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March 2015

요10:16-27 선한 목자의 양으로 사는 길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신문을 보실 때, 어디를 먼저 보십니까? 저는 신문 하단에 있는 부음을 먼저 보곤 합니다.
    2007,2/2일자 토론토 한국일보를 보니 김치국 장로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가신 소식이 실려 있습니다. 향년 69세입니다. 그분은 제가 17년 전, 공산치하에 있던 구소련 선교여행을 다녀왔을 때 따뜻이 맞이해 주셨던 장로님이십니다. 그리고 저에게 영락교회에서 함께 사역하자고 적극 추천했던 분입니다. 그때, 저를 동역자로 맞아들이고, 또 소개하셨던 이석환 목사님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가셨고, 이제 김치국 장로님도 하나님 나라에 가셨습니다.
 
   오늘 날 토론토 영락교회를 있게 한 이런 귀한 사역자들의 삶은 끝난 것일까요?
믿음으로 살다 간 성도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은 이런 소중한 답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리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목숨을 내놓으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바로 앞에 기록된 이런 말씀을 이해하십니까?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오늘 본문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 말씀은 요3:16을 잘 아는 우리, 곧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란 말씀과 맏물려  선한 목자의 죽으시는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그것은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선  우리 성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주님의 말씀을 이런 관점에서 읽어보십시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영생을 다시 얻기 위해 목숨을 버리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예수님의 목숨을 버리신다는 의미를 분명하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빛을 주시려고 목숨을 내놓으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22절 말씀에 나타나는 수전절에 관하여 들어보셨나요?

    약 2,170년 전,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오시기 170년 전, 희랍제국에 속한 시리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 통치자 안티오커스 4세는, 예루살렘 성전의 금, 은 보물들을 약탈하여갔습니다.  유대인의 모든 제사 행위를 금지시키고, 안식일과 할례를 금하며, 이 법을 어기는 유대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뿐만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헬라 성전으로 만들고, 제단에는 유대인들이 금기로 여기는 돼지를 죽여 바쳤습니다.  유대인들에겐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습니다.
   그뿐아니라 안티오커스 4세는 군인들을 시켜 제우스 신의 동상을 지성소에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유대인들을 제우스 신에게 절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헬라화 정책을 뒤 엎은 유대의 새로운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25키로 떨어진  '모디인(Modi'i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안티오커스의 군인들은 모디인이라는 조그만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한 자리에 집합시켰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으로 전국을 다니며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제우스 신에게 절하도록 강요하는 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자 군인들은 제우스 신에게 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때 제사장 가문의 한 사람인 마따디아(Matthathias)라는 사람이 군인들에게, "왕의 영토에 사는 모든 이방인이 왕명에 굴복하여 각각 조상의 종교를 버리고 그를 따른다 작정하였다 하더라도,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이 맺은 계약을 끝까지 지킬 결심이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한 사람의 유대인이 앞으로 나가 제우스 신에게 절하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마따디아는 앞으로 나오더니 칼을 빼 제우스 신에게 절한 유대인을 죽이고 이에 달려드는 군인까지 죽인 후 산 속으로 달아났습니다.  이것이 독립국가 하스모니안(Hasmonian) 왕가를 일으킨 유명한 마카비(Maccabee) 전쟁의 시작입니다.
    그에겐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셋째 아들인 유다 마카비(Judah Maccabee)가 특히 그 용맹으로 유명하여 헬라주의에 반대한 그 전쟁을 가르켜 마카비 전쟁이라 합니다.
    산속으로 들어간 마따디아와 그의 아들들은 그를 따르는 많은 반헬라주의자들과 연합하여 시리아의 군대에 대항하였습니다. 삼년간의 전쟁 끝에 그들은 성전을 탈환하였습니다.
    새로운 촛대를 만들고 성소를 밝혔습니다. 분향단에는 향을 피우고 새로 성전을 봉헌하였습니다.  성전이 더럽혀진지 삼년, 유대력으로 주전 164년 키스레브월(12월) 25일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성전을 새로 봉헌한 유다 마카비는 이 날 키스레브월 25일 부터 팔일간을  하누카 명절로 지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시편의 할렐송 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이 하누카라는 수전절이 유대력으로 키스레브월  양력으로 계산하면 12월 25일이라는 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양력 12월 25일이잖아요?  어떻게 같은 날이 되었을까요?  유대인의 명절 하누카를 따랏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유대 기독교 학자로 유명했던 알프레드 에델샤임(Alfred Edersheim)은 하누카 명절의 날짜 키스레브월 25일이 초대교회에 의하여 크리스마스 날짜로 수용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야 말로 진정한 성전을 봉헌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수전절에 새롭게 밝힌 성전의 등불을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거듭 말씀하시는 이런 말씀이 더 실감있게 다가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 9:5)"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죽으셨습니다. 곧, 생명의 빛이 되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내 양'이라 말씀하신 것을 유심히 보십시오.

   
    '내양'이란 책임을 지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그 양을 칠 때, 목숨을 걸고 그 양을 책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상17:34-35]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다윗은 내양을 지키기 위해 사자나 곰과 싸울 때, 어떻게 싸웠을 것 같습니까?
목숨을 내놓고 싸웠을 것입니다.
사자가 얼마나 무서운 짐승인가를 아시지요?
곰이 얼마나 무서운 짐승인가를 들으셨지요?
어린 다윗이 이런 무서운 짐승과 싸울 때, 골리앗 앞에 섰던 믿음의 자세가 있었으리란 것을 상상하기는 쉬운 일입니다.
다윗이 자기 목숨보다 양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양을 사자의 입에서 빼앗기 위해 사자와 싸우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 양이라고 선포하신 사건은 양에게 있어 굉장한 사건입니다.

    [요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목숨을 버림이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왜요?

    하나님의 것인 우리 성도들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양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던 선한 목자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선한 목자, 구세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내양'을 구하시기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1절에서 18절까지 네 번이나 반복하여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노라'는 말씀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이 소식은  이 우리에 들어 있지 않는 양에게 놀라운 복음입니다.

   우리는 우리에 들지 못한 양이었습니다.
에덴을 벗어났습니다.
부끄러워 숨었습니다.
5천년 동안 세상에 버려져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습니다.
어두운 영에 속한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양으로 삼아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우리를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내 양'이라고 하십니다.
이 우리에 들지 않았지만, 내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목숨을 주시기까지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것이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우리(에덴, 천국)에 우리를 들어오게 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된 하나님의 양입니다.
예수님께 속한 양임입니다.
예수님에 의하여 그 생애가 인도함을 받는 양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양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에고 아이미'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길은 바로 이 선하신 목자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으면 우리 인생은 100%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지혜자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어떤 시인의 싯구가 스쳐갑니다.

    나는 어머니가 좋다. 왜냐하면 그냥 좋다.
하나님은 우리 어머니 이상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냥 좋으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다 하나님의 프로그램 안에 있다. - 나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면서 우리 안에 승리의 프로그램을 짜 놓으셨다.
매일 밤 나는 하나님께 내 근심을 맡긴다.  그러면 하나님은 밤새 나를 위해 일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하도록 프로그램하셨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도록 마음의 프로그램을 다시 짜라. 싸구려 소프트웨어가 깔려있거나 잘못된 정보가 입력된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겠는가?
오염된 생각 낮은 자존감과 두려움 공포 열등감 불안감이란 바이러스를 지우라.  생각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곳에서 역사하신다. 생각의 프로그램을 다시 짜라.

   인간 관계에서 힘든 일을 만나십니까?
   버나드 멜쳐의 이런 중심을 만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쓴 뿌리는 쓴 열매를 맺는다. 내면에 원망을 품으면 우리 삶은 온통 원망으로 가득차게 된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더럽힌다.
분노를 품은 자가 왜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지 아는가? 마음에 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용서가 과거를 바꿔주진 않지만 미래는 확실히 바꿔준다(버나드 멜처)

나쁜 사람의 불의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면 나쁜 사람이 둘로 늘어나지 않도록 그를 용서하라(어거스틴)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말씀을 듣는 일이 즐겁습니다.
성경을 좀더 많이 읽고 외우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습니다.
꿈 속에서라도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습니다.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합소서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으면 그곳에 영생이 열립니다.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으면 그곳에 천국이 회복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열린 관계 속에 살게 되니까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께 속한 양이므로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문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선하신 목자를 신뢰하시고
선하신 목자에게 인생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3. 양의 모든 형편을 아시는 목자를 따릅니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My sheep listen to my voice;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굉장히 열린 시대입니다.
    형식에 있어서 열린 예배가 유행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자들이 마음이 자유롭습니다.
복장도 자유롭습니다.
찬양도 자유롭습니다.
기도하는 모습도 자유롭습니다.
지금은 온통 자유롭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의식을 따르라면 질식할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놀라운 자유가 어디서 왔을까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으로 인한 것인 줄 압니다.

    [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에 우리도 주님을 이렇게 사랑합니다.

    성도간에도 관계가 참 열려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이 너무 높아요.
그러나 우리 성도간에는 얼마나 관계가 열려있는지 모릅니다.
특히 우리 서머나 교회와 같이 100가정이 채 되지 않는 교우들간의 관계는 훨씬 더 유기적인 관계가 됨을 느낍니다.
정말 외로운 세상인데 이렇게 믿음 안에서
상호간의 마음이 열리고
기도가 열리고
교제가 열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안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2: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예수님을 만나 치유함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요한복음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님께 관한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요한복음 1: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마무리하는 말]

    죠엘 오스틴은 그의 책에서 이런 중심을 나눕니다.

    "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내가 누구의 것인지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되시니 우리에게는 기회의 문이 늘 활짝 열려 있다.

    선한 목자의 양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갑시다.
목숨까지 내어주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의 꿈이 우리의 남은 생애에서 이루어집니다

------------
주일설교본문
------------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9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 혹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