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지구가 사막화되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하게 인간의 마음이 사막화되어간다는 말도 합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행하신 일을 통해 답을 찾기 원합니다.
1. 은혜를 등지고 사는 인생은 사막화됩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다는 말씀처럼.
두 제자도 자기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 두 사도와 함께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엠마오로 가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 길은 불신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슬픔과 절망이 깔린 길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며 기대하였던 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순간 좌절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하여 큰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삶에 혼란만 왔을 뿐,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60 스타이돈 (약 12Km)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는 '엠마오'는 두어 시간 걸으면 도달할 수 있었던 거리였지만, 그들에게는 멀고 길게 느껴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들은 잘못된 메시아관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으니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죽으심은 한 선지자의 비극적인 최후에 불과했습니다.
주님께 걸었던 기대가 무너져서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무지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만 저들의 잘못된 꿈이 좌절되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꿈은 성취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하셨기 때문입니다.(롬5:8)
우리의 메시아관은 옳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내 인생은 좌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 내 인생 안에서 새롭게 시작함을 믿으십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꿈이 우리 인생 안에서 시작됩니까?
부활의 주님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서도 무관심했습니다.
그날 아침에 전해들은 예수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그들은 허탄한 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떤 삶이 이루어졌습니까?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부활의 승전고가 온 우주에 울려퍼지고 있는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기뻐해야 할 바로 그 때인데
그들은 슬퍼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슬플 때는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십자가의 사랑을 알지 못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데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신 목적을 알지 못할 때, 슬픕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을 믿지 못할 때 우리는 슬픕니다.
우리와 함께 행하심을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낯선 사건을 만날 때마다 당혹스럽고 근심되고 슬픕니다.
이 슬픔과 절망은 부활하신 주님의 목적을 깨닫기까지 계속됩니다.
미련한 우리 인생은 주의 공로를 모르고
그 쓸쓸한 사막 가운데 늘 헤매고 다녔네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336장)
적용]
예수님의 공로가 내 삶에서 감격이 되고 있습니까?
그 때, 기쁨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날 위해 죽으신 그 은혜가 감사합니까?
오른 편 강도에게서처럼 감사할 때, 맘이 늘 편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날 찾아오심을 믿습니까?
생활 속에서 큰 기대와 설레임이 있습니다.
2.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두 제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글로바로 알려지고 있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유력한 열두 제자에 들어가지도 못하였고, 내놓을만한 무엇도 없는 신앙인들입니다.
제자라고 하니까 제자인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님을 따르다, 그들의 연약한 믿음 때문에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슬픔 당한 사람들을 찾아오십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연약한 제자들의 슬픔을 아십니다.
그들이 당하는 괴로움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슬픔 당한 성도들을 그 슬픔 속에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찾아오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슬픔과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슬픔 당한 자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갖게 하고 우리를 본향으로 이끌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 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94장)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이 저들의 슬픔과 절망을 녹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찾아오심은 천수답에 물을 대주는 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천수답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물줄기가 바로 생명줄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물줄기를 빼앗아 가려하지 결코 채워주지 않습니다.
예화]
천수답을 경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서운 가뭄이 왔습니다.
밤새워 물을 길어 논에 부었습니다.
물이 어느정도 찬 것을 확인하였을 때는 새벽 동녘이 뿌옇게 터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쁜 마음을 가지고 잠을 자러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자기가 밤새워 길어 부어놓은 물이, 물을 대지 않은 아래 논으로 다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아래 논 주인이 구명을 뚫어 물을 빼내간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일은 물을 대주신 사건과 같습니다.
예화]
워치만 리의 책을 보면, 그 반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이런 기가 막힌 일을 당했을 때, 아래 논부터 물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논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논의 주인이 물을 빼담으러 왔다가 이 놀라운 일을 보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생명이 채워진 것입니다.
사막화되어가는 우리 인생의 살길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찾아 오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17절).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희의 눈이 가려져서 그 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16절).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글로바는 예수 그리스도께 정중하게 답변했습니다.
당신(當身)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近日)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글로바의 말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소란해졌으며, 거기 살면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답하는 대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아는 바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19)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19절).
그러자 그들은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주 예수님께 관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이 말속에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이며,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선생이셨습니다.
그는 영광스러운 이적을 많이 베푸심으로써 이를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능하신 분이었습니다.
말과 일에 능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큰 소망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21절).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목말라하던 이스라엘의 구속과 위로를 못박아버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소망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혼란스러운 놀라운 사건이 생겼습니다.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환상이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저렇게들 안타까운 말을 할까?
사도들 중 몇 사람도 무덤에 갔다가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도 저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습니다(24절).
3. 주님께서는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1] 먼저 주님은 말씀을 믿지 못하는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미련하고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절).
그리스도는 그들을 미련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위선되고 간교한 헤롯이나 종교 지도자들에게나 한두 번 사용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사건에 대하여 불신을 가진 제자들에게 과격한 도전을 주십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더디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더디 믿으며 선입견만으로 멀리하는 자들을 미련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예수님께서는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 메시아의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6절).
메시야는 이런 고난을 당하셔야만 합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신 다음 그는 영광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그것을 자기의 영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부활하실 때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셨습니다.
먼저는 가시 면류관을 그 다음에는 영광의 면류관을 말씀하셨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성경말씀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27)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先知者)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聖經)에 쓴바 자기(自己)에 관(關)한 것을 자세(仔細)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을 통해 그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두 제자의 오해는 잘못된 메시아적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결과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은 당시의 메시아적 기대인 정치적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성경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결국 그들의 눈이 밝아진 후에야 그들은 부활하신 영광의 예수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풀어주셨을 때, 그들의 슬픔과 의심은 봄눈처럼 사라졌습니다.
(4)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28)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저희가 강권(强勸)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저희와 함께 음식(飮食)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祝謝)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31)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가야할 길에 다 이르도록 예수님께서 동행하셨습니다. 동행하며 말씀하며 가는 길에서 계속 함께 하셨습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예수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X2)
5]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머무시도록 강청했습니다.
(29)저희가 강권(强勸)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교제하며 기쁨을 맛 본 사람은 '함께 유하사이다' 간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저희와 함께 음식(飮食)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祝謝)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문 앞에 서서 기다리시며 언제든지, 누구든지 문을 열고 들어오소서 간청하면 "그에게로 들어가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계 3:20). 그리고 들어오셔서 축복하여 주십니다.
"할렐루야!"
마무리하는 말
음식을 먹을 때 즉 그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셨을 때, 비로소 그들은 자기들과 내내 이야기를 나눈 분이 예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안개는 걷히고 장막은 벗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모습을 감추셨습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성령의 시대는 왔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나누던 대화를 생각하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나누던 대화를 생각하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불순종하던 그들의 발걸음이 순종하는 발걸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따라 가면서 우리가 가는 길을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없이 걸어가는 나의 인생 여정은 사막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동행하는 나의 길에 열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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