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February 2015

눅6:20-26 새해 복을 많이 받으세요

들어가는 말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인사를 할 때, 우리는 어떤 복을 생각하면서 인사를 주고받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맛이 쓰기 때문에 뱉어버린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뱉어버릴 수 없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과 눈물과 고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것들을 사랑하라 하십니다. 이것들은 성도에게는 보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러나 성도들이 조심해야 할 세 가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부요함과 무사태평과 칭찬입니다.
이는 성도들에게 화를 불러오는 독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하신 말씀은 세상이 생각하는 禍나 福의 개념과 상반됩니다. 때문에 오늘 말씀은 주의 깊게 받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사람이 똑똑한 것 같아도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제가 잘못 알아 왔던 이야기를 하나 말씀드립니다.

예화] 자유여신상이 아니라 자유의 상!
뉴욕에 가면 남쪽 리버티섬에 자유를 상징하는 '자유의 상(Statues of Liberty)'이 있습니다. 높이 92m, 오른 손에는 자유의 횃불, 왼손엔 1776년 7월 4일이라 적힌 서판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부릅니다. 뉴욕주에 사는 어떤 분은 '여신상'을 차에 붙이는 것이 싫다고 뉴져지로 이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유의 상(Statues of Liberty)'은 우상 문화에 젖은 일본인들이 '자유여신상'이라고 그릇 번역했다고 합니다. 영어 그대로 번역하면 '자유의 상'입니다. '여신'이 들어갈 공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옳거니 생각해 왔던 것이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착시현상은 언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신앙교리에도 있습니다.
요즈음 천주교에는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로 모시자는 탄원서가 148개국에서 600만건이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추기경도 42명이 동참했다는 겁니다. 이런 운동이 바로 착시현상입니다.
'마리아를 평생동정녀로 찬미한다'(비교; 막6:3)
초기에는 마리아가 승천했다고 사람들을 미혹하다가, 1854년에는 마리아에게는 원죄가 없다고 교리('마리아는 어떤 죄도 범치 않았다')를 바꾸더니, 이제는 구속자로 삼자고 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미혹이 최첨단 시대를 산다는 우리 인간 사회에 얼마든 지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이 교황보다 우월하다면서 성경을 독일 말로 번역했습니다. 사람들의 종교적 착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하여 다른 자녀를 낳았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이름까지 나와 있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무죄가 이런 무지를 낳고 있습니다.
성경상 마리아는 죄인입니다. 마리아는 승천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20절).

세상에서 변질되어 버렸거나 묻혀버린 대표적 착시현상을 시정해 주십니다. 가난과 주림과 눈물이 화요, 부요함과 태평함과 칭찬은 복이라는 건 사람들의 관념입니다. 주님께서는 가난과 주림과 눈물은 성도들에게 보약이라 하십니다. 세상이 복이라 선전하는 부요함과 태평함과 칭찬은 성도에게 독약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1. 가난한 자는 복을
부요한 자는 화를 생각하라.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세상은 부요한 자가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사고체계가 비정상적입니까? 어떤 가치기준을 가진 것입니까? 매튜 헨리는 설명합니다.

'너희는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좇았으므로 가난하다. 그러나 너희는 가난 때문에 복을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가난이나 부요함이 절대 기준이 아닙니다. 주님의 제자라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까지 연결하여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때, 이 땅에서의 가난은 부요함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 땅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게을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 땅만을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부요함을 쌓으면서 살았습니다. 이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위안과 은혜가 너희 것이요,
후에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기쁨이 너희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너희 것이다.'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있고 부자가 지옥에 간 이야기는 그 예입니다.
또 다른 성경본문에서는 부자가 경겁간에 재산을 하나도 쓰지 못하고 죽어간 사건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부를 쌓았을지라도 하나님나라에 가난한 사람,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인생입니다.
헌금도 가난한 과부의 두렙돈을 칭찬하십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이스 선박왕 오나시스라는 사람은 굉장한 세계적인 갑부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금 아름다운 섬에 산처럼 크게 만들어진 무덤만 남아 있습
니다.
누구도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그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어떤 부를 쌓았을까요?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배불리 먹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는 약간의 밀 이삭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하나님나라를 즐거워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배가  불러야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환자들은 배가 불러서 온 병들입니다.
지난주일 기도에 대하여 설교했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금식하면서 기도하신 분도 있는 줄 압니다. 금식하는 분들이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백을 들어보세요. 몸과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성경도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먹고 부대끼는 것보다 주리면서 지내는 복이 있습니다.

2. 우는 자는 복을
웃는 자는 화를 생각하라.

제자들이 복음의 씨앗을 들고 나갑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고되고 땀이  나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울 수 있습니다.
나 선교사님께서 아이들이 라면을 아침에 먹고 낮에는 그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현재 슬픔은 장래의 기쁨을 막지 못합니다. 그들은 추수 때에 웃을 것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둘 것입니다(시 126:5,6).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위로를 간직하고 계십니다.(욥 8:21).

빌리 선데이는 한 때, 시카고의 유명한 야구 선수였습니다. 베이스를 14초에 다 돌 수 있는 준족을 가졌습니다. 그는 투수가 공 세 개를 던지는 동안 1루에서 홈까지 들어오기도 한 빠른 선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 그는 야구 선수들과 함께 술에 만취되어 거리에 앉아 있던 중 복음송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한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가졌던 믿음이 살아나고 죄를 회개하는 마음이 강하게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따라 친구들을 떠납니다.

"친구여 안녕 나는 이제 끝이다!"

그때 친구들은 웃었습니다.
그는 29년 후, 그와 함께 만취되어 매디슨 거리 구석에 앉아 있었던 유명한 동료 Frank Flint를 만났습니다. 그는  유명한 포수로 19년 동안 큰 돈을 벌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29년 동안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임종시 그에게 중요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게임을 승리고 이끌 수 있는 결정타를 날림으로써 관중석의 환호를 들을 수 있었소. 그러나 지금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소. 빌, 만일 심판이 나를 보고 아웃이라고 선엉한다면 자네는 나를 위해서 변호해 줄 수 있겠나?"

없습니다. 누구도 아웃! 당한 그의 인생을 변호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려야 할 그 수많은 날들을 육신의 기쁨을 위해 보내버렸습니다. 울지 못했습니다. 애통해야 할 때에 울 수 없는 사람, 그는 29년 전의 옛 생활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술에 취한 채 그 길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시기의 모습은 감기에 들린 채, 눈과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리가 자신의 비참한 인생을 젊은 날에 통곡하며

"친구여 안녕 나는 이제 끝이다!"

떠났을 때, 그후 29년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기간이었지만 많은 열매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심판이 여러분을 향해 아웃!!!!!이라고 선언 할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누가 여러분을 변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부요하다고 그냥 웃고만 서 있을 일이 아닙니다. 부요한 자는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씨를 뿌려야 합니다. 이 복된 새해에 눈물로 씨를 뿌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고난을 당한 자는 복을
칭찬받는 자는 화를 생각하라.

여기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 제자들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당하고 배척 당할 것입니다. 이를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닥쳐올 고난을 준비시키십니다.
원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이 땅에서 보다 많은 축복을 받자고 좇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2 절).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이 땅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으로 바꾸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예화] 콩쥐 팥쥐

콩쥐가 왜 고난을 받습니까? 팥쥐보다 더 나쁜 일을 해서입니까? 더 못나서입니까? 아닙니다. 단지 그 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성도들에게 있어 팥쥐의 어머니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어떤 착한 일을 해도 고난이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애매히 당하는 고난은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자 하는 제자일수록 이러한 고난이 심하였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순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부요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고난이 닥쳐오면 피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고난이 닥쳐오면 그 고난을 물리쳐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환란을 제거해 주시고자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주님 자신이 승리하신 것 같이 우리도 승리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장로는 예수님의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깨달아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고 권면하였습니다.
  고난은 그리스도인을 보다 온전하게 단련하여 성숙한 성도로 성장케 하기 위함입니다(참조, 약 1:2­4).  이 모두가 환란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임을 잘 말해 줍니다.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습니다. '악인은 의인 치기를 꾀하고 향하여 그 이를 가는도다'(시 37:12)라고 하십니다.  악인은 본질적으로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기 때문에 선한 자를 싫어하며 그리스도인들만 보면 미워서 이를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배척을 당합니다. '사람들이…너희를 멀리하고'하는 말은 인간 관계에서의 배척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의 불이익을 당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오히려 악한 자로 불리워 집니다. '너희에 대해 온갖 악한 말을 한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 '나사렛인'이라는 말은 비합법적인 종교를 믿는 악한 자라는 경멸과 멸시와 천대의 이름이었습니다.
핍박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세상으로부터 칭찬 받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마무리 하는 말

위 선생님께서 수술을 하신 후, 뒷 처리가 너무 간단하다면서 웃으십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수술 후, 가루약도 뿌리고, 꿰맨 자국에 알코올도 발라주고 빨간 옥도정기 같은 것도 발라 주면서 여러 가지 친절한 순서를 갖는데 이 사람들은 그냥 수술만 해서 꿰매 싸매어 놓고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겁니다. 그래도 수술 후, 경과가 좋으니 다행이라면서 너털웃음을 웃으십니다.
우리 선우 집사님께서는 한국에서 위 수술을 받으신 후, 많은 수고를 하며 특별치료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병원에서는 별다른 특별치료를 해주지 않은 모양입니다.
선우 집사님 경우도 건강이 날로 좋아 보이시니 아무튼 감사합니다.
위 두 분의 경우를 보면서 요란하지 않아도 치료가 되는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돈이 막 쏟아져 와야 축복입니까? 만사가 형통해야 축복입니까? 우리의 인식이 많은 부분 잘못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 눈물! 고난! 이면에 하나님의 축복이 보물처럼 숨겨있다는 것입니다. 이방 종교들이 이런 가난! 눈물! 고난!이 축복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난! 눈물! 고난!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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