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16 February 2015

아이티를 방문한 후 선교사들을 생각하며

 아이티 방문을 통해 젊은 형제자매들의 죽음 같이 아름다운 헌신을 보았습니다.

오영인 자매와 같이 젊은 청년들인데요.
누리고 싶은 문화생활을 포기하고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문밖을 자유롭게 다니는 자유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저는 움직이면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무더운 온도 가운데 집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밤이면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도 하고, 책도 보고,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감옥에 사는 사람들이 이런 부자유함 때문에 힘들겠구나 싶더라구요.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로 샤워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생각이 들었어요.
맛있는 음식에 대하여 죽습니다.
밑반찬 두세 가지로 그것도 작은 양으로 식사를 해야 하는 데 그들은 그곳에 있는 동안 내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첫날 점심을 먹는데 제가 큰 실수를 했어요.
예의상 저더러 맨처음 먹게 합니다. 저는 큰 수저로 움푹 고기를 떠서 왔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다음 사람들은 고기를 두 조각씩 가져오더라구요. 다음날부터는 저도 한 조각씩만 가져왔지만요.

함께 아이티를 방문한 누님은 이렇게 말해요.

"나는 여기가 천국임을 뼈속까지 느껴 매연도 물도 공기도 차도 쑥쑥 빠지고 "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까요?

유병국 선교사는 감비아 선교사 10년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을 평하는 책을 썼는데요.
그 제목을 '김치 하나도 포기 못한 선교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변화된 후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빌립보서3:-8]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성도의 죽음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somebody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장사지낼 수 있기 바랍니다.
모세가 자신을 nobody라고 생각하고, somebody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장사지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Godsbody로 삼아주셨습니다.

주 안에서 죽은 자는 하나님이 그 형체를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5: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But God gives it a body as he has determined, and to each kind of seed he gives its own body.

양파에 싹이납니다.
그것을 강단 위에 있는 화분에 심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이 싹이 이렇게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형체를 주신 것입니다.

저건 양파모양과 다르네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형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종자가 그만의 독특한 형체를 내도록 디자인하신 것입니다.
뿌리는 씨가 죽는다는 말은 땅에 떨어져 썩는다는 말입니다.
씨는 땅에 떨어져 죽는 순간 그것으로 그 씨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래서 씨는 죽지 않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씨가 떨어져 썩은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움트게 하신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생명은 전에 죽은 씨와 비슷하지만 더 놀라운 존재로 자랍니다.

하나님의 디자인이 시작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디자인이 시작됩니다.

씨가 죽으면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각 종자에게 형체(몸)를 주시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우리가 죽으면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부활의 몸을 주십니다.

씨앗은 아주 작고 볼품이 없습니다. 그러나 씨가 죽으면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각 종자에게 형체를 주십니다. 몸을 주십니다. 
콩을 심는 곳에는 콩을 나게 하시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팥을 심는 곳에는 팥을 나게 하시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그분이 없이는 된 것이 없습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과정도 하나님의 개입 없이 되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시편 95: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이번 아이티 방문 때 이동열 선교사님이 한 지역을 방문하여 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아이티 지진 때, 한국 교회가 아이티 교계와 협력하여 큰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아이티 대통령이 교계에 50헥타르의 땅을 하사했습니다.
그 위에 한국교회는 교회도 짓고
학교도 세웠습니다.
거기까지 였습니다.
문제는 구호가 끊겼습니다.

엄청 넓은 아름다운 대지가 케라비안 바다가 보이는 기슭에 펼쳐져 있습니다.

아이티 교계가 이 땅을 이동열 선교사님에게 줄테니 마음껏 당신의 꿈을 펼치라고 한데요.

저는 그 땅에 서서 100년전 한국 땅에 서서 조선 땅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언더우드의 기도문이 생각났습니다.

언제 읽어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100여년 전 미국 북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기도문입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이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그 암담하던 한국이 지금 어떻게 변했습니까?

조선 정부는 그에게 지금 연세대학의 부지를 주었습니다.

이동열 선교사는 그런 대학을 꿈꾸고 있더라구요.

저는 그분의 비전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형체로 변화됩니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들을 그 몸들의 구조와 모양이 각각 다르게 디자인하셨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우리가 뿌리는 씨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거기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하나님께서 그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십니다.

현재 우리 육의 몸은 씨에 해당됩니다. 
이 씨인 몸이 죽으면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각 씨에게 각각의 형체를 주십니다. 
우리 육의 몸이 죽으면,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우리 각 사람에게 각각의 부활의 몸을 주십니다. 

부활의 형체도 하나님이 디자인해서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부활의 몸을 주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죽음은 부활 소망으로 연결됩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고전 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There are also heavenly bodies and there are earthly bodies; but the splendor of the heavenly bodies is one kind, and the splendor of the earthly bodies is another.

땅에 속한 형체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요즈음 저에게 금년 들어 몸이 많이 쇠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사실 2년 사이에 몸무게가 몇 6Kg정도 줄었어요.

저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인간의 몸이 다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 몸은 썩고 욕되고 약합니다. 그리고 이런 몸을 ‘육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우리 몸은 결국 다 썩습니다. 
우리의 외모는 시간이 지나면 늙고 쭈글쭈글 해지다가 결국 죽고 썩어 없어지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몸짱, 얼짱이었던 사람들의 몸도 썩고, 머리가 좋고 능력 많은 사람들의 몸도 썩어요. 
그리고 우리 몸이 쇠하고 죽고 썩게 된다는 이 사실은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저명한 아담스 박사가 노년에 공원을 거닐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자들이 찾아와 안부를 물었습니다.

"아담스의 집이 말이 아니네."

"지붕이 흔들리고 기와가 떨어지고 벽이 허물어졌네."

존경하는 스승이 사는 집이 말년이 피폐해졌다는 것을 안쓰러워하던 제자들은 어떻게든 모금을 해서 온전히 세워드리겠다고 나섰습니다.

"기둥인 내 두 다리는 흔들리고, 지붕인 머리는 빠지고, 벽인 몸은 살이 다 빠져 앙상하게 되었으니 집이 무너지게 되었네. 그런데 어떻게 자네들이 세워줄 수 있겠나?"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은 후에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됨을 알려 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게 우리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에게는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부활의 형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활의 형체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 몸은 육체의 연약함과 부패함은 사라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닮은 영광의 몸입니다. 땅에 묻힌 씨앗이 전혀 다른 모습, 그러나 가장 적합한 형체로 살아나듯 우리 몸도 부활의 날에 하나님이 새로운 형체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시어 그 왕권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바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만유의 주로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구속하신 백성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한 성도들은 이 영원한 왕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고전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Then the end will come) 저가 모든 통치(all dominion)와 모든 권세(authority)와 능력(power)을 멸하시고(after he has destroyed) 나라를(the kingdom)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엔 모든 악한 권세들을 멸하십니다. 

고전15:25절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하시리니”그리스도께서 그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하여는, 모든 원수(사망까지 포함됨)를 완전히 멸절하시는 권세를 가지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왕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다스리십니다. 
"그 발아래" 둠은 완전한 정복을 말합니다.

고전15:26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신 주님께서 메시야께서 구속 사업(救贖事業)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이런 권세를 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필경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영원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성도가 이 세상의 것들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짐 엘리엇의 이런 고백은 우리에게 거룩한 부담을 줍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참으로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시길 원하십니까?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늘에 속한 형체를 입어야 합니다.

D.L.Moody는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느 날 신문에서 D.L.Moody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믿지 마세요.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좋은 곳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더 좋은 곳에서 살게 될 것이니까요."


[마무리하는 말]

영국 청년 리빙스턴이 로버트 모팻이 쓴 아프리카 탐험 여행기를 읽고 있다가 이런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나는 아프리카 고원에서 마을들을 내려다본다. 저 수많은 집 속에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는데 예수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언제 저들도 구원의 복음을 들을 날이 올 것인가?’

그 글을 읽는 순간 청년 리빙스턴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뜨거운 소명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즉시 응답했습니다. ‘나는 아프리카로 간다. 그곳의 영혼들을 예수 이름으로 구원하여 주께 인도해야 한다.’

그는 아프리카 원시림에 주의 이름으로 복음을 들고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들의 말을 배웠습니다. 짐승에게 물려 죽을 번도 하였습니다. 원주민들의 습격을 받고 잡혀 죽을 번도 하였습니다. 가뭄과 홍수와 싸우기도 했습니다.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기도 했습니다. 심한 풍토병으로 신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 예수의 명령에 따라 영혼 구원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는 걸어서 17,600㎞를 전도여행을 하였습니다.

1873년 5월 1일, 그의 시체가 아프리카 오지 속 알라라 마을 움막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자세로 엎드려 죽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답니다. 

‘나는 오늘도 살아 계신 주님과 함께 일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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