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는 '치료받을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정치적 고통으로, 경제적 고통으로, 신
체적 고통으로, 가정적 고통으로, 우리는 절망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육신적으로 '치료받을 수 없는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환영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치료받을 수 없는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환영했습니다.
가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없는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환영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치료받을 수 없는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환영했습니다.
이는 종려 주일에 예루살렘에 주님을 맞는 군중들의 환영하는 심정과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치료받을 수 없어 고통하다 예수님을 만나 치료받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
게 병 치료 이상의 구원과 평안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1. 불치병으로 인해 평안을 잃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 그녀는 종교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평안이 없었습니다.
혈루증은 유대 사회에서 부정한 질병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입은 옷, 누운 자리, 앉았던 자리가 부정
했습니다. 그 병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하면 안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지기만 하여도 만짐을 당
한 사람까지 부정하게 되는 병이었습니다 (참조, 레 15:19-30). 그리하여 이 여인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는 딱한 여인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부정한'(참조, 레 15:19)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가정과 사
회, 그리고 종교에서까지 버림을 받았습니다(Hendriksen). 병 자체로도 힘들었지만, 부정하게 보는 시각이 또한
아픔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녀의 아픔은 치료할 수 없다는 절망 때문에 더욱 극대화되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고침을 받을
수 없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고칠 것을 기대하고 많은 재물을 희생하
였지만,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막5:26)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고칠 수 있다는 소망은 점차 사라져갔습니다. 고
칠 소망이 없다는 아픔이 평안을 빼앗아갔습니다.
나아가 그녀는 아픔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습니다. 숨길 수밖에 없는 부끄러운 아픔이었습니다. 아픈
것도 서러운 일인데, 사람들 앞에서 '제가 이렇게 아픕니다. 나를 도와 주십시오' 라고 호소조차 할 수 없었습니
다. 창피한 아픔! 이런 그녀에게는 어느 한 날 평안함이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절대적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외아들을 잃은 나인성 과부의 아픔이 컸습니다.
일곱 귀신에 시달린 막달라 마리아의 아픔과 지난주일 함께 말씀을 나눈 귀신들린 거라사인의 아픔이
이렇게 컸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아픔을 가진 삶에는 평안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그녀를 언제까지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께서는 이런 아픔을 가진, 평안할 수 없는 여인을 깨끗이 고쳐주시고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런 큰 아픔을 가진 우리를 고치시고 평안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2. 평안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확고히 가질 때 옵니다.
이 혈루병이 든 여인에게 낭보가 날아들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예수님,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고치신 예수님, 귀신들려 젊음을 낭비하다 깨끗함을 받은 거라사인이 전해 준 복음일 수 있습
니다.
38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저를 보내시며 가라사대 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그녀는 그런 복음을 들으면서, 귀신이 들려 무덤 사이에서 살다시피 한 거라사인을 온전케 하신 예수님
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예수님,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고치신 예수님,
거라사인을 구원하신 주님이시라면, 나의 병쯤이야 더욱 쉽게 치료하실 수 있지 않겠는가!
거라사인에게 찬송의 옷을 입혀주신 예수님,
거라사인의 가정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
거라사인의 사명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
거라사인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
이런 예수님이시라면, '그 것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이 여인은 자신의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이 예수님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마9:21에는 이 여인의 속마
음을 알려주십니다.
'그 것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그렇다. 이런 분이라면, 내 아픔쯤은 겉옷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 이런 분이라면, '내가 그분의 옷깃만
만져도 나을 것이다.' 그녀의 내면에 예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평안이 어디서 옵니까?
'예수님은 거라사인에게 찬송의 옷을 입히실 수 있다! 그가 치료 불눙의 정신병자일지라도 예수님은 치료하셨
다!. 그의 가정과 사명과 영혼을 회복시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나의 아픔도 치료하실 수 있다! '
이런 예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에서 옵니다. 이런 확실한 믿음이 있을 때, 평안이 옵니다.
사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을 때, 즉시 혈루증이 그쳤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그
동안의 모든 아픔을 깨끗이 씻어내었습니다.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아픔이 있습니까? 나의 아픔이 절망적인 것만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놀라
운 분이신가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
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믿는 자들을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묵상할 때, 예수님의 십자
가 그늘에만 가도 내 고통쯤은 낫겠다 하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까? 이런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모
든 고통은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본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즉시 혈루증이 그쳤더라'
3. 평안은 예수님을 바로 고백할 때 옵니다.
이적을 체험한 여인은 터질 듯한 가슴을 안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갈릴
리 바닷가를 달리면서 자신만 알고 있는 치료받은 기쁨을 한없이 외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긋지긋한 12년 아
닙니까?
'나의 아픔은 끝났다!'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곳에서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한없이 외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유리되어
서 보지 못했던, 그러나 사무치게 그리웠던 가족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즉각 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
왜 주님께서는 그녀의 소원대로 보내지 않은 것일까요?
병이 나은 것은 그녀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이상을 주기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보좌
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까닭은 그녀의 이런 저런 고통을 해결하는 것으로 만족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중병 나
은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국 백성이 누리는 평안입니다.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셨을 때도 그랬습니다. 9명은 병이 나은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환호의 휘파람을 불면서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은 그 이상을 생각했습니다. 그리
고 즉시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
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 하시더라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병 치료 이상의 것을 받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늘 병 치료 이상의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병 치료만으로 환호하면서 예수님 곁을
뛰쳐나가려는 그 여인에게 묻고 계십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다. 내게서 능력이 나갔다.'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라.'
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
이것이 주님의 중심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병을 고치신 능력자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 아닙
니다. 주님께서는 이보다 더한 병을 고치시고도 자주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를 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구태어 숨기고 싶어하는 그녀에게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게' 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주
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원하셨습니다. 사명을 회복하기 원하셨어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회복하기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백할 때, 감사의 열매가 맺히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오기 때문입니다.
외경에 의하면 이 여자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그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드렸던 '베로니카'
라는 여인이라고 합니다. 고백의 위대함을 조금이라도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20세기 초반 학생 선교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던 John Mott는 중국 대사, 프린스턴 대학 총장, 미 국무장
관 등을 제의 받았습니다. 그는 그 모든 명예직을 모두 그리스도를 위해 거절했습니다. 젊은 학생들을 복음화
시키는 직분을 중하게 여긴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
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
라.(히11:24-26)
믿음으로 그 여인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가 왜 주님의 옷깃에 손을 대었는가를 고백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녀가 어떻게 깨끗함을 얻었는가를 고백하였습니다.
그 고백과 함께 주님은 매우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구원받은 사람의 평안함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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