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어거스틴의 책 가운데 신의 도성 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있읍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읍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당시로 보면 절대로 멸망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읍니다. 그러나, 도끼를 휘두르면서 벌거벗은 채로 쳐들어오는 야만인 오트족한테 로마는 함락됩니다. 아우성과 화염 속에서 거대한 로마성이 무너지는 순간에 어거스틴은 굉장한 고민을 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이 나라가 무너지고, 저 야만인들이 점령하게 되는가? 그 때 모든 기독교인들이 고민을 합니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유명한 역사관을 내어놓게 됩니다. "사람이 세운 이 세상 나라는 무너진다. 무너지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무너지는 로마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가는 것을 그는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칠흙같은 캄캄한 어두움이 있읍니다. 이 어두움을 치른 후에야, 아침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는 때로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어요?'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저 하늘에 있단다."
"하나님 나라는 네 마음에 있단다."
이런 답을 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곳에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 사상은 하나님의 지배라는 뜻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있는 통치를 말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손에 빠져 있는데, 하나님의 지배가 임하시는 때, 사탄과 그 아
래 있는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랑과 의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1) 에덴 동산이가 할지라도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그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탄의 말을 들을 때, 사탄이 대신 [이 세상 임금]이 되었습니다(마 4:8-10, 요 14:30). 하나님 말씀이 다스리지 않은 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에덴을 떠나야 합니다.
(2)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방주를 지었을 때, 그 말씀대로 지어진 방주는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그 방주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방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방주는 심판이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택정되고(삼상 16:1-13),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과 그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에 의해 통치될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참 사람이며 또는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계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입니다(행 15:14-17).
(3)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가 풀무불에 들어가도, 사자굴에 들어가도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사자도 풀무불도 그들을 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의 임함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교회]의 [주]가 되셨습니다. 살아계셔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선, 임하지 않습니다(눅 17:20,21, 롬 14:17).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 신자는, 현재,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습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 안에서 현재, 지상에 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척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한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 집니다.
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0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이 부분부터 갈릴리 3차 전도 사역이 시작됩니다. 제자들을 불러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명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0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불러모아서 세상에 파송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당시에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 볼 때, 그들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르시고 보내신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나아간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열두 제자들은 세상에서 어부였습니다. 세리였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평범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 신분을 더 부여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 신분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인 것입니다. 로마 식민지 국가의 무엇이 아닙니다. 유대 갈릴리 지역의 어부나 세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한 구성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특권입니다.
모세는 그 일원의식을 가진 사람이죠.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내어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합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갈 때, 그곳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채색 옷을 입고 사랑을 받는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불러내어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또 옥살이를 하게 하십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함으로 그가 가는 곳은 감옥이라 할지라도, 감옥이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지난 주간에 최요섭 목사님을 만나 중국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어느 마을에 찾아갔더니 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환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목사님은 그 환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차도가 없습니다. 너무 민망하여 얼굴을 들고 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화장실로 가서 하나님께 항의하였습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는 다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환자의 환부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내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감동이 회중 가운데 넘쳤습니다.
3. 하나님 나라는 불러 하나님만 의지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요즈음에는 선교사를 파송할 때 보면, 일종의 형식이 있습니다.
신학교육과 목사 안수 등의 자질과 신분을 갖춥니다.
선교지의 정보를 모아 교육합니다.
선교비를 확보합니다.
선교사 파송식을 가집니다.
이런 신중한 절차를 따라서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좀 색다릅니다. 그냥 12명의 제자를 '불러모아 -----내어 보냅니다.'
'세상에 던져버렸다!'는 표현과 같습니다.
0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
우리가 파송함을 받은 그 당시의 제자라면,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두둑하게 선교비를 주신 것도 아니요, 비자카드라도 만들어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이 세상에 보내시는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요즈음 선교 관점에서 보기에는 참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스쳐가지 않습니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전도자로 파송되어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여행 장비들이 있습니다. 여행 경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숙식을 위한 기본적인 의류나 식량, 또 험로를 대비한 지팡이 따위가 그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같이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고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일체 금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그처럼 보편적으로 여행에 필수
적으로 사용되는 장비들을 금하셨을까요?
1)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거친 들에서 여행자를 보호하기도 하고 높은 곳을 오르는 데 큰 힘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어쩌다 넘어졌을 경우 용이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지팡이 소지를 금하셨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가 의지해야 할 것은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다윗도 내게 부족함이 없노라고 노래하였습니다.
2)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역시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양식'이 없어 배를 곯습니다.
'돈' 또한 생활 필수품입니다.
'주머니'란 요즈음 여행가방 정도입니다. 여기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습니다.
'두 벌 옷' 정도는 여행하는데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필수품들을 의지하지 말라 명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보기에 일차적인 필수품이지만, 하나님 나라 측면에서 보면,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의 나라
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이 모든 필수품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양식'이 주린 영혼을 채우지 못합니다.
'돈'으로 그 나라를 살 수 없습니다.
'주머니'에 영혼의 양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두 벌 옷'도 벌거벗은 영혼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몇 번이고 망설입니다. 이름도 주시고, 이적도 주시지만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합니다.
대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우도 이런 망서림이 있습니다.
5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하나님나라의 일원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이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임지십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예수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헤롯의 태도로 보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능력과 권세는 천부(天父)께서 주신 힘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권세는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으로 그 능력을 시행할 권리이기도 했습니다.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는 열 두 제자들의 사역은 예수님 행하시던 사역의 연장이었습니다.
맺 음 말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고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 일꾼으로 부름 받아 그 일을 감당할 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 어두움의 권세가 떨게 됩니다.
예수의 명성은 팔레스틴 전역에 퍼져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중에서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도 했습니다 (7, 8절). 이 소식을 들
은 분봉왕 헤롯(B. C. 4-A. D. 39년까지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다스렸던 분봉왕)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가 당황한 것은 일차적으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로서 세례 요한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왕권의 새로운 시작이 그를 본능적으로 위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어두운 권세자의 표상적 인물입니다. 그는 에돔인으로서 당시 유대 사회의 권력을 관장하고 있던 사두개 교도였으므로 죽은자의 부활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통
치 관할 구역인 갈릴리에서 예수의 명성이 높아가고 그를 추종하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예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으며, 그의 제자들도 놀라운 일을 행하자 그 소문은 즉시 헤롯에게로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어두움의 권세도 떨고 있습니다.
와나메이커(1833 - 1922)는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 정부의 내각요원으로서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며 큰 발전과 공헌을 한 사람이다. 또한 와나메이커는 미국의 백화점을 초기에 본격적으로 운영했던 백화점 왕으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크리스챤으로서 아주 휼륭한 생활과 헌신을 한 사람이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와나메이커 체신장관에게 물어 보았다. "와나메이커씨, 당신은 그 큰 사업에 바쁠 뿐만 아니라 체신장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또 다른 일들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4천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다루는 주일학교 교장직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와나메이커는 정색을 하고 답변하였다. "무슨 말씀을 ! 주일학교가 나의 정작 본 사업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저 일들입니다. 나는 이미 45년 전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노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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