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 어린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너무 예쁩니다. 지난 주일에는 은아가 얼마나 율동을 잘하는지 모릅니다. 얼마전에는 3살 난 정근이가 나에게 와서 몇시예요? 묻습니다. 어린 제니는 아장아장 걸어 와서 저를 톡톡 치고 악수를 하고 갑니다.
저는 이 어린이들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볼 때, 예쁜 것처럼 우리들이 하나님보시기에 잘 자라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자라는 신앙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라셨습니다.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은 그 지혜와 키가 자라셨습니다.(52절) 그분의 몸, 즉 키와 체구가 자라셨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성장기를 따라서 자라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시니 측량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육신을 입으셨을 때 어린 아기로 태어나셨고, 우리와 같이 자라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지혜의 면에서도 성장하셨습니다. 신의 성품이 자라신 신체 전반에 점점 확산되었습니다. 근본부터 타고나신 하나님의 형상이 영혼에 점점 충만해지셨습니다.
그는 감성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 안에서 점점 충만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점점 자라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풍성해지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사람 앞에 더욱 사랑스러워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신체와 지혜와 사랑에서 성장의 방법을 취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성장은 우리 인간과 본질이 다른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근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동물도 성장합니다. 사람도 성장합니다. 예수님도 성장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차원은 다른 것입니다. 동물은 자라도, 동물일 뿐입니다. 사람은 자라도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의 성장과 함께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모두 기이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어떤 훌륭한 교사나 성인에게서도 예수님이 이루신 그 형상을 체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였고 하나님의 성품이었고, 하나님의 형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맛보게 해 주었습니다(칼빈).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다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기이히 여길 뿐이었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이시라도 성장의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장과정에서 성장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지혜와 믿음 안에서 자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知情意 전 부분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믿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앙 경륜이 깊어 갈수록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엎드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이루소서(217장)
그의 모친은 아들이 하는 말들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이 모든 말들을 마음에 두었다'(51절).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모호하다고 해서 그것들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처음에는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불분명하던 것(말씀)도, 나중에는 분명하고도 쉽게 생각될 것이다. 또한 그 말씀이 지금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의 용도를 알게 될 것이다.(매튜 헨리)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 하시니
신앙 생활을 할 때, 본질과 비 본질을 구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비젼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면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 받는 일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 절기를 마치기까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절기를 마치기까지 의식에 참여하였습니다. 절기가 끝나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올라 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그들은 유월절 연회기간인 7일 동안 내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의식이 끝날 때까지 서둘러 떠나지 않고 머물 수 있었습니다.
1] 예수님께서 남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믿는 일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절기가 끝났을 때에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사렛을 향해 떠났습니다. 하룻길을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당연히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였던 모양입니다(44절). 요셉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있는 줄로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있는 줄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절기에는 많은 무리들이 몰려왔으므로, 그의 부모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이웃들과 함께 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갔습니다.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그를 찾았습니다. 혹시 "예수를 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예수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45절). 결국은 아무도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가는 일이 신앙입니다.
2] 예수님 없이 간 하룻길! 그 길은 헛길입니다. 다시 돌아와야 할 길입니다. 가나마나한 길입니다. 본질 되시는 예수님을 잃어버린 채 많은 사람들이 자기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 없이 잘 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없이 평생을 살다 갑니다. 비본질적인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임종시까지 갑니다. 그리고 그날에 구원의 주께서 곁에 계시지 않는 사실에 당혹합니다.
3] 하지만 늦게라도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그분을 만나게 됩니다. 본질을 찾게 됩니다. 그분을 찾는 자들은 반드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라도 주님을 만나게 될 때까지 찾아야 합니다.
구하라 !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55: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 그리하면 살리라 (암5: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1)
-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계셨습니다.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마리아는 사흘만에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사흘을 그를 찾아 헤맨 후에야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흘이 걸려서라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4] 근심하면서라도 예수님을 찾는 자들은 그만큼 더 큰 즐거움을 가지고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난 후 물었습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48절)."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거기에 있는 것을 보고, 자기들이 얼마나 근심했는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리스도를 잃어 버렸다고 생각한 부모들은 근심하면서 찾았습니다. 근심하면서라도 예수님을 찾는 자들은 그만큼 더 큰 즐거움을 가지고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5] 예수님의 일로 지나친 근심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에 대한 그들의 지나친 근심의 불필요함을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내 아버지의 일에 즉 나는 아버지의 사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당신들처럼 즉시 집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메튜 헨리) 성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이 예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의 부모는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50절). 그래서 쓸데없는 근심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6] 주님을 닮고 싶으면 성전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성전과 예수님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성도의 몸을 성전 삼아 그 안에 계신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거하시기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성전주의자이십니다. 성전을 성전다웁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교회를 교회로 세우십니다. 성도를 성도다웁게 하십니다. 이 성전을 온전케 하시기 원하셔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찢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기에 합당한 성전으로 거룩히 보존하는 일은 하나님의 사람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순종하여 받드셨습니다
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 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올라 갔다
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1) 소년 시절,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여 섬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절기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41,42절). 예루살렘까지는 긴 여행이었으며, 또한 그들은 가난하였지만, 항상 율법에 따라 유월절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이셨을지라도,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공적인 의식을 경건하게 드림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린 예수는 열두 살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유대 학자들은, 열두 살 된 아이들은 때때로 금식을 시작해야 하며, 열세 살 되면, 아이는 율법의 아들이 된다고 합니다. 이는 유아기 때부터 할례에 의하여 계약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어려서 하나님께 바쳐진 아이들은, 자라서는 복음의 유월절에 즉 주의 만찬에 초청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을 그들 자신이 실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순종을 절기의 전례를 좇음으로 표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을 절기 이상으로 실천하였습니다. 부모가 돌아간 뒤에도 계속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집에 가기가 싫었거나 부모와 동행하기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거기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부모로 하여금 자신에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계시며 자신은 그들에게보다 그분에게 더욱 복종하여야 함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분이 부모들에게 보다 더욱 복종해야 될 분이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부모에 대한 불경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집에 거하는 그 본질 존중의식이 성전에서 발이 떨어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기꺼이 주의 집에 거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주의 집에 거할 때 그들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신체적인 부모님을 순종하여 섬기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양친에게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양친에게 예루살렘에 와서 정착해 살 것을 권하지 않고 기꺼이 나사렛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돕고 은둔해 계셨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목수 일에 종사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의무를 다하는 자녀의 본이 되십니다.
양친이 가난하고 비천한 반면 그 자신은 영적으로 강하고 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양친에게 순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리석고 연약하면서도,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메튜 헨리는 이렇게 그의 주석에 적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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