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March 2015

요11:1-16 사랑하는 자와 질병의 의미

[들어가는 말]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질병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질병은 인간이 당하는 아픔 중에서도 큰 고난입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자에게 임함 질병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극한 질병을 만난 사람들을 천형에 연결시키곤 하였어요.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질병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 병든 자를 이해하고 위하여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사람들은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나사로의 병들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1]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도 연약하여 병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병들 때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인격적으로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병들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병들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병들 수 있습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여서 우리가 병들 수 있습니다.
신앙경륜이 일천함으로 우리가 병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을지라도 때로 아플 수 있습니다. 나사로처럼 병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깊이가 옅어진 것은 아닙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어지는 고난에 반드시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복음 송이 우리가 연약할 때, 많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사랑 받고 있지요."


    형제가 연약하여 병들 때 형제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인격적으로 형제가 연약하기 때문에 병들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형제가 연약하기 때문에 병들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형제가 연약하기 때문에 병들 수 있습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여서 형제가 병들 수 있습니다.
신앙경륜이 일천함으로 형제가 병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병들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정죄하지 맙시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판단하지 맙시다.

    예수님을 사랑을 받는 성도라도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병들 수 있습니다. 연약하여 병든 모습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연약한 자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2] 연약한 자를 볼 때,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이런 기도는 가장 고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병든 자가 있습니까?
심리적으로 연약하여 병든 자가 있습니까?
영적으로 연약하여 병든 자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연약하여 병든 형제 자매들을 수군거립니다.

   우리 주변에 연약함으로 병든 형제 자매를 볼 때, 수군거리는 대신 기도해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주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기도할 때는 주님의 심장을 가져야 합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나이다 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가 병들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 하였습니다.
연약하여 병든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기도하는 자를 정말 마음으로 품고 사랑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기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4] 의인 뿐만 아니라 불의한 자를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북한을 불의한 정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지요?
이런 북한 동족을 위해 기도할 때 어떤 마음으로 기도합니까?

주여, 북한이 병들었나이다.
주여 김정일이 병들었나이다.
이렇게만 기도해도 감사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이건 기도의 차원이 다릅니다.
    감정이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나사로와 북한의 김정일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5절을 보면 좀 생각을 넓힐 수 있다고 봅니다.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에 나오는 사랑하시더니란 말은 원문에는 '에가파'(아가파오의 과거형) 즉 헌신적으로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아가페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요3:16에 말씀하시는 사랑이 바로 아가페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 가운데 인도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놓은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불의한 자를 위해서도 주님의 심장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렇게 차원높은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도들로 축복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사랑하신 그 나사로가 왜 병들어야 했을까요?
이 질문을 미리 아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1] 특별한 목적 가운데 주어지는 질병이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에게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에게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몸에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나사로에게도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질병들을 통하여서도 중요한 꿈을 이루십니다.
그 절망적인 질병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그분의 능력과 사랑과 지혜를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은혜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질병 자체로 너무 좌절하지 맙시다.
질병은 인간을 낙담하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죽을 병이라면 모든 소망을 앗아갑니다.
그러나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질병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 한국의 여배우가 자살한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곱게 생긴 자매인데, 그가 남긴 글을 보니까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살을 했습니다. 우울증이 있었던 모양인데 너무 쉽게 인생을 포기하고 말았어요.
우울증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겠느냐고 쉽게 단정해선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질병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내 병의 종류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고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화]

    재작년 이곳 교회당에 이사온 후, 성전에 들어오는 입구를 상당히 운치 있는 나무판으로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이 채 안되어서 나무 끝이 마모되기 시작합니다. 병이들어갑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 관리부에서 황금빛이 나는 메탈을 계단 모서리에 설치하였습니다. 계단이 아주 새로워졌습니다. 계단을 밟고 들어오신 여러분이 매우 흡족해 합니다. 왕대접을 받는 듯, 좋아하십니다.
    분명 낡아져가는 나무 계단은 세월이 감에 따라 병이들어가지만, 관리자가 꿈을 심을 때 영광의 빛이 납니다.

    누가 계단의 닳아진 모서리를 가리키면서,

    "보세요. 계단 모서리가 마모되었습니다."

했다면, 긍정적인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 것으로 생각됩니까?

    "예, 이것은 썩어 망가질 계단이 아닙니다. 제가 황금 메탈을 입힐텐데 그러면 영광스럽게 변화될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창고 세곳을 관리부에서 대폭 정리하였습니다. 과감하게 쓰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였습니다. 부엌 용품은 부엌에서 가까운 창고에 옮기고, 페인트와 같이 교회 수리에 쓰이는 용품들은 계단 밑 창고에 모았습니다.

    정리되기 전의 창고를 들여다 본 사람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셨나요? 이렇게 아름다운 본당과 선교관의 음지에 그처럼 지저분한 창고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까워하였을 것입니다. 잡다히 정리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쑤셔 넣은 잡동사니로 가득했으니까요. 병든 창고! 저도 창고문을 열었다 몇 번이나 낙담하며 닫아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본당만큼 아름답게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정말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마 며칠이 지나면 이 창고가 성전 주인의 영광을 드러낼 줄 믿습니다.


    보일러 실도 그래요. 저 골리앗처럼 떠억 버티고 있는 괴물이 떨어져 나가고 수리된 후 아름다운 교육실로 바꾸어질 소망을 갖게 됩니다.

    지난 50년 동안 잘 사용하였지만,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보일러를 이번 주에는 완전히 철거하고 그곳에 두개의 교육실을 만들 예정입니다.
일하시는 관리부원들을 뵈면서 저는 많이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지만 행복이 그분들의 얼굴에 넘치고 있습니다. 병이 든 보일러를 철거한 자리에 우리 자녀들을 위한 교육 공간이 들어선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병이 들었다는 것은 꼭 절망일 수만은 없습니다.
주인의 의지만 들어가면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변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죽을 병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바꾸십니다.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남자 중심의 사회에서 남자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나사로의 가정에 가장이 무너진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객관적으로 볼 때 죽을 병입니다.
그야말로 큰 어두움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중병 가운데서도 우리 하나님게서는 특별한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을 병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바꾸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주님께서는 간단히 말씀하십니다.

   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나사로의 질병은 나사로를 죽이자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질병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었습니다.
질병은 만날 때, 그 질병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종적 목적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죽음 또한 하나님께서 병든 나사로를 위한 최종적 목적이 아닙니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예수님께 있어서 죽고 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람에게 있어 살고 죽는 것이 대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있어서 생사는 그분의 손안에 있습니다.
인간이 절망하는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영광을 받으시는 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줄 아신 주님께서 이틀을 더 곳에 머무신 이유도 이런 의미에서 분명합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촌각이 급합니다.
그러나 생사를 한 손에 쥐고 계시는 주님께 있어서 죽음이란 자는 것일 뿐입니다.
병이 든 것이나 건강한 것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자는 것이나 깨어 있는 것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죽은 것이나 사는 것이 주님께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헨드릭슨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비하게 움직이시며
이적을 행하시네
하나님은 바다를 거니시며
푹풍을 타시네

두려워 떠는 성도들이여
용기를 내어라
너희가 그처럼 두려워하는
구름에는 큰 긍휼이 함께 있으며
너희 머리 위에 축복을 채우시리라

그저 뜻은 시간마다  펼쳐지며
속히 무르익겠네
싹은 쓴 맛이 감도나
열매는 달콤하리라



3. 믿게 하려는 일임을 기억하십시오.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들으셨지만 급히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죽었는데 당장 달려가지 않으셨습니다.
이틀이나 더 유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촌각이 급한데 예수님께서는 모르신척 이틀을 더 지내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함이셨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부단히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특별한 사람들을 뽑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존재들을 엄선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특별한 은사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종교성이 빼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사건을 제자들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활용하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주실 수 있는 바로 그곳에 가십니다.

    "그에게로 가자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꿈을 이루시는 일에 하나님의 일정표를 따라 움직이셨습니다.

    오늘날도 믿음을 주는 일을 위해서라면 이 예수님을 본받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소개]

  감동깊은 영화를 한 편을 준비했습니다.(한글 자막이 있습니다)

영화명: "End of the Spear(창의 끝)"

   '영광의 문'(크리스쳔의 필독서, 서머나 도서관에 비치됨)이란 책으로 이미 소개된 바있는 엘리어트 선교사님의 순교(당시 28세) 이야기입니다. 에콰도르 아우카족이란 살인부족의 영적 필요를 무시할 수 없어서 절대명령으로 받아들이고 그곳에 들어갔다 7명의 원주민들의 창에 찔려 순교한 다섯 선교사님들의 순교실화를 "End of the Spear(창의 끝)"이란 작품으로 영상화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하나님을 방패와 방벽으로 믿었던 그들이 왜 창에 찔려 죽었어야만 했는지 최종적인 답을 찾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인디언들에게 무에서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가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주여, 저를 보내소서!' 그리스도를 아는 기회조차 없이 그리스도 없는 밤으로 곧장 빨려드는 저 잃은 영혼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종하여 응답한 신실한 다섯 선교사님들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뜨거운 환영대신 목숨을 노리는 싸늘한 창끝이었습니다. 그들은 총을 들고 있었고 얼마든지 그들을 쏠 수 있었지만, 총을 쏘는 대신 그들은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남긴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내려갑니다. 권총과 선물과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가슴에는 기도를 품고."

  한 형제는 저들을 위해 이런 기도를 남기고 있습니다.

  "주님, 그들의 마음을 주님의 창으로 찔러주세요.  그들은 우리 친구들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령의 검], 곧 주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찌르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듣고 믿게 하소서."

   그들이 순교하고 난 후, 엘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트 엘리엇은 다시 그 마을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다음은 '아멘 넷'에 소개된 임종화님의 칼럼입니다.

   "End of the Spear(창의 끝)"라는 영화를 보면서 에콰도르인들이 복음을 받아드리기까지는 순교자들의 피가 그 땅에 흘려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과 50년 전인 1956년, 미국인 선교사 다섯 명이 아마존 정글 주변에 들어가 생활을 하면서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쓰다가 순교를 하는 실화가 영화에서 상영되었습니다.  폭력적인 와오다니 족(族)은 문명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채 다른 부족들을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서 약육강식의 밀림 생활을 하고 있던 종족입니다.

   다섯 명의 선교사는 그들에게 복음을 들고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대속(代贖)의 사랑"을 전하고자 합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이름대신, 그들이 믿는 토착화된 절대신의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그 내용은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밀림 속에 들어간 선교사들은, 한 원주민의 모함으로 인해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평화로운 곳에서 한명씩 한명씩 창에 찔려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죽어가면서 까지 "우리는 당신의 신실한 친구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순교자 중에 한 사람인 네이트는 스티브라는 아들이 있었고, 순교자의 아내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데리고 남편들을 죽인 원주민 마을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합니다.  그러자 점점 푹력적이던 와오다니 족은 선교사의 가족들이 베푸는 사랑에 감동을 받게 되면서 창을 가지고 살아왔던 생활을 마치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와오다니 족의 추장이었던 민카야니는, 순교자의 아들인 스티브 앞에서 "내가 너의 아버지를 창으로 찔러 죽인 사람이라"고 통곡하면서 말합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바라보면서 스티브는 분노를 느끼지만, 결국에는 "우리는 당신의 신실한 친구라"는 마지막 고백을 하면서 순교한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면서 민카야니를 용서하게 됩니다.  용서할 뿐만 아니라, 원주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국에서의 편안한 삶을 정리하고 아마존 지역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됩니다.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또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이 어떠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 주님께서 누구에게 향하십니까? 믿음의 역사가 필요한 그에게 주님은 나아가길 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습니까?

    어떤 중심을 가지고 서 계십니까?

    병든 자를 바로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길을 묵상합시다.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시기 위해 찾아오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성경본문]

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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