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 24:1 - 12 부활! 새로운 시작.

들어가는 말


죽음은 인생의 끝에 오는 취소할 수 없는 종결인 마침표든지 - 감동인 느낌표든지 - 알 수 없는 물음표다.(패티 해리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취소할 수 없는 종결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을 때, 그 죽으심은 종결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정녕(丁寧) 의인(義人)이었도다!'(백부장)는 느낌표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예수님은 부활의 주를 영접한 우리 성도 안에서 무한한 물음표가 되셨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 형틀에서 예수님은 끝났다고 생각하였지만, 부활하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시작이 되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도 믿기 힘든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부활신앙에서 흔들립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느니라'라고 말하면, '아멘!'으로 화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아침에도 그랬습니다. 

1] 우선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에서 따른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를 맨 처음 만난 여인입니다(요 20:13-18). 귀신들려 고통하던 중 예수님께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섬기며 따랐습니다(8:2). 
요안나는 '여호와께서 은혜를 주신다’란 뜻입니다. 헤롯 안디바의 청지기였던 구사의 아내로, 물질로써 예수를 헌신적으로 섬겼던 여제자입니다(8:3).
'마리아'는 글로바라고도 하는 알패오의 아내(마 10:3 ; 요 19:25)로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를 가리킵니다.(이상근, Hendricksen).
그런데,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그 여인들은 안식일 전날 저녁에 예비해 놓은 향품을 가지고 새벽 일찍 무덤에 갔습니다. 서둘러 무덤에 갔습니다. 그들은 시체에 향료를 뿌리고, 얼굴과 머리 그리고 상처 난 손과 발에도 향유를 바르며 우리가 흔히 무덤 주위에 꽃을 뿌리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시체와 그 주위에 향료를 뿌리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을 이 여인들은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다만, 비록 그녀들이 부활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시신에 기름을 바르려고 갔을지라도, 하나님께선 그들에게 돌이 굴려 옮겨지고 비어있는 무덤을 보여주셨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2,3절). 돌이 굴려 옮겨진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대신 시신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만 생각하며 근심했습니다(4절). 

[적용]
우리의 믿음이 바로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셔서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실지라도,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우리의 모습 바로 그것입니다. 

그때, 두 천사가 나타나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者)를 죽은 자(者) 가운데서 찾느냐 
(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함을 꾸짖으시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부활 소식을 받았을 때, 제자들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였지만 허탄한 일로 생각하여 믿지 아니합니다. 제자들은 역시 믿을 수 없단 생각뿐이었습니다. 

(11)사도(使徒)들은 저희 말이 허탄(虛誕)한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와 같은 수제자에게까지도 믿기에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상하다는 정도였습니다.

(12)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細麻布)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상에서 볼 때,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믿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을 때,  저들의 인생은 깜깜했습니다.
새것일 수 없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 그대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셔서 저들의 죄문제를 해결하셨을지라도 여전히 죽음의 권세가 저들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적용]
그러나 부활을 믿는 일은 우리 성도에게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고 그것은 기독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죽으심을 통해 예수님께서 꺾어 우리에게 주셨던 꽃은
부활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열매맺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는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열매 맺으시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였습니다.

(5) 여자(女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者)를 죽은 자(者) 가운데서 찾느냐 (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記憶)하라 (7)이르시기를 인자(人子)가 죄인(罪人)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고 제 삼일(三日)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記憶)하고


그들은 죽어 수의를 입은 채 누워 계시는 주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그 여인들을 꾸짖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者)를 죽은 자(者) 가운데서 찾느냐 (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찾던 자들은 책망을 받았습니다(6절). 
그 여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었습니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記憶)하라

이 때, 천사들은 그 여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환기시켰습니다. 

인자(人子)가 죄인(罪人)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고 제 삼일(三日)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천사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성취한 사건입니다.

1] 구약을 성취한 것입니다(시 16:8-10, 행 2:25-31).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16:10)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죽음 가운데 두지 아니하시고 부활하도록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도들의 곁에 계심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세상에서 요동함이 없이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시16:8)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2] 예수님께서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표로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부활했습니다.(막 5:21, 35-43)
베다니의 나사로가  부활했습니다.(요 11:1-44)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눅 7:11-17)이 부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죽은 자를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손수 부활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인자(人子)가 죄인(罪人)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고 제 삼일(三日)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과거가 아니라 그들의 미래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그들의 삶에 드리웠던 죽음의 그림자는 걷히고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그분으로 인하여 그들의 삶에는 기쁨이 넘쳐왔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나사로의 부활과는 경우와는 구별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시 죽는 일이라든가, 썩는 일이 없는 영원한 부활입니다. 
부활체(復活體)를 가진 부활입니다. 
[썩지 않을 것]으로서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이 부활할 일의 보증이 됩니다(롬 6:5, 8:11, 고전 15:20, 살전4:14). 우리도 부활에 참여할 것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였을 때,  여인들은 즉각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9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생애 위에 성취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새로운 인생은 복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말씀이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주관하시고,  현실 속에서 열매를 맺는 인생은 복이 있습니다. 


3. 사도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변화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장사한 무덤이 비어있었다! 이는 의심에 가득한 제자들에게 부활의 증거가 되었습니다(눅 24:1-9). 그 무덤은 비일 수가 없었습니다.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뵙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하던 바로 그때, 어떻게 무덤이 빌 수 있다는 말입니까?
빈 무덤 자체가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강한 증거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황급히 그 무덤으로 달려간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들이 빈 무덤에 대한 확인은 기독교의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건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승귀(昇貴)의 신분에 속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2]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요 20:19-29, 고전 15:5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부활을 믿기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에게 수 차례 나타나셨습니다.

1]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십니다.(요 20:14-18).
2] 무덤에서 돌아가던 여인들에게 나타나십니다.(마 28:8-10).
3] 베드로에게 나타나십니다.(눅 23:34, 고전 15:5-).
4]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십니다.(눅 24:13-31).
5] 도마 이외의 사도들에게 나타나십니다.(눅 24:36-43, 요 20:9-24).
6] 도마가 사도들과 함께 있을 때 나타나십니다.(요 20:24-29).
7] 디베랴 바다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요 21:1-23).
8] 사도 및 5백명에게 나타나십니다.(고전 15:6-).
9] 야고보에게 나타나십니다.(고전 15:7-).
10] 열한 사도에게 나타나십니다.(눅 24:50-53, 막 16:19-20, 행 1:9-12).
11] 다메섹 도상의 바울에게 나타나십니다.(행 9:3-6, 고전 15:8-).
12] 스데반에게 나타나십니다.(행 7:55-).
13] 밧모섬에서 요한에게 나타나십니다.(계 1:10-19).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떻게 세워졌습니까? 
어떻게 오늘날과 같이 크게 발전되었습니까?.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있을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에  순교하는 자리까지 그 고난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3]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제자들을 변화시켰습니다(행 2:32, 4:2-22, 5:40-42)
우리는 사도행전을 보면서 새로운 제자들을 만납니다. 제자들의 변화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누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변화되었습니다. 
빈무덤, 부활하신 주님과의 삶만이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마치는 말

우리에게는 부활이 필요한 많은 영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환자들의 1/4이 암환자입니다. 비행기로 말하면, 마지막 착륙시기를 그들은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 소외당하여 죽어갑니다. 병원조차도 비경제적이라고 하여 박대한다는 것입니다. 
암 말기 환자들의 공통적인 정서는 두려움이랍니다.
죽음의 무서운 공포를 이기지 못하여 몸부림칩니다.
그들은 부활 신앙이 있는 호스피스들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말기 환자들을 고통 없이 편안히 지내도록 돌보아 다음 세상으로 여행할 준비를 온전히 시킬 수 있는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만 죽음을 궁극적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16만명의 시각 장애인들 중 후천적으로 다친 15,000명은 $1200 정도와 각막 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약 50만개의 각막이 땅속으로 혹은 화장터로 사라져 간답니다.

백혈병에 걸린 사람은 골수 이식을 통해 나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20,000명 중의 한 사람만 유전자형이 맞는 한계로 인하여 죽어갑니다.

김진경 박사는 북한에 병원을 짓고 있는데요. 1,200명의 여자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답니다. 하루 세끼 밥을 주도록 곡식을 공급하였지만 한 끼만 주더래요. 그 이유를 물은즉, 한끼만이라도 오래 먹는 것이 낫다! 부활의 권능이 필요한 땅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인간의 죄를 지고 대신 죽으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써 완성된 것입니다.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라고 하는 것도 이 부활 신앙에 근거한 것입니다. 

얼마 전, 뜰에 야채를 심었습니다.
잡초가 우거진 땅을 갈아 업고 물과 거름을 준 후에 배추도 심고, 열무도 심고, 부추도 심고, 파와 갓을 심었습니다. 
우리는 호기심에 가득한 마음으로 며칠을 기다렸습니다. 한 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도 소식이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전혀 싹이 트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날이 가물어 말라죽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싹들은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열무우는 열무우대로 배추는 배추대로, 갓은 갓대로, 파는 파대로 싹이 트고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호기심은 변하여 현실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황무한 땅에 부활의 소망이 찾아오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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