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호수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태양이 떠오르면 그 구름은 환상적인 작품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많습니다.
그 은혜 위에 의의 태양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가 떠오르면 그 은혜는 환상적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오병이어의 이적은 사복음서에 공통으로 기록된 유일한 기적입니다.
어린아이의 손에서 나온 오병이어는 참 아름답습니다. 그 위에 우리 주님의 축복이 더하여지면서 장정만도 5천명이 환호하는 감동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이 사건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베풀어질 큰 잔치를 미리 보여 주는 종말론적 성례전으로 보았습니다.
오병이어에 나타난 비밀을 새롭게 만나고 헌신함으로 환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넘치게 받으시는 복인이 되시길 원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다양합니다.
1) 사도들은 받은 은혜를 세상에 전하였습니다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사도들이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를 몸과 입으로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자신들의 첫 번째 사역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사명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주 앞에 드릴 보고서를 작성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고전4:2).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 없건만
그 귀하신 생명까지 다 주시니
내 생명도 주 예수께 바칩니다.(353장)
2) 한적한 곳에서 쉬임을 갖는 것도 은혜입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31)
인생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는데, 하나는 너무 계속해서 지나치게 일에 몰입하는 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지나치게 물러나 있는 위험입니다(W.Barclay). 제자들이 처한 위험은 바쁜데서 왔습니다. 일이 잘 되어 갔고 제자들은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식사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잠깐 쉬라고 명하셨습니다.
휴식은 힘을 충전하는 것입니다. 방전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함으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충전해야 합니다(엡5:16)
저는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재미있는 교훈을 배웁니다.
핸드폰의 배터리를 한번 충전할 때는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끝까지 쓴 다음 다시 가득채웁니다.
조금 쓰고 조금 채우고 하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파김치가 되도록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푹 휴식을 취하여야 합니다.
어둔 밤 쉬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일할 때 일하면서 놀지 말아라
낮에는 골몰하나 쉴 때도 오겠네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3) 주님 만나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도 은혜입니다.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33절)
오늘 복된 무리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예수님의 일행보다 민첩하게 움직였습니다(A.T.Robertson).
예수님의 일행보다 앞서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은 열심히 요구됩니다.
요즈음 우리들은 어떤 은혜를 누리고 계십니까?
그 은혜 받은 일로 인하여 감사합시다.
2. 목자를 만난 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빈들 같은 무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 그것은 예수님을 만난 일입니다.
무리는 컸지만 목자 없는 양 같았습니다.
그래서 불쌍합니다.
목자없는 양은 참 불쌍하거든요.
양 무리가 크다는 것은 목자가 있을 경우에 축복입니다. 목자가 없을 경우, 큰 무리는 더 불쌍할 뿐입니다. 고아가 많다는 것만큼이나 불쌍한 것입니다.
양은 사자보다 힘이 없습니다
여우보다 머리도 없습니다.
독수리처럼 눈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짐승보다 행복한 이유는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자가 없다면 아무리 양무리가 크더라도 불쌍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불쌍한 양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저는 한 복음 성가를 좋아합니다.
두려워 말라 어린 양이이여
땅과 하늘에 권세 잡은 이
널 찾아내어 안보 하시리니
죽음에서 생명에 이르리라
그러면 어떤 분은 반문하실 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에 우리를 떠나가셨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당시 제자들 중에는 그것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떠남은 예수님께 있어 우리를 두고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떠남은 더 나은 만남을 위한 것입니다.
요14장에는
주님의 떠남을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만남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3)
떠나 있으실 잠깐 동안도 주님께서는 만남을 위해 준비를 해두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7-18)
감람원이라 하는 그 떠남의 장소에서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결코 네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너를 버리지 않겠노라고!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사실 헤아려 보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릴 때가 많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버리지도 않겠다고 말씀하세요.
사람들이 언제 슬퍼합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갈 때입니다.
임종시 사람들이 슬퍼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지난주간에 태극기 휘날리며 란 영화를 잠깐 보았습니다. 이삿짐을 싸면서 곁눈으로 좀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주인공이 수더분하고, 정감도 있고 괜찮다 싶더라구요.
그런데 그 다음날 신문을 보니까 그 여주인공이 이 세상을 떠났더라구요. 그 기사를 보면서 저는 그 여주인공이 이은주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어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해야 했었는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좀 엉뚱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부모님과 오빠가 있던데....... .
그 부모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오빠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나는 사람은 좀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그 부모님과 형제가 얼마나 큰 아픔을 겪어야 하는 가를!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 일인가를!
그러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양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께서는 결코 양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님께 선물로 받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compassion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만난 그 형제 자매를 긍휼히 여기셔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시기 위해 만드신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떠난다는 말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너무 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처럼 난 네 곁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젠가 저는 아들 위로와 심각한 대화시간을 가졌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말을 위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를 서로 씨름하였습니다.
부자지간에 참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서로 통하지가 않았으니까요. 도무지 아빠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를 않으니 어떡합니까?
그럼 내가 네 곁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 말하고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위로가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대성통곡을 합니다. 자기 뜻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아, 아빠가 떠난다는 것은 아들에게 큰 아픔이 되는구나.
그 후로는 제가 그런 말을 쉽게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신 이런 말을 해주기로 다짐합니다.
내가 너의 울타리가 되어주마!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다!
주님께 그 마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바쳐진 5병2어 위에 환상적인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35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 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때가 저물어 옵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사람들은 먹을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리가 있는 곳은 빈들입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제자들은 이 엄정한 현실을 염려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충고하고 있습니다.
무리를 보내어…무엇을 사 먹게 하소서(36)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 충고할만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주님은 제자들과 현실인식이 많이 다릅니다. 사먹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지신 생각은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것은 비현실입니다. 제자들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반문합니다.
우리가 가서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예수님께서는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지 사다 먹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할 일은 이미 있는 먹을 것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네 주님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
저희가 그 먹을 것을 나누어주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 어떤 분인가를 제자들에게 알려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물으십니다.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제자들을 현실을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장정만 5천명인데 가진 떡은 다섯 개요, 가진 물고기는 두 마리입니다. 현실적으로 대책이 없습니다.
이 현실의 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입니까?
오직 예수님에 의해서 극복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명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받을 준비를 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제자들의 유도에 따라 마치 잔칫집에서 여러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듯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39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주님께서는 바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축사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보기에 너무 작아서 무시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 안에 있었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키를 만드셔서 하늘 문을 여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서머나 7년을 회상합니다.
우리 서머나에는 오병이어를 바친 분들이 계십니다.
여선교회원들이 성전 건립을 위한 아나바다 장터를 얼마나 열정적으로 벌였는지 모릅니다. 그 수익금만으로 성전 건축을 한다면 200년은 걸려야 합니다.
어떤 분은 매월 $20씩 건축헌금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돈으로 건축을 하려면 500년은 걸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오병이어로 키를 만들어 하늘 문을 여셨습니다. 축사하셨습니다.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매
문제에 대한 해답은 주님께서 가지고 계셨습니다. 해답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들의 가진 현실의 벽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극복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에게 선교관까지 갖춘 성전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아나바다 장터에 오병이어를 바친 수고와 월 $20 헌신 위에 하나님께서 축사하신 줄 압니다. 헌신이 그리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마무리하는 말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작은 것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위대한 능력의 손에 올려지면 하나님의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병이어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안에 예수님의 손이 함께 하시면 환상적인 작품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넉넉하였습니다. 남아도는 양식이 있었다는 사실은 대군중이 배불리 먹었다는 그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Wycliffe).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그것의 분량이나 크기에 관계없이 모두 소중합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저는 이 말씀에 입각하여 이번 봄에 우리가 오병이어를 주님의 손에 올려 드려보는 축복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이 오병이어로 예수님께서 나의 메시야되심을 체험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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