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February 2015

눅6:27-36 원수를 사랑하라

들어가는 말

중국 무협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평화로운 가정이나 공동체에 원수의 세력이 침범합니다. 그리하여 부모를 죽이거나 스승을 죽이고, 그 자정과 공동체를 쑥밭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 가운데 자녀나 제자 한 사람이 살아남아 원한의 칼날을 갈며 무술을 익힙니다.  마침내 때는 오고 통쾌한 복수를 하고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소설이나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우리 나라 고대소설의 대부분 주제가 권선징악이란 미명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것도 같은 주제입니다.
얼마 전에 구운몽의 사씨남정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현모양처인 사씨에게 아기가 없습니다, 교씨를 첩으로 들입니다. 이 교씨가 바로 원수입니다. 그녀로 인해 온 집안은 풍지 박살이 납니다. 결국 교씨는 철저히 복수를 당하고 사씨가 회복됨으로 고대소설의 명작이 탄생합니다.
우리들은 원수문화 속에서 자라났고, 원수에 대한 복수를 미덕으로 삼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원수가 입에 붙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원수지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남!'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원쇤 놈의 세상!'이랍니다.
이 정도까지는 들어주겠는데 어떤 사람은 자녀를 '원쇤 놈의 자식'이랍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을 '원쇤 놈의 남편!'이랍니다.
얼마나 한이 맺히고 아픔을 당했으면 그런 말을 할까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원수는 먼 나라에 사는 괴상한 사람이나 세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이웃이요 가장 가까운 지점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아담을 유혹하여 에덴으로부터 끌어낸 원수는 그의 아내 이브였습니다.
아벨을 살해한 원수는 형제인 가인이었습니다.
야곱을 죽이겠노라 칼을 간 원수는 형 에서였고, 그가 부자가 되는 것을 시기한 원수는 삼촌 라반이었습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아 넘긴 원수는 형님들이었습니다. 그를 감옥에 넘겨 죽이려한 원수는 한 때, 그를 사랑한 보디발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의 아내를 겁탈하고 왕의 직분에 도전한 원수는 블레셋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의 세력도 아니었습니다. 자식인 압살롬이 다윗에게는 원수였습니다.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긴 원수는 제자 가룟 유다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믿음의 용장도 사실은 한 때, 심히 다툰 원수였습니다.
원수는 우리와 너무 가까운 곳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좋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정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1. 세상은!

세상은 원수에 대하여 냉정합니다. '이에는 이!'입니다. 물린 사람은 몇 곱절로 씹고 다녀야 직성이 풀릴지 모릅니다.
여러분,
원수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행여 원수와 같은 처지에 떨어지더라도 물지 맙시다. 세상에서 원수되고 나에게 물린 사람은 평생 나를 씹고 산다는 사실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다행히 그분이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경
우가 좀 다르지만 말입니다.
'피에는 몇 곱절의 피!'를 보복합니다. 중동지역이 세계의 화약고라고 일컬어집니다. 그곳에서는 철저히 피는 피로 맞섭니다.
대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기 전에 죄 아래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입니다. 나를 선대하는 사람을 선대합니다. 옳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틀려도 나를
사랑하면 사랑합니다.
한푼이라도 더 받기를 바라고 그런 사람이나 은행에 빌려줍니다. 요즈음에 캐나다에 이민을 오시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재산을 어디에 두고 관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심하는 분이 많다고 합니다. 그
가정에는 중요한 문제이거든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은 성경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는 매우 매력적인 말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더욱 미워합니다. 나아가 그 일이 가능하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복수합니다.
세상은 뺨을 맞으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대가를 받아내지요.
어제 아이를 학교에 대려다 주고 주차장에 들어오니 그 큰 주차장이 떠들썩합니다. 지나가면서 보니까
어떤 사람이 차를 받았습니다. 경미하다면 경미한데 온 주차장이 떠나가라고 서로 싸웁니다. 한국 사람입니다.
이곳까지 와서 한국 사람처럼 싸웁니다. 그 아이들을 제 차에 싣고 학교에 대려다 주고 돌아 왔습니다. 그분은 어느 교회 집사님이신데 얼마 후에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자기 차를 받은 여인을 용서하기로 하였다는 것
입니다. 역시 기독교인은 다른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싸우지 않았더라면 더욱 좋을 뻔하였습니다.

겉옷을 구하는 자에게 세상은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항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면서 투쟁하는 노조들이 단체적으로 주장하는 것들도 자세히 보면 겉옷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나 한 사람이 추워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도 있고 자녀가 있는데 겉옷을 빼앗기면 어떻게 합니까?
세상은 대접을 받고자 합니다. 사람다운 대접을 받기 원합니다.
지난 주 어느 신문 종교 판을 보니까 한인 연합 교회에서 교회의 모든 직분을 없애버리고 평신도 운영위원회 체제를 출범했다는 기사를 머릿기사로 내놓았습니다. 사람들이 교회 직분을 대접을 받으려는 한 수단으로 삼는 세태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물론 그런 제도는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접을 받으려고 직분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주는 기사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2. 세상은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원수를 아무리 씹어도 그 원한관계는 청산되지 않습니다.
중동에 아무리 많은 피를 뿌리고, 엄청난 무기를 쏟아 부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절대로 그곳에는 갈증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주간에 요한 복음 4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귀한 진리를 많이 깨달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만을 찾아 얼마
나 헤매었겠습니까? 그러나 여섯 번째 남자와 함께 살아도 문제는 여전하다는 겁니다.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물질이 인간을 다스립니다. 부부간에, 형제간에, 친구간에, 받기를 바라고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하여 빌린다면 엄청난 파멸이 옵니다.
뺨을 나도 때리겠노라 나서면, 서로 죽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수 차례 어려움을 당합니다. 뺨을 수없이 맞는 셈이지요. 그것을 그때마다 같이 맞섰다고 합시다. 사울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죽습니다. 세상은 그래서 늘 피의 순환입니다.
대접을 받으려 들면,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연합교회에서 교회 직분을 대접받는 정도로만 생각하여 그 직분을 없애버렸지만 대접받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교회생
활을 제대로 못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세워줄 줄 아는 마음입니다. 세워줄 줄 아는 사람이 세움을 받습니다.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섬김을 받습니다. 이를 아셔야 합니다. 상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교회
가 세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줄 알아 배나 존중할 줄 알고 대접하면, 그런 사람들을 또 하나님께서 세우시지요.
세상은 원수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원수문제를 해결합니까?
3. 주님께서는 원수를 위해 죽으심으로 원수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 이 세상에는 원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그 원수를 사랑하라 명하십니다.
-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십니다.
- 나를 저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라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저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의도에서 행해진 말)하는 것을 금하시며 오직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사면 해 주는 권한만을 부여하셨습니다(요20:23).
저주하는 사람을 위해 축복권을 사용합시다.
- 우리를 모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은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기도는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권을 사용해야 합니다.
- 어떤 때는 뺨을 맞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러한 일에 수반되는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겉옷을 빼앗길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29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출 22:26과 신 24:13은 다른 사람의 겉옷을 전당잡거나 압류한다면 그날 해가 지기 전에 돌려보내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밤과 낮의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겉옷이 생필품으로서 밤에는 덮고 자는 이불
의 역할을 하고 먼지가 많이 이는 낮에는 겉옷으로 걸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따라서 겉옷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추위 속에서의 굉장한 고통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때로 중요하게 여기는 겉옷을
전당잡히고 돈을 빌리기도 하였습니다.
- 나에게 요청하는 손길이 있습니다. 주님은 30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준다는 것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사랑의 정신에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마 5:42). 잠언에 따르면 이는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잠 19:17).
-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다시 달라지 말라 하십니다.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물질의 손실이나 이해 타산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소중한 영혼에 타격을 입히지 않을까를 우려하시며, 더 적극적으로는 궁핍한 처지에 있는 자들을 헌신적으로 구제하라는 뜻입니다.
-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상에서 주님께서 실천하신 말씀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물건까지도 희생할 줄 아는 실천적인 사랑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몸소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셨습
니다(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이다"하고 원수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상의 외침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실천하셨습니다(23:34).
스데반은 예수님의 원수 사랑의 모습을 순교시에 생생히 삶으로 증거 하였습니다(행 7:60).
사실 예수께서 죄 있는 인간 세상에 성육신하신 것 자체가 바로 원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원수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셨을 뿐만 아
니라 죽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됨으로 영벌에 처해질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용서함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성도는 도저히 갚을 길 없는 큰사랑의 빚진 자입니다. 이 사실이  기본이 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빌려주는 것! 그러나 받고자 하지 않는 것!
대접받고 싶을 때, 남을 대접하는 것!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는 것!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

칭찬을 받는 대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시 완악한 유대교인들, 특히 유대교 지도자들은 독선적 정죄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들을  향한 제자들의 중심은 나름대로의 상처가 있었으리라는 생각됩니다. 이들을 향한 적극적인 사랑의 계명을 제공하십니다. 그들의 인격이나 재산, 지위 등에 상관없이 그에게 참된 관심을 나타내고 먼저 사랑을 보이라는 말씀이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교훈 중에 극치를 나타내는 것이요 기독교의 가장 큰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몸소 실천하심으로써(23:24)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회개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도둑질을 한 사람도 회개하고 바른 삶을 살 때, 그 눈물은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을 원수로 만들고, 원수같이 생각하고 원수처럼 대하면서 살 때,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원수(怨讐)를 원수(元帥:장수의 으뜸)로 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 나라의 장수 중에 장수인 하나님나라 국가원수처럼 높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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