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저의 집,
장남
노위로 군이 ETOBICOKE SCHOOL OF THE ARTS에 받아들여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흔한 일이지만, 노위로에게는 엄청 큰 기쁨인가봐요.
'I'VE GOT IN!'
환호하며 온 방안을 돌고 돕니다.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쁨입니다.
그러나 오늘 선지자 중에 가장 큰 자로 극찬을 받은 세례 요한은 이런 기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여져야 할 분입니다.
그는 분명 불세출의 신앙 영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헤롯과 그 무리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하였습니다.
거부당하였습니다.
받아들여지는 기쁨 대신 받아들여지지 못한 아픔을 당하였습니다.
목이 잘려 나가기까지 처절한 단절을 체험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받아들여짐’과 ‘받아들임’에 관한 진리를 배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 하나님께 우리는 받아들여졌습니다.
하나님의 친백성으로, 하나님의 친 자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우리는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들도
- 나의 생명이 되신 주님을 우리도 날마다 받아들일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 연약한 이웃까지 받아들이기 원합니다.
1. 하나님께서 헤롯을 사랑하셔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은 하나님으로부터 왕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왕다웁게 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셨을 때의 헤롯은 아이들을 학살시킨 대헤롯입니다(마2:16-18). 말년에는 가족들마저 죽일 정도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헤롯의 아들보다 그 돼지가 안전하다'라는 말까지 전하여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헤롯 대왕이 마리암 1세(Marianme)와 결혼으로 태어난 아리스토불루스(Arictobulus)의 딸이 헤로디아였습니다.
헤롯 아그립바(Herod Agrippa I, 행12:1)의 누나입니다.
그녀는 삼촌인 빌립과 결혼하였습니다. 이 결혼을 통해 살로메라는 딸이 태어났습니다(Josephus).
헤롯은 헤로디아와 결혼을 위해 나바디아 아랍(Nabutean Arabs)의 통치자인 아레타(Aretas)왕의 딸과의 결혼을 파기했습니다(Hendriksen0. 이런 부정한 결혼은 모세 율법을 어긴 것이고(레18:6; 20:21) 이런 불의를 지적한 세례 요한은 감금당하게 되었습니다. 요세푸스는 헤롯의 행동이 아레타 왕과의 긴장 국면으로 인해 조성된 불안한 정정에 불을 당기는 세례 요한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에서 행해졌다고 보았을른지 모릅니다(W.W.Wessel).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헤롯까지 사랑하셔서 세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기회를 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였습니다.
만일 헤롯이 세례 요한을 받아들이고 그의 전하여준 말씀을 받아들였더라면 그의 인생은 역전되었을 것입니다.
지옥인생이 천국 인생으로 역전되었을 것입니다.
2. 그러나 헤롯은 세례 요한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십니다. 헤롯이 왕의 직분을 가지고 왕답지 못한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옳지 않다!’고. 만일에 헤롯이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그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2] 헤롯은 세례 요한의 말이 옳은 줄 알았습니다.
그를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를 두려워하고 보호하였습니다.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3] 세례 요한의 말을 달게 들었습니다.
20b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4] 그러나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25 저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한대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저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크게 번민하였습니다.(20)
심히 근심하였습니다.(26)
그러나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일까요?
헤롯은 허영심 때문에 세례 요한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욕심 때문에 세례 요한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체면 때문에 세례 요한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여러 귀족 앞과 의붓딸 앞에서의 체면 때문에 요한 처형을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헤롯은 선지자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처형하였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세례요한의 목을 벰으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쳤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녀를 잉태할 수 없는 것처럼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열매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받아들여질 때 행복이 있습니다.
받아들여지지 못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어떤 부부는 서로간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아픔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가정에서 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지만,
행복한 가정에서 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다’
란 말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의인이 이 세상에서 받아들임을 받지 못하고 배척받는 현실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으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그 사람들은 구원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철학과 신념과 신앙과 생각을 접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 사람들은 상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요?
탕자의 형은 인생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동생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의로운 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반면, 그 동생 탕자는 받아들여질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의로운 그의 마음에는 불의한 동생을 받아들일 만한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는 속된 것을 받아들이라는 어려운 명령을 받았습니다.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자기에 싸여 내려오는 데 하늘에서 한 음성이 들리기를
“잡아 먹으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결국 그는 순종함으로 이방인 선교에 큰 공력을 남긴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여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노라.”
그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방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부어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가문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하였습니다.
왜 헤롯은 끝내 세례 요한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요?
헤롯 안에 있는 불의(죄, 허영,체면,욕심)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오늘 선지자 중에 가장 큰 자로 극찬을 받았지만 헤롯과 같은 세상으로부터는 거부당하는 아픔을 당합니다.
그는 분명 불세출의 신앙 영웅이었지만, 그는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세상으로부터 버림당한 채 목이 잘려 세상에서 사라져 가야 했습니다.
3. 받아들이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받아들임으로 복을 받은 예를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여 아름다운 삶을 산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였을 때, 삭개오는 적극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집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고 하시면서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들을 보내어 욥바에서부터 베드로를 모셔왔습니다.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다 모아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배드로가 들어올 때는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 루디아는 기도처를 찾는 바울의 말을 받아들임으로 빌립보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 16:14-15)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감옥에서 나온 바울과 실라를 받아들임으로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자기와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탕자는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인생의 종점에 서 있었을 때 그 아버지께 받아들여졌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의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을 맞아들인 나사로의 집에는 부활이 있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받아들여진 이 일로 인하여 그들의 가정엔 부활이요 생명이 있었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를 받아들여졌습니다.
엘리야를 받아들여 그 말씀대로 순종한 일로 인하여 그녀의 가정엔 더 이상 기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정을 축복하셨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김춘수의 詩에 <꽃>이란 작품을 저는 사랑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
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우리가 언제 행복합니까?
누구에겐가 받아들여지는 때입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 졌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너무 기뻤습니다
형제 자매에게 받아들여 졌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너무 기뻤습니다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받아들여진 우리도 이제는 받아들이는 삶에 열려야 할 때입니다.
1950년 12월 말, 인민군이 중공군을 등에 엎고 서울로 진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서울 시내에는 전쟁 고아들이 곳곳에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이 받아들여질 길 없는 고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 제 5공군 군목이었던 러셀 브레이즈델 중령은 새벽마다 트럭을 몰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수십 명씩 태웠습니다. 종로의 한 초등학교 건물엔 이런 아이들이 순식간에 천 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제 이들을 안전한 제주도로 데리고 가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이들을 제주도로 옮길 수 있단 말입니까?
백방으로 길을 찾던 그는 당시 서울 시장 이기붕씨로부터 인천항에 배를 대기시켜 놓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10여차례에 걸쳐 아이들을 날랐습니다. 그러나 대기 중인 배는 시멘트를 잔뜩 싣고 있어서 아이들을 태우기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인근 초등학교에 옮겨놓고 다시 대기 중이던 미군 공군 본부로 로러스 준장을 찾았습니다. 아직 임무가 주어지지 않은 C-54 비행단이 있으니 김포공항까지만 데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비상 시국이라 언제 이 비행단이 다른 임무를 맡아 출격할 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인천항 부두에서 하역중이던 해군 군용트럭 14대를 장교 휘장을 보여주며 강제로 빼앗아 그 아이들을 싣고 김포공항으로 달렸습니다.
그 아이들은 한 사람도 낙오없이 제주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부탁을 받은 황온순씨가 한국 보육원을 세워 그들을 받아들여 키웠습니다.
러셀 브레이즈델 중령은 1952년에 일본으로 발령을 받아 떠나기까지 계속 옷, 식료품, 의약품 등을 가지고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01년 1월 16일, 이제 자라 어른이 된 당시 고아들의 초청으로 91세의 러셀 브레이즈델 씨가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렬한 환영 속에 받아들여 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 것뿐이다.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떠난다는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다. 고아 수송 작전은 용기가 아니라 책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받아들인 그 고아들이 50년 후에, 그를 다시 받아들일 것을 어찌 그가 알았겠습니까?
우리가 이땅에서 작은 자 하나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일 그날을 상상해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삶의 보람이 있을 줄 압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바다라고 합니다.
좋은 강물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더러운 폐수도 받아들입니다.
위에서 내리는 빗물도 받아들입니다.
아래서 솟아나는 지하수도 받아들입니다.
잔잔한 이슬비도 받아들입니다.
물론 폭우로 말이암은 흙탕물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 이 모두를 받아 들여 더불어 한 가지로 바다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의 가문에 속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복을 받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작은 자 한 사람을 받아들이십시오. 받아들인 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십니다.
.
하나님께 의미있는 존재가 되신 성도 여러분,
서로간에도 의미있는 존재가 되시길 바랍니다.
서로에게 꽃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마가복음 6:14-29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가로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 하고 15 어떤이는 이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 헤롯은 듣고 가로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21 마침 기회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및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여아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너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 또 맹세하되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 저가 나가서 그 어미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미가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저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한대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저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여아에게 주니 여아가 이것을 그 어미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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