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전해 오는'희망'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농촌에서 성실하게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착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소득이 없어 지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동쪽으로 12㎞ 정도 가면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를 베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부부는 노인의 말대로 큰 나무를 찾아 베었습니다. 그러자 나무가 쓰러지면서 가지에 있던 둥지에서 새 알 두개가 나왔습니다.
두 개의 새알 중 하나에서 새끼 새가 나와 "다른 새알을 까보면 금반지가 하나 나올 것인데 그 반지에게 소원을 빌면 들어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날아갔습니다.
젊은 부부는 금반지를 두고 무슨 소원을 빌까를 의논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참으로 희망찬 순간이었습니다.
집을 달라고 할까, 소를 달라고 할까, 땅을 달라고 할까, 돈을 달라고 할까를 의논하다가 그런 것은 열심히 일하면 얻을 것이니 금반지를 잘 보관하고 열심히 일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반지를 잘 싸서 옷장 속에 넣었습니다. 무슨 소원을 들어달라는 요구보다 반지가 있다는 사실에 든든해하며 희망과 기쁨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힘든지도 모르고 전보다 열심히 일해 땅도 사고 논도 사고 소도 샀습니다. 나중에는 큰 집도 장만해 부자가 되었고 아들 삼 형제까지 두었습니다.
이런 동안 소원을 들어주는 반지보다 더 귀한 것이 희망과 사랑, 성실과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아들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평화롭게 숨졌습니다.
아들 삼 형제는 부모로부터 '금반지유언'을 듣고 금반지를 꺼내 소원을 두고 의논을 했습니다. 그 때 큰아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족함 없이 살고있다.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낼 것인가. 부모님은 소원을 풀지 않고 희망 속에서 행복하게 사셨는데 우리가 소원을 풀면 되겠느냐? 금반지 때문에 서로 갈라질 것이 아니라 금반지를 그냥 부모님 묘소에 묻어버리고 희망 속에 살자."
이 의견에 모두 찬성했습니다. 그래서 그 반지는 부모의 묘소에 묻혔습니다.
잔잔한 이야기인데 열매가 좋습니다. 금반지 하나를 소유하고, 그걸 열어버리는 대신 그곳에 소망의 불씨를 지피고 인생의 열매를 키울 수 있었던 젊은 부부와 그 자손들의 마음 씀씀이가 감동을 줍니다. 금반지는 이 가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성실한 실천은 가정을 살렸습니다. 금반지가 그 가정의 주제가 아니라 믿음으로 실천한 삶이 그 가정을 살렸습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행하라'고
오늘 성경(요8:47)을 묵상하신 분은 똑같은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2]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은 주초를 튼튼한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1.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좋은 열매를 맺는 건 하나님의 뜻입니다.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어느 집에 가면, 과일나무가 정원에 있습니다. 몇 개나 따먹을 수 있을까마는, 그걸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부요해집니다.
1]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땅에게 명하셨습니다.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
그대로 되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으셨습니다.
2] 열매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좋은 열매가 맺힐 때,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히스기야에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 하나님의 이런 소원을 담고 있습니다.(왕하19:30)
'유다 족 속의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가 서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이를 깨달은 베드로 사도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기를 당부하십니다.(벧후1:8)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눅13:6에는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어놓고 열매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었지만 열매가 없습니다.
'와서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3년째 헛탕을 친 주인은 화가 났습니다.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막11:20에 보면 뿌리부터 바짝 마른 무화과 나무를 보여주십니다. 잎사귀 외에 열매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저주를 받았던 것입니다. 나무로부터 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계십니다.
[점검] 내 인생의 나무에서 하나님은 어떤 과실을 얻고 있을까요?
3] 열매를 맺되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명한 포도원 노래를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
그런데 하나님의 안타까움은 무엇입니까?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사5:1-2)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사5:4)
극상품의 열매를 바라는 것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포도나무와 같은 과실수를 키워보신 분은 아십니다. 그 열린 과실이 들포도와 같이 쓰고 볼품이 없을 때, 얼마나 낙심이 됩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그렇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열매일 수 있습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11:30)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혜자를 열매맺을 수 있습니다.
자녀가 열매일 수 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127:3)
행위의 열매가 있습니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사3:10)
언어의 열매로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잠13:2)
우리 교회 홈페이지를 들어와 본 사람들은 교회 홈페이지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졌고 운영이 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만들어진 주소록은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더 좋은 주소록을 찾기 힘듭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에서 출판된 '새로 태어난 기쁨'이란 책자는 교회출칸물 중에 기념비적인 작품집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과일나무의 사명입니다.
어떤 열매든지 극상품의 좋은 열매를 맺는 일이 중요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2. '주여! 주여!'를 말한다고 열매가 맺히나요?
주님의 말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의 공통점은 모두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가지가지입니다.
길가에 뿌리웠든지, 돌짝밭에 뿌리웠든지, 가시떨기에 뿌리웠든지, 좋은 땅에 뿌리웠든지 말씀은 뿌려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여, 주여' 하면서 말씀을 들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열매가 다릅니다. 말씀을 받았다는 건 경주자가 출발 신호를 들은 것과 같습니다. 믿음의 경주는 달리는 일이 남았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롬10:13)하셨습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분을 주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르지 않으면서 그를 주여, 주여, 하고 부른다면, 주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Oh, My God!'이라는 말이 욕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빈번하게 주여, 주여,
하면서도 우리가 주인인 것처럼 마음대로 행한다면, "어이, 유대 왕이여"하여 모욕적으로 말했던 자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단지 그리스도를 조롱하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10:9)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입으로 '주여!' 부를 뿐만 아니라,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주권을 중심으로 인정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행21:13)
만약 우리가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 말씀을 주신 예수님을 '주여!' 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암으로 거의 죽어갈 때, 자기 몸을 냉동시켜 달라고 4,200달러를 내고 맡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하 200℃나 되는 온도에 냉동시켜서 강철 캡슐에 넣어 두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미물인 벌레의 모충도 겨우내 꽁꽁 얼었다가 봄이 오면 다시 사는데 왜 사람이 다시 살 수 없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년 200년 후에라도 암을 치료하는 약이 발명된 후에 다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자신을 맡기지 못하는 학자의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을 주(主)로 인정하지 않을 때, 이처럼 자신을 기만하게 됩니다.
주여 주여 말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 우리 인생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할 때,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까지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 인생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할 때, 그들에게는 영생의 결실이 보장됩니다.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2] 우리 인생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할 때, 시험과 박해를 이길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요동할 때, 그들은 주 안에서 확고부동하게 설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할
때, 재난을 당하여도 위로와 평화와 소망 그리고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3] 말씀을 실천할 때, 좋은 열매가 열립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요8:31)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의 일입니다.
'프레데릭스버그 대전투'에서 남북은 많은 부상자를 낸 체 서로 후퇴, 재 접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군의 한 병사가 물통을 들고 부상자에게 달려나갔습니다. 곧 북군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였으나 그는 멈추지 않고 달려가 부상자들에게 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북군의 장교가 사격중지 명령을 나리고 잠시 휴전을 제의, 부상자들을 치료하자고 했습니다.
휴전 때 장교는 남군의 용감한 병사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 이름은 크리스천이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인정할 수 있는 당당함이 주여, 주여 부르는 외침보다 중요합니다.
3. 주초를 반석 위에 놓아라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49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라 하십니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쌓았다가 다시 허물어지는 집은 지으나마나 입니다. 말씀만 듣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
니다. 모래성을 쌓는 신자들입니다.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를 모래성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이 심판의 날에 안전합니다. 어제 인도에서는지진이 나서 일만 오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아파트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의젓하게
서 있는 아파트들이 서 있습니다. 똑같은 지진이 흔들었는데 끄덕없이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고 그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화니 크로스비는 가장 위대한 찬송가 작사가로 생전에 2천여 곡의 찬송가 가사를 지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오 놀라운' '나의 갈 길' 등이 그의 대표작입니다.
1820년에 태어나 95세까지 산 그녀는 안타깝게도 생후 6개월 만에 두 눈을 실명, 평생 앞을 못보고 살았으나 남들이 못 보는 섭리의 세계를 보며 행복한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늘 만나는 사람에게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이라고 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녀는 노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인사로 은총을 받은 건 저였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 소경이 되었습니다. 무서운 인생의 지진이 그의 인생을 흔들었습니다. 어두움 속을 평생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그분 께 순
종하였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반석 위에서 그 인생을 세웠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보혈과 피로서 거듭니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7:24).
우리 교회 청년 가운데 김 원근이란 청년이 있습니다. 그가 지금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러 들어갔습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를 위해서 수술대에 누워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약주를 좋아하는 분입니다. 술 담배를 지나치게 과용하다가 간이 완전히 거덜났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얼마 있지 못하여 돌아가실 형편입니다. 병원해서는 건강하고 젊은 사람의 간을 이식해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그분에 가장 적합한 간은 아들의 간이랍니다. 그 말을 들은 원근이가 간을 떼어주러 한국에 갔습니다. 가서 병원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다시는 술담배를 하지 않고 믿음 생활을 하시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자신의 간을 내어놓았습니다.
부자지간이라지만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 이 말을 듣고 저는 많이 놀랬습니다.
원근이의 귀한 신앙의 모습을 보고 올랐습니다. 그는 이 세상 자녀들이 아무나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귀한 효도를 하고 있습니다. 박사 아들이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 그 아버지를 죽였다는 기사를 대하는 이 세상에서 방탕한 생활로 간이 거덜난 아버지를 위해 간을 떼어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잘 믿고 행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를 위해 많이 기도해주어야 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악으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를 위해 피를 쏟으시고 몸을 찢기신 사랑을 행함으로 보여준 흐뭇한 사건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들은 것을 행합시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마음에 소원만 가지고 있었을 뿐 그냥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행하지 않은 그에게 영생의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
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좇아 갔습니다. 그 걸음은 어려운 길이었지만 자손 대대로 복을 받는 길이 되었습니다.
그는 모리아산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때도 아브라함은 순종하였습니다. 그로인하여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큰복을 받고 자손의 번성함을 얻고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잘듣고 잘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짓세.
톨스토이는 <세 개의 의문>이란 글에서 인생론과 행복론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②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③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톨스토이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①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시간은 현재다.
② 이 세상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③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주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설교를 엔조이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졸하기 위해 듣습니까?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904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7세는 구세군을 창설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복지 혜택을 준 윌리엄 부드를 왕실로 초청, 격려했습니다.
왕은 격려 끝에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세군 대장' 윌리엄 부드는 겸손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국왕 폐하, 제가 바라는 것은 한 명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저의 희망이요, 야망입니다. 그리고 최대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행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은 어떤 말씀을 가슴이 울리도록 들어오셨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니 사랑과 용서를 실천해 봅시다. 그런 인생이 좋은 과일을 맺는 나무요, 주초를 반석 위에 세운 집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49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