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정원을 둘러보던 스펄젼 목사님이 그 집 주인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저 풍향계 귀퉁이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나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구요.”
“하나님의 사랑이 바람개비처럼 왔다갔다 한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바람 부는 곳은 어디든지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1. 큰 무리가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새교회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조사해 보니 노트북을 가져갔습니다. 깨지고 배터리도 다 나간 것인데 그것을 가져갔습니다. 그 도둑도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와같이 세상에는 어디에나 주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악한 수단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나치는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피에 굶주린 나치 가운데도 이런 굶주림을 거부한 플라게 소령은 수백 명 유태인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는 1956년에 쓴 편지에서 “나는 어디서부터 죄가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경계를 인식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독일 국민의 한사람으로 죄책감을 느낀다. 이 재앙에서 피신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고 적고있습니다.
나치 치하의 유태인뿐만이 아닙니다. 죄아래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끊임없는 주림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식주란 욕망으로 굶주리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굶주리고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에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생의 자랑에 굶주리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만 굶주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 곁에 있던 큰 무리가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무리는 하루도 아닌 사흘이나 예수님과 함께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도 굶주렸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도 이 세상에서는 굶주림이 있습니다.
때로 그것은 양식이 핍절한 경우일 수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성도들이 좋은 신앙을 가졌을지라도 굶주릴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육신적인 굶주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굶주림도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로 채워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주림이 있습니다.
사랑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산 사람들의 경우에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사랑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산 사람들의 경우에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믿음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소망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내가 없는 경우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인내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오래참음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희락(기쁨)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온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온유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절제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충성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양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양선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에 대한 기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기갈로 인하여 영혼이 파리하여 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7:37-38)
그 목마름은 생수에 대한 목마름이지만, 성도들 누구에게나 유월절 명절이 힘있게 진행되었던 주간일지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온유함이 별로 없어서 굶주릴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음이 없어서 굶주릴 수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때문에 굶주릴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이 굶주린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1 그 즈음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큰 무리가 있었지만 주님께서 보시기에 불쌍하였습니다.
멀리서 온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단지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예수님을 따라 이곳까지 왔고,
예수님과 함께 사흘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이 없어 기진하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주리고 사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도 굶주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 이상으로 가져야 할 중요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주님께서 주님을 따르면서도 주리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예화]
어떤 가정에 식량이 다 떨어졌습니다.
어머니가 식량을 담아둔 밀가루 독을 몇번이고 긁고 있습니다.
아들이 그 소릴 듣고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어머니 곧 양식이 도착할 거예요."
"?"
"하나님께서 어머니가 밀가루 독을 긁는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주님을 모시고도 굶고 있는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님께서는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불쌍히 여기십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이 주님을 모시고 살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때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시고 그냥 버려두지 않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우리가 여러가지 이유로 결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부족함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인격의 부족함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부족함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결손에 대하여 비난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손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이를 아는 세리는 외쳤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눅18:13)
수로보니게 여인이 외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딸이 휼악히 귀신에 들렸나이다”
바디메오가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주 안에서 거듭난 우리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체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주변의 사람들의 버려진 상황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3. 예수님께서는 축사, 축복하시고 채워주셨습니다.
` 먼저 떡 일곱개를 가지사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그 앞에 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작은 생선 두 마리가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시고 명하사 그것도 사람들 앞에 놓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가진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를 소중히 보시고 그것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축복하셔서 나누어주시는 분이십니다.
7병 2어, 그것은 4천명에 비하면 참 보잘 것 없는 양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양이기 때문에 더욱 귀히 여기시고 축사하셨습니다.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때로 하찮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더우기 이 엄청난 필요를 생각할 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나의 상황과 세상의 필요를 생각할 때 하찮다는 비교의식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것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 작고 하찮은 것을 축복하시길 원하십니다.
나는 너무 오래 참음이 너무 작다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온유함이 너무 작다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서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작고 하찮은 온유와 오래 참음을 있음을 감사하면서 주님께 올려드릴 때 주님께서 축사하시고 축복하심을 믿습니다.
4천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만큼 축복하십니다.
내가 가진 것이 작다고 절망하지 마시고 그것의 소중함을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바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축복받으시기 바랍니다.
4천명을 먹일 수 있을 만큼 넘치게 축복받으시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Next Korea란 주간지에서 지난 일년간 저의 시집 '내가 이렇게 행복한 이유'를 연재하였는데요. 지난주 연재된 시를 보니까 이런 시가 실려 있습니다.
그 시가 쓰여진 것은 우리 선교관이나 성전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던 때의 일입니다.
그 주 내용은 바로 어떤 권사님 한분이 건축헌금으로 오병이어를 드린 사건을 계기로 적어 둔 것입니다.
또 다른 시작
크고 비밀한 일을 기대하던 나에게
가난한 할머니가 손에 쥐어 주시는 작은 물질
성전 건축 헌금!
백 수십 만 불을 손에 쥐고도 망서리고만 있는 교회가 있는데
맨손과 다를 바 없는 우리에게
이 작은 헌금은 무얼까?
가슴을 두드린다.
헌금을 많이 한 부자도 있고
넘치게 바치는 재물이 있지만
오병이어가 어린아이 가진 전부였던 것처럼
두렙돈은 그 여인의 생활비 전부
사렙다 과부가 가진 양식의 전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은 바나바의 재물 전부
값진 향유가 마리아의 전 재산이었던 것처럼
사무엘이 한나의 전부였던 것처럼
이삭이 아브라함의 전부
그렇다
구차한 중에서 자기 생활비 전부를 쥐어 준
할머니의 작은 헌금은
새로운 시작
자기 힘만으로 살던
우리 인생은 막을 내리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일구어 가시는
성전의 시작
그러나 그런 소중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축사하셔서 이번 성전과 선교관을 이루어 가신다고 저는 믿는 사람입니다.
요즈음도 어떤 분들이 건축헌금을 하시는 것을 보는데요.
감동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어떤 분이 건축헌금을 하였는데요. 저는 그분이 얼마나 극한 가난 가운데서 계신 줄을 잘 알거든요. 세상 사람들은 그만한 액수를 모아서 언제 교회 예산을 다 채울 수 있겠느냐고 한숨을 쉬실 지 모르지만, 저는 이 헌금이 결국 교회를 온전히 수리하는 7병2어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 헌금은 제가 알기로 그분이 가진 재산의 거의 전부입니다.
그분의 7병2어예요.
그런 그 중심을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축사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은 넉넉한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운 성전 건축의 예산을 보면서 상당히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 가운데 몇 분이 7병2어를 바쳤어도 이만큼 놀라운 진전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오늘처럼 7병2어를 올려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계속 그 위에 축사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낄 때도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7병2어를 축사하시고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워너메이커 장로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의 축복의 손을 평생 붙들고 사셨습니다.
7 가지 워너매이커의 성공습관을 보면, 하나님의 축복하는 손을 의지한 습관입니다.
1. 새벽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렸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계획을 세웠고 30분 먼저 출근하였습니다. 그의 백화점에는 그의 예배 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2. 긍정적인 삶을 하나님의 축복하는 손에 맡겼습니다. 희망을 노래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누구를 탓하거나 환경에 대한 비관하는 말은 없었습니다. 불평이나 남을 비판하는 부정적인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3. 절약하고 저축하는 습관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4. 독서하는 습관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드렸습니다. 2년 밖에 공부하지 못하였지만 해박한 지식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광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15살 때부터 2시간 이상 독서를 했습니다.
“20분씩 1년만 꾸준히 책을 읽어도 일년이면 20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네.”
5. 기도하는 시간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드렸습니다. 백화점에 기도실을 만들어 놓고 출근하면 제일 먼저 기도실에 들어갔습니다.
6. 메모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드렸습니다
7. 칭찬하고 격려하는 습관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드렸습니다 자네는 회사의 보배야
자네 미소는 백만 달러짜리야
자네 아이디어가 우리 회사를 살렸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순수한 헌신을 기뻐하실 거예요.
너는 참 남을 잘 배려하고 존중하는구나
그는 마지막 유언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서 노력하고
하나님 안에서 땀 흘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내 인생의 표어였다.”
축사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위에 7병2어를 올려드릴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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