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일본에서는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고 떠들석합니다. 그 중에 ‘겨울 연가’란 드라마가 한류 열풍을 선도하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요즘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단연 한국 배우 배용준이다. 일본에서 배용준의 별명은 ‘용사마’로, 용은 배용준의 용, ‘사마’는 동경의 대상이나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지칭할 때 붙이는 극존칭 호칭이다. 누가 어떻게 배용준을 ‘용사마’로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한국 배우에게 사마를 붙여 부르는 것은 처음이다. 배용준의 인기는 NHK의 위성방송으로 방영된 ‘겨울연가’의 인기 덕분인데 현재는 NHK 종합채널에서 매주 토요일 밤 전국적으로 방영되고 있다.”
일본의 NHK위성방송이 매주 토요일 11시 다 잠자야 할 시간에 방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있답니다.
겨울 연가의 주인공 배용준이나 최지우가 누리는 인기는 일국의 대통령을 능가한다는 보도입니다. 일본 수상이 부러워하는 발언을 몇 차례 하였을 정도입니다. 그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작품을 촬영한 장소까지를 보기 위해서 관광객이 수없이 몰려온다고 합니다. 관광면에서는 늘 적자국이요 후진국이라 할 대한민국이 상당한 진전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겨울연가가 동남아를 휩쓸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일부러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겨울연가란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 까닭은 겨울 연가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공이 추운 겨울을 맞아 인생에서 쓸쓸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그 절망적 상황에서도 순수한 사랑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하면 음란문화가 판을 치는 나라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 백성들이 음란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 속에서도 피어나는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겨울 바람 앞에 시리도록 떨며 기다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개인의 모든 영화를 뿌리치고 달려가다 끝내 장애자가 되는 남자 주인공(배용준)이나, 좋은 조건을 다 뒤로하고 장인이 되어 있는 남 주인공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그의 곁에서는 여주인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래 사람은 겨울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저런 순수한 사랑에서 나오는 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추운 겨울이기에 그 때마다 현실 속에서 그들이 겪는 추위는 견디기 힘들지만, 결국은 저들의 사랑이 마지막 행동을 결정합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겪는 것과는 많이 차이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현대 젊은이들이 배우자를 결정할 때, 사랑을 가장 귀한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 현실 속에서는 여름의 무성한 잎이 달린 가지를 보거나, 가을의 주렁주렁 열린 열매를 보고 결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 있는 집안의 사람인가를 봅니다.
외모를 봅니다.
학력을 봅니다.
능력을 봅니다.
건강을 봅니다.
외적인 조건을 철저히 따집니다.
그런 외적인 조건을 따라 배우자를 결정합니다.
그러한 인생의 쓸쓸함을 알기에 어쩌면 저런 겨울 연가와 같은, 현실에서 추구하기 힘든 겨울 연가와 같은 작품 속에서 보면서 대리만족을 누리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마지막 겨울, 가장 모진 추위 앞에서 떨고 있는 성도들을 만납니다.
왜 마지막 시대를 달리는 성도들의 앞에 이런 겨울이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김선일 씨에게 닥쳤던 겨울과 같은 추위가 내 앞에 닥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런 겨울을 피할 수 없는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진 겨울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강렬한 겨울 연가입니다.
성경이 어떤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까?
아담 이후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겨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에덴을 잃어버린 아담의 겨울이 혹독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 아래 팔려 혹독한 겨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예수님 같은 사람을 한 사람 찾으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손꼽을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요셉의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겨울을 생각해보십시오. 형들에게 당한 수모와 종살이 옥살이를 전전하면서 겪는 겨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의 모형처럼 생각하는 다윗을 두고 말하더라도 죄 아래 팔리 그의 겨울을 너무 춥습니다. 꼭 골리앗이 아니라도 그가 얼마든지 충성하고 싶어 했던 사울로부터 날아오는 찬바람을 생각해보십시오.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날아오는 눈보라를 생각해보세요.
하물며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경건치 않았을 때에, 연약할 때에, 우리가 겨울 속에서 얼어죽어 가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참 빛으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겨울 속에서 떨고 있는 우리를 찾아 오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보다 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외아들의 죽음보다 강하셨기에 '죽음보다 강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무서운 겨울, 그 좋은 천국을 버리고 우리를 찾아와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겨울을 완전히 녹이셨습니다.할렐루야!‘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죽어 가고 있는 날 위해 외아들을 죽음에 내어 주신 사랑은 가장 강렬한 겨울연가입니다.
어떻게 이 말세에 이런 사랑을 누릴 수 있습니까?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거룩하신 주님이 성전 된 내 안에서 왕으로 임재하시도록 세상에 대하여 죽을 수 있을 만큼 주님을 강하게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열매로 나타납니다.
2. 우리의 마지막 겨울은 너무 춥습니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사람들은 누구나 감당하기 힘든 겨울을 싫어합니다. 캐나다가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겨울이 길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들마다 환난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인류의 겨울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이런 본문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기간이 나에겐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마지막 겨울은 이렇게 혹독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셉은 십대에 형들에 의해서 팔린 후, 청년기를 추운 겨울 속에서 보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겨울을 보냈습니다. 또한 그 백성을 이끌고 가는 길에서 있어서까지 40년 동안 겨우살이를 하였습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는 바벨론에서 추운 겨울을 났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살고 있던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백성의 겨울은 만주벌판의 추위보다 더 심합니다.
우리 주님께도 겨울이 혹독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참새도 머리 둘 곳이 없는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머리 둘 곳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몰이해 속에서 사시다가 그 모진 십자가 형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맬 깁슨의 영화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당하신 그 겨울의 혹독함에 놀랍니다.
그 제자들이 당한 겨울 또한 매우 추웠습니다. 열두 제자가 어느 한 사람 온전히 살다 간 사람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계절로 표현하자면 당연히 겨울입니다.
많은 환난과 위험과 배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 속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환난과 결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양완 목사님의 삶은 겨울의 연속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께서 긴 겨울을 보내시다가 겨울에 순교하였습니다.
일제시대와 공산치하에서의 기독교는 모진 겨울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겨울나기를 잘할 수 있습니까?
1] 거룩한 곳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을 지워가야 합니다.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거룩한 곳이 어디입니까?
성전입니다.
교회가 성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교회에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서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성도가 성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도 된 우리 안에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우리 자신을 거룩한 성전으로 지켜야 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처럼 성도 자신이 성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신 안에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채워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말세지말을 당하여 이 성전을 멸망의 가증한 것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M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진지한 신앙인들에게 있어 지하철을 타고 가던 시간은 참으로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성경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전을 말씀으로 채우고, 기도로 채우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휴대전화를 즐겨 쓰는 M(mobile)세대는 상대방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시간으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상대의 나에 대한 감정을 읽어내는 시간으로 사용한답니다. 말로 하기 쑥스러운 사랑고백까지 문자메시지로 처리한대요. 여자친구로부터 문자메시지로 헤어지자 통보를 받기도 한답니다.
“일단 손에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하다”
문자 메시지가 ‘씹히는 것’을 더 불쾌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를 살까봐 심리적으로 더 불안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동아일보의 김희경 기자는 M세대 ‘문자공화국’이라고 표제를 달았습니다.
이쯤 되면, 인터넷이나 TV는 말할 것 없고, 우리에게 필요한 필수품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핸드폰도 멸망의 가증한 것이 아니라는 장담을 못할 처지입니다. 가장 매력적인 것들이 우리 영적인 룸을 초토화시켜 가는 것에 대하여 경종을 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지막 겨울은 참 춥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이 겨울보다 강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신랑 언제 만날 수 있겠습니까?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이 말씀에 순종한 기독교인들이 로마 티투스 장군의 공격 때에 산으로 피하여 대부분 살아남았다는 요세푸스의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며 좀 현대문명의 이기들에서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말세지말에 성도들이 세상을 떠나 살기는 힘든 일이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문명의 이기를 피하여 산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모든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여름 서머나 가족 여름 수련회 때는 될 수 있으면 핸드폰이나 게임기 등을 가져오지 않도록 하십시다. 순전히 하나님과 만나고 성도들과 만나면서 하나님과 성도들간의 깊은 교제를 나누는 축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 중 어떤 시간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꺼버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대화하는 예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하는 일이 죽는 것보다 힘들 때가 있겠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죽음보다 강한 사랑은 바로 그런 세상에 대한 죽음을 통해서 열매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겨울나기를 잘할 수 있습니까?
2] 예수님만 참 신랑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세상에는 신부된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표적과 기사가 많습니다. 놀라운 이적들이 신부를 미혹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원을 가진 것처럼 행세합니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세력이 신부를 미혹합니다. 뱀이 하와를 미혹할 때에 광명의 천사처럼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말로 나타났습니다.
의의 일꾼처럼 신부를 미혹합니다.
제비족이란 말이 있습니다.
진실만을 말하는 것처럼 말이 번지르합니다.
외모가 반듯합니다.
씀씀이가 통이 커보입니다.
능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저들이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 신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바로 제비족처럼 외모가 반듯합니다. 거짓 신랑입니다.
따라서 겉에 나타나는 표적과 기사만으로 참 신랑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것 같다고 참 신랑으로 오인하지 않기 바랍니다. 살려주는 영을 갖지 못한 어떤 영도 참 신랑일 수 없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자는 것이 거짓 신랑의, 어두움에 속한 권세의 일입니다.
사랑은 모양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겉에 나타난 것만 보다가는 미혹 당하기 쉽습니다.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 안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죽음보다 강한 사랑 속에 담겨 있습니다.
3. 겨울을 잘 지낸 자는 받을 영광도 큽니다.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겨울이 겨울로 끝나버린다면 그 겨울을 사는 사람에게는 슬픔이요 고통 이상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겨울이 언젠가는 가고, 그 다음에 봄을 두셨습니다. 봄을 보장하셨습니다. 봄을 보장받은 사람들에게 겨울은 결코 저주가 아닙니다.
캐나다의 겨울이 길지만 캐나다 겨울을 땅 속에서 보낸 밀의 질이 세계 제일이라 호평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에게 있어서 겨울은 봄이 보장된 겨울입니다. 겨울이 인생이 끝이 아닙니다. 반드시 봄은 오게 마련입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사실 겨울 속에서 주님 오실 그 봄을 준비하여 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대부분 이 겨울 속에서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영광의 그날, 부활의 몸을 입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국 교회는 긴 겨울을 난 교회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선일씨의 목잘려 죽은 사실로 인하여 세계가 경악하고 있습니다. 그런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어디있는가 하고 분노합니다. 그러나 불과 200년 전에 우리 할아버지들은 한 명이 아니라 수 만 명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목을 잘랐습니다.
개신교의 토마스 선교사도 대동강에서 성경을 뿌리고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의 목을 잘라 죽인 민족의 후손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공산치하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수없이 희생되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무서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에서의 사건은 보도가 되고 있고, 북한에서의 사건은 묻혀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혹독한 겨울을 지낸 우리 한국 교회이기에 받은 영광도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세계선교 강국이라는 명예가 어디서 왔습니까? 이 혹독한 겨울을 지우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계 50대 교회의 절반이상이 한국에 있다는 말이 믿어지십니까? 유독 세계적으로 강한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 놀라지만, 사실 긴 겨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1:4절에는 마흔 두 달 전 3년 반과 후 3년 반을 합하면 역시 7년이 됩니다. 이때 믿음을 가지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이들이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화 되어 들림 받은 성도들과 지상에서 휴거 된 이들이 공중 혼인 잔치의 주인공이 되어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그들이 기쁨으로 겨울을 잘 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에게는 봄이 반드시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보다 강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에게 열어놓으신 영원한 천국에서 봄에 깨어날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 지상에서 마지막 겨울을 잘 보낸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천국에서 아름다운 봄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성도들에게 큰 소망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서머나 성도 여러분,
지금 추운 겨울을 보내고 계십니까?
이 겨울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받은 우리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녀답게 이 겨울에 사랑으로 보답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죽음보다 강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봄을 보장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겨울을 잘 보낸 자에게, 특히 마지막 겨울을 잘 보낸 자에게 천국의 봄이 찬란한 영광 중에 깨어나리란 약속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고, 믿음으로 겨울을 인내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그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에 우리를 위해 행하신 사랑을 생각하십시오
그분의 죽음보다 강하신 사랑이 나의 겨울에 바로 내 생애에서도 꽃피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죽음보다 강한 사랑은 마지막 겨울을 잘 이긴 모든 성도들에게 찬란한 봄을 확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고.
마지막 겨울에는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입니다.
그곳에서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꽃피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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