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February 2015

눅6:37-42 비판을 넘어가는 사랑

들어가는 말

천국백성은 성화 되어 갑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들보를 치워가야 합니다. 들보가 누르고 있으면 성장이 멈추기 때문이지요. 천국백성의 성화를 가로막는 죄 가운데 비판과 정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이 들보를 치우기 원하십니다.

1. 사람에게는 누구나 들보가 있습니다.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죄악이 있습니다. 그 죄악이 내 안에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유심히 현미경을 들이대고 자세히 보아야 희미하고 작게 보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죄악이 있을 때는 크고 뚜렷하게 보입
니다. 티끌 만한 것까지도 잘 보입니다.
또한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 죄악은 달라 보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의 죄악은  두루뭉실한 것으로 보이지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럴 수밖에 있겠는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죄악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 싶지요. 그래서 판단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갖게 마련입니다. 나아가 그에 대한 나쁜 태도를 갖습니다. 심해지면 그 사람의 잘못을 비방하고 돌아다닙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다른 사람의 죄악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눅6:37절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주님께서는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라!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가 없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죄를 용서함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
리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고 그 시민권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정죄만한 자격증을 아무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받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누구도 비판할 수 있는 영역에 있지 못합니다.

엡2:0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0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그러면 정당한 충고나 의견 제시도 못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엄청난 허물을 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하여 판단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비판입
니다. 이런 비판은 그 사람과 공동체를 헐어내는 작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판단하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까? 선악에 대한 분별이 없는 곳이 천국입니까?
아니지요. 선악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에덴을 만드시고 그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지요. 그리고 그 열매 먹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선악을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
십니다. 그런데 누가 선악을 판단하는 일에 권리를 행사하겠다면, 그는 아담이 하나님께 들은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창3:22)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

선악을 알게 된 우리가 그것을 입밖에 쏟으면 비판이 됩니다. 재판관처럼 남의 죄악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면 정죄가 되구요.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순간 하나님의 영역 속에 뛰어든 교만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비판하는 일을 매우 조심했습니다.

남북전쟁 직후의 이야기입니다. 메사추세츠 주의 테디어스 스티븐스란 국회의원은 남부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각하, 적들은 마땅히 파멸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링컨은 답했습니다.
"스티븐스씨, 적이 친구가 되었는데 어떻게 파멸시킬 수 있겠습니까?"

링컨 대통령은 어제의 적을 오늘 친구로 맞아들였기에 비판대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은 자답게 선악간 판단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요셉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라! 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비판하는 마음에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맺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을 비판한다는 것은 내가 높은 곳에 설 때 가능합니다. 교만할 때, 비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겸손하셨습니다. 근본 하나님이시지만 하나
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섬기는 자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주님의 어떤 모습에도 비판이 끼어들 공간이 없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비판적인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녀를 비판하지 않으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정죄 대신 용서하는 이 순간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만납니까?
비판함으로 남을 끌어내리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는 마음속에는 독초만 무성히 자랄 뿐 열매가 없습니다. 내가 높아져야 하는데 여의치 않으니까 남을 끌어내리는 사탄의 심보가 독초처럼 무성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옳은 그같은 비판에도 열매가 없습니다.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 외식하는 자여 !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우리의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는 일을 돕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결함을 제거함으로써 그 일을 할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눈의 티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문제를 해결합니다.

[전도의 열매]
필리핀에서 전도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선교사 중에는 기막힌 사연을 간직한 한 선교사가 있다. 그분이 바로 김기영 선교사로서 이분을 하나님의 종으로 인도한 사람은 인천 주안장로 교회의 안강자 집사다.
안강자 집사가 1987년 인천 주안역 광장에서 전도를 하던 중 전철역에서 나오는 건장한 청년에게 "예수 믿으세요"하고 전도를 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들은 척도 않고 지나갔다. 안강자 집사는 계속 따라가면서 재차 권유를 했다.
"꼭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구원 못 받고 죽으면 지옥 갑니다."
순간 이 청년의 주먹이 안강자 집사의 얼굴을 강타했다. 안강자 집사는 머리가 아찔하면서 역 광장 아스팔트 바닥으로 넘어졌다. 넘어진 안강자 집사의 코에서는 붉은 피가 솟아나왔다. 청년은 다시 넘어진 안강자 집사의 얼굴을 구둣발로 비비고 지나갔다. 역 광장 주변 상인들은 그 청년이 깡패라고 하면서 그의 행동에 아무도 대항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안강자 집사는 주변 사람들의 부축으로 택시에 실려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남편과 이웃 주민들은 이제 전도하는 것을 좀 쉬라고 하면서 위로는커녕 오히려 핀잔을 퍼부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후 그 청년으로부터 사과의 전화가 왔다.
"아주머니를 때린 그날 저녁부터 저는 밤마다 땅바닥에 쓰러진 그날의 아주머니 얼굴이 제 눈앞에서 아른거려 꼬박 1주일을 잠을 못 자고 번민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온갖 폭행과 못된 짓을 저지르며 지내왔지만 아무 일이 없었는데, 왜 아주머니를 폭행한 것이 이토록 괴로운지요. 아주머니, 제가 과연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까?"
생각지도 않은 이 청년의 전화를 받고 난 안강자 집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그 오묘한 역사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불량청년 김기영은 곧 안강자 집사의 인도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 3개월 만에 주님을 영접했으며 다시 안강자 집사의 주선으로 신학을 공부하여 전도사가 되었다. 그 후 김기영 씨는 필리핀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주님께 순종한 열매가 핍박과 핀잔이었는가. 아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종으로 변화된 것이다.
-김수호 〈숨겨진 신앙이야기〉

자신을 이유 없이 폭행한 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지만 이 집사님의 경우에는 용서하고 신학공부까지 주선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는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비판은 잡초를 짓밟는 것과 같습니다. 짓밟으면 잠시 없어지는 것 같지만 더 강하게 자나납니다. 그러나 용서는 잡초를 뽑고 그 자리에 대신 화초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용서는 서로를 윤택하게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원수를 용서하였을 때, 듣는 사람들의 마음마다 화초가 피어납니다.

주님께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라! 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비판 대신 용서를 해야 합니다. 내가 용서를 받고 죄사함을 받아 축복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용서함 받고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대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용서를 누립니다.

비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이 남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행동하고 말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戰士'가 되어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분노(비판)를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 핑요합니다.(게일 멕도날드)
토저(A.W.Tozer)는 하나님의 사람을 가름하는 방법으로, '어떤 이유로 공격(비판)을 받아도 결코 자기를 방어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이 아직 부분적으로 미성숙해 있기 때문에 비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소년에게 어른의 성숙함이 없다고 해서 비판해서 안돼는 것처럼 성숙해 가는 중에 있는 사람을 쉽게 비판해 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부분을 얼마든지 성숙케 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실패와 추락을 통해서 성숙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진흙과 같지만 토기장이이신 하나님 곁으로 갈 수만 있다면 하
나님께서는 그  진흙으로 유용한 물건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성숙시킬 수 있습니다.

한 대학 선교단체의 간사가 사과 하나를 들더니, 그 속에 씨가 몇 개나 들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다음 그는 사과 씨 하나를 들더니, 질문을 또 했습니다.
“이 씨 하나 속에 사과가 얼마나 들어 있습니까?”
한 개의 조그만 사과 씨 속에 얼마나 많은 사과가 들어 있는지 헤아릴 수 없듯이, 믿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씨 안에 얼마나 많은 열매가 있을지 설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좋은 농부를 만나면 엄청난 열매로 바꾸어 질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을 멘토로 삼아 성장하였습니다.
때로 밀이나 보리가 그리고 겨울 나무들이 겨울 속에 갇쳐 그냥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기간도 종합적으로 보면 성장기간입니다. 더 아름다운 꽃과 가지를 내기 위한 내적인 힘을 모으는 기간입니다.
그러나 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 안에서 성장합니다. 열매가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15:16)


마무리 하는 말

- 옛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1] 예수님께 접붙임으로 옛사람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면이 바뀌지 않으면, 열매는 자동적으로 옛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사과를 생산하는 것은 사과나무만의 본성에 속합니다. 옛사람의 어떤 모습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내면이 그리스도 예수 안
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내면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케 되고 새 사람으로 바뀌면, 선한 열매를 내게 됩니다.
[풍성한 열매의 비결]
누군가가 죠지 뮬러(George Muller)에게 열매가 풍성한 그의 사역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죽은 날이 있었습니다. 완전히 죽었던 날이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점점 허리를 굽혀 마루 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을 숙였습니다.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나는 죠지 뮬러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의 견해, 좋아하던 것들, 그의 취향과 의지에 대해서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형제들과 친구들의 칭찬이나 비난에 대해서도 죽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나 자신만을 나타내 보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열매를 원하십니까?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마음이 나무라면, 말과 행동은 나무의 종류에 따라 열리는 열매이다(43,44절).못된 나무는 아무리 푸른 잎을 낸다 하더라도 좋은 열매를 맺지는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열매를 위해 아들을 대신 내어 주셨습니다.

1798년에 제너는 천연두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젖소에서 천연두의 면역성을 가진 우두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사람에게 주사하면 천연두 면역성이 생긴다는 것을 학회에 보고했습니다. 학회에서 마지막 실험 단계에 들어갔을 때 당시에 제일 유명했던 영국 학계의 권위있는 의사들을 위시해서 많은 동료 의사들은 질투와 시기에서 그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들
은 시골뜨기 의사가 의학의 ABC도 모르고 하나님과 의학을 모독한다고 했습니다. 동물과 사람을 구별할 줄도 모르느냐고, 동물에게 실험한 것이 사람에게 적용이 될 수가 있겠느냐고 조롱을 하면서 그것을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만일 그 학회에서 그것이 부결이 되면 당시는 인체 실험이 매우 어려운 때이고 권위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다시 빛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물을 머금고 말했습니다.
"몇달 전에 어느 사람에게 주사를 해서 듣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그들은 한 사람의 임상 실험을 가지고 되느냐며 또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너는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여러분,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23명을 실험했고, 낳은 지 열 하루밖에 되지 않은 제 아들에게도 실험을 했습니다."
그때 장내는 숙연해졌습니다. 그것은 결사적인 실험이었습니다. 인류에게서 천연두를 없애 버리기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된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 위대한 일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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