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 March 2015

마11:16-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에게

들어가는 말

저는 지난주간, 급히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누님을 천국에 보내드리는 환송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큰처남도 떠나셨기 때문에 두분 모두를 보내드리는 예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느낌이 많지만, 믿는 성도의 입장에서 우선 뚜렷이 드러나는 일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참 좋구나 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마음을 모아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가까운 친척들도 너무 바쁜 나머지 얼굴만 인사치레로 내밀고 갈 수밖에 없는 게 한국 현실입니다. 그런데, 교우들은 끝까지 함께 하고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의식보다 더 중요한 일은 가시는 분이나 보내신 분들의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입니다.
믿는 자에게 있어 죽음은 인생의 끝장이 아닙니다.
더 나은 하나님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겐 얼마 후, 다시 만날 소망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그분의 명백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우리를 찾아 오셔서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신 왕의 분명한 결단 요구가 있습니다.
회개치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그 백성들을 향한 은혜로운 초대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르시고 내 안에서 일하실 때, 분명한 응답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 주님의 음성에 '예!'로 반응하십시오.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당시 사람들은 혼인 예식장에서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장례식 장에서 애곡을 하면 가슴을 치던 풍속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장터에서 피리를 불어 혼인 행렬을 흉내냅니다. 그런데 춤을 추어야할 사람들이 춤을 추지 않네요.
이번엔 아이고아이고 애곡을 해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애통하지 않습니다.
반응이 없는 인간들, 이건 죽은 인간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를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애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천국 복음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천국 잔치에 초대하시고 함께 먹고 마시며, 참 구원의 길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춤을 추지 않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듣고도 반응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를 애통하는 모습이 없습니다. 덤덤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속한 자들의 완악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영접하기를 원하셨지만, 잃어버린 바 된 그 백성들은 반응이 없었습니다.

요한이 먼저 와서 천국 복음을 외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전파하였을 때와 별 다름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구원의 복음, 심판의 소식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를 (마22:5), (히2:3)에서 만납니다.

천국 복음에 무관심한 사람들(마22:5)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 차로 가고

구원의 길에 무관심의 죄(히2 3)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나를 신부로 맞아 주시는 신랑 되신 주님의 피리 소리입니까?
아니면, 나의 옛사람을 장사지내라는 심판주의 노랫소리입니까?
주님께 반응하십시오. 구원의 기쁨으로 환호하든지, 애통함으로 가슴을 치든지 반응하십시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493장)



2. 능력을 보십니까? 겸손히 회개하십시오.

(20)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2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1) 예수님께서는 연약한 자에게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초기 사역 때부터 소외 받고 있는 도시들, 곧 팔레스타인의 북부 지역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 주셨습니다(마4:12-17). 그 가운데는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과 같은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도시들보다 월등히 예수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연약한 백성이요, 흑암에 사는 백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2) 교만이 주님의 사랑을 거부하게 하였습니다.


고라신과 뱃새다와 가버나움이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한 것은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높게 생각하였습니다.
자신들을 크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21)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3) 회개를 거부한 자가 당하는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이 회개하지 않는, 그 결과로 그들은 음부에까지 낮아지는 주님의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23)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교만하여 높아지려 하는 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2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반드시 심판을 받아 영벌에 처하게 됩니다.


a. 거역하는 자는 낮아집니다(시106:43)

43 여호와께서 여러 번 저희를 건지시나 저희가 꾀로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인하여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b. 교만한 자는 낮아집니다(잠29:23)

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C. 저주받고 영벌에 떨어집니다.(마25:41)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D·불신의 결과로 무서운 심판에 떨어집니다(계21:8)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주님께서 나의 생애를 찾아오셔서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고 계심을 믿습니까?
더욱 겸손하십시오.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를 이루십시오.
마음을 악한 사탄으로부터 빼앗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마음을 사탄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분명 두 가지 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만리장성을 다녀온 분은 지키는 일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끝까지 겸손하십시다.
그리고 회개함으로 구원을 이룹시다.

예화]
저는 이번 여행에 고등학교 친했던 친구를 몇 사람 만나는 기쁨을 가졌습니다. 30년만에 만난 친구들입니다. 연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쁜 일을 모두 제껴 두고 우선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친한 친구였으니까요.
어떻게 성숙하였을까?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목사 가운을 다 벗어두고 존대하는 말까지 다 내려놓고 그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어떤 친구는 많은 고난을 거치면서 아름다운 성숙을 이루었습니다. 몇 번을 만나도 자랑스럽고 반가웠어요.
어떤 친구는 필요 이상으로 교만한 것을 보았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보고 싶어 찾아온 친구에게 자신의 똑똑하고 위대함을 보이려고 애를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많은 성취를 하고도 얼마든지 겸손한 사람들을 보아온 저로서는 솔직히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님의 입장이니까 그냥 밥을 얻어먹기는 했지만, 안타까운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교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십니다.
대신 우리 생애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능하신 손길을 만나시거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십시오.


3. 주님은 오늘도 이런 자를 초청하십니다.

1) 어린아이와 같은 이

(25)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배척한 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자신을 영접할 만한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하나님을 영접하고 의뢰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부모를 따르며 부모를 의지하는 아이처럼 하나님을 따르고 의뢰하는 자들을 주님께서는 초청하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이를 위한 천국 (마18:3)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

(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과 같이 교만한 사람은 주님을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다음의 세 부류로 나누고 있다.
첫째, 율법(장로들의 전통에 의해 추가된 것까지도 포함하여,막7:3)의 멍에를 견디기 어려운 짐으로 여기는 유대인들.
둘째,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죄인들.
셋째, 삶에 대한 염려와 인간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에 짓눌려 있다고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이다(Wesley).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도 감당을 하실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죄를 인식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부르십니다. 자기의 고통과 연약함을 느낄 때에야 하나님을 바로 구하게 됩니다.  

병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를 부르십니다(마9:12)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무거운 죄의 짐을 대신 지셨고 십자가에서 수고하셨습니다.
 

목마름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를 부르십니다(요7:37)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배우는 사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멍에는 순종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삶 속에서 순종한다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참조, 요14:21).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으로 겸손하여 나귀를 타나니(슥 9:9)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7-8). 온유는 그리스도께서 그 역사(일)에 의해 보여주신 인격적 특성입니다(고후 10:1, 빌 21:8).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는 오실 메시아를 온유하신 분이라 선포하셨습니다(슥 9:9).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시 37:11에 기초하여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하시고, 그는 땅을 차지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마 5:5).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렇게 보면, 온유는 인간의 성격이나 노력 이상입니다.
마음이 온유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관계에 있는 그는 하나님의 유업인 온유함을 이어받습니다.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이 창조된 인간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열매]요, 은사의 하나입니다.(갈 5:22).
온유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끊임없이 추구해야할 구체적인 생활목표입니다(엡 4:2, 골 3:12, 딤전 6:11, 딤후 2:25, 벧전3:4).

헨리 나웬의 (영성에의 길)을 따라 말하자면,
온유는 가난한 자, 약한 자, 거절당한 자, 지체장애자, 불구자, 소경된 자, 등의 연약함과 무력함(정치,경제, 종교의 Power가 없는) 속에 맺히는 열매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고 연약한 자들에게는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극도로 연약해지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극도로 연약하나 열매를 맺는 최고의 순간이 바로 온유한 마음입니다.
온유는 그러나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주님을 기다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무언가가 일어날 소망을 가지고,그 약속이 내면에서 자라기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온유는 행위보다 존재 자체에 근거를 둔 가난한 마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자라는 중에 있음을 믿는 마음입니다





결론

세상에서 지친 인생 길을 갑니다.
지탱할 수 없어 쓰러집니다.
그런데 힘이 강한 분이 다가 옵니다.
그분이 나의 멍에를 함께 메십니다.
쉬임이 찾아옵니다.

죄와 죽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죄와 죽음의 속박을 누구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죄와 죽음의 멍에를 이기신 주님이 함께 져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합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입니다. 영접하면 영생에 이르고, 거부하면 심판(영벌)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할 합니다.
말로만이 아닌 순종으로 온유하신 주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미국 8대 애덤스 대통령의 일화입니다. 거리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동안 잘 지냈나?
애덤스: 그렇게 못하네. 머리는 새고, 벽은 허물어져 가고 있다네. 좋은 나라로 이민을 갈 준비를 하고 있네.
친구: (노발대발하며) 아니 전직 대통령을 그렇게 예우하다니 그럴 수가 있나.
애덤스: 내말은 그런 뜻이 아니네. 늙어서 기억력도 쇠해지고, 몸도 늙어서 무너질 날이 가깝다는 말일세. 죽어 육신의 장막을 떠나면 자네들을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그곳에서 기다리겼네.


우리는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그분의 온유함과 겸손함 가운데 부르시고 내 안에서 일하실 때, 내 안에도 그분의 온유와 겸손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온유와 겸손이 내 안에서 자라기 시작할 때, 참된 쉬임이 있습니다.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받아 참된 쉬임을 얻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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