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 23:44-56 십자가는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들어가는 말


우리가 사는 이 답답한 상황은 변할 수 있는가?

사람마다 막힌 부분들은 있게 마련이어서 이를 당하고 사는 우리들에게 A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고국, 대한민국은 변할 수 있는가?
북한은 변할 수 있는가?
우리 가정(부모, 남편, 아내, 자녀)은 변할 수 있는가?
우리 공동체, 특히 저 누구는 변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요 중요한 숙제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늘 본문의 답은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변화할 수 없어 처형당하는 강도
절대로 변할 수 없어 보이던 로마 백부장
변할 것 같지 않던 무리들
변하기 힘든 유대 관원
이런  사람들의 변화를 보여 주시면서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1. 변화의 근원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사람들이 변화를 원할 때,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힘(Power)입니다. 권력이든, 재력이든, 군사력이든 이런 힘들을 사용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강한 힘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면, 자신들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준 자들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끝장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끝장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탄도 그런 힘의 방법을 예수님이 사용하시도록 유혹했습니다.
돌을 빵으로 만드는 그런 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힘!
사탄(우상숭배)에게 절을 해서라도 파워를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그 방법을 거부하셨습니다.
대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형틀에서 죽으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靈魂)을 아버지 손에 부탁(付託)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後) 운명(殞命)하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헬라인은 지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왜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인데 왜 그 방법을 사용했습니까?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러나 정작 끝장난 것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주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에게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완고하던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죽으심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일어난 기이한 변화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결론을 만납니다.

2. 우주가 변화됩니다.

(44)때가 제 육 시(六詩)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臨)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며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던 그 때,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이 우주에 임한 때는 제 육 시, 즉 정오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구 시까지 세 시간 동안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습니다.
창조 이래로 정오 12시에 깜깜한 흑암이 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혹자는 일식 현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흑암은 일식보다 오래, 일식과는 다르게 임하였다 합니다. 유월절은 만월 때이기 때문에 일식이었으리란 말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 어두움을 간악한 원수를 가리우는 베일로 보았습니다.
"나는 그런 극악한 비행을 보지 않으리라.
오, 내려 오라. 베일아."
천사들이 그 비참한 순간에 왕의 위엄스러움이 가려지도록 검은 구름을 마련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악한 자들이 그 순결한 분을 무례하게 지켜본다는 것이 하나님께 참을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죄를 위해 인류에서 꺾여지심으로 이처럼 흑암이 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록 22:5에서 참 빛이신 주님이 계심으로 햇빛이 쓸 데 없는 세상을 만납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참 빛이신 예수님의 죽으심이 잠시 동안 어두움의 승리를 가져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어두움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주적인 사건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서 어두움을 물리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려고, 영혼까지 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영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성전이 변화됩니다.

(45)성소(聖所)의 휘장(揮帳)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어두움이 임한 것은 우주에서 일어났고, 이것은 성전에서 생긴 일입니다. 하늘도 성전도 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46절).

  이 말씀은 다윗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시 31: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죽으셨습니다.
번제단에서 우리의 죄로 인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의 영혼을 속건제로 드리셨습니다(사 53:10)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마 20:28).

이렇게 외치시던 예수님께서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靈魂)을 아버지 손에 부탁(付託)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後) 운명(殞命)하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흠향하셨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과 구속함을 받은 우리 성도와는  둘이 아닙니다.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던 모든 장애물이 사라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내 죄를 위한 대속 사건으로 받는 우리는 이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전은 변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짐승의 피흘림이 넘치는 성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신 성전입니다. 성전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을 찢기신 성전이 바로 성도의 몸인 것을 우리는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만이 성전인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4. 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1] 백부장의 눈이 변화되었습니다(47절).

(47)백부장(百夫長)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榮光)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丁寧) 의인(義人)이었도다 하고

그 백부장은 로마군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사형집행 책임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못박은 책임자입니다.
예수님을 조롱한 군인 중의 지도자입니다.

 (36)군병(軍兵)들도 희롱(戱弄)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葡萄酒)를 주며 (37)가로되 네가 만일(萬一) 유대인(人)의 왕(王)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救援)하라 하더라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은 군인들을 통솔한 책임잡니다.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그러나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그의 조롱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그의 죄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예수님의 적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으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어느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47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더 나아가
"진실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그의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은 이와 같이 눈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으로 생각됩니다.


2] 구경하던 자들의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48)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이 사람들은 원래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고 소리질렀던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예수님을 희롱하며 욕하던 사람들입니다.
구경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예수님의 가슴이 변화되었습니다.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중대한 사건을 체험하고  그들은 양심이 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생각할 때, 가슴이 떨리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찬송가 136장에는 이런 가사가 우리 가슴을 울립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오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3] 아리마대 요셉이 변했습니다.

요셉은 부끄러움 없이 예수님께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50)공회의원(公會議員)으로 선(善)하고 의(義)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저희의 결의와 행(行)사에 가(可)타 하지 아니한 자(者)라} 그는 유대인(人)의 동네(洞里)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者)러니 (52)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屍體)를 달라 하여 (53)이를 내려 세마포(細麻布)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葬事)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50-53))

하나님께서는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50).
그는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산헤드린 회원이었습니다.
유대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또한 성품이
선하고 의로운 자였습니다.
덕행이나 경건이 있어서 흠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정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던 자였습니다.
비록 그가 그리스도를 죽인 사람들과 같은 집단에 속해 있었지만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하였습니다(51절).

이런 사람도 변화될 필요가 있습니까?
그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보다 소중한 자리에 모시지는 못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신분, 물질, 삶의 소중한 부분을 내어놓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체험했을 때,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자기가 가진 신분보다 소중히 여겼습니다.
요셉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시체는 십자가에 매달린 채 방치되었다가 공동 묘지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내려 세마포로 쌌습니다. 아직 사람을 장사한 적이 없었던 바위에 판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54)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내어놓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체험한 그는 예수님께 동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것을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자리까지 왔습니다. 인간적인 명예를 희생할 각오로 예수님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그는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희생하기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을 깨달은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는 우리의 형편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과연 변화시킬 수 없듯이 남을 십자가에 못박는다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변화가 좋은 것을 압니다.

그리고 변화를 바라며
상대편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다윗은 우리야를 못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못박았습니다.
십자군은 이슬람교도들을 못박았습니다.
알카에다는 뉴욕의 쌍둥이빌딩을 못박았습니다.
정치가는 정적을 못박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악순환 되는 역사를 볼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런데,
곁에 매달린 악한 강도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못박은 로마 백부장이 변화되었습니다.
무지한 백성들의 가슴이 변화되었습니다.
당대의 지성, 아리마대 요셉이 변했습니다.
분명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예수님이신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그를 바라보는 자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변화는
남을 못박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데서 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아래에서만
우리는 유일한 답을 찾습니다.
정녕 변화되길 원한다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예수님께 나아오라.
그리고 남을 못박으려 하지 말고 너를 못박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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