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February 2015

마25:31-45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

들어가는 말

여러 해 전에 아브라함 링컨의 생일을 기념하는 그림이 어떤 잡지에 실렸답니다. 링컨이 어렸을 때부터 생활하던 허술한 통나무집과 그 위에 백악관을 그려 넣어 그 두 집 사이를 사다리로 연결시켜 놓은 그림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천국에 비하여 백악관 앞에 있는 링컨의 어린 시절 통나무집보다 훨씬 더 열악합니다. 그러나 그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다리로 놓아주신 십자가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나라,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백악관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천국의 왕이 재림하시는 현장에 관한 보고를 듣습니다.


1. 왕은 심판 주로 오십니다.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인자가 영광 중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날이 있습니다.
그때에 왕이신 주님께 인정받은 자들은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구요. 그리고 심판을 행하십니다.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 하리로다(시1: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수양과 수 염소의 사이에 심판하노라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의 꼴을 발로 밟았느냐”(겔34:27-28)

그 심판은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아 양은 오른쪽에 염소는 왼쪽에 두게 되는데 오른쪽의 무리는 영생(eternal life)에 들어가고 왼쪽의 무리는 영벌(eternal punishment)에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각각 분별하시게 됩니다. 목자가 양은 양끼리 모아 그 오른 편에 두고 염소는 염소끼리 모아서 왼편에 두는 것처럼 말입니다.
염소와 양은 겉보기에는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동물입니다.
양은 주인의 말을 잘 듣는데요. 염소는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염소는 밤만 되면 추위에 약해 밖에 놓아둘 수 없습니다. 우리와 같은 닫힌 공간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양은 오히려 열린 공간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데 쓰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겔34:10)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양을 돌보는 목자로 말씀하십니다.

윤원철(KIST) 교수는 "신앙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들의 신앙과 삶의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 자전거 페달을 돌리던 기억과 낚시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손으로 페달을 앞으로 돌리면 무거운 중량감과 함께 뒷바퀴가 따라 돌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참을 돌리다가, 이제는 페달을 뒤로 돌리면 힘도 들지 않고 빨리 돌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만 뒷바퀴는 돌아가지 않은 채 따르륵 따르륵 거리는 소리만 나게 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신앙도 거기에 삶이 실리지 않으면 바퀴를 물고 돌지 않는 페달처럼 가볍고 의미가 없다'

또, 낚시를 해보면 고기가 물린 낚시 대는 참으로 묵직한 힘과 함께 끌어올려지지만, 고기가 물리지 않는 낚시는 아무리 헐리우드 액션으로 폼을 잡고 올려봐도 가볍고 허망할 뿐입니다. 이렇듯 신앙에도 삶이 물려 있지 않으면 그렇게 가볍고 허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신앙은 냄비 신앙과 같아서 금방 뜨거워졌다가 또 금방 식고 마는 참으로 가벼운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윤 교수는 '신앙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는 말씀은 다시 오시는 그날에, 주님께서는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구분할 것입니다.

2. 그날에 상벌이 있습니다.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이 말씀을 받기 전에 먼저 우리가 이해하여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40절에 가난한자, 갇힌 자, 병든 자 등의 불쌍한 자들”을 돌아보는 것이 이 비유 속에서 나타나 있듯이 결국 영벌과 영생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믿음으로 구원 얻는”진리에 어긋납니까?
아닙니다.
야고보서에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2:18)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 사회공동체의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믿음 외에 또 다른 방법을 통해 구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민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신명기에는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할 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신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요

세상 마지막엔 큰 심판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왕 중의 왕으로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병들고 가난하고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며 사랑을 베풀었으니 즐거움의 나라로 들어가거라"

(예화)
미국의 이름 있는 시인 로웰이란 사람이 쓴 글 가운데 "롱펠의 꿈"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롱펠은 중세시대의 어떤 성의 군주였습니다. 그는 말타기를 좋아하며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롱펠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뜻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때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작별의 저녁 식사를 하실 때에 포도주를 부어 마시게 한 은잔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듣건데 그 은잔은 후에 미술가의 손에 넘어가 예수님과 열두제자들 얼굴이 밑바닥에 그려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유명한 은잔을 찾아 후대 사람들에게 기념으로 준다는 것은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롱펠은 긴 여행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물통에는 물이 가득하고 자루에는 빵이 가득했습니다. 모든 짐을 말 잔등에 실었습니다. 돈도 넉넉히 가지고 말을 탔습니다.
성문을 지나 먼 여행길을 달렸습니다. 어느 벌판을 지나가다가 문등병 환자를 만났습니다. 문등이는 배가 고파 보였습니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형제여!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나를 도와 주세요. 먹을 것을 좀 주세요. 물을 좀 주세요." 구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롱펠은 말 위에서 거칠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방해하지 마라. 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구주예수의 은잔을 찾기 위해 떠나가는 몸이다. 더러운 문둥이가 어찌 나의 가는 길을 막는가?"
문등이는 더욱 애걸을 하면서, "나를 살려 주세요. 이대로 두면 굶어 죽습니다". 고 하면서 말 앞에 엎드렸습니다. 롱펠은 금돈 한 개를 던져주고 말을 달렸습니다. 롱펠은 이곳 저곳 다니며 은잔을 찾았지만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10년 가까운 세월로 구라파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였지만 헛수고 였습니다.
롱펠은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꿈은 사라지고 떨어진 옷을 걸친 그는 힘없는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벌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롱펠은 기진하였습니다.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간신히 몸을 가누며 걸어가다가 그는 걸인을 만났습니다. 걸인은 쓰러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추운데 ……저 노인이 ……."
롱펠은 쓰러진 걸인을 일으켰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으로는 이 빵과 물이 있을 뿐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것을 받으세요."
그리고 차고 있던 표주박을 들어 물을 따라 빵과 함께 걸인에게 마셔 주었습니다. 물을 받아 마시던 걸인은 홀연히 빛이 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라! 나로다 두려워 말라. 너는 은잔을 얻으러 이나라 저나라 여행하였으나 너의 얻은 것은 무엇이냐?
보라! 너의 손에 들려있는 쪽박을 ……나에게 물을 준 그 쪽박이 네가 찾아 헤매던 은잔이니라. 네가 준 그 빵이 찢기운 나의 몸이요. 나에게 마시운 그 물이 십자가의 피로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음식이 성찬이로다. 롱펠은 정신을 차려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재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찬송]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집이 있어
죄많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접해 주시겠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318)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나 불순종하면 받게 되는 저주가 있었습니다.

신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비된 나라 대신 예비된 영영한 불이 벌로 주어집니다.

[예화]
아프리카에서 국제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때 영국의 한 유명한 교수가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앞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초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영국이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난 후 예수를 잘 믿는 청년들을 뽑아서 영국의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등 우수한 대학에 보내서 공부를 시켜서 다시 보내면, 본국으로 돌아온 이 청년들이 그 곳에서 대학교수, 장관 혹은 사업을 잘 경영하여 재벌이 되기도 하고, 또 대통령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성공한 그들 중에서 거의 95%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님를 배반하고 만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잘되면 주님께 감사하고 더욱 믿음을 지켜가야 할텐데 오히려 주님을 배반하거나 대부분 교회를 떠나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3. 내 형제 중 작은 자를 선대합시다.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지극히 작은 자”(Little one 40, 45)가 누구입니까?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여기!
내 형제 중!
우선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말씀을 통해서도 입증이 됩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little ones)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

이 말씀에서 소자는 분명 예수님 제자입니다

마16: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본문은 언뜻 보면 예수님이 구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제 이상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서 영생에 들어갈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자녀다운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말합니다.
"임금님! 언제 우리가 그런일을 하였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 준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니라"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지극히 작은 자를 어떻게 대하여 사랑했느냐에 따라 모든 것은 결정이 난다는 말씀입니다.

교황 그레고리(Gregory)대제는 미사를 집전하다가 로마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 입었던 예복을 벗으며 바로 이 로마에서 사람이 굶어죽고 있다면 나는 미사를 집전할 자격이 없다.?라고 했답니다.
신학자 풀턴 J 신은 '공산주의와 서구의 양심'에서 말합니다. '서구의 그리스도인은 진리는 가지고 있으나 진리를 행하는 열심은 없다, 빛은 갖고 있으나 열은 없다, 이상은 가지고 있으나 실천하는 열정은 없다'고.
웨슬리 목사는 회심 3년 후인 1741년 7월 5일, 'Almost Christian'이라는 설교를 했는데, 자신이 성령 체험을 하기 전에는 '거의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이었음을 고백하며 '거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온전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비슷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역설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시 이야기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부상을 당해 누워 있는 군인을 보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읽어드릴까요?"
"물, 물 물"
목사님은 물을 주었습니다.
머리가 불편해 보여, 목사님은 코트를 벗어 말아 그의 머리를 받쳐 주었습니다.
너무나 추워 보여서 상의를 벗어 덮어 주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내게 베풀도록 하는 그 성경을 읽어 주십시오.?
기독교는 실천의 종교입니다. 사랑을 나누는 종교입니다.




[성경본문]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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