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February 2015

마가4:35-41 우리는 풍랑을 이길 수 있습니다

들어가는 말

동남아에 무서운 지진과 풍랑이 몰아쳤습니다. 수십만 명이 삽시간에 그 풍랑에 휩쓸려 가버렸습니다. 그 가공할 바다의 파괴력 앞에 수많은 사람들은 무력하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런 자연의 광풍처럼 인간사에서 우리는 여러 종류의 광풍을 만나고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경제적인 광풍을 만나 다섯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를 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젊은이들은 사랑의 광풍을 맞아 쓰러져 버렸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결혼한 이무근 형제는 간경화란 광풍을 만나 하루하루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무서운 광풍이 끊임없이 몰아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1.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쓰나미와 같은 그런 무서운 광풍이 제자들 앞에 몰아쳤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예수님께서 가자고 말씀하신 그 바다에 풍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동행하여 가는 그 배에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쓰나미와 같은 그런 무서운 광풍이 제자들 앞에 몰아쳤습니다.

사람이 가서는 안될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발람이 발락의 유혹을 좇아가는 길에 천사가 칼을 들고 막았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길을 풍랑이 막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우, 우리 믿는 자들이 가는 길에 형통함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은 길이 아닌가 한번쯤 생각하고 회개하고 기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광풍이 일어나는 모든 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같은 경우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 가도록 명하신 길을 순종해 가는 제자들에게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이는 순종하여 나가는 성도에게도 풍랑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가셨지만 그곳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목자가 되셨을지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갔을지라도 주림이 있었고 고난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풀무불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지라도 사자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평생 어부로 살아온 저들로서도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광풍이 닥쳤습니다.
저들의 경험과 기술로도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지중해 해면보다 약 200m나 낮고 주위에는 그와 반대로 높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헐몬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은 몹시 차고, 갈릴리 바닷물은 따스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때로 돌풍이  갑자기 일어나고 또 갑자기 진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날도 사람들이 예측할 수도 없었고, 어떤 힘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풍랑이 불가항력적으로 덥쳐왔습니다.
무서운 두려움이 닥쳐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에 묻습니다.

하나님, 왜입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가는 우리들에게 왜 이런 고난이 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가끔 의아해 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무서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체험한 신앙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사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절실히 체험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가 사자굴과 풀무불 속에서 체험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광풍을 만날 때. 너무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풍랑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현재에도 있습니다.
장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풍랑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성도들 가운데도 풍랑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풍랑
가정적인 풍랑
공동체의 풍랑
건강의 풍랑
인간 관계의 풍랑이 있습니다.

풍랑 없으면 바다가 아닙니다.
풍랑을 사모하며 살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너무 풍랑을 무서워하면 안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에도 거센 풍랑이 있었습니다.
거센 파도 속으로 침몰할 것 같은  때가 많았습니다.
기독교 초기 역사를 보면 처음 불이 지피는 것 같던 기독교 위에 무서운 풍랑이 있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순교당합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힙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재산과 가족을 잃고 산산히 흩어졌습니다.
흩어진 성도들을 이 잡듯이 잡으러 사울 같은 이들은 찾아 나섰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로마의 역대 황제들 가운데는 무서운 기독교 핍박자들이 많았습니다.
한두 황제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잔혹하게 핍박한 황제 열 사람을 손꼽는 것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이 십 년을 그렇게 핍박한 것이 아닙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의 자유를 공인한 것이 313년이니까 공식적으로 약 300년 가까지 핍박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슬람이 일어나 서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기독교를 무섭게 핍박하였습니다.

공산주의 가 일어나 얼마나 무서운 핍박을 가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북한에서 공산주의가 기독교에 가하는 풍랑은 무서운 것입니다.

한국에는 IMF란 풍랑이 갑자기 닥쳤습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그 풍랑 중에서 침몰한 것은 아닙니다.
그 풍랑 인연하여서 더 건강한 기업으로 서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한국 같은 작은 나라에만 풍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같은 큰 나라에도 대 공황이 닥친 적이 있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설교집을 보니까 무서워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대상이 자기 자신인 경우 무섭나(我)
무서운 대상이 상대인 경우 무섭나유(you)
무서운 대상이 자매인 경우 무서운 걸(girl)
무서운 대상이 남자인 경우 무섭군(君)
무서운 대상이 모두인 경우 무섭다
무서운 대상이 비인 경우 무섭지비

그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두려워 한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문제는 이 풍랑 앞에서 우리 믿는 성도들이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 풍랑 앞에서 내가 떨고 있지 않습니까?
내 앞에 출렁이는 풍랑 앞에서 너무 절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반드시 침몰하고 말 것이라고 단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려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두려워 말라
어린양이여
땅과 하늘에 권세 잡은 이
날 찾아내어 안보하시리니 죽음에서 생명에 이르리라
오직 믿음 오직 믿음 만사 형통하리 오직 믿음(X2)

두려움은 결코 답이 아님을 깨달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2.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의 배에 같이 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제자들이 왜 두려워했습니까?
주님의 권세를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배에 타고 계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했던 또 하나의 원인은 그들이 예수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주무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역으로 인하여 몹시 피곤하셨고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곤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분께는 걱정이 없으셨습니다.
평온함이 있으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무시는 것처럼 침묵하시는 일을 종종 체험합니다.
악인이 득세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의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풍랑을 없게 해주시겠다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개입해주시길 간구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님의 무관심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드리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할 수 없는 이 위기를 주님께 맡기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3. 주님께서는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시끄러운 도시 소음에는 깨어나지 않지만 아기의 한숨 소리에는 깨어나는 어머니처럼 제자들의 기도 소리에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광풍을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귀신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영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영을 꾸짖듯이 광풍을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미친 듯 설레는 어떤 권세도 제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제자들은 또 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미쳐 날뛰던 바람과 풍랑을 순식간에 잠재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저가 뉘기에......'

또 다른 두려움이 순식간에 제자들 가운데 밀려들었습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말씀 한마디로 그렇게도 무섭고 거센 풍랑이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 분!

주님의 능력 앞에 선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몰려들었습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자문하였습니다. 풍랑에 대한 두려움은 잊어버리고 또 다른 경외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의 마음엔 새로운 힘과 새로운 기쁨이 넘쳤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계셨던 예수님이 온 우주의 통치자이셨구나!
새로운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새로운 힘이 솟아났습니다.
'와, 우리 예수님은 우주의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주재자이시며 모든 만물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분이구나!'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된 제자들에게 힘이 솟고 기쁨이 소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에게는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폭풍우를 잠잠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시는 우주의 통치자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봅니까?
온통 미쳐서 날뛰는 광풍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한 분을 더 봅니다.
세상이 아무리 미친 듯 날뛰더라도, 그 광풍을 잔잔케 하실 수 있는 주님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찬양을 기쁘게 드립니다.

만유의 주재 존귀하신 예수
인자가 되신 하나님
나 사모하여 영원히 섬길 내 영광되신 주로다.

예수님은 광풍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찬양해야 할 만유의 주재(찬송48장)이십니다.
오늘 광풍 앞에 흔들리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나무라십니다.
풍랑 앞에서도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이십니다

풍랑 앞에 선 제자의 노래(노하덕목사)

주님, 저는 떨고 있습니다.
바람 앞에 등불처럼 떨고 있습니다.

주님, 저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광풍 속의 배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주님,
바람이 나를 찾아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나는 광풍 앞의 배처럼 요동치고 있습니다.

주님은 저의 내면에서 주무시고 계시나
저는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 영혼 속에서 눈을 감고 계시나
저는 지금 떨고 있습니다.

주님,
제 인생은 이 풍랑 속에서 뒤집힐 듯합니다.
50여년 항해해온 저의 인생이 가라앉고 있습니다.

주님
그래서 저는 두렵습니다.
주님,
제가 얼마나 아프게 흔들리는지 아시지요?
주님,
저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님,
저의 침몰이 주님의 관심사일 수 없습니까?
주님,
저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침묵하고 계십니까?

그때 나는 한 고요한 그러나 위엄에 넘치는 주님의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바다를 향한 나무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군중을 향한 질책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어린 나를 향한 회개촉구도 아니었습니다.

보기는 보았으나 깨닫지 못하였고
듣기는 들었으나 이해하지 못하였던
눈멀고 귀가 막힌 저를 향한 주님의 통분이셨습니다.
너무도 주님을 피상적으로만 알아온 저에 대한
통렬한 꾸짖음이었습니다.
절통한 주님의 심장이었습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나는 정말 알았어야 했습니다.
하늘과 바다와 땅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께서 누우신 배는 어떤 풍랑도 삼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주님과 함께 풍랑 가운데 있는 것이
주님 없이 다른 어느 곳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는 제레미 테일러의 명언을!
주께서 내 안에 함께 계시면
나는 풍랑 속에서도 미소지을 수 있음을!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
주님은!
제가 누릴 수 있는 안식의 신비였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 분이십니다.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온 우주를 주관하는 통치자이십니다.
이 놀라운 주님께서 풍랑 앞에 무서워하고 흔들리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풍랑을 무서워 않기를 원하십니다.




[성경본문]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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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소 3마리 석달만에 돌아와

제주=연합뉴스

입력 : 2005.01.13 14:33 35'


제주도 북제주군 김녕리 고화순(71)씨가 마을공동목장에서 잃어버린 암소 3마리를 석달여만에 찾아 화제.
고씨에 따르면 평소와 마찬가지로 7살짜리 한우 2마리와 9살짜리 교잡우 1마리를 지난 9월 27일 아침 집에서 2㎞쯤 떨어진 마을공동목장에 풀어놓은뒤 저녁에 찾으러 가보니 모두 사라지고 없더라는 것.

고씨는 애지중지 기르던 암소들이 사라지자 한달 넘게 날마다 마을공동목장 인근 야산을 뒤지며 소를 찾아 나섰고 종적을 알 수 없게 되자 경찰과 읍사무소 등에 분실신고를 해 도움을 요청했다.

특히 이달 초에는 경찰의 협조로 헬기까지 동원, 마을공동목장 일대를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이에따라 소 찾기를 포기했던 고씨는 지난 11일 눈이 많이 내리자 소들이 혹시 발자국이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하고 마을공동목장으로 향하다 목장에서 마을로 내려오던 자신의 소 3마리를 발견했다.

애지중지하던 소를 되찾은 고씨는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다”며 기뻐했고 그동안 종적을 감췄던 소들이 어디에서 지내다 나타났는지 의아해 했다.

수의사의 확인 결과 석달여만에 돌아온 소들은 모두 건강하고 세 마리 모두 임신한 것으로 확인돼 고씨의 기쁨은 더하다.

김녕가축병원 김재호 원장은 “공동목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던 소들이 날씨가 추워지자 회귀본능에 따라 목장으로 되돌아 온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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