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February 2015

눅4:13-30 예수님의 교훈과 배척당하심

 교훈과 배척

[요약]
'가르치신 일`(Teaching)은 예수님의 중심사역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라고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산에 올라앉으신 후에도 가르치십니다.
길을 가시면서 가르치십니다.
심지어 해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는 배 위에 서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나라의 충만함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가르침에 담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살아났습니다.
내용은 하나님 나라요, 하나님 나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하나님 나라의 메시야 예수님 자신입니다.
말씀 전파할 기회를 잘 포착
가르치는 장소로 회당(장소적 기회)을 선택
안식일(시간적 기회):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절호의 기회

반응
1. 갈릴리 지역에서는 환대(14,15)-나사렛에 이르렀습니다. 복음을 전파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
애굽과 바벨론에서 노예생활하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 `참빛이신 예수님 안약을 사서 바르
주의 은혜의 해를(19절) 전파: '희년'(year of iubilee) 곧 여호와께서 매 50년마다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하는 해! 주권적인 은혜로 죄와 죄의 결과에서

2] 그들이 칭송하였습니다.

2. 자신을 가리켜 하신 말씀으로 적용하셨습니다(21절).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1] 복음을 전하시는 주님을 주목하였습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20절).

3. 복음이 전하여 지는 곳에 늘 반대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요셉의 아들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그 일들을 진정으로 칭송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결론

'의원아 너를 고치라'고 내게 말할 것이다. '남을 돕는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돕는 것이 바른 순서'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24절). 고 답변

나사렛에서 환영받을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친근은 경멸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서글픈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 알아 오던 사람들을 하찮게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더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국산보다 멀리서 가져온 것, 비싸게 산 것이 더 호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뿌리깊은 편견

예화] 유학생수련회 강사 배정:


엘리아는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룬 일

엘리사는 수리아 사람 나아만의 문둥병

하나님이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보여 주신 은혜에 대하여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노하게 하였습니다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29절).

인간이란 금방 좋다가도 자기들의 이에 어긋나니까 당장 죽이려 들거든요.

우리는 이상의 나사렛 사람을로부터 깨닫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그들 곁에 있을지라도 `요셉의 아들'이 하긴 뭘 해 코웃음치던 나사렛 마을 사람들에겐 그 허다한 이적 한번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기다림이 없는 곳에서 일하기를 싫어하신다는 사실이지요. 주님은 일하러 오셨을지라도 목마름으로 은혜의 단비를 갈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일이 또 있습니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스트라익 아웃에서도 단연 앞서간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그는 스트라익 아웃을 무서워하지 않고 배트를 힘있게 휘둘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반대를 무서워 하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스트라익 아웃을 잘 잡는 빠른 공을 던지지만 포볼로 진출시키는 비율도 높다


[들어가는 말]

'가르치신 일`(Teaching)은 예수님의 중심사역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라고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산에 올라앉으신 후에도 가르치십니다.
길을 가시면서 가르치십니다.
심지어 해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는 배 위에 서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나라의 충만함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가르침에 담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은 하나님 나라요, 하나님 나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하나님 나라의 메시야 예수님 자신입니다. 복음서에서 병자 치유 등 예수의 놀라운 이적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예수님의 여러 교훈이 하나님의 것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전파할 기회를 잘 포착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다른 지역에서 이미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과 같은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도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전파할 기회를 붙드셨습니다. 그 좋은 기회는 회당(장소적 기회)이라는 곳에서 안식일(시간적 기회)에 전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장소로 회당(장소적 기회)을 선택하셨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의 공중 예배 장소입니다. 바벨론 유수 이래, 의식상의 예배가 거의 소멸하게 되자, 회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랫동안 나사렛 회당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유대인은 5세가 되면 회당에 가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13세가 되면 회당에 출석하는 것이 유대인 율법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 들어가서 기도를 합니다.
'쉐마'(신 6:4-9;11:13-21)를 고백합니다.
18기도문을 낭송합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성경을 낭독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17절).

예수님께서는 그 날 읽도록 정해져 있었던 본문을 찾으셨습니다. 이사야서 61:1,2이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하여 그토록 명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이 성경 구절은 메시야의 임무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말씀은 이사야의 예언서였으므로,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 책을 읽으라고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본문을 붙드시고 설교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면, "그리스도가 이 성경을 열기까지는 닫혀 있었습니다(사 29:11)."(매튜 헨리)
안식일(시간적 기회)에 가르치셨습니다. 안식일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때이므로, 말씀을 전파하기에 적절한 때였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안식일이란 좋은 때를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를 붇들 수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 전파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응

1] 갈릴리 지역에서는 환대(14,15)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가르치실 때,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큰 명성을 얻게 되셨습니다.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습니다(14절). 그 소문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뭇 사람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멸시나 반대도 없었습니다. 그를 헐뜯는 자도 없었습니다.

나사렛에 이르렀습니다.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첫째,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하였습니다. 구속함을 받은 자의 사명입니다. 그는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합니다. 복음은 애굽과 바벨론에서 노예생활하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자유의 선포입나다.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메시야로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회의 소외자들, 가난한 자들 및 이방인들을 포함한 온 인류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매일 것입니다.
둘째,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였습니다. 의원의 사명입니다. 그리스도는 흑암에 앉은 자에게 빛을 주러 오셨습니다. 눈먼 자에게 빛을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약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셋째, 주의 은혜의 해를(19절) 전파하였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는 레 25:8-55의 '희년'(year of iubilee) 곧 여호와께서 매 50년마다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하는 해입니다. 노예들이 해방되고 땅의 경작을 쉬게 하고 모든 거민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정하신 해방의 해입니다. 나아가 이 해방의 해는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은혜로 죄와 죄의 결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해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시기는 메시야가 선도할 새로운 시대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날, 곧 은혜의 때를 전파하러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원의 주를 보내셨음을 세상에 알리러 오셨습니다. 이는 해방의 해요, 희년 즉 은혜의 해입니다. '오늘'이야말로 구원받을 날이요 하나님 앞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날입니다.

넷째, 예수님께서는 이 성경 구절을 자신을 가리켜 하신 말씀으로 적용하셨습니다(21절).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다섯째, 청중들은 주의 말씀이 선포될 때, 주목하고 칭송하였습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20절).

1] 복음을 전하시는 주님을 주목하였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사람들이 복음 전하는 자에게 주목하는 것은 호의적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은혜를 주십니다.

2] 그들이 칭송하였습니다.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22절). 칭송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들에게도 은혜로운 말씀이었습니다.


3] 복음이 전하여 지는 곳에 늘 반대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들 사이에 반대하는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예화] 러시아 선교현장에서 일어난 일

반대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들은 그의 은혜로운 말씀에 대하여 기이히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고쳐 생각하여 말합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는 요셉의 아들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그 일들을 진정으로 칭송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의 아들이므로 그는 메시야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오늘날도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 확신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여호와 증인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건한 기독교인들은 이 의문의 강을 건넜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23절):

"어째서 다른 마을에서 행한 것처럼 병자들을 고치지 않느냐?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그들은 그가 베풀 기이한 일들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말씀들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들의 호기심 어린 중심을 주님은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고 내게 말할 것이다. '남을 돕는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돕는 것이 바른 순서'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메시야되심을 입증하기 위해 가버나움과 기타 등지에서 행하신 이적들을 여기 나사렛에서도 행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시험 깃든 요청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려고 이적을 행하시지는 않습니다. 대신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24절).

고 답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아셨습니다.
첫째, 나사렛에서 환영받을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친근은 경멸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서글픈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 알아 오던 사람들을 하찮게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더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국산보다 멀리서 가져온 것, 비싸게 산 것이 더 호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뿌리깊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의 민족에게 배척당한 선지자들의 계보(系譜)에 속한다는 말씀은 일리가 있습니다.

예화] 유학생수련회 강사 배정: 먼 곳에서 비싼 비행기 값을 들여 초청합니다. 가까운 그 지역 강사는 배제합니다. 편견을 배제하기 위함인 줄 압니다. 그점을 이해하지만 씁쓸한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둘째, 구약의 가장 유명한 두 선지자들의 적절한 본보기를 들어 대답하였습니다.
엘리아는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를 돌보았습니다.
왕상 17:8-24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을 때 온 땅에 흉년이 들어 그 상황은 매우 참담했었습니다. 더욱이 뚜렷한 생계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과부들의 생활상은 매우 극심해 그들 중 대부분이 굶주림에 허덕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엘리야는 가뭄에 고생하며 굶주려 있는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들을 남겨두고 베니게의 큰 도시 시돈에 있는 작은 마을 사렙다에 사는 이방인 과부를 찾아가 그 집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엘리야가 단독적으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룬 일이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온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 공동체에 온 이방인이었습니다(25,26절).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까지 자비를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엘리사는 수리아 사람 나아만의 문둥병을 낫게 해 주었습니다(27절).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들을 고쳐 주지 않고 오직 이 수리아 사람만 고쳐 주었습니다. 왕하 5:14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서 이방인에게 베푸신 은혜라고 예수는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던 구속사의 새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즉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하여서 진실되게 '예수께로 나오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마 8:11;요 6:37).
이 위대한 선지자들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그들의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속 역사가 유대민족을 넘어서 이방인에게까지 넘어가고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 이방인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구약 속에 이미 약속되어 있었던 구속사의 한 주제였습니다(사 43:5, 6;49:12;59:19;말 1:11;미 4:1, 2;슥 8:20-23). 한편 나아만 장군의 치유사건은 예수께서 로마 백부장의 종을 고치신 경우와 유사합니다(7:1-10).
오늘날 성도들에게 있어 이방인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해되지만, 당시 배타적 선민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일대 충격이고 도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중심을 알아채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대한 적대감을 키우기 시작하였습니다.
2)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보여 주신 은혜에 대하여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노하게 하였습니다. 22절에서 그들이 그 입에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겼던 만큼, 그들이 화를 내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기이하게 여겼던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말씀을 그들의 신앙에 적용시켰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나중에 한 말씀을 귀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신앙심 깊었던 그들의 선조들은 교회에 이방인들이 들어 올 것을 기대하며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자손들은 이방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몰려온 무리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그들의 선입견과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자 그들은 반대로 비판적 태도를 취하다가 적대적 행위를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죽일 음모를 꾸밀 정도로 격분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격렬하게 일어났습니다.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29절).

그들은 예수님의 명성에 대하여 들었었고 지금 막 그의 은혜로운 말씀을 칭송하였으면서도, 그를 죽이고자 집단적인 분노로 쫓아냈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구릉의 남쪽 경사면의 낭떠러지 위에 위치하였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 낭떠러지에서 밀어 떨어뜨려 살해하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께서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쳤기 때문에 예수가 민족 반역죄를 범한 것으로 몰아 유태 전통상 반역자를 처단하는 형벌 제도인(대하 25:12) 벼랑 아래로 사람을 밀쳐 죽이는 형벌을 집행 하고자 한 것입니다. 인간이란 이렇습니다. 금방 좋다가도 자기들의 이에 어긋나니까 당장 죽이려 들거든요. 너무 인간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상의 나사렛 사람을로부터 깨닫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그들 곁에 있을지라도 `요셉의 아들'이 하긴 뭘 해 코웃음치던 나사렛 마을 사람들에겐 그 허다한 이적 한번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기다림이 없는 곳에서 일하기를 싫어하신다는 사실이지요. 주님은 일하러 오셨을지라도 목마름으로 은혜의 단비를 갈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일이 또 있습니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스트라익 아웃에서도 단연 앞서간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그는 스트라익 아웃을 무서워하지 않고 배트를 힘있게 휘둘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반대를 무서워 하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스트라익 아웃을 잘 잡는 빠른 공을 던지지만 포볼로 진출시키는 비율도 높다고 합니다. 포볼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차게 던질 수 있는 선수고 인정받고 있는 선수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반대 역사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힘있게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중심을 우리는 나사렛에서 봅니다. 밝은 면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그늘이 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끝까지 빛으로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신지요?
오늘도 내 삶 중에서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실 수 있는 분으로 찾아오고 계신지요?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인류 역사에서 큰 일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반대 역사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예화] 더벅머리 나뭇군 이야기

양반 행차에 엎드려 절하지 않다 봉변당한 후,
"에라, 나도 양반 좀 되어 보자!"
"벼슬하는 법을 알려 줄까?"
"어떻게?"
"서울에 올라가 한 삼년만 뒹굴면 무슨 벼슬이든지 할걸세"
"네가 바로 삼년 뒹굴면 벼슬 한다는 놈이냐?"
"대관절 무슨 벼슬을 원하느냐"
"내가 그걸 알게 뭐요?"
"감사? 판서? 정승?"
"임금 노릇은 어떠냐"
멍석을 풀어헤치고 부시시 일어나
"뭐라고 그랬죠?"
"임금노릇도 해볼 작정이냐 그 말이니라."
"뭣이 어쩌고 어째? 임금님은 단 한 분밖에 안 계신 법인데 대체 네놈이 뭐기에 이런 역적 소리를 하느냐?"
매어 쳤습니다.
임금에 대한 확신은 교훈을 바르게 받아들이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를 알면, 성경의 진리 중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함을 애통해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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