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9:28-36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

들어가는 말

    지난 주에는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에 관한 예언을 해주셨습니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다시 살아나실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다시 살아나실 주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 선언이 있고 나서 한 주간 동안은 예수님께나 제자들에게 낙심 천만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다는 말씀은 그들의 삶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습니다. 자아를 부인하지 못한 채 주님을 따른 제자들에게는  자신들의 헌신이 헛되다는 당혹감과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착잡한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의 왕의 사역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주실 수 있는 메시야를 원하였습니다. 정치적인 해방, 경제적인 해방, 질병으로부터 해방을 가져 올 수 있는 메시야를 원하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눈에는 예수님만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채워줄 수 있는 무엇이 크게 보입니다. 물질이 그립습니다. 권세가 보입니다. 사업이 보입니다. 건강이 보입니다. 예수님도 좋지
만 예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무엇이 함께 보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메시야 관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고난 당하시고 부활하시는 왕과 그 다스리는 나라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1] 기도하십니다.

산에 오르셔서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다시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왜 기도하셔야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려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를 진 사람들에 의하여 확장되어 가는데 말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획은 중단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기도를 택하신 것입니다.

적용]
제자들이 훗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이는 변화산에서 기도의 응답일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니 직접 모든 일을 행하실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전해 받고 또, 기도를 통해서 그 일
을 추진하십니다. 마치 캐나다 대사관의 대사가 본국 정부와 늘 전화로 교통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시기마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 제자들이 깊은 잠 속을 헤메고 있는 것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깊은 기도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추진하고 계시는 데, 우리는 크고 작은 일을 우리의 지혜로 추진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볼 일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추진 중이십니
까? 아니면 제자들처럼 곤하여 졸고 계십니까?
예수님 곁에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서 계십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그 큰 출애굽 사역을 기도로 추진한 선지자입니다.
엘리야는 기도함으로 비가 3년 반을 그쳤고 기도함으로 바알 선지자 400면과 앗세라 선지자 450명을 극복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2] 용모가 변화되십니다.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그들이 지금까지 지상에서 만나왔던 예수님의 모습은 변화되고 광채가 납니다. 변화되고 광채가 나는 이 모습이 웬 일입니까?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기 위해 잠시 동안 버리셨던 영광을 되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옷은 하나님 나라의 원래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에 계실 장차의 모습으로 잠시 변화되고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주님께서 신령한 몸을 입으셨습니다. 위에 속한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이 모습은 얼마나 황홀하였는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그 황홀감을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바로 앞에 나오는 27절의 말씀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는 또한 장차 있을 예수님의 수난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광스러운 부활로 연결될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재림하실 예수님의 모습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변화는 그의 영광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그를 위해 고난 당하면서 결코 그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의 제자들을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적용]
주님의 변모는 십자가를 지실 메시야가 입으실 영광스런 변화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장차 입게 될 황홀한 변화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는 일은 참 기쁜 일입니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면 감동이 됩니다. 최경선이란 마약 중독자가 변하여 목사가 되고 이제는 옛날 자기와 같이 마약에 중독되어 사는 청소년들을 전도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감격합니다.
예화]
이철환 님의 '연탄길'에 이런 미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음식점에 여자아이가 동생 둘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누나와 동생들입니다. 누나가 동생이 원하는 자장면을 시켜줍니다. 누나는 점심 먹은 게 체했나 보다고 못 먹겠다고 답합니다. 동생은 그래도 맛있다고 먹으라 말합니다. 동생에게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사실은 동생 생일이니까 없는 돈에 동생이나 먹이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 주방에서 아주머니가 나옵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아는 사람처럼 인사합니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인혜 맞지? 엄마 친구야. 나 모르겠니? 영선이 아줌마.......  "
잘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라서 기억에 안나는 모양이라면서
"인정이도 많이 컸구나. 그땐, 걸음마도 못하더니..."
이렇게 말하면서 그들에게 엄마친구시구나 하는 마음을 줍니다.
그리고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을 가져다줍니다. 언제든지 자장면 먹고 싶으면 오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은 떠나고 남편이 묻습니다.
"누구네 애들이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사실은 나도 모르는 애들이에요. ......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 또 올 수도 있고 해서..........  "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 것은 그들이 부르는 이름을 기억해서 반복했을 뿐입니다. 가난으로 주눅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그녀의 모습에서 남편은 깊은 감동을 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리 없이 아픔을 감싸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나루터에서 읽었는데 참 감동적이어서 요약했습니다.

이 정도로 마음씀씀이만 조금 변화하여도 아름다운데, 천국 영광의 형체로 변화되는 일은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예수님의 변화는 도덕적 변화 이상입니다. 예수님의 변화는 인격적 변화 이상입니다.  예수님의 변화는 하나님 형상을 회복한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본질적인 변모입니다. 번데기가 나비로 변화하는 것 이상으
로 완전한 변모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이렇게 변화할 것입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천국 주인으로의 변화입니다. 성육신 하심으로 제한 속에 있는 예수님의 육신이 1500년의 시간을 초월하고 장소를 초월하여 모세, 엘리야와 별세를 이야기하는 변화입니다.

3] 별세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별세(엑소돈)는, 문자적으로 "길을 떠남"(출애굽)이란 말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엑소더스(exodus)하듯, 예수님께서 죄된 세상으로부터의 그 친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떠남입니다. 세상 죄와 사망의 권세 가운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천국으로 안내하는 대탈출입니다.
그러므로 별세는 하나님 나라 왕의 대화에서 큰 주제입니다.
천국 교회를 이루기 원하십니까? 별세를 생각하십시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별세하십시오.
베드로는 바로 그곳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초막 셋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마무리하는 말

신앙은 주님의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주님의 변화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주님의 별세 차원에 머무는 것입니다.

천국의 변화에 참여해 보십시오.

1]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주께서 변화산 위에서 이루신 기도와 변화에는 너무나 황홀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꽃이 나타납니다. 구름(9:34)은 비구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표시한 세키나(Shekinah) 광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던 구름기둥의 임재입니다.(출13:21,22)
성막에 임재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출40:38)
솔로몬 성전 건축 후 성전에 가득하던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대하 7:1).

2] 오직 예수님만 보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변화를 체험한 세 제자들의 눈에는 세상에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물론 모세도 떠났고, 엘리야도 떠났다는 말씀이지만 매우 상징적인 말씀입니다.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눈에 오직 예수님만 보입니까?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님만 보입니까? 하나님의 변화에 참여해 보시지요.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놀라운 영광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
인하는 별세(exodus) 신앙을 향해 가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 따라 가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제자들의 눈에 예수님이 새롭게 보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이 말씀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이외의 것들을 그렇게 추구했던 제자들의 눈에 오직 예수님만 보였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하여서는 도무지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노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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