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9:37-43 네 귀에 두어야 할 말

1. 들어가는 말

세상엔 사람도 많지만, 우리가 당하는 죄와 고통 또한 많습니다.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들 또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번민을 어떻게 해결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과 세 제자가 산 위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한 어린아이가 사망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에서는 너무나 소중한 외아들이었지만, 어두움의 권세에 붙들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스쳐갔지마는 그의 고통을 감소기키는데는 아무련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들과 함께 세상에서 고통 당하는 어린이 곁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온전케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내 죄와 고통을 해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원합니다.

1. 그 아버지는 소중한 외아들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 아래에 있습니다. 산 아래서는 어두움의 권세가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권세 아래 있는 한 사람의 절박한 상황을 클로즈업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아들', '내 외아들'이 무엇을 말해줍니까? 그 집안에서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소중한 어린 아이가 귀신이라는 어두움의 권세 아래 농락 당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권세가 자유자제로 이 어린 아이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저를 잡아 부르짖게 합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물과 불에 자주 뛰어듭니다.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합니다.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갑니다.

그 아버지는 큰 믿음의 소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절급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어린 아이의 아버지는 용하다는 의사에게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해결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습니다. 내어쫓아 주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해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눅 9:1에 보면, 예수님께서 저들을 내어보내실 적에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어 파송하셨었는데, 지금 그들은 한 사람 예외 없이 무력하게 서 있습니다. 이것이 산 아래 있는 중생들의 현 주소입니다.

어제의 믿음이 오늘을 역사하지 못합니다.
어제 믿음으로 오늘 승리할 수 없음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 역시 패역한 세대의 종교 지도자들 곁에 서서 믿음이 없는 자라는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믿음 있는 기도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 어린아이의 아버지는 큰 믿음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그 어린아이의 아버지는 몸부림치며 간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받은 축복입니다.

지난주간에 저는 우리 교우 가운데 어떤 분이 간증하시는 걸 듣고 참 기뻤습니다. 그분은 한달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다른 차가 뒤에서 와서 서 있는 차를 받은 것입니다. 이 경우 잘못이 너무 분명하였고, 그는 그 잘못을 시인하고 자기의 인적 사항을 다 적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차는 몇 천불 수리비를 요구하는데, 그가 적어 준 인적 사항은 사실과 달랐습니다. 가까스로 그의 인적 사항을 알아냈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번복한 것입니다. 믿은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격입니다.
참으로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지난 2주일 간, 그 문제를 두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몇 차례 생각나는 대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이 잘못한 것을 법적으로 시인한 것입니다.

문제를 주 예수님께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 몇 마디는 짦지만, 예수님 앞에 드려진 간청이기에 아름다운 기도가 됩니다.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483장)

그래요. 어떤 문제든 주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갑시다. 사람은 많아도 '내 외아들'을 고통에서 구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주님께 나아가는 아버지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60억 이상의 인구가 이 지구상에 살고 있지만, 그들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만 해결해 줄 문제가 있습니다.2. 예수님은 그 문제를 가져 오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세상은 믿음이 없습니다. 패역합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입니다. 이런 세상에 그 어린아이를 맡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1]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입니다.
그 아버지는 아마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해결책이 없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서기관들이 제자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아이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해결할 능력은 없고 그저 변론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형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세대를 진단하여 말씀하십니다. 구원할 믿음은 없이 논쟁만 있는 세대를 주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선포하십니다.

패역(悖逆, Rebellion, Apostasy)이란 '택하여 키우신 하나님의 사랑과 노고에 반비례하여, 하나님을 저버리고 거스리는 일'입니다.

사30: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

(잠2:14)에는 악인의 패역이 있습니다.
(사 1:23, 호 9:15)에는 방백들의 패역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신에 대해 [패역한 세대]라는 말로 책망하시고(마 17:17, 눅 9:41)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를 거부한 일에 대해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행2:40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 하니

바울사도는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라 말하고 있습니다(빌 2:15).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패역한 세대 속에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는 ........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민23:21)

  외아들을 고통 가운데 둔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아주 예의 바르게 간청합니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주님은 즉각 그 믿음 없음을 진단하셔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무엇은 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닙니다. 가능성의 왕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하시니

그가 믿음이 부족할지라도 그 아들의 고통과 질병을 가져 오라 말씀하셨습니다.

예화]

11세기 성자 제롬이 베들레헴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제롬은 기뻐서 예수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주님께 무슨 선물을 드리오리이까?"
"하늘과 땅이 다 내 것인데 네가 무슨 선물을 내게 주겠느냐?"
"이 성경을 다 번역하여 그것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내가 정말 선물을 주려하느냐? 그러면 한 가지만 다오."
"그것이 무었입니까?"
"네 죄와 고통을 다 나에게 다오. 그것이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니라."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는 이렇게 놀랍습니다. 그 음성은 부드러워요!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리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318장)

예수님께서는 연약한 자녀의 죄와 질병과 연약함과 고통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근본적으로 치료해주시기 위함입니다.

3.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 우리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은 단지 이 어린아이의 질병을 치료하시기 위함 이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 우리라' 하시되

예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치료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주님의 희생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영원한 치료는 하나님 아들의 희생을 통해서 옵니다.

예화] 장명수 칼럼] 오인호의 생과 애덤 킹의 생

며칠 전 신문에서 애덤 킹 이야기를 읽었다. 지난 4월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멋진 시구(始球)를 날려 우리모두의 가슴을 때렸던 애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몸이 불편한 동생을 돌보고, 조카 안아주고, 집안일 돕고, 숙제하고, 학교 가고, 야구하느라고 그는 매우 바쁘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 살았어도 지금 바쁠까. 동생 밥 먹여 주고 집안 일 돕는 소년이 될 수 있었을까. 밝은 얼굴, 뛰어난 유머로 친구들의 인기를 모았을까.
철제다리로 야구장에 걸어 나와서 멋진 볼을 날림으로서 만인의 가슴에 사랑과 희망의 불을 당길 수 있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런 질문들에 계속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손가락이 모두 붙어있고, 무릎 아래로는 다리가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그는 4살 때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한국을 떠나면서 오인호란 이름대신 애덤 킹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의 양부모 찰스 로버트 킹(48.엔지니어)과 다나 킹(46)은 친자녀 3명과 입양한 자녀 8명을 키우고 있는데, 입양아들은 거의가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 21번이나 각종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애덤도 입양된 후 5년간 손가락 분리수술과 다리 절제수술을 하고 피나는 재활훈련을 받으며 오늘처럼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의 양부모를 보면 성자(聖者)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성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애덤을 그토록 '빛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었겠는가.
나는 얼마 전에도 TV에서 또 다른 성자들을 보았다. 시각장애를 지닌 미국인 부부가 여러 장애아들을 입양하여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은 "안 보인다고 해서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입양된 앞 못 보는 딸은 "나는 버림받은 아이였다. 그러나 양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했다.
(발행인 mschang@hk.co.kr)

사람이 사는 곳에 희생은 이렇게 감동적입니다. 이런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서 누군가 살아나고 소중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죄 가운데 버림받은 우리를 이렇게 구원한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 우리라'는 말씀은 바로 장애인이 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희생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입양된 앞 못 보는 딸은 "나는 버림받은 아이였다. 그러나 양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했다.

죄로 인해 불구가 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양부모인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노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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