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농의 샘'이란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도시에서 세무 공무원으로 지내던 쟝 까도레 라는 사람이 아내와 딸을 데리고 아름다운 시골로 내려옵니다. 그는 순수를 키우기 원하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의 꿈은 소박합니다. 그 어머니가 유산으로 준 집과 산간의 비옥한 땅에서 토끼를 키우고, 옥수수와 감자, 채소, 포도나무를 재배하면서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그는 3년간 엄청난 수고를 하면서 자연에 도전하여 그 꿈을 이루려 힘을 씁니다. 그러나 그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담한 패배를 맛봅니다. 유산도 있었습니다. 땅도 비옥합니다. 땀과 피나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자기 아내도 헌신적으로 이해하고 돕습니다. 그는 연구도 깊이 하는 머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참담한 실패를 했습니까? 그가 임종을 얼마 앞둔 시점에 남긴 말이 그 좋은 답이 됩니다.
"내 자신이 영리한 줄 알았지만 난 본질을 몰랐어요. 바로 물을!"
"물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되오."
"내가 할 일은 오직 한 가지. 몸이 회복되는 대로 즉시 우물을 파는 거요."
그러나 그는 이미 늦었습니다. 물을 파다가 다이너마이트 사고로 죽고 맙니다.
그가 물부터 확보하고 시작했다면, 그의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의 땅에는 이미 그를 충족시킬만한 마농의 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생수의 물을 찾을 수 있는 지도를 가지고 산골을 찾아 왔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생에서 실패하게 된 까닭은 솟아오르는 샘과 물줄기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샘과 물줄기를.확보하지 않은 채 일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물을 확보하는 것보다 꿈을 이루는 일을 앞세운 것입니다. 물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오히려 그의 정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물줄기의 중요성을 알고, 그가 그 물줄기를 발견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우리 인생도 그렇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영혼의 샘물을 확보하지 않은 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루려고 몸부림칩니다. 몸부림치다 인생을 다 보냅니다. 황혼기에야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자기 인생을 반추하면서 실패한 인생을 후회합니다. 때는 이미 늦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결정적인 실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2:13)
그러므로 선지자는 이렇게 회개합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렘17:13)
그러나 우리는 지난 주일 복된 여인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환경이 열악했습니다. 그러나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내게도 이런 물을 주소서!' 그녀는 먼저 우물을 확보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1. 죄 사함을 받아들임으로 표현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50)
많은 사람들이 죄사함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신 말씀(엡2:15-19)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眷屬)이라
어떻게 평안히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 주님의 죄사함을 중심에 받아들일 때 평안합니다. 구원은 자신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값진 옥합을 깨뜨려 바친 일로 죄사함 받은 게 아닙니다. 그녀가 구원을 받고 주님을 사랑하게 된 일이 주님의 공
로로 이루어졌습니다. 천주교인들이나 이방 종교인들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의 공로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았기에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주님께서 먼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은 은혜가 컸기에 그녀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까닭은 예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이 먼저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평안할 수 있지요.
내 죄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이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 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를 씻었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리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210장)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눈보다 더 정하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470장 3절)
이 평안은 은혜로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마음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지난주에는 이산 가족들이 3차로 만났습니다. 우리가 가진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지만 그만이라도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 가운데 평양 발 성 경희 씨 기사가 크게 다루어졌습니다. KAL기가 납치되었을 때, 평양에 남아야 했던 여 승무원이었습니다. 성 경희씨 어머니는 북한에서 대학교수의 부인으로 사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잘 사는 모습 봤으니 걱정 안 할거다”
그때 딸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 있으면 장군님이 내 미래, 운명, 그리고 가족을 모두 책임져 줄 수 있기에 내가 원해서 이곳에 남은거야. 내가 남에 갔으면 엄마가 내 운명 책임지지 못했을 거잖아. 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 엄마”
“네가 말 안해도 다 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알 것 다 알지요. 경희씨 어머니는 딸이 구차히 설명하지 않아도 그 땅에 남은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장군이 책임질 수 있었다면 300만이 굶어 죽습니까? 평안을 줄 수 없는 말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념)이 줄 수 없는 평안을 구원받은 사람은 얻을 수 있습니다.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중국 내지의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 박사는 믿음으로 중국 내지로 들어갔습니다. 점점 일이 많아지면서 사람과 돈이 필요했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테일러 박사는 무거운 정신적인 부담으로 인해 밤잠을 못 자면서까지 고민하다
가 마침내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요한복음 15장에 있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는 구절이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태양 빛이 비치는 것처럼 그의 마음은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그 가지인데 내가 걱정할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은 나무이므로 가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가지인 내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다니 어리석었구나. 주님, 이 시간부터는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겠사오니 책임져 주옵소서.”
테일러 박사는 그 자리에서 꿇어 엎드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어리석음을 시인하고 회개하며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는 그 이후부터는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고 성공적인 내지 선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내 문제를 내 힘만으로 해결해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이 죄입니다. 그가 이 죄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 놓았을 때, 죄 용서로 인한 평안함이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주님 앞에서 내려놓아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주님 앞에 내려놓고 용서함 받은 후 평안히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2. 하나님나라 일에 동참합니다.
주님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죄의 결과로 인해 파괴된 인간을 회복하십니다. 이 일은 예수님으로 인해 현재에 실현되기 시작했으며 장차 완성될 것입니다.
열 두 제자는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 사역에 동참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선포와 복음 사역을 수행하실 때, 주님과 함께 서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자가 용서를 받는 일에 동참합니다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함을 얻는 일에 동참합니다.
그들은 원래 다 유대 사회에서 하층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유 있는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천국 복음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고전 1:27)셨습니다.
주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때에 그들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천국 복음 전파에 동참하기 시작한 때부터 하나님은 이들을 위대한 삶으로 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는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는 말씀대로입니다.
추운 겨울밤 넓고 큰그릇에 고슴도치 떼를 담아 밖에 내어놓았다. 영하 20도 혹한 속에 찬바람이 불어오자 부들부들 떨던 고슴도치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몰려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따뜻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마다의 침이 상대방을 찌르자 아파 오기 시작한다. 피를 흘린다. 고슴도치들은 아파서 흩어지기 시작한다. 흩어지면 춥다. 추워서 부들부들 떨다가 견딜 수 없어 다시 몰려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고... 날이 밝아왔다. 아침에 나가 보았더니 다 죽어 있었다. 절반은 얼어서 죽었고 절반은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것이다.
믿음의 공동체는 고슴도치와 같이 서로에게 열을 받기 위해 모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나라의 열을 받아 공급해주는 공동체입니다.
리빙스턴은 이런 주님의 복음 사역에 동참한 산 증인입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헌신하고 있었을 때 영국에 있던 동료들이 도울 것을 숙의하고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자네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 몇 명을 현지에 보내려고 한다네.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어떤 길이 좋은가.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 주게."
리빙스턴은 이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이곳까지 오는데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의미 없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을 원한다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3. 봉사로 표현됩니다.
저희 집사람은 손에 일이 익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외아들을 위해 일하는 걸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엄마가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봉사합니다.
봉사는 사랑하는 사람에 의하여 가능합니다.
며칠 전, 독일에 있는 형제가 기쁜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그 형제 가정에 오래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답니다.
그는 참 바쁜 사람인데 지난 번 독일 집회에 갔을 때, 5박 6일 모든 집회를 참석하고, 제가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준비했습니다. 김성일 선교사님이 계신 터-키에 방문도 그 형제의 헌신으로 가능했던, 바로 그 형제입니다. 이번 윤기향 전도사가 코스테 집회에 참석하는 일에도 가장 먼저 공항에 달려 나왔습니다.
그는 이번 헌신과 봉사를 통해서 살아 계신 주님을 체험하였다고 기쁨으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셔서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들린 여인이었습니다. '막달라'는 갈릴리 바다의 서해안 가버나움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성읍입니다. 이 마리아는 과거에 일곱 귀신에 들려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일곱 귀신은 최악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 여인에게 임한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이렇게 큰 고통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 사랑을 입었으므로 그녀는 예수님을 위해 전적인 헌신을 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할 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마 27:55,56;막 15:40;요 19:25). 예수님께서 장
사되는 현장에도 있었습니다.(마 27:61;막 15:47;눅 23:55) 주일날(안식 후 첫날)이른 아침에 예수의 시신에 기름을 바르려고 무덤을 찾았습니다.(마 28:1;막 16:1;눅 24:10). 거기서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도 바로 그녀였습니다(막 16:9;요 20:1-18).
그녀는 자기의 `소유'로 예수님 일행을 섬겼습니다(마 27:56, 눅 8:1- 3).
아름다운 봉사는 하나님께서 보답하십니다. 그녀는 무덤에서 주님의 시체라도 뵙고 향유를 바르고 싶었지만 주님께서는 부활의 주님으로 나타나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봉사는 자주 살아 계신 주님을 체험하게 해 줍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24:10에서 예수의 부활 사실을 두 천사로부터 통고 받은 인물입니다. 본 절에서 그녀는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라는 사람의 아내로 소개됩니다. 헤롯(갈릴리를
지배하던 헤롯 안티파스)의 재산을 관리하는 재정 담당관으로 보입니다. '요안나'는 매우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과 더불어 자기 소유로 예수님과 그의 12제자를 섬겼습니다(눅 8:3).
그리고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과 같이 열한 사도와 다른 사람들에게 보고했습니다(눅 24:9, 10).
어느 날 랍비가 "진리는 길에 있는 돌멩이처럼 널려 있다."라고 말했다. 며칠이 지난 뒤 제자가 랍비에게 "선생님, 진리는 돌멩이처럼 널려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 왜 사람들은 흔한 진리를 터득하지 못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랍비가 대답했다. "진리는 돌멩이처럼 널려 있지. 그러나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지 않기 때문에 그 돌을 주울 수 없는 거라네."
우리가 조금만 마음의 눈을 떠서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주위에 얼마든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은혜와 진리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허리를 굽혀 낮아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요안나는 부요했지만,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란 찬송이 생각나는 사람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는 세상적 측면에서 볼 때, 무척 대조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는 섬기는 일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낮은 계층의 여성과 요안나와 같은 부유한 계층의 여성도 사용하십니다.
수산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입니다.
이분들은 귀신의 권세, 명예의 권세, 병마의 권세 속에서 평생 종노릇하며 살아야 할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죄사함을 받았을 때, 섬기는 대상이 달라집니다. 재산을 가진 여인들은 가진 재산으로 복음 사역하는 분들을 공궤함으로 복음 사역에 동참합니다. 주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실 때, 그들은 그들의 소유를 가지고 예수님을 후원했습니다(Barclay). 그들은 재물로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있는 곳에 재물을 투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헌신과 충
성을 끝가지 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 예수님의 대리석 조상이 있었습니다.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폭탄이 그 마을 가까이에 떨어져 그 조상이 그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적군이 물러가자 마을사람들은 그들이 아끼던 그 조상의 조각들을 찾아서 다시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나 베르니니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 조상은 마을 사람들의 삶의 일부였고 그들은 무척 아꼈습니다. 다시 붙여 만든 상처투성이의 몸체는 여전히 아름다왔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조상의 양손을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손이 없는 그리스도는 더 이상 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다 누군가가 그렇게 한탄했습니다. 상처투성이의 손이라도 괜찮다. 하지만 손이 없어서야 어떻게 주님이라고 하겠는가? 결국 새로 조상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그때 어떤 사람이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조각품의 받침대에 나에겐 손이 없지만 당신들에게는 손이 있도다. 라고 쓰여진 놋쇠 판을 붙인 것이었습니다. 수년 후에 놋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짧은 시가 붙여져 있다.
내겐 손이 없으나 오늘 내 일을 행할 너희의 손이 있다.
내겐 발이 없으나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할 발이 있다.
내겐 입이 없으나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말해줄 너희의 입이 있다.
맺 음 말
프랑스의 한 병사가 전투 중에 가슴에 유탄이 박혀 급히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집도하던 의사가 “조금만 더 깊이 박혔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라고 하자 병사는 이렇게 대답했다.“아니오, 내 가슴을 조금만 더 깊이 파보시면 내 심장 중심에 내 조국 프랑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이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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