렘 순례자(행 2:10)가 구레네 사람이었습니다.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행 6:9)구레네 사람이었습니다.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의 회심자(행 11:20-)구레네 사람이었습니다.
또 교사와 선지자였던 루기오(행 13:1) 등은 모두 이 `구레네 사람'이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당시 법은 사형수가 그 십자가를 지고 사형 당할 장소까지 가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시몬에게 지우고 예수를 좇게 하였습니다(26절).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었고, 예상할 수 없었던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골고다로 따라 갔습니다(마 27:32, 막 15:21, 눅 23:26).
성경에서 시몬은 9회 나옵니다.
Ⅰ. 베드로의 다른 이름
Ⅱ. 가나안인 시몬
Ⅲ.예수님의 형제인 시몬
Ⅳ. 문둥이 시몬(베다니 사람)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마26:6).
Ⅴ. 바리새인 시몬: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함
Ⅵ.구레네 시몬 :구레네 사람으로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막15:20)
Ⅶ.가룟 유다의 아버지(요6:71).
Ⅷ.마술사 시몬 - 빌립에게 세례(침례)를 받음: 시몬도 믿고 세례(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행 8:13) -베드로에게 책망을 받음.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
Ⅸ. 욥바의 피장(皮匠)- 베드로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
여기 시몬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그 구레네 시몬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그에게는 큰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듯합니다. 그는 이 사건을 전후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그의 생애에 영접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하여 초대 교회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어 각 복음서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 15:21;마27:32;눅23:26).
"루포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이니라(롬16:13)
로마교회의 루포가 구레네 시몬의 그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른 은혜를 현세에서도 받은 셈입니다.
김춘근 장로님은 이런 위로를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전에도 자신이 성실한 신자라 생각하였습니다. 또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서는 날이 왔습니다. 그는 이 절실한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바른 인간이 되는 것이 자신의 인생 전부였던가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날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새로운 실존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인생을 살기로 한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나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십자가에 대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죄없이 십자가를 지고 있다면 그 십자가는 형틀이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없이 십자가를 지셨을 때,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시몬이 죄없이 십자가를 졌을 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습니다.
죄없이 십자가를 지고 있다면 그 십자가는 형틀이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사랑하리
내가 기쁘게 십자가 사랑하면
슬픔 마음이 위로 받네.
3. 자신의 죄를 인하여 울라(27-31)
많은 무리가 예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특히 여자의 무리가 그를 따라갔습니다(27절). 그들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돌이켜 자기를 위하여 울지 말고 자신들을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28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William Arnot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주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죄악성을 깨닫는 의식과 비례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높이는 그 자신의 겸손의 깊음과 같다. 마치 땅속으로 보이지 않게 파고든 뿌리가 하늘 높이 꽃피는 가지를 뻗치는 것과 같다."
켄터기 루이빌의 Blanford란 부인은 2년 동안 다리 고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서서 일하기 때문이려니 하고 통증을 참고 지냈습니다.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갔습니다. 아랫배와 다리에 암덩어리가 잡혔습니다. 장과 임파선까지 암이 이미 번졌습니다. 6개월간 약물치료를 받은 후, 수술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환상을 보았습니다. 지붕이 없는 집이었습니다. 방마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데 지붕이 없는 집이었습니다.
그 의미를 알고 싶어서 기도하던 중 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내게는 방마다 많은 것이 있는데, 나를 덮어 줄 지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구나."그녀는 병을 위해 기도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지붕이 되시기를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 좋으실 대로!'하시기를 원하는 평화로운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의지와 노력을 포기하고 조용히 주님께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약도 없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 채 살기를 2년 6개월 후, 의는 암덩어리가 깨끗하게 낳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러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웁니다.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저들을 죄에서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지붕이 되시려고 십자가를 지고 가고 계십니다.
죽은 사람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듯 애곡하는 자들을 향하여 자신을 위하여 울지 말고 예루살렘을 위하여 애곡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지금 가시는 죽음의 길은 사실 궁극적인 승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예루살렘은 지금 영원한 심판과 멸망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메시야를 거부하고 처형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고 자신의 파멸을 자초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
1] 그들이 예수를 위해 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대적들에 대한 승리였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며 우리를 위해 영생을 준비하시려 하심입니다.
그러나 자기들과 자녀들을 위해서는 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고 심판 아래 떨어질 예루살렘을 위해 울라하십니다. 그를 죽게 한 우리의 죄와 우리 자녀들의 죄를 위해서 우는 일이 옳습니다.
2] 그들이 그들 자신과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라 너희 성읍에 슬픔의 날이 곧 오리라."
그날에 지붕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할 때, 쏟아질 유황불은 무서운 것입니다. 자기들과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야지요..
마무리하는 말
1]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골고다의 언덕과 같습니다.
누구도 십자가 지기를 싦어하는 골고다 언덕과 같아요.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도 지기 싫어하는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입고 의롭다 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고 시몬처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2] 무너진 예루살렘, 심판 아래 있는 우리의 도성을 생각하며 우는 신자가 됩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서운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찌기 예루살렘을 위해 우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위해 울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참으로 끔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①무자한 자가 되고 싶을 것입니다. 가족이 없는 자를 부러워 하며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가 복이 있다 할 것입니다.
② 산들에게 우리 위에 무너지라 작은 산들에게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30절).
푸른 나무이신 그리스도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인 유대인에게는 어떻게 되리요(31절).
그리스도는 푸른 나무이십니다. 그것도 아주 무성한 푸른 나무이십니다.
푸른 나무이신 예수님께서 당하신 혹독한 고난을 생각하면 마른 나무인 우리들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절감하게 됩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감사함으로 지고 주님을 따릅시다.
재수없게 나에게 이런 십자가가 주어졌다고 한탄하지 맙시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차례 기도하였습니다.
이 쓴잔, 곧 십자가를 지지 않을 길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의 침묵을 받아 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몸의 가시를 견디기 힘들어 기도했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응답을 받았을 때, 그는 그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약할 때, 곧 강함을 주시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여러분이 지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부인되는 지점은 예수님께서 사시는 지점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심을 받는 사람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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