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을 키우는 농부들은 좋은 수확을 원합니다. 그러나 농부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때로 원치 않는 가라지가 나와 자라니 그것은 문제입니다.
잔디를 가꾸는 사람들은 잡초가 문제입니다.
나라마다 쓰레기 처리가 문제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영적인 가라지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 곳곳에 가라지는 뿌려지고 자라납니다.
중고등 학생이 음란싸이트를 운영하다 적발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놀랐습니다. 가라지가 그 어린 소년의 마음에 뿌려진 경우지요.
가라지는 어릴 때 얼른 뽑아야 합니다.
더 번성치 못하도록 뿌리째 뽑아야 합니다.
인생이 잘나갈 때, 가라지는 거기에 뿌려집니다
출세하면 그 출세한 인생에 가라지가 뿌려집니다.
돈이 잘 벌릴 때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가라지를 부유한 그 가정에 뿌리기 위해 노리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좋은 열매를 원하시므로 이 영적인 가라지 문제를 알기 원하십니다. 독생자까지 내어 주시고 값주고 사신 자녀들이 그 가라지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가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 특별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내 인생에 뿌려지는 가라지 문제를 두고 깊이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는 좋은 씨를 심으셨습니다.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예수님은 이 세상의 선한 주인이십니다.
창조의 주, 하나님은 이 세상의 소유주이십니다.
24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이사야 5장 말씀을 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 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사랑하는 자를 위한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름진 산에 하나님께서 친히 땅을 파서 돌을 제하시고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손수 포도원을 세우셨습니다
그 포도원을 노래하십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이 낭만적이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의 마음이 오늘 본문에서도 나타납니다.
좋은 씨를 하나님의 밭에 뿌리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이것에 비유하십니다.
24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세상에 천국의 아들들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추수할 날을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독생자의 생명을 주시고, 우리들을 이 세상에 심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때 천국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씨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람 중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속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삶에서 열매를 맺읍시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진짜라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는 곳에 열매가 있습니다.
소망의 인내가 있는 곳에 열매가 있습니다.
알곡신자가 됩시다. 알곡신자답게 삽시다.
2. 어두운 밤, 원수도 씨를 뿌립니다.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우리 인생에는 어두운 밤도 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깊은 무기력한 시간에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고 지나갑니다.
원수 마귀(디아볼로스)는 라는 말은 '대적하는 자'의 의미입니다. '중상하고 모략하는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의 작품을 망치는 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곡식인 성도를 중상하고 이간하는 자입니다. 마귀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가라지를 심어서 천국의 아들들에게 타격을 주고, 하나님의 작품이어야 할 세상을 더욱 악하고 추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마귀의 수법은 미련스럽지 않습니다. 알곡을 뿌리뽑지 않고 그 위에 뿌리의 힘이 훨씬 좋은 가라지를 뿌립니다. 언약의 아들을 못살게 군 종의 아들 이스마엘과 같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추수 때까지 견뎌내는 것이 성도의 살길입니다.
그의 시도는 얼마간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가라지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의 종들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27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좋은 곡식만이 무럭무럭 자라는 아름다운 밭에는 흉측한 가라지가 목을 곧게 하고 한 가운데 꼿꼿이 서 있었습니다.
밭의 이미지는 손상되었습니다.
곡식을 심은 그분이 실패하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인은 분명 좋은 씨를 심었는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단 말입니까?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25절)라는 구절을 보면 마귀가 일하는 시간은 어두운 때입니다.
그 활동이 잘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않을 때입니다.
지치고 피곤하여 사람들이 안식하고 방심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방심은 금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근신하라, 깨어라"(벧전5:8)고 경고합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가라지는 교만입니다.
배운 자만 교만한 게 아닙니다. 배우지 않은 자도 교만합니다.
가진 자만 교만한 게 아닙니다. 갖지 못한 자도 교만합니다.
사장같은 기업주들만 교만한 게 아닙니다. 노동자도 교만합니다.
목사만 교만한 게 아닙니다. 평신도들도 교만합니다.
어른만 교만만 교만한 게 아닙니다. 어린이도 교만합니다.
남자만 교만만 교만한 게 아닙니다. 여자도 교만합니다.
이 교만은 심각한 가라지입니다.
가라지는 모양은 곡식과 비슷하지만 곡식은 아닙니다.
그리고 곡식에 유해합니다.
가라지는 좋은 결실을 방해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가라지는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가라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가라지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말로 행동으로 교훈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르는 것들이 가라지입니다. 이단들이 바로 그런 존재들입니다.
누구도 가라지 신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있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남(내적인 영접)과 성화가 뒷받침되지 못할 때, 사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그의 마음 밭에 믿음의 씨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어둠의 권세는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그의 젊음에 환락의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그 열매를 그는 13년간이나 키웠습니다.
마니교도들은 진리를 갈망하는 어거스틴의 마음 속에 성경과 그리스 철학을 교묘하게 배합시킨 이단의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그가 마니교의 지도자 파우스투스와 만나 대화하는 동안, 그 거짓된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기까지 그는 속아 9년간을 허송세월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암브로시우스를 만나 자기 안에 심어진 믿음의 씨를 발견했습니다. 암부로시우스가 '많은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죄를 짓지만 다윗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때는 떠나버린다'고 설교할 때, 어거스틴은 떠날 수 없었습니다. 다윗과 더불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어머님이 뿌려놓은 믿음의 씨는 그분의 기도 가운데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이미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던 것입니다. '그는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었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네. 내 마음은 평안해."
그로부터 44년간 어거스틴은 자신의 밭에 곡식을 가지고 많은 신앙서적을 기록하여 주님께 바쳤습니다. 어거스틴이 자신의 마음 밭에 열린 열매 가운데 이런 아름다운 평안의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으며,
우리의 마음은 주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그의 전반기 생애 20년을 사탄이 뿌려 두고 간 가라지에 의해서 추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주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그는 안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은 가라지가 교회에서 자라게 하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자신들 가운데서도 늘 들포도를 경험합니다. 여기서 씨가 뿌려진 장소는 분명 '세상'입니다. 그것은 교회도 아직 온전한 천국이 아니라 바로 세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이런 가라지가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을 흉하게 망치고 있는 이 가라지의 존재를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가득한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의 존재를 온전히 구분하여 가려내기까지 우리에겐 평안이 없을 것입니다.
가라지는 좋은 결실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는 극상품 포도원의 포도나무에 맺힌 들포도와 같습니다.
신혼여행을 가서 가장 행복해야 할 그 시간에 마귀는 가라지를 뿌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복된 신혼여행에서 크게 싸우고 나누어집니다.
파킹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고국의 큰 교회에서는 주일에 예배 잘 드린 후, 차량 안내하는 분과 싸움을 하고 '네 혼자 해먹어라. 네가 집사냐?' 욕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있답니다. 가라지는 시도 때도 없이 뿌려지고 자랍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교우 여러분, 가라지를 늘 조심합시다.
예수님께서 사신 세상에도 가라지가 있었습니다. 많았습니다. 그러나 가라지가 많은 세상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3. 주님께는 좋은 답이 있습니다.
27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위기의 심각성에 비해 주인의 태도는 지극히 평온합니다. 대응도 지극히 자애롭습니다. "가만 두어라"는 대답에서 악인의 득세, 극성은 주님의 무기력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참으심과 관용, 사랑 때문입니다.
대신 주인은 추수 때에 두 길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든지 풀무불에서 이를 갈든지 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신 주인은 추수 때에 가라지는 가라지대로 알곡은 알곡대로 묶겠다고 합니다. 이는 서로 섞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가라지는 불에 태우고 알곡은 곡간에 모아들일 것을 말씀하십니다. 냉정한 구별과 철저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 우선 예수님의 가르침 속엔 악인의 말로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49절).
악인은 악을 행하면서도 자신의 악행과 본질을 감추고 삽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회칠한 무덤'(23:27)같이 하고, 자기의 본질은 '광명의 천사'(고후11:4))로 가장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위장이나 가식도 주님 앞에선 명확히 본질을 드러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악인이 위장술의 대가(大家)라면 주님은 영적인 대'감별사(鑑別師)'이시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25:32) 분별하십니다.
세상 끝 날에는 반드시 가라지가 심판을 받습니다.
'넘어지게 하는 것들'과 '불법을 행하는' 가라지들은 심판을 받고 풀무불에 던져집니다.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42절).
이 세상에선 때로 의인들이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단3:23) 떨어집니다. 그러나 그 불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10:28) 불입니다.
반면 악인이 최후에 던져질 풀무불은 '지옥'불입니다.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막9:43)입니다. 풀무불은 '볼못'(계19:20), '영원한 불'(25:41;눅16:24)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타나는 카미노스(아궁이, 화덕, 화로)를 비롯한 이러한 표현은 한마디로 지옥을 나타내며, 그것이 지니고 있는 끔찍한 고통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풀무불에 던져진 자들의 상황을 본문은 '울며 이를 간다'고 말해 줍니다.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느니라'(42절).
성도들은 세상에서 슬피 우는 일은 있지만 이를 갈진 않습니다.
악인이 성도를 괴롭히긴 하나 장차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기(계21:3,4)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한번 풀무 불에 던져지면 소생의 기회가 없습니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 일만이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불법자는 풀무불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의인에게는 악인의 고통스러운 지옥의 상황과 대조적으로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가 후원하는 황규만 선교사님이 선교하고 계시는 미얀마 선교의 개척자는 아도니람 져드슨이란 분입니다.
그이 부친은 플리머스 회중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그 부모님께서는 자라는 그에게 건강하고 좋은 복음을 잘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모님의 곁을 떠나 브라운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회의주의자인 친구 제이콥 에임스를 사귀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언변으로 그의 마음에 회의주의적인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져드슨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 부모님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그의 불신앙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가족 예배때마다 경건하게 참여했고, 주일 예배에도 잘 참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회의주의란 가라지가 너무 강하게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가라지는 무성히 자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더 이상 성경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을 수 없다고 부모님께 이실직고하고 고향을 떠나 뉴욕에 갔습니다. 부모님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뉴욕에 가서 의욕적으로 인생에 도전해 보았지만, 하는 일마다 철저히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처 없이 그러나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던 그에게 밤이 찾아 왔습니다. 그는 어떤 마을 모텔에 찾아 들었습니다.
그가 묵고 있는 옆방에서 환자의 신음소리가 계속 들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인 그는 옆방에서 고통스러워하던 사람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주인은 그가 죽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관 주인이 말해 준 사람의 이름은 회의론을 그에게 심어 준, 그의 옛 친구 제이콥 에임스라고 했습니다.
그에겐 충격이었습니다. 지난밤 그토록 고통하면서 죽어간, 그의 친구 제이콥 에임스가 지금 어디 있을까? 답이 없었습니다. 제이콥 에임스의 가라지 믿음이란 아무런 삶에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대신 그가 회의하였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심어둔 곡식 같은 믿음이 그에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결혼 12일만에 선교사로 인도를 향해 출발했고, 미얀마에서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미얀마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영어사전도 미얀마어로 완성했습니다. 6년간은 한 사람의 열매도 얻지 못하였지만, 그의 사후 100주년 기념일엔 200,000명의 그리스도인이 미얀마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이 비유는 내 마음의 상태입니다. 가정의 상태요, 교회 상태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혼합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곧 곡식이 잘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문제를 정치나 경제와 같은 외적 환경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뿌려진 가라지 문제임을 밝혀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이 사람은 나에게 가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은 맞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이 없으면 천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 없어져도 행복은 오지 않습니다.
짐 잭슨이란 앵커맨의 이야기입니다. 22년간 대통령 못지 않은 부귀를 누렸습니다.
교만!!!
25년간의 조강지처 버리고 새파란 젊은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2년만에 이혼했습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습니다.
마약과 알콜에 중독되었습니다.
방송 중 실수를 했습니다.
다행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고 마약과 알콜에서 해방었습니다.
88년, 다시 방송을 시작하면서 그가 남긴 첫마디입니다.
"나는 앵커맨으로 훈련받았을 뿐, 사생활은 훈련받지 못했다. 25년 아내가 귀한 존재인 줄 몰랐다."
아내는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곡식입니다.
여러분의 가라지는 무엇입니까?
가라지의 생명은 시한부 생명입니다. 원래 세상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라지를 인하여 너무 절망하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좋은 곡식이 훨씬 더 많습니다. 몇 개의 가라지 때문에 너무 절망하지 마십시오
가라지가 없고 평탄하면 행복하리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신앙으로 견고히 설 때, 가라지가 자라지를 못합니다.
링컨의 환경이 가라지 많은 세상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가라지 때문에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겸손해질 수 있었습니다.
[예화 추가]
독일 작가 A. 슈니츨러가 쓴 <눈먼 제로니모와 그의 형>의 내용을 잠시 소개합니다.
어렸을 때 실수로 동생의 눈을 실명하게 만든 형은 동생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그와 함께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떠돌아다니는 악사로 살아갑니다.
어느 날 짖궂은 손님 하나가 돈을 주지도 않고 동생 제로니모에게 말을 합니다.
<네 동료에게 내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주었으니까 속지마>
밝은 표정으로 제로니모가 대답을 합니다.
<손님 그 사람은 속이지 않아요 저의 형인걸요>
그러자 그 손님은 <사람은 누구나 믿지마 그 사람이 누구건 간에>라고 말을 하고 사라집니다.
제로니모의 마음에 의심의 독을 부어 넣은 것입니다.
저녁 때 동생이 형에게 말합니다.
<형, 그 돈을 만져보게 해줘, 최근에는 그렇게 큰돈을 만져본 적이 없잖아>
형이 당황해서 대답을 합니다.
<무슨 돈?, 그렇게 큰 돈을 받은 적이 없어>
그러자 동생 제로니모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집니다.
그는 밤 늦게까지 안마시던 술을 마시고 마음은 그의 형을 떠납니다.
당황한 형은 그의 마음을 되돌려 보려고 애를 쓰지만 동생 제로니모의 마음은 돌아서지를 않습니다.
형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한밤중에 같은 여관에 든 부자 손님의 방에 들어가 지갑에서 그 액수를 꺼냅니다.
새벽에 동생을 깨워 서둘러 여관을 나선 그는 벌판을 지나가면서 돈을 내밉니다.
<사실 돈이 여기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동생 제로니모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대답할 뿐입니다.
<그럴 줄 알았어, 나도 언제나 바보는 아니니까>라고 말입니다.
형의 마음은 칼로 저미는 듯이 쓰라립니다.
도무지 동생의 마음에서 사랑과 신뢰를 되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벽길을 따라 온 경찰에게 형은 절도죄로 체포되고 갑자기 모든 것을 깨닫게 된 동생 제로니모는 목이 잠기어 침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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