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말씀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형제의 동영상 한 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donghaeng.net/duty/duty.swf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은 쉽고 즐거운 그런 일이 아닙니다.
자기를 십자가 아래 내려놓는 일이기에 힘이 듭니다.
이웃을 살리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떨어져야하고, 자기 생명을 미워하며,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고가야 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참 주(主)요 스승이십니다.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주라는 명칭은 권위자에게 붙이는 경칭입니다. 노예가 주인에게 붙이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에 대해 주라 부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이름을 부르기가 송구스러워서 주(아도나이)라 부르곤 하였습니다
신약(고전12:3)에서는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서 주시라 부르고 있습니다. 신앙과 예배의 대상으로 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대한 신앙에서 초대교회는 온땅의 주권자요라는 의미로 주라고 표현하고 있지요.
주는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생과 사의 지배자이십니다.
피조세계의 왕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것이지요(빌2:6-11)
의심 많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백합니다.
황제숭배가 팽배하던 시절에는 그리스도만을 주고 고백하던 이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우리ㅡㄴ 성경 맨 마지막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를 끝마침입니다.
이런 기독교 역사적인 이유를 넘어서 예수님께서 참 주요 스승이심을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참되신 주요 스승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던 아들이 불쑥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지옥을 누가 만들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왜 지옥을 만들었을까요'라는 의미로도 생각되었습니다.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쓰레기 처리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사람들을 쓰레기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외아들을 주시면서까지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성경에 써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누구도 지옥에 가길 원치 않으시니까. 그러나 지옥은 천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죽으시기까지 온 세상에 드러낸 점에서 참된 주님이시요 스승이십니다.
2.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발씻기는 일은 유대인 사회에서는 종조차도 의무적으로 하는 일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누군가 꼭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사역을 하였기 때문에 저마다 발이 더러워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유월절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서로 씻겨주든지 아니면 자기가 자원해서 씻든지 아니면 누군가 씻겨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제자들이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을 자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사역을 하였기 때문에 저마다 피곤하였을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습니다.
1] 하나님 나라의 겸손을 만납니다.
2] 하나님 나라 백성의 섬김을 만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섬기는 모습을 창세기에서 만납니다.
[ 창18:2-5]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3] 하나님 나라 백성 간의 교제를 만납니다.
이는 나아가 씻김이란 면에서 죄를 씻기시려고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는 속죄를 예표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용서를 위한 씻기심입니다.
1] 모든 죄를 용서하는 씻기심입니다.
2] 조건없는 용서의 씻기십니다.
3] 영원한 용서의 씻기심입니다.
3. 우리는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4b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섬기는 삶까지!
종이 되시는 삶까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문제를 씻으시기까지!
섬기는 삶입니다.
그것은 발을 씻기는 삶으로 섬기시는 모형이 되셨습니다.
1] 주님께서는 발을 씻겨주는 섬기는 삶으로 형제를 용서하는 사랑을 실천하라 명하십니다.
형제의 더러운 때와 냄새를 드러내고 말하고 다니고 즐거워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챤은 형제의 냄새와 때를 씻어버리는 삶입니다. 냄새나는 부분을 씻어 버리고 닦아 냄새를 없애버리는 것이지요.
"분열병"이 우리 민족의 피 가운데 흐르고 있다는 슬픈 자조가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형제의 냄새와 때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번 맡은 냄새 영원한 간직하고 삽니다. 절대 용서하지 못합니다. 씻어주기는 커녕 그것이 늘어붙어있기를 속으로 바랍니다.
수십년 전에 있었던 냄새요, 때이니까 지금쯤은 벌써 없어졌을 만도 한데 사람들은 그것을 현재에 그렇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때로는 대수롭지 못한 일로 등을 돌리고 살다가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결국은 분열을 해야 답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죠나단 스위프트의 작품 '걸리버 여행기'에 보면, 소인국 사람들은 삶은 계란을 가운데부터 까먹는 것이 옳은가 뾰쪽한 끝에서부터 까먹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로 싸우다 수만 명이 죽어갑니다.
비본질 문제에 목숨을 거는 다르다는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분열하는 아픔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1] 쪼개는 데까지 가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2] 합치는 데 끼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3] 그런데 가장 아름다운 섬김의 자세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2] 더러움을 씻겨주는 사랑을 실천하라 명하십니다.
"누가누가 잘하나" 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어온 표어입니다.
경쟁구도 이기기 위해 별짓을 다합니다.
삶을 싸움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마귀의 원리입니다.
협동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짐승은 개미랍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1-2)
[1] 경쟁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허물어집니다.
[2] 경쟁은 자신의 만족과 평안을 깹니다.
[3] 경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깹니다.
[4] 자신의 가치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나 그대로의 가치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여야 합니다.
[5] 남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상대의 차이를 알고, 그 차이를 인정하면 되는데 판단하고 공격하는 파괴된 인격을 자기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조건없이 씻겨주는 사랑을 실천하라 명하십니다.
3] 진정 깊은 교제가 있는 사랑을 실천하라 명하십니다.
무엇이 우리의 깊은 교제를 막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양승헌 목사님의 정리하신 책 "병든 사회에서 자라는 건강한 아이들"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부지런한 것은 미덕이지만 빨리 조급증은 정신병(강박증)이다. 이로 인하여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고국에선 연 1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가정 친구 관계를 잃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조급증으로 태어난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 하시었다
1]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시간에 최상을 준비
2] 느긋함을 훈련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3초만 기다려 주세요.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출발신호가 떨어졌는데 앞 차가 그냥 서 있어도 경적을 누르지 말고 3초만 기다려 주세요. 그 사람이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지금 갈등을 겪고 있을지 모릅니다.
내 차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서서 3초만 기다려 주세요. 그 사람 아내가 진짜 아플지도 모릅니다.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을 닫으세요. 그가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웃어줄 수 있도록.
길을 가다가 뉴스를 듣는데 불행을 맞이한 사람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 잠시 눈을 감고 3초만 기도해 주세요. 건젠가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할 테니까요.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을 때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내가 화낼 일이 보잘 것 없는 일은 아닌지
차창 밖으로 괙를 내밀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3초만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세요. 그 아이가 크면 분명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할 테니까요.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사람을 볼 때 욕하지 말고 3초만 생각하세요. 내 가 그 사람의 환경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 울상을 짓고 있을 때 3초만 말없이 웃어주세요. 잘못을 뉘우치며 내 품으로 달려올지도 모르니까요.
아내가 화가 나서 소나기처럼 퍼부을 때 3초만 미소를 짓고 들어주세요. 저녁상에 넉넉한 웃음과 색다른 반찬이 올라올지 모르니까요.
빨리빨리 살다가, 빨리빨리 망하고, 빨리빨리 죽지 말지 우리는 영원을 살 사람이다."
조금증이 우리의 깊은 교제를 막아버립니다.
진정한 섬김이 있는 사랑을 실천하라 명하십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기독교 영성 열두 스펙트럼'이란 책에서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섬김의 훈련은 그 자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필요와 관심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섬김은 인정을 구하지 않습니다. 외모와 인정에 따라 살기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대신 친절, 호의, 민감성 그리고 흔히 무시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며 살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와 관심에 주목하는, 인정을 구하지 않는!" 진정한 섬김은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훈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됩니다.
운동 선수가 어떤 기술에 익숙해지기까지에는 수많은 훈련이 필요하듯이 다른 사람의 필요와 관심에 주목하는 섬김은 훈련입니다.
[예화]
창세기에 보면, 섬기는 삶의 본이 되는 요셉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창40:6-8)
지난 2주간 한나회원들이 빚은 만두는 4000개가 넘습니다. 여러 회원들이 한 몸이 되어서 열심히 서머나 선교 만두를 빚어서 모은 $1.000을 원주민과 북방 선교를 위해 헌금한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어제도 또 주문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값을 떠나 얼마나 정성과 마음을 모으는 지 모릅니다.
우리의 필요 때문이 아닙니다.
온전히 북방에 있는 우리 외로운 형제들의 필요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아진 헌금은 그곳에 가면 큰 돈이 됩니다.
왠만한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액수로 변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우리에게 그렇게 커보이지 않는 물질도 선교지에 가면 위력을 발휘하니 말입니다.
쓰고 나누어주면 커지는 법칙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북한 동족의 필요와 관심을 무시합니다. 그러면서 통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통일논을 말하기도 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한국일보가 조사한 여론 조사에 '지인 가운데 어떤 사람의 결혼소식을 접할 때 마음의 상처를 가장 크게 받느냐'는 질문에 놀랍게도 남녀 모두 두번째는 '친한 친구'(남 23.6%, 여 25.1%)가 차지했습니다.
친한 친구의 결혼을 가장 축복해주어야 하고 기뻐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사람의 심리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의 마음 구조가 타인을 기뻐하고 섬기는 것을 싫어합니다. 죄 아래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 주님이시요 스승이신 예수님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은 곧 이어졌던 십자가에서의 피흘리심과 이어져서 위대한 회복을 이루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참 주님이시요 스승이신 예수님의 섬기심에 동참한다면 우리도 이웃에게 하나님의 섬김을 꽃피울 수 있는 줄 압니다.
[성경본문]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