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February 2015

눅4:1-13 시험을 이기심

 [들어가는 말]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0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03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0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0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0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0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0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0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10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리라 


들어가는 말

사탄은 아담을 시험하여 타락시켰고 에덴으로부터 떠나도록 하였습니다.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그 죄악된 사탄의 통치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그 사역은 시험을 극복하는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에덴에서 아담이 실패했던 시험을 예수님은 극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우리 성도들에게 중요합니다. 예수의 사탄에 대한 승리는 그분을 주인으로 모신 우리 승리에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서 성도는 사탄에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원동력

(1) 예수님은 성령 충만을 입고 있었습니다(1절).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광야와 같은 세상에 나아가라 하십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큰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계셨습니다.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란 선포를 분명히 듣고 나서도 예수님은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둘 째 아담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철저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첫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받지 않다가 낭패한 일과 대조적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에 시험을 이기게 하는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40일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 있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예수님께 있어서 행동 동기였습니다.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라는 말씀이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광야와 같지만 성령의 인도함만 받으면,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40일은 광야에 계신 기간입니다. 금식하신 기간입니다. 시험을 받으신 기간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신 기간입니다.

(3) 예수님은 금식하셨습니다.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금식은 육체에서 자아와 세상 욕심을 비우는 일입니다. 금식은 먹을 욕심을 몸에서 끊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욕심들에서 자유로와 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욕심 때문에 대부분 사탄에게 미혹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육체에 세상의 그 무엇보다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길 원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내면에 성령 대신 세상을 채우고 살다가 사탄에게 붙잡혀 종노릇하였습니다.
끝까지 나를 비우신 예수님!
40일 동안 내내 하나님으로 채우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자아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기로 금식하셨을 때, 마귀는 발 디딜 곳을 잃은 것입니다. 그 기간에 승리가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과 그 시험을 이기신 방법 (3-12)

40일 동안 광야에 계신 동안에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2절).
원래 사탄은 사람들을 '시험'(temptation)합니다. 사람들이 악을 행하도록 유혹합니다. 
아담이 그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결국 사단은 하늘로부터 쫓겨나게 되었습니다(10:18;요 12:31;계 12:9). 
이스라엘 백성도 시험을 받고 실패하였습니다.
모든 인류가 이 사탄의 시험 가운데서 실패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까지 시험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광야에서만 아닙니다. 공생애 기간 내내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출생,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치면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시험 1] 떡

마귀는 그리스도가 주리신 것을 알았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사탄은 예수의 배고픔이 극에 달한 것을 알고 그 배고픔을 자극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금식을 하는 40일 동안 예수님은 극도의 배고픈 고통을 느끼고 있으셨기에 마귀의 유혹은 그만큼 강렬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광야의 40일 시험은 사탄의 절묘한 작품입니다. 

03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했을 때, 그는 이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늘로부터의 음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3절)!"고 말합니다. 돌을 명하여 떡덩이로 만드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하나님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을 떡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그 일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하라는 것이지요(출 16:31). 왜요? 예수님의 권위를 나타내라고 유혹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면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주던 것과 같은 이적을 베풀리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요 6:30). 결국 사단의 시험 목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행동하도록 부추기는데 있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만 영광 받는 것을 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영광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기를 원합니다. 이는 사단의 간악한 시험입니다. 배후에는 하나님과 예수의 사이를 와해(瓦解)시려는 악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적 사명을 방해하려는 의도입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존하지 앉고 우리 자신의 계획을 앞세우고 있다면, 그건 벌써 사단의 시험 권에 들어 와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도록 유도합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귀의 시험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신 8:3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광야를 40년 동안 유랑하게 하신 것은 그들을 낮추시며 그들을 시험하사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고 하신' 말씀입니다(신 8:2).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주신 이유는 그들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준수함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신 8:3).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시오, 생명의 근원 되시는 분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간파했습니다. 사탄의 시험을 이겼습니다. 자신의 필요(떡)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높임(우선순위로 삼음)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시험받을 사람의 모범이 되셨습니다(히 4: 14-16;5:80). 오히려 자기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내어 주셨습니다(22:19;요 6:48-51). 하나님의 영광은 높이 드러내고, 자신은 생명의 떡이 되심으로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3:22) ! 

하나님의 말씀은 그래서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본,
시험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나 자신을 앞세울 때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기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을 떡으로 바꾸어 자신의 배를 채우는 대신 자신이 세상을 위한 생명의 떡이 되셨습니다.

[시험 2] 절(경배)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0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0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사단은 천하 만국(로마제국)을 예수님께 보여줍니다. 세상 모든 권세와 영광을 미끼로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고 자기에게 절하라 합니다. 
이 두 번째 시험은 세상 권세에 속한 정치적 시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배척하게 만드는 시험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손에 쥐고 싶어하는 시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정면으로 모독하는 행위인 우상 숭배입니다.
그러나 그 형식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 모든 통치권을 주겠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마귀가 절을 받겠다는 요구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절은 단순한 인사형식이 아니라 '완전한 복종'을 의미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세상에서 고난도 없으셨겠지만, 인류의 구원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신 6:13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스스로 통치권을 갖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께 온전한 통치권을 올려드렸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유사한 시험은 성도들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도 크게 나타납니다.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義)를 따를 것인가? 세상의 이익을 좇을 것인가? 양자택일적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이(利)를 좇아갑니다. 물질의 다스림 속에 자신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만이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지 세상의 무엇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심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시험 3] 시험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사탄은 예수님을 최후의 유혹 장소에 서게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돌보시는가를 시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라는 요구입니다. 그리스도가 성전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높은 자들 가운데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언하며 그 증거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렸는데도 다치지 않았다면, 곧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온 사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를 시험장소로 정하였다는 것부터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지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차야 할 성전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오만 불손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 의도를 숨기고 하나님 말씀 중 일부를 인용하여 포장합니다. 마귀는 넌지시 말하였습니다.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마귀도 예수님처럼 성경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10,11절)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보면 마귀는 시 91:11, 12을 인용하면서 고의적으로 '네 모든 길에'라는 구절을 빼버렸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인용된 시편은 택한 백성을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 인도해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한 것이지 하나님을 시험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는 일이나 충동적으로 위험에 뛰어드는 일을 용서하시지 않으시고 엄히 징계하신다고 가르쳤습니다(신 6:16;18:20;사 45:9). 마귀는 이런 진리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 자신의 유익을 위해 서는 안됩니다. 오늘날에도 마귀는 성도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순수한 신앙을 이기적으로 변색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적용하게 만듭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 말씀을 왜곡시킵니다(마 22:29;고후 2:17). 이단들은 성경 말씀을 자신의 거짓된 사상을 세우고 은폐시키려고 아전 인수(我田 引水)격으로 짜 맞춥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물리치셨습니까?(12절). 그리스도는 신명기 6:16을 인용하였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12절).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맛사(므리바)에서 물이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시험했을 때(출17:1-7)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나님을 시험한다면, 여호와를 시험한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석이 되신 하나님을 100% 신뢰하셨습니다. 일부러 뛰어 내려서 그를 세상에 나타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해볼 이유가 없었어요. 결국 여기에서도 마귀는 하나님과 예수와의 신실한 관계를 공격하였지만 실패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을 그런 관계입니까?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신뢰의 대상이지 시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시험을 이기신 결과와 그 의미(13)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리라 

승리를 거둔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마귀의 공격을 꺾으셨습니다. 예수께 있어서의 사단과의 싸움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함이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1) 마귀의 화살통은 비었습니다. 마귀는 모든 시험을 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은 무력하게 꺾였습니다.
(2) 마귀는 그리스도를 공격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험자는 언제까지 시험할 수 없습니다. 시험자를 이기신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한 우리의 믿음은 견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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