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March 2015

요11:17-30 그분의 부활이 나의 소망인 이유

[들어가는 말]

    암이나 에이즈와 같은 치명적 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갑니다.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로 많은 사람이 죽어갑니다.
    전쟁이나 테러와 같은 인간의 완악함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갑니다.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어갑니다.
    지난 주간에 이상덕 집사님께서 하나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최근 우리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던 분들이 최근 세 분이나 하나님 나라에 가셨습니다. 하두영 할아버지, 최동규 선생님, 그리고 이상덕 집사님. 이분들은 우리와 아주 가까이 지내지는 못했지만 우리 서머나 교회 근처를 스쳐갔던 분들입니다.
    지난 신문을 보니까 고국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자매들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연이어 봅니다. 귀한 분들인데 아쉽습니다.


    죽음!
    인류의 원수라고 일컬어지는 이 끔찍스러운 죽음의 횡포가 2천 년 전,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에도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저들의 오라비인 나사로에게 그 죽음의 사슬이 감겨 든 것입니다.
그 일로 나사로의 마을은 숙연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마을로 찾아오셔서 나사로에게서 죽음의 사슬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나사로의 부활로 인하여 온 마을은 생명의 환희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때까지 누구도 도전한 적이 없는 죽음의 권세를 예수님께서 깨뜨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갈림 길에 서게 됩니다. 죽음의 절망길인가? 부활의 소망 길인가? 지금까지 죽음의 절망길로 걸어오신 분들은 말씀 안에서 은혜를 받음으로 부활의 소망 길로 나아오는 전환점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죽음의 권세를 벗어버리고 부활의 권능을 덧입는 축복! 이것은 우리 믿는 신앙인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1. 죽음의 절망길로 걸어가는 인생이 많습니다.

    죽음의 절망길로 가는 사람의 특징은 죽음을 인생의 끝장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르다는 죽음의 길에서 절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사랑하는 오빠를 잃었습니다.
죽음의 권세가 찾아와서 오라버니 나사로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할 수 있는 분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음의 권세에 떨어져가는 것을 보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오빠를 죽지 않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이 도착하기 원했던 시간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예수님의 돌보심을 받기도 전에 죽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예수님은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나사로의 시신을 무덤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슬퍼하면서 웁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을텐데....."


마리아와 마르다 믿음의 실체는 죽음은 인생의 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으니 이제는 끝이다!'

    세상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합니까? 죽음은 끝이다. 모든 것이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이 끝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일이되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자는 영생을 생명이 없는 자는 영벌의 길로 갑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크나큰 육신의 장막이 무너진 것이요, 육신의 고통이 끝난 것일 뿐, 모든 것이 끝장난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세계의 시작입니다.
죽음은 하나님께 내 영혼을 맡기는 것입니다.
죽음은 날 붙잡아 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생명을 가진 자는 영생의 부활로, 생명이 없는 자는 영벌의 부활로 다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혹시 죽음의 절망길에 서 있지 않습니까?
죽으면 끝이다!
그런 사고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죽으면 끝이니까 인생의 모든 목적을 죽음을 연장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인생 말입니다.
노후 몇 년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고 전력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보다는
늘 영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지혜로운 신앙인입니다.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가 있으므로 그곳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내 인생이 영원속에 접목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꿈에 접목된 인생을 살 때, 죽음의 강은 소망의 강으로 바꾸어질 줄 믿습니다.



2. 부활 신앙은 영원한 소망이 됩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 절망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죽음이 나사로의 끝장일 수 없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는 육신이 아닙니다.
다시 살아날 나사로입니다.
믿는 자 안에 있는 생명에 관한 일이요, 나사로의 현재적 부활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마르다는 담담하게 주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답변합니다.

    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구약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마지막 날의 부활에 대한 생각을 하고 그 부활을 믿는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시16:8-10]에는 성도의 죽음이 끝장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17:15]에는 성도의 부활이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73:24] 주님의 영접이 있습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욥19:25-26] 구속자로 인하여 하나님을 뵙는 기쁨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마리아는 이런 날에 관하여 구약 성경이 가르쳐주는 바를 알고 예수님께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사는 죄아래 죽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부활의 권능을 덧입혀 영생 가운데 부활하게 하시는 것을 마르다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에 있을 이런 부활의 권능을 덧입을 것에 대하여 고백하였습니다.

    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이만한 신앙이 귀한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죽음을 거쳐서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 여정이 끝나고 주님 오시는 그날에 내가 다시 살 소망이 부활되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있습니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서머나 홈페이지 도서부란에 보면, 폴 트루니가 쓴 저술 몇 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정신의학자인 의사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체험한 현장 중심의 경험을 소재로 하여 많은 소중한 저술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는 어느날 그리스로 휴가를 떠났다가 심장마비로 아내를 잃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의 임종 순간은 너무 평화롭습니다.

    "여보, 오늘 천국에 도착하면 먼저 가 계신 시부모님을 만나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

    그는 감동을 크게 받았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서 가족을 재회하는 것처럼 그렇게 평화로운 이별을 한 것입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부활이요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이후에 있을 새로운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이런 부활 신앙을 가진 마르다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3. 부활과 생명에 대한 약속을 지금 누리고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찾아서 하룻길을 오신 까닭은 이정도의 말세 부활 소식을 알려주시자는 것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이고 오늘 힘이 되는 소식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2천년 전,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육신으로 나타나신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온 우주의  '에고 아이미'이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마르다의 생명이십니다.
마르다 가정의 부활이 되시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믿으면, 이 생명을 영접하면, 내 안에 받아들이면, 생명이 되십니다. 부활이 되시는 것이지요.
생명이 있음으로 죽어도 살 것이요, 살아서 이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이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절대로 영원한 죽음을 맛보지 않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진짜 생명은 영원히 끌 수 없습니다.
영원한 보장을 받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왜 마르다에게 중요합니까?

    마르다의 경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은 장차 나타날 그러나 지금은 별로 힘이 되지 못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어도 예수님이 감격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기 전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래 부활이심은 믿지만 지금 당장 죽은 나사로의 부활과 생명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사로는 죽어 무덤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살리라' 말씀을 하셔도 마르다에게는 감격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미래의 부활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미래의 부활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부활이 되십니다.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지난 주일에 우리는 창의 끝이라는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영화가 너무 감동이 되어서 오늘 한 번더 앵콜 상영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엘리엍 선교사 일행 5명이 무지한 살인 원주민들에 의해서 살해당하는 장면입니다.

    엘리엍 선교사 일행은 아들에게 약속한대로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총으로 원주민들을 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선교사님들은 당장 죽어도 갈 천국이 있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기회조차 엇이 살아온 저 믿음 없는 흑암의 백성들은 빛이 없는 어두움으로 곧장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들을 저주하는 대신 우리는 당신들의 신실한 친구라는 유언을 남길 뿐입니다.
그리고 5명은 차례로 살해당합니다.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그들이 살해당하던 그 절박한 순간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우리는 엘리엇 선교사님을 살해하였던 민카야니로부터 놀라운 증언을 듣습니다.

    We saw them!

    그들은 하늘이 선교사님들 위에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살아계신 그분께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천국을 저들에게 열어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1956년에도 살아계셔서 에콰도르까지 찾아오셨고, 저 창끝에 죽어가던 그 선교사님들의 부활이 되셨던 것입니다.
저들의 영원한 생명이 되어 주셨습니다.





    [성경본문]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의 맞던 곳에 그저  계시더라



[다음주일설교본문]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37 그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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