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February 2015

마가3:1-6 네 손을 내밀라

들어가는 말

손이 하는 일이 많습니다.

손이 없다면, 식사는 어떻게 하지요?
손이 없다면, 옷은 어떻게 입지요?
손이 없다면, Washroom은 어떻게 이용하지요?
손이 없다면, 돈이 있더라도 쇼핑은 어떻게 하지요?
손이 없다면, 물건은 어떻게 운반하지요?
손이 없다면, 머리를 어떻게 감고 다듬지요?
손이 없다면, 아침에 일어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운전하고 운동하는 일에서, 기도하는 일까지 손이 없다면, 정말 끔찍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을지라도 머리의 지시를 수행하는 것은 손입니다.
손은 사역적 기능을 감당합니다.
남을 돌볼 수 있는 사회적 기능도 손이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런 중요한 손이 마비되어 있는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손 마른 자가 주님께 은혜를 받은 일을 통해 은혜로우신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른 부분이 온전케 될 수 있는 길을 찾길 바랍니다.


1. 독선과 편견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한편 손이 마른  장애자 한 사람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그를 어떻게 할 것인가 흘금흘금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정해진 안식일, 정한 장소 회당)으로 주님을 만나도록 각본에 넣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안식일에 고치시면 송사하기 위한 낚시찌와 같은 존재로 서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 앞에 데려온 바리새인들의 의중에는 독선과 편견이란 죄악이 뱀처럼 저들의 마음 문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기 위해 그를 데려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참소하자는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이라도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실 것을 알고 악한 무리들은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겠으나 실상은 알 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틀림없다는 독선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편견과 독선으로 예수님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환자에 대한 이해도 굴절되어 있습니다.
환자가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온전케 되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참소할 수 있는 재료일 뿐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열심의 방향이 잘못되어 문자주의자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나 아니면 다 틀렸다는 생각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손 마른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한손 마른 자를 예수님 앞에 세워놓은 사람들을 중풍병자를 침상에 뉘어 매고 온 사람들처럼 고침을 받게 하자는 살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데려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덕스럽지 못한 일을 꾸미고 추진한 사람들에게도 한 가지 원칙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원칙은 인간에게 너무도 복되고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다만 이 아름다운 소식이 인간을 살리자는 하나님의 중심을 생각하지 않은 채, 어떤 특정한 이해집단의 욕심을 채우려는 독선과 편견 속에 빠져들 때, 그것은 독이 되고 있습니다.

[예화]

우리 서머나교회 도서부에는 인디언 멸망사를 다룬 책이 있습니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인디언들이 백인들이 아메리카를 세운 과정에서 어떻게 그 독선과 편견에 의해서 사라져갔는가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인디언들에 대한 독선과 편견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인디언도 사람이다! "

고 교육받은 백인들이 갖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디언 모도크족의 킨트푸애시은 말합니다.

“나도 하나의 사람일뿐이다. .......  내 피부는 붉지만 심장은 백인과 똑같다.”

서부개척사가 힘있게 진행되던 시절, 미국 군인 장교들에게는 인디언은 사람일 수 없었습니다.

“이 땅은 전에 인디언들만 살던 땅이었다. 한때는 상당히 세력이 강대하여 미시시피 강 동쪽을 완전히 점거하고 있던 이 종족들은 백인 문명이 서부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다가 하나하나 뿌리가 뽑혔다. …천부의 권리와 조약에 의한 권리가 침해당한 데 대해 항의하는 부족은 죽음을 당하거나 개 취급을 당했다.”
- 도네호가와(인디언 문제 담당관)

지은이 '디 브라운'은 어린 시절 인디언 친구와 서부 영화를 보러 간 기억을 되살립니다. '좋은' 기병대는 '나쁜' 인디언을 무찌르며 신나는 추격전을 벌이자 관객은 환호합니다. 그런데 이 인디언 소년도 덩달아 박수를 칩니다. 브라운은 의아해하며 "뭐가 좋아 박수를 치냐"고 물어보자, 그 인디언 소년은 대답합니다.
"진짜 인디언은 저렇지 않아, 저건 그냥 배우야."
그때 브라운은 영화나 책에 나오는 인디언은 백인이 꾸며낸 가짜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백인들은 걸핏하면 우리 고유의 생활을 버리고 자기네처럼 살게 만들려고 한다. 농사를 지으라느니, 열심히 일하라느니. 인디언들은 그런 걸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가 백인들에게 인디언처럼 살라고 했더라면 그들도 반발했을 것이다. 왜 바꿔 생각하지 못하는가?”
미국 서부 인디언 부족인 샌태 수우족의 추장 ‘큰 독수리’의 말이다. 미네소타 삼림지역에서 평화롭게 살던 그는 힘을 앞세운 백인들의 일방적인 행패에 맞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이 우리에 갇혀 아무 데나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고서 만족하기를 바란다면 강물이 거꾸로 흐르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네즈페르세족의 조셉 추장
이 책을 읽으면 이런 한마디의 말이 얼마나 큰 고통과 한에서 우러나온 절규인지 이해된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신대륙에 첫 발을 내디뎠다. 원주민 인디언들에게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860-1890년, 한 세대에 걸친 이 30년의 시간은 백인 입장에서 보면 ‘위대한 서부 개척사’이자 ‘서부 신화’의 시기다. 이 서부 개척사를 뒤집으면 다름아닌 인디언 멸망사다. 저자는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눈을 돌려’ 백인들의 ‘프런티어 정신’아래 땅을 빼앗기며 처절하게 쓰러져간 인디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훙크파파족의 전사 ‘앉은 소’는 “저 검은 언덕은 내 땅이다. 백인들이 이 땅을 빼앗으려면 나는 싸울 것이다”라고 결사항전을 다짐한다.

그러나 총칼을 앞세운 백인들의 무자비한 학살, 야비한 전술 속에 인디언 전사들은 쓰러져 갈 수밖에 없다. 오글라라 테톤족의 추장 ‘붉은 구름’은 “백인은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의 땅을 먹었다”고 절규한다. 그리고 ‘인디언 유폐지역’인 ‘인디언 보호구역’이란 우리 속에 갇히게 된다.

“내가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일들이 이 땅에서 수없이 벌어졌다. 백인들은 우리 땅을 가로질러 갔다. …백인들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핏자국밖에 남은 게 없다.”

- 오글라라 수우족의 붉은구름


'토론토'는 인디언 말로 '만남의 장소'란 뜻입니다. 그러나 토론토는 좋은 의미만 남고 인디언들은 주류 사회에서 사라진 지 오랩니다. 대신 수백년이 지나 또 다른 인디언들이 동양에서 중국인들이 50만명 이상 이주해 왔고, 우리 한국인도 10만명 가량, 이주해 와서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한손 마른 자와 같습니다.
세계에서 한 손 마른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입니다.
건강하지 못합니다.
부끄럽습니다.
할 일을 제대로 못합니다.
이로 인한 고독과 슬픔, 절망과 좌절이 있습니다.
말라비틀어진 한 손을 내 손이 아니라 부인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나의 손입니다.
사방의 강대국들은 우리 고국에 대해 불순한 마음(송사)을 가지고 엿보고 있습니다.
저마다 나름대로 계산된 독선과 편견을 가지고 우리 민족을 송사하는 국제 정세를 만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손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민족, 국가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와 같이 손이 부끄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와 같이 손이 마땅히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 마른 환자는 누구입니까?
누군가를 붙들어주어야 하난 붙들어 줄 수 없는
기도해주어야 하나 기도할 수 없는 손입니다.
도와주길 원하나 아까워 손을 펴지 못하는 손입니다.
용서하고 화해하고 높여줄 수 없는 손입니다. 옹졸함 때문에
최용덕 집사의 '오늘 나는' 이란 복음 송을 기억합니까
받은 은혜는 많으나 내어놓을 수 없는 환자입니다.
썩을 것을 붙들고 있기에 영원한 것을 붙들지 못하는 손입니다.
나의 어느 부분이 이처럼 말라 있지 않습니까? 내 마음속에 홍수 난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고독과 슬픔, 절망과 좌절을 헤아려 볼 수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라고 명하셨습니다.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
예수님께서는 한 손 마른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한가운데 일어서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을 내 밀라

펴야할 때 펼 수 없는 손입니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손입니다.
오므리고 싶어도 오므릴 수 없습니다
기도하여야 하나 기도할 수 없는 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바로 이런 손을 내밀라 하셨습니다.
교제의 악수를 나누고자 하나 교제의 손을 내 밀 수 없는 손을 내 밀라 하십니다.
내가 먼저 손내밀기 원하지만 손을 내밀 수 없는 그에게 손을 내밀라고 명하십니다.
손이 말을 듣지 않을텐데 손을 내밀라고 명하십니다.


네 손을 내밀라!
내 밀만큼 무엇이 있는 손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손입니다.
그러나 그 손을 내 밀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구원자를 향해 손을 내밀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손을 내밀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는 불구자이기 때문에 손을 내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손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손을 내밀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좋은 곳을 양보한 후, 하나님께 단절된 세계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아오셔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너는 일어나서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12:17)

야곱은 세겜 땅에서 딸 레아가 강간을 당하고, 이에 격분한 시므온과 레위가 보복하여 많은 세겜 사람들을 죽임으로 인하여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몰살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올렸던 모든 기반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오순절 다락방의 역사를 체험한 베드로와 요한이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주목하라!  합니다.
그는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아람왕 군대장관 나아만이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으로 인하여 몸이 망가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허락으로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절망적인 환경 속에 있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대신 일어나 행하여 보라 명하십니다.
야곱이 얼마나 큰 위기에 놓여 있는가를 묻지 않으십니다.
대신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명하십니다.
그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가를 묻지 않습니다. 대신 일어나 걸으라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문둥병자인가 묻지 않습니다.
대신 몸을 일곱 번 씻으라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모든 것을 박탈당한 상실감으로 괴로워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일어나서 주님께 손을 내밀어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처럼 인생의 위기에 번민하고 계십니까?
일어나서 벧엘에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단을 쌓으세요.
나아만처럼 불치의 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까?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강에 몸을 담그시기 바랍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성전 미문 앞의 장애인처럼 주저앉아 세상을 향해 두리번거리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십시오.



3. 손을 내밀 때, 회복시켜주십니다.

5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내미는 그 손을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의 손이 붙들어 주십니다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킬 손으로 회복지키세요.

베드로가 밤이 맟도록 수고하였지만,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혔습니다. 회복하시는 분이세요.

노아가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하되 120년간을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 노아를 통해 회복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되는 일에 순종하였을 때, 혈관에 피가 흐르고 굳은 힘줄이 힘을 얻었습니다.

첫 사람은 그 손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땄습니다.
가인은 그 손으로 동생을 죽였습니다.
로마병정은 그 손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는 이 손으로 무엇을 하였습니까?
이제 그 부끄러운 손을 내미십시오.
그리고
그 손으로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십자가에서 못에 찢기신 그 손으로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혈루병으로 십여 년 동안 그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나으리라는 심정을 가지고 손을 내미십시오.

어떤 사람과 관계를 끊을 때 손을 뗀다고 합니다. 교제의 손이 마르지 않았습니까?
손을 내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손을 내밀었을 때, 손이 온전해졌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참조, 마12:14;눅6:7).
참 훌륭한 분들인데 그들이 왜 생명을 죽이는 일에 쓰임을 받습니까?
편견과 독선 때문입니다.
마음이 완악해졌기 때문입니다.
완악이란 이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완악하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 종교적인 이기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신앙체험을 절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종교의식을 절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독단과 편견에 빠질 수 있는 위기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과 안식일에 대한 생각에서 독단에 빠져 있었던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금식과 안식일에 대한 체험을 절대화시켜서 금식하지 않은 사람들을 정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년에 한번 하였던 금식을 절대화하다 보니 일주일에 두번을 하고, 결국은 금식하지 않은 사람들을 정죄하게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것이 독단입니다.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39조항의 안식일 조항을 만들고 그 조항을 잘 지키려고 그 조항마다 세칙을 여섯 가지씩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좋은 것이 많습니다.
방언하는 사람은 방언이 좋다고 합니다.
철야기도를 진심으로 하는 분은 철야기도가 좋습니다.
주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일성수가 좋습니다.
저는 새벽기도가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집사가 되어서?
장로가 어떻게?
아니 목사님이!
말세야, 말세!
당신은 집사야 잡사야!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입술에 파숫군을 세워주소서! 기도하시고,
내 삶이
내 언어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쓰임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웃을 세우고 이웃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첫사람은 그 손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땄습니다.
가인은 그 손으로 동생을 죽였습니다.
로마병정은 그 손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여기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분이십니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그가 석수공이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돈은 있으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세리를 만났을 때 그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오늘, 인생의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를 돕기 위해서 댓가를 지불해야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어긴 자라는 큰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불쌍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안식일에 관한 독선과 편견(잘못된 신앙)을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로 극복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마무리하는 말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께서 손을 내밀라 하십니다.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나으리라는 심정을 가지고, 손을 내미십시오.

그리고
그 손으로 십자가를 튼튼히 붙드십시오.
야곱은 즉각 외쳤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35:3)

십자가에서 못에 찟기신 그 손으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웃을 향해 손을 펴십시오.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처럼 강도만난 자를 향해 손을 내민 사마리아인을 주님은 칭찬하셨습니다.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지옥에 간 부자는 손끝의 물 한방울을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누구를 향해 손을 폈는지.......   .

전쟁 후에 사람들은 부셔진 독일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동상에는 손이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 동상에는 손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의 손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손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을 대신하여 이웃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는 교회를 주님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한번만 붙들어 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붙들어 주는 곳입니다.
붙들어 주는 이웃이 필요한 때입니다.
내 손을 내밀어라
손을 내밀어 이웃을 붙들어 주어라
더 늦기 전에.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라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서로를 세워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곳입니다.
다락방들은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도와줄 수 있기 바랍니다.
사람을 보는 시각이 넓어집니다.
"조금만 일찍 우리가 손을 잡았더라면!"(지방신문)
광대한 미국 농장을 가진 어린 잔을 집에 남겨두고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아기가 옥수수 밭에 들어갔습니다. 엄마를 부르며 넓고 넓은 옥수수 밭을 헤맸습니다.
돌아온 부모는 그 이튿날 아침 싸늘하게 식어있는 아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성경본문]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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