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February 2015

눅7:1-10 이만한 믿음

사람에게는 저마다 풀리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든, 가정적으로든, 교회적으로든
어느 부분이 마비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풀고 싶지만 잘 풀리지 않습니다.
중풍병으로 몸져 누운 사람의 한 부분이 마비된 것처럼.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런 마비된 기능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합니다.


6장에서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 예수님 천국복음에 대한 실례로 백부장의 믿음을 들려 주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차원 높은 사랑을 믿음으로 실천합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주님을 감동시킨 백부장 믿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 종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본래 백부장이란 백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장교입니다. 지휘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군대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이 백부장의 지위에 선택되었습니다. 성실성과 지도력을 겸비한 빼어난 중견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로마 군인에게 누가 보이겠습니까? 출세할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입니다. 자신의 입신양명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이 보일 것입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길이 그 앞에는 어른거렸을 것입
니다. 그런데 오늘 이상한 기사가 등장합니다.

0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0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 하시기를 청한지라

그에게 종이 보인 것입니다. 누가는 '둘로스'('종')라고 적고 있지만, 7절에서는(마태복음도) '아들'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파이스'('하인')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8:6). 그는 자기의 종이 아들 같이 보입니다.
진정한 애정의 대상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신분적으로 볼 때는 분명 종이었는데, 아들처럼 사랑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고 주인의 뜻에 전적으로 맡기는 종이지만, 그는 유대 사회의 지도층에 속한 장로를 손수 찾아가 예수께 부탁을 올리며 간구합니다.

0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 하시기를 청한지라

백부장의 종에 대한 강한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의 종에 대한 사랑은 특별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축복하십니다.

다윗은 한때, 사울의 집중적인 추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급한 그는 블레셋 땅으로 피합니다. 망명자가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도 다윗은 블레셋 장관들의 질시를 받고 블레셋 군대에서 쫓겨납니다. 일터를 잃었습니다.
업친데 겹친 격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 와서 시글락을 침노하여 다윗과 그 일행의 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잡아갔습니다. 가족까지  잃어버렸습니다.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정신을 차린 다윗의 추종자들은 돌을 들어 다윗을 치려합니다. 동료들로부터도 아픔을 겪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가다듬고 아말렉을 추격하러 나섭니다. 600명 중 200명은 더 이상 따를 힘이 없어 중도에 머물고 400명이 다윗과 함께 가족을 탈취하러  떠납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말입니다.
그 경황 중에 병들어 버림받고 사흘 밤낮을 주린 채 죽어가는 종(소년) 하나를 만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작은 자, 걸레같이 쓰다가 병이 드니까 버림을 받은 애굽인 종이었습니다. 나 먹고 살 경황조차 없는데,
그런데, 다윗의 눈에 종이 들어왔습니다. 그를 데려다가 자기들도 아끼는 그 귀한 떡과 물, 무화과와 건포도를 줍니다.(삼상30)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다윗 가족을 구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구원 열쇠를 그 종 안에 숨겨두셨던 것입니다. 여기 소외된 자 안에 감추인 또 다른 예화가 있어 소개합니다.

가구공장인 인천 동구 송림동 송목기업 불황을 타기는 마찬가지지만 작업장 분위기는 여느 공장과 사뭇 다르다. 일감이 줄어 어렵기는해도 대부분이 청각장애인들인 근로자들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다. 가구공장인 인천 동구 송림동 송목기업 불황을 타기는 마찬가지지만 작업장 분위기는 여느 공장과 사뭇 다르다. 일감이 줄어 어렵기는해도 대부분이 청각장애인들인 근로자들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다.
선천성 청각장애인인 정희강(정희강.39)사장이 힘든 결단을 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성탄절 하루전인 24일 [종업원들에게 마당을 쓸게 하더라도 공장문은 닫지 않겠습니다]고 밝혔다. 회사가 부도난 것을 알고 사장의 중대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20여명의 근로자들 앞에 선 정씨는 수화로 뜻밖의 발표를 한 것이다.
열일곱살때부터 정씨에게서 목공일을 배우고 있는 청각장애인 이송식(이송식.21)씨는 [지금까지 사장님을 믿고 따랐었는데 이번에도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셨다]며 수화로 말을 한뒤 정씨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근로자 모두가 눈시울을 붉히며 [힘을 합쳐 다시 일어서자]고 다짐했다.
정씨는 10월 바로크가구의 부도로 연쇄적으로 돌아온 1억여원의 어음을 막지 못하고 한번도 연체한 일이 없는 근로자들의 임금을 20일이나 늦게 지급해야 했다. 원자재 값은 날로 오르고 하청주문은 줄어 공장문을 열어놓는 것 자체가 손해였다. 24일 아침까지도 그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굳혔었다.
그러나 결단을 내리려 하니 믿고 따르는 청각장애인 19명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94년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고락을 함께 하면서 1백만원 내외의 월급으로 어렵사리 가정을 꾸려가는 이들이 실업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역시 초등학교 졸업이후 20년 넘게 경기 광주군, 인천 등지의 가구공장을 전전하며 [나무밥]을 먹어 장애인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공장문을 계속 열기로한 것은 장애인의 성실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구장식물조각 분야에서 [신의 손]으로 불리는 정씨는 그래서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고용해 가구공장을 시작했다. 장애인으로 장애인 사랑이 지극한 그는 사장신분에도 대패와 드릴을 놓지 않고 근로자들과 손을 맞춰 일하고 있다.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쓰러져 근로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판에 장애인 종업원들에게 후한 세밑선물을 한 정씨는 [훌륭한 장인(장인)들이 한마음으로 일하는 한 반드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인천=김정곤기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종처럼 소외당하고, 버림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까? 그들을 향해 눈을 크게 뜨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비밀 열쇠를 그곳에 숨겨두고 계십니다. 우리 한샘이를 주목하십시오. 장애인이 되신 정 장로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 안에 여러분 믿음의 열쇠가 있습니다.

둘째, 적대하는 유대를 사랑한 믿음입니다.

04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05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1]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를 적대시했습니다. 로마군관들도 유대인을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덩어리인 팔레스타인 지역을 성공적으로 다스려서 유능한 지휘관이라는 이름만 따내면 되었습니다. 재
물을 모으는 도구였습니다. 탈취의 대상이었습니다. 출세하는 디딤돌 정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로마 군관들은 교만하였고 백성을 압제하여 재물을 탈취했습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적대적인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많은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대부분의 로마인들이 멸시했던 유대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첫 선교사는 로버트 모리슨. 그는 1807년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리못했으나 믿음으로 출발했던 것처럼' 중국 광동을 향해 떠났다.
그는 사명받은 사람의 앞날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굳게 믿었다.
그가 중국에 가는 배를 탔을 때 선장이 '초라해 보이는 이 선교사'를 보고 "당신이 정말 거대한 중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모리슨은 대답했다.
"아닙니다. 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백부장은 적대하는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목사 요시다 목사님가 바로 이런 분입니다.
서울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오리지널 일본인 목사 요시다(59). 성수동에 있는 서울일본인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제가 오기 전에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강태국 박사님이 일본어를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강박사님은 원수와 같은 나라 사람까지도 복음으로써 사랑하신 위대한 분이었습니다.
강태국 목사는 신사참배 했다는 이유로 투옥 당하고 온갖 고초를 치렀지만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그들까지 감싸 안았다. 그래서 그분을 존경한다.
서울일본인교회라는 간판이 특이하다. 75년에 세워진 교회. 일제시대에 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로 엮어진 부부가 많았다.
해방후 한국인 남편이 사망하고 일본인 아내만 남은 가정이 많았다. 그런 일본인 부인들을 위해서 이교회가 만들어졌다.
“설교보다도 일제시대에 일본이 한국에 저질렀던 모든 만행에 대해서 기독교인의 한사람으로써 사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그것이 한국에 가려고 했던 가장 근본적인 동기였습니다”
3.1운동 학살사건이 있었던 ‘제암교회’에 가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인의 만행을 한국에 사죄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 문제로 심각하게 기도하고 있는중에 모리야마 목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바로 기회는 이때다’라고 생각했다. 81년 9월. 요시다 목사 가족 4명이 현해탄을 건너 이곳 서울일본인교회로 왔다.
일본정부가 아직까지 역사에 대해서 인정도 보상도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그는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몇번이나 문서를 만들어 일본정부, 외무성, 신문사, 방송국 등에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인인 그가 과거의 만행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보상해 줄 것을 촉구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몇차례나 일본문서로 만들어 보내면서 모국인 일본을 상대로 만행인정과 보상을 계속 촉구했다.
일본 정부가 하지 않는 것을 한다. 한국교회 순교자 유족회,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에 매달 헌금을 보내고 있다. 그밖에 관변단체에 헌금을 보낸다. 일본정부는 아직도 인정도 보상도 하지 않지만 서울일본인교회는 신앙적 양심으로써 이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일본에서 많은 방문단이 그를 찾아온다. 그때마다 그는 일본인 방문단을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 현장으로 안내 해준다. 판문점, 제암교회, 독립기념관, 경복궁, 서대문 형무소 등으로 반드시 데려가서 과거의 역사를 자기 눈으로 보고 이해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안내하고 있다. 목회 활동을 할뿐만 아니라 잘못된 역사의 비극 현장을 그가 자청해서 안내 해주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일본의 니가타현에 있는 기독교계 고등학생들이 매년 20~30명씩 인솔교사의 지도아래 서울을 방문한다. 방문할 때마다 요시다 목사가 체류일정 8일의 스케줄을 만들어서 직접 역사의 현장까지 안내한다. 역사의 현장을 둘러본 그들은 대단한 충격과 감동을 받고 돌아간다. 한국을 방문한 학생들은 일본에 돌아가서 매년 감상문집을 만들어 요시다 목사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미디어칸 김명수기자/mskim@kyunghyang.com>

2] 회당을 짓는데 있어서 그가 완전히 그 자신의 재산으로 지었습니다.

백부장은 유대인들의 예배에 대해 호의를 가진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을 위하여 가버나움에 새로운 회당을 지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경건한 예배를 드릴 집회소를 짓는 것은
매우 선한 사업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아는 유대인들은 백부장을  배로 존경하였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장로들 또한 백부장에게 매우 호의적(好意的)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장로들은 자기들을 위해
헌신하는 백부장을 위해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몇번이고 예수께 간절히 간청하였습니다.  장로들의 간구는 단순히 한 두 번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계속 간구하였습니다.
유대 민족을 사랑하는 이방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유대민족과 그들의 종교를 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미국의 실업가이며 자동차 왕인 헨리 포드(1863∼1947)는 고난을 딛고 미래를 개척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부호였으나 검소했다. 그리고 검소한 생활을 통해 나누어주는 삶을 실천했다. 그의 집 벽난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자기 자신의 장작을 쪼개라. 그리하면 이중으로 따뜻해진다」

백부장은 자기에 대해 적대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것을 쪼갰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만한 믿음이라고 칭찬하신 까닭은 종을 보는 눈과 적대적인 자들을 향한 사랑에 있습니다. 소중한 것을 쪼개주는 사랑이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사랑한 믿음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즉,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요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명령에 모두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전존재를 걸고서 주님을 사랑했고 신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이들이 돌아오도록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았습니
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4:6-11).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회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1] 백부장의 귀한 점은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있었던 일  소년이 불길을 피해 2층 집 지붕 위로 올라갔다. 밖으로 급히 피신한 아버지는 "얘야, 뛰어 내려. 내가 받을게"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기가 치솟았기 때문에 소년은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아빠를 볼 수 없어요 "
소년은 울먹이며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렇지만 얘야. 난 너를 볼 수 있단다. 중요한 건 바로 이 사실이야"라고 소리쳤다. 결국 소년은 '연기 속'에서 뛰어내렸고 살아났다.
믿음은 현실을 보지 않고 전능자에게 의탁하는 것이다.

백부장은 주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했습니다. 이방인이었는데도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습니다(7절)'.
  백부장은 자신의 존재를 주님 앞에서 바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를 볼 때, 그는 황제의 권세 이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시자
백부장은 벗들을 보내 기이한 말로써 그를 영접하였습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나는 그러한 영광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말은 그가 100명을 자기 수하에 거느린 권세가의 신분자임에 반하여 그리스도는 천하를 다스리는 왕 중 왕으로 보았음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을 높이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
문에 그 위대하신 분이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치 못한다는 그의 겸손한 신앙심을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황제가 그의 집을 찾아 온다면 그는 그런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놀라운 신적 권능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뢰가 믿음의 고백으로 표현됩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 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0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그는 자기 직업에서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임으로써 자신의 이러한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가 자신의 군병들에게 명령할 수도 있으며 심부름을 보낼 수도 있듯이 그리스도도 이와 같이 질병을 물러가라고 쉽사
리 명령하실 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8절).
그러므로 백부장은 '나는 주의 방문을 감당치 못하겠읍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2] 예수님 말씀에 대한 신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08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하나님의 약속인 말씀만 하시면 하인이 나을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백부장이 곤궁한 처지에 로마 황제가 백부장을 도우러 직접 찾아온다고 합시다. 백부장은 황제께 아뢸 것입니다.
`황제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 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말씀만 하사 나를 도와 주소서'

말씀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이 백부장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 말씀으로써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셨고(11-16절)
풍랑을 잔잔케도 하셨습니다(8:22-25). 백부장이 예수께서 말씀으로만 그 종을 치료하시리라
고 생각하게 된 뚜렷한 이유를 말합니다. 자신은 남의 수하(underauthority, NIV)에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상관이 명령만 하면 자신이 직접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권위인 것입니다.

빅톨 위고의 유명한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죄를 범해 감옥에도 여러 번 갔다 왔으나 마음은 변화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날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고 어느 교회의 성직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집의 은촛대를 보고는 그의 결심이 깨졌습니다. 그는 그 은촛대를 훔쳐 가지고 나
왔습니다. 몰래 도망하려다 경찰한테 붙잡혀 그 성직자 앞에 끌려 왔을 때 성직자는 말하기를 '저쪽 것도 주었는데 어찌 하나만 가져 갔는고' 라고 하여 장발장은 마음에 큰 감동을 받고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성직자의 말씀 한마디가 20년 동안 교도소에서 치료하지 못한 쟝발장의 옛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신적권위를 가진 예수님의 말씀을 그는 믿었습니다. 신적 권세를 가진 예수께서 못하실 일이 없으리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맺 는 말

예수님께서 기이히 여기시는 일이 있습니다. - 예수께서 이상히 여기신 것은 두 번입니다. 고향에서 사람들이 믿음이 없으므로 아무 것도 행하실 수 없어 기이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 속에서 기이함을 발견하십니다. 그가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능가하는 위대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민들조차 갖지 못한 귀한 믿음
을 이방인 백부장이 지녔습니다
(1) 종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2) 적대시하는 유대인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3) 예수의 신적인 권위와 예수의 말씀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적대시하는 민족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말씀을 사랑할 때, 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냄을 받았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종이 이미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며, 내 자신의 가정을 돌아보며, 우리 교회를 보면서 아직 병들어 있는 부분을 보십니까? 중풍병이 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계십니까?
  믿음의 바른 열쇠를 찾으십시요.
소외된 자를 사랑하는 믿음의 열쇠!
나를 적대시하는 대상을 위해 중요한 것을 쪼개주는 사랑의 열쇠!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하는 믿음의 열쇠를 찾아 잠긴 부분을 여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참된 회복이 있습니다. 천국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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