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February 2015

눅5:27-39 나를 좇으라

나를 좇으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초청하시는 부름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초청받는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
더구나 만왕의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초청을 받는다는 것은 더욱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누가 초청을 받았습니까?

1. 레위라고 하는 세리가 초청을 받았습니다.

'레위라고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레위라고 하는 세리를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스타일의,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파격적인 인사정책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누구도 레위를 하나님 왕국의 대사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레위는 가버나움에 있던 로마의 세관원(통관세,인두세 징수)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은 (북쪽:수리아, 남쪽:유대와 애굽)의 길목으로 로마 군대가 상주해 있는(7:1-10;마8:5-8)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돈벌이가 잘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직업은 사람들로부터 창녀와 같은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상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30절). 불의로 개인의 부를 축적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 유대를 지배하는 로마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2) 동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그 잔액을 착복한다.
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주목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레위를 자세히 보는 분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레위를 주의깊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를 제자로 청빙하셨습니다.
  세상은 좀더 똑똑하고, 의롭고, 잘 배운 사람을 택하여 부릅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자기 아버지 때에 유능했던 분을 대사로 중용한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든지 정치하는 사람들의 큰 과제는 좋은 인제 발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퉁이에서서 쓰레기인생처럼 취급받는 세리 레위를 하나님나라의 대사(제자)로 택하셨습니다.
왜 눈여겨보셨을까요? 왜 그를 제자로 부르신 것일까요? 죄인을! 불완전한 사람을 왜 눈여겨보셨을까요?  돈이 있는 재력가이기 때문일까요?
성경에는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도 예수님은 레위와 같은 죄인들을 자세히 보는 분이십니다. 죄 가운데 일을 하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자세히 보는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 부르십니다. 죄를 따르지 말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르지 말고, 주님을 따르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그 불완전하고, 허물 많은 레위를 불러 힘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선한 도구로 삼으십니다.


2. 레위는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였습니다.(28-29)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28)

  예수님께서 레위를 초청하셨지만 선뜻 응답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무직은 가진 계산이 빠릅니다. 이(利)를 따질 줄 압니다. 손해를 보면서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직업을 어떻게 얻었는데요?
로마 정부는 유대인들로부터 인두세와 토지세, 통행세 등과 같은 각종 세금을 거두기 위하여 감찰관(censor)들을 각 지방에 파견하였습니다. 이들은 돈을 받고서 위탁 형식으로 조세 징수권을 유대 고위 인사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고위층들은 이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다시금 조세 징수원을 고용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세리입니다. 많은 재물을 축적 수 있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레위는 결단했습니다. 레위는 세무직을 버리고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였습니다.

1]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저가 모든 것을 버리는' 신앙!이 있었습니다.(28)
부자 청년은 그 재물로 인하여 주님을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마 8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우선 순위를 부친 장사에 두었습니다.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마 8:21)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자신의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레위도 이런저런 핑계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진 것에 대하여, 이전 것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2]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릅니다.

'일어나 좇으니라'

자신이 처한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좇아갔습니다.

주님만 믿고 살기로 했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3]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풉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래서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기쁨을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그를 따르겠다는 적극적인 면을 봅니다.

자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레위는 주저하지 않고 즉시로 따라 나섰습니다.(28) 레위가 과거의 모든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자신이 결단을 기뻐하며 잔치까지 벌입니다. 레위의 이런 행동은 제자도(discipleship)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부르실 때, 주저하고 있지 않습니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친구라는 비방을 받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르고 있습니까?  이런 주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작품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꼭 선교사나 목회자로 부르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집사면 어떻습니까? 교사면 어떻습니까? 찬양대원이면 어떻습니까? 잔치를 할 수 있는 감사와 감격이 중요합니다.

이런 좋은 일에
3. 비방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바리새인들이 왜 비방합니까?
로마의 앞잡이와 어떻게?
동족을 괴롭히는 죄인과 어떻게?
세리와 어떻게!
그는 죄인이요 자기들은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이런 불경스런 죄인들과 함께 식사까지 해?
비난의 조건이었습니다. 식탁의 교제가 그들의 사회에서는 '서로를 받아들인다'는 것
을 말해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비방은 교만이 낳은 영적인 병입니다.

4. 예수님께서는 오신 목적을 말해주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떼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31-32)

세리 레위의 집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세리'와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소중한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죄인을 불러야 하는가?
왜 죄인을 제자로까지 삼으시는가?
왜 죄인들과 함께 교제를 해야만 하는가?
주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나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죄인인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죄인에 대한 처리 방법이 달랐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을 분리시키자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떼어내버리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죄를 회개시켜 하나님의 가족으로  된 것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없다!
....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죄 때문에 병들고, 그 병으로 다 죽게 된, 죄인들의 영혼을 고치는 영적 의원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게 하시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레위와 같은 죄인입니다(참조, 롬 3:10). 태어나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롬 3:23)이며 죄악 가운데서 출생합니다(시 51:5).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스스로 죄 없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요일1:8, 10).
 이 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입니다.
그런데 살 길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유일한 길을  회개로 정하셨습니다(요일 1:9).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샘에 나아와 죄를 씻음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이요 위로입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눅18:13, 14에 나오는 세리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18:11, 12).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세리와 다른 것을 감사하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세리를 위해 구원을 주십니다.
회개하는 자가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15:7, 10, 22-27, 32)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제 판단합니다.
금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제자들의 행태를!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비방하던 그 입으로 이제는 잔치 집에서 먹고 마시는 일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고, 세리들과 함께 먹으면서 잔치를 하는 모습이 메스꺼운 거지요. 요한의 제자들처럼 금식하는 일에나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행위를 세례 요한과 바리새인의 행위에 기준하여 '금식'문제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죄인을 …회개시키러 왔노라'(32 절)고 비방을 깨우치신 것처럼, 이제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의 사고를 도와주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금식은 아주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유대 민족은 금식을 속죄일(7월 10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시하였습니다(레 :29). 이것은 율법으로 엄히 명한 것이었습니다. 이외에 유대인들은 금식을 국가적 재난이나(삿 20:26),
병들었을 때(시 35:13),
애곡할 때(삼상 31:13),
회개할 때(왕상 21:27),
위험이 임박할 때(대하 20:3),
재앙을 기념할 때나
기근 때에 실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금식을 하셨습니다(마 4:2;6:16-18)

유대 민족은 바벧론 포로생활 당시 자신들이 당한 재앙에 대한 애도와 회개의 뜻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는 의미에서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이 금식은 예루살렘 파멸과 관련하여 나흘을 했는데 (1) 성전이 불탄 날(5월 7일 ;왕하 25:8, 9),
(2) 그달리야 피살일(7월2일;왕하 25:23-25),
(3) 성전 포위 개시일(10월 10일;왕하 25:1),
(4) 성전 함락일(4월 9일;왕하 25:3, 4)등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바리새인들은 일 주일에 두 번 즉,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올라간 목요일과 그것을 가지고 내려온 월요일을 기념하여 금식일로 지켰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더 자주 금식했습니다(외경 유딧서 8:6).
그러나 이런 금식은 개인의 경건을 드러내기 위한 과시 행위로 전락하였습니다. 외적인 위선이 많이 개재되었습니다. 예수님 질책의 대상이 되었습니다(마 6:16;9:14). 예수님께서는 의식적인 금식을 배격하셨습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하게 할 수 있느 뇨…신랑을 빼앗기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34, 35 절).

제자들은 신랑의 손님들과 같았습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 구원받은 것이 즐겁습니다. 제자로 부름 받았으니 잔치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35절). 그리스도가 저들을 떠나실 그 때에 그들은 금식해야 될 것입니다.

예화]'건전지가 다 닳았어요.'

지난 성탄절에 아들 위로는 카셋트 녹음기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건전지까지 들어있는 아기자기한 녹음기입니다.
테잎이 돌아가는 모습까지 예쁘게 형상화하여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쓸모있는 녹음기랍니다.
위로는 이 녹음기에 자기의 시시콜콜한 소리까지 녹음해놓고 또 틀어보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렇지만 곁에서 보는 저는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공부를 할 때나 찬양을 듣고 싶을 때,
꼭 필요할 때에 사용해야지
저렇게 장난치는데 사용해서 되겠나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성탄절이 가까워 왔어요.
교회 유초등부에서는 성탄절을 위한 찬양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위로는 목사 아들이니 하루도 빠짐없이 준비에 참석합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열흘 앞둔 어느 날,
나는 위로에게 배운 노래를 한번 해보라 했습니다.
그런데 별로 아는 게 없습니다.
전도사님 내외분이 그리도 열심히 가르치셨는데
얼마나 낙심되시겠나 싶습니다.

그때,
위로의 녹음기가 생각났습니다.
오늘은 녹음기를 가지고 가서 녹음해 오너라.
차로 오다가다 듣기도 하고 연습도 하고
얼마나 유용한 도구인가?

그런데 위로가 하는 말
'건전지가 다 닳았어요.'
맙소사.
정말 녹음기가 필요한 날은 오늘인데
쓸데 없는 일에 건전지를 다 써버렸어요.

목요일이다 월요일이다 부지런히 금식하고 기도하던 사람들
기도하고 금식하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들
그러나 정작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시니
십자가에 못박아버린 사람들이 생각나네요.

금식하고 기도하여 준비한 이유는
그분이 오셔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실 때에
멋들어지게 쓰임받고 주님의 꿈에 쓰임받자는 것 아니었겠어요?



이어서 예수님은 중요한 진리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6.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눅11:20).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영접지 아니하였습니다(요 1:11). 오히려 그리스도를 옛 세계에 억지로 맞추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36)


새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낡은 옷은 '죄와 사망과 율법의 옷'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죄인이었고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죽음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율법이 선포하는 대로 영원한 심판에 떨어졌습니다. 옛사람은 죄와 사망과 율법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새옷'은 생명과 은혜의 옷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삯을 지불하셨습니다. 죄의 통치를 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긍휼로 통치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를 낡은 새가죽 부대에' 넣으라 하십니
다.(37,38절).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새 포도주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권능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곧 복음입니다.  구원의 길입니다.
낡은 가죽 부대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유대인들의 교훈입니다.  유대인들의 유전입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유대인들의 유전에 담는 일입니다. 오히려 본질적이며 중요한 교훈인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일'(막 7:13)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막 8:15)고 가르치셨습니다.
주께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 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은혜의 새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요 3:16 ; 롬 10:12, 13).  새 포도주는 복음이요, 복음의 핵심는 그리스도이시며 그 내용은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원의 새 길입니다.
새 부대는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서 필요한 그릇입니다.  새 마음판입니다. 새 심령 곧 옛것에 때묻지 않은 심령입니다.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신선한 심령을 통하여 복음의 사역을 이루어 가십니다.

예화]
저에게는 8년된 386 컴퓨터가 있습니다.
용량이 너무 작다고 해서 몇 년 전에 $900 이상을 들였는데도 속도가 참 느립니다.

지난 여름 중국을 다녀오는 길에 한국에 잠깐 들렀더니 저의 목회를 위해 기도하시는 몇분이 책을 사보라고 돈을 주셨습니다.
50 줄이 다된 처지에 여전히 돈을 받는 처지가 조금은 안쓰러웠지만, 감사함으로 받아 '생명의 말씀사'를 찾았습니다.
가져올 수 있는 만큼 필요한 책들을 사고, 목회에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샀습니다.
'슈퍼 바이블'이란 목회프로그램인데 용량이 많은 것입니다.
있으면 도움이 되겠는데 값이 비싼 것이 부담스러웠었습니다.
참 기쁜 마음으로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제가 가진 컴퓨터의 용량이 이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은 풍성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데
내 컴퓨터는 용량이 너무 작아 사용할 길이 없습니다.

'새포도주는 새가죽부대에 담으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새 포도주라면, 낡은 가죽부대는 제가 가진 386 컴퓨터입니다.

새로 나온 프로그램이 아무리 좋아도 낡은 가죽부대와 같은 제가 가진 386 컴퓨터로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새 프로그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386 컴퓨터처럼 용량이 작아서 하나님의 그 귀한 것들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놀라와서 끝없이 그 크신 사랑을 부어 주실지라도 우리 옛사람은 그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뿐입니까?
하나님의 평화, 믿음, 소망, 기쁨 등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들이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우리 옛 사람의 안에 그런 것들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죄 아래 있는 우리 인생들의 한계요 슬픔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들을 누리면서 살 소망은 없습니까?

컴퓨터를 잘 아시는 집사님 한 분이 말했습니다.
"옛 컴퓨터를 버리세요. 아깝지만 버리고 새 것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용량을 늘여보아야 한계가 있습니다."

아하, 우리 옛사람이 죽으라는 말씀입니다
아까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거지요.
예수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은 새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포도주는 새가죽부대에 담으라는 말씀은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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