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를 하나님께서는 그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통해 진행시키십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그 프로젝트를 그 시대에 진행시킬 제자를 부르시는 예수님을 뵙게 됩니다.
"이때"입니다.바로 앞 절,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는 일과 손 마른 자를 고치는 선행을 비난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하는 때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힘있게 진행시키십니다.
1]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십니다.
2] 하나님 나라 왕권을 감당할 일꾼을 선택하십니다.
3] 맡겨주신 사역을 구체적으로 수행하십니다.
1.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추진하십니다.
예수께서 기도하러 산으로 가사(12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선한 일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선으로 받지 않습니다. 배척합니다. 이때에 주님이 하실 일은 많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일을 행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대책을 세울 것입니다. 배척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찾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한적한 곳, '기도하는 집(프로슈케)'으로 물러가십니다. 그리고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십니다. 기도하셨습니다. 거기서도 예수님은 '기도하는 집(프로슈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프로젝트를 추진하십니다.
우리는 앞에서도 두 차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현장을 살펴 보았습니다.
1]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막4:1)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 후, 즉각 기도에 들어가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귀한 신앙 인품을 가진 분들을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겸손히 하나님께 쓰임받는 분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겸손히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2] 예수님은 가르치심, 귀신을 제어하심, 시몬 장모의 열병을 고치심, 밤이 맟도록 각색 병을 고치십니다. 귀신들까지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신 줄을 압니다. 이때, 다시 기도하십니다.(막4:42)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힘있게 진행될 때, 또한 기도하십니다.
-*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 악한 영의 세력까지 예수님께 무너지고 항복하는 그 순간, 즉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힘있게 추진될 때, 기도하십니다.
-*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사람들이 주님을 배척하며,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도전받을 때 주님은 기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한 해를 마감합니다. 금년 한 해에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얼만큼 성공적으로 참여하셨습니까? 시작입니까? 진행중입니까? 도전을 받고 있습니까? 이런 시간에 주님은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집(프로슈케)'을 늘 확보해 놓으셨습니다.
저는 이민지에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너무 중요한 시기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집(프로슈케)'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루터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하루 세시간을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진심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이 막중한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님으로부터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1] 제자는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사람들입니다.
충분히 기도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지명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프로젝트를 더불어 진행시킬 일꾼을 임명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프로젝트인 구속 역사를 진행시킬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프로젝트를 들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8:15, 16).
주님으로부터 구원의 프로젝트를 받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세상에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13절).
2) 그러나 사도들은 평범했습니다.
열두 명의 사도들은 가롯 유다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빌립은 어부들이었고,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도마는 열심당원으로서 열렬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이들 유대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명한 학자도 없고 문벌 좋은 자도 없었습니다(참조, 고전 1:26). 이런 사람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그 원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성공여부는 주님께 달려 달렸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하나님처럼 똑똑하고 훌륭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화] 현선 자매는 외국인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외국인이 프로젝트를 가지고 한국에서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람은 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외국인 사장입니다. 현선 자매는 그분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만 잘 도와 주면 됩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프로젝트에 초대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예화] 그가 바로 당신일 수 있습니다.
어제 아침 일입니다. 교회밖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주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벨소리가 울립니다. 누군가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잠깐 내다보니 익숙해 보이는 캐내디언 할아버지입니다. 잘 하지도 못한 영어로 "May I help you?" 했습니다.
그러나 즉각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큰 일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가 눈에 쳐박혔는데 그걸 뺄 수 있도록 밀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3년 전에도 바로 이 자리에 차가 박혀 많은 교우들이 무척 고생한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저는 앞이 깜깜 했습니다. 마침 정 장로님이 차를 몰고 나오시는 길이라 함께 그분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밀어보아도 끄덕 없습니다. 묵직이 버티고 있는 차를 빼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고 밀어보지만 요지부동입니다.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토잉 카를 부르는게 어떠냐고. 그런데 물어도 할아버지는 내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꿈쩍하지 않고 박혀있는 차에 시선을 머문 채 듣는 시늉도 하지 않습니다. 토잉할 형편이 아니 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주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어떻하면 좋습니까?
우리는 교회에 들어가 몇 가지 도구를 챙겨왔습니다. 정장로님은 삽으로 바퀴 밑을 치우고 저는 소금을 뿌리고! 그 다음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이 차를 이 눈 구덩이에서 빼내어 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런 후에 앞으로 갔다 뒤로 차를 움직여 봅니다. 여전히 헛바퀴만 돕니다. 다시 한번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차를 번쩍 들어 저 길가로 옮겨 주셔야할 형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통로로 움직였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헛바퀴만 돌다 고무 타는 냄새만 나던 그 차가 말입니다. 할렐루야!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생각 하실른지 모릅니다. 운전대에 앉은 저는 하나님께서 이 차를 번쩍 들어 길에다가 움직여 놓으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그 할아버지의 눈에서 참으로 감사하고 계시는 마음을 읽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다운 일을 했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차를 저희들보다 효과적으로 뺄 수 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 장소!에는 정장로님과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서 눈 속에 쳐박힌 할아버지의 차를 빼내셨습니다. 곤고한 처지에 빠진 할아버지를 도운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것도 바로 이런 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곳곳에 웅덩이에 빠진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죄의 웅덩이에 빠져 고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군가 그들의 곤고한 형편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런 일을 감당할 제자들을 세우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들은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어부들이었습니다. 그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너무도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그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그들의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의 부름받은 하나님 나라의 작품은 우리 성도 안에서 시작되고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희망이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누군가 이런 하나님의 뜻을 믿음 안에서 발견하시고 믿음으로 삶의 영역을 승리로 바꾸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과 자녀는 빌리그레함과 같은 영력있는 목사님께 맡겨진 것이 아닙니다. 이 가정을 맡은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바로 당신에게 자녀를 맡기고 교회를 맡겼습니다.
기도하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3.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프로젝트를 진행시키십니다.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19절).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평지에 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산아래 평지 , 곧 허다한 무리와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 등에서 온 혼합된 무리들 중에서 세우시기 원하셨습니다.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이방인 중에까지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 중에는 육체의 고통을 당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마음의 고통을 당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자들은 질병에 걸려 있었고, 어떤 자들은 귀신에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지 간에 주님께서는 그러한 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이루어 가십니다.
주님께는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그 연약한 자들 중에서 이루실 능력이 있으십니다(17,1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습니까?
1] 자신의 안일한 신앙에 만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죠셉 엘라인(Joseph Alleine) 목사는 그의'회개에의 경종'이라는 책에서 '어느 정도의 종교 생활에 만족하는 자들은 참 은혜를 받지 못한 자이다'하고 경고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들 생각에 이 정도면 구원받았을 것이라고 간주하기만 하면 더 이상 믿음의 열심을 내지 않는 자들에 대한 권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크리스탈) 예수님은 이런 안일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화]
홍종수 집사는 88년도에 미국에 이민 온 성도입니다. 그는 흑인이 주로 사는 지역에 뷰티 써플라이 스토어를 열었습니다. 한참 돈이 잘 벌려가던 중, 그는 4발의 권총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일주일 후에야 그는 의식에서 깨어났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허리에 창을 받고 손은 못에 박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어쩌면 자기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이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는 조용히 떠오르는 찬송을 부르기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영원히 사모할 주님 부드러운 그 모습을 곧 뵈옵고 오늘로부터 내 구주로 섬기네"
그는 영원히 사모할 주님께서 곁에 계심을 깨닫고 나서 기쁨과 회복이 찾아왔습니다.
회복한 이후로 그는 찬송을 하든 예배를 드리든 '이것이 주님께 드리는 마지막 찬송이요, 예배다'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드렸습니다.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는 체험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신학을 공부하며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구체적으로 쓰임받을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집사에게 고난을 허락하셔서라도 안일에서 구원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부르신 것을 우리는 봅니다.
하나님의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쓰임 받을 일꾼이 하나님께는 필요합니다. 누가 이런 프로젝트에 쓰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2]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17절을 봅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들이 어느 정도 열심을 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그 당시는 현재와 같은 편리한 교통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서민들이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여행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하루종일 걸어서 왔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많은 시간과 육신적인 노력을 기울였음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떠한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들을 가치가 있는 말씀임을 그들은 알았습니다.(크리스탈)
이런 말씀 듣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프로젝트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부르십니다.
그 프로젝트에 순종하여 쓰임잗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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