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24:36-49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들어가는 말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 부모와 말이 통합니다. 우리 교회와 나이가 가장 비슷한 아이가 제가 알기로는 태희인데요. 태희랑 이야기를 하면 웬만한 말은 통합니다.
서머나 교회가 이제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중심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1. 우리는 평강을 소유한 증인입니다(36절). 

부활의 주님께서 그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였습니다. 그들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평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그들이 많은 수가 아니었지만 교회가 태동하던 당시에는 그들이 전부였습니다. 사도들과 그 주변의 소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교회였던 그들은 당시 상당히 큰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잃어버린 그들의 모습은 선장을 잃은 배에 탄 승객들과 유사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벌써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고기 잡으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사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놀랍고 무서웠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마음에 예수님께 대한 의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에겐 평강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평강을 선물로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친(親)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平康)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오늘, 우리 서머나 교회의 크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말씀하시던 그 당시의 크기 비슷합니다. 아홉 다락방과 그 다락방마다 모이는 수 역시 그렇게 많이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처럼.
이런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친(親)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큰 교회가 될지어다 하시니
 
하셨습니까? 아니지요! 

너희에게 평강(平康)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우리 서머나 교회에 주님께서 주시고 싶어하시는 선물은 평강입니다. 샬롬이 필요합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꼭 필요한 것은 세상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평강임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주님께서 평강을 제자들에게 주시길 원하십니까?
예수님이 바로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왕께서 그분께 충성하는 증인에게 평강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제자들은 바로 이 평강의 증인들입니다.
증인은 순교자와 그 어원이 일치합니다. 그러나 평강 중에 나아가는 순교자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교회에는 때로 어려움도 있습니다.그러나 늘 평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주님의 증인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기 원하십니까?
주님께서 증인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평강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 고난의 증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증인으로 삼으시려고 찾아오셨을 때, 그들은 심히 놀랐습니다(37절). 
그들은 영(귀신) 보는 것처럼 무서워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평강 대신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면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믿음 대신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38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증거를 보여 주심으로써 그들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강 가운데 들어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의 의심을 떨쳐버리고 부활 신앙을 굳게 붙들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분명한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몸 특히 손과 발을 보여 주십니다.
"너희가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그렇게도 가깝게 대화를 나누던 바로 나다.
내 손과 발을 보라. 
나에게 손과 발 즉 실제 육체가 있는 것을 보라. 
못자국 난 손과 발이 보이지 않느냐? 
이것은 다른 사람의 육체를 빌린 것이 아니고 너희가 보았던 바대로 십자가에 못 박혔던 나의 몸이다." 
예수님께서는 영은 살과 뼈가 없다는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못에 찔린 손과 발을 보여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는 못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못자국으로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증명하셨습니다. 후에 도마에게도 보여주신 손과 발의 못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39, 40절)

손에 난 못자국을 그들에게 자기를 만져 보게 하심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그들의 죄를 위해 죽으신  분이심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아픔을 체험하지도 않으시고 현실에서 유리된 영이 아니라  저들의 현실 속에 온전히 동행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믿게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부활하셔서 우리 곁에서 동행하며 말씀하며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손과 발에 못자국이 있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 당하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나를 허물과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 예수님께 대하여 무엇을 알려주어야 합니까? 내가 분명히 깨닫고 있는, 또 깨닫지 못하고 있는 나의 허물과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예수님의 손과 발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분명한 죄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시기) 농부가 이른 아침에 부름을 받았든지 오후 늦게 부름을 받았든지 주인의 일터에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일하는 포도원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직분) 다섯 달란트를 맡았든지 한 달란트를 맡았든지 종은 열심히 장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일터에서든 하나님께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그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셨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적질하고 이런 일에는 마땅히 회개할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터넷에 몇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보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비생산적인 생각(시기, 질투, 다툼)으로 며칠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내가 무심히 그리고 습관적으로 지나치는 이런 일들은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실 수밖에 없는 그런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아니하고 주신 인생(달란트, 일감)을 낭비하고 지내는 이 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자녀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저는 제 아들 위로에게 목회에 대해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장에서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충성하자고 말합니다. 지난주에는 위로가 눈삽으로 교회 입구의 눈을 치웠다고 해서 칭찬해주었습니다. 덕이 되지 않는 일을 할 때는 꾸짖어 상기시켜 줍니다. 단지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장에 일꾼으로 부름 받은 우리가 충성하는 일은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목장을 잘 관리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목사가 자신의 목장에서 맡은 일을 게을리하면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목사에겐 많은 여백이 많습니다. 우선 시간의 여백이 많습니다. 제가 어떻게 시간을사용하고 있는가를 감독하는 우리 교인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임의로 시간을 낭비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으로 부름을 받았든지 주님의 손과 발을 바라보면서 회개하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것은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한 여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 28:9),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밤 열 한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그들은 영으로 생각했습니다 (37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서는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빈무덤을 확인한 베드로까지도 확실한 부활 신앙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다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자마자 산산이 흩어져 숨어버린 비겁자들이었습니다. 증인답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믿기를 주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겼다"(41절)는 말씀을 만납니다. 
슬퍼서 믿지 못합니다. 
보지 못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너무 기뻐서 믿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부활 증인이 되기에는 적합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부르십니다.

먼저, 함께 잡수심으로 부활을 증거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손과 발에 상처가 있으신 그대로의 부활입니다. 살과 뼈가 있으신 부활입니다.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실 수 있는 육신이 있으신 부활입니다. 물론 그 육체는 영광스럽게 변화되신 부활의 육체이지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부활을 영적으로만 생각하려 합니다. 
생활 속을 들쳐 보면, 그 안에 두려움이 많습니다.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두려움이 많습니다.
생활 속을 들쳐 보면, 그 안에 의심이 많습니다.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습니다.
사건에 대한 의심이 많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을 때, 우리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영으로만 생각할 때, 우리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는 영으로만 우리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양의 생활 전반을 주관하십니다.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생활 중에서 평안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우리 성도의 목자장 되심을 믿을 때, 평강이 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동요하던 마음엔 의심이 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몸이 실체임을 보여 주시려고 함께 잡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갖고 용기있게 살게 하시려고 주님은 먹을 것을 청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실제로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심으로써 그의 육체가 다시 살아난 사실을 증명하셨습니다. 

(41)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이에 구운 생선(生鮮) 한 토막을 드리매 (43)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베드로 사도 역시 이 사건이 움직일 수 없는 사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행 10:41)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하게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상처를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음식을 잡수어 보이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신시키십니다. 

또한 말씀으로 부활을 증명하십니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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