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March 2015

요3:31-36 위로부터 오신 분이 주는 세가지 축복

[들어가는 말]

    신앙 생활이 누구나 다 하는 같은 것이려니 생각할 때가 있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위로부터 오신 이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위로부터 오신이가 전해주는 축복을 모르고 오직 땅의 것에만 매여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로부터 오신이를 바로 알고 그분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말할 수 없는 감격이 있습니다. 하늘을 사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거듭나지 못하고, 땅에 매여 살 때, 죽음의 권세가 우리를 짓누릅니다. 영생이 없습니다.
    진정한 삶은 위로부터 오시는 분을 만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위로부터 오신 분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함을 말씀하신 까닭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니고데모는 위로부터 거듭나야 되겠다는 말을 주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위로부터 독생자를 보내주신 이유입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주십니다.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한량없이 주십니다.

   1] '위로부터 오시는 이'가 누구십니까?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하늘로서 오시는 이'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 하늘로서 오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는 같은 분이십니다.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께서는

1] 만물 위에 계십니다.
2] 하나님 나라에서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십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4] 하나님의 성령을 한량없이 주십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것을 주십니다.

    저는 이번 성지를 순례하면서, 그리고 특히 나사렛에서 하루를  지내면서

'위로부터 오신 이'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나사렛에 들어가면서 '위로부터 오신 이'에 대하여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사렛에 거하면서 '위로부터 오신 이'에 대하여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외아들을 보내셨는데 나사렛이란 조그만 마을에 보내셨습니다.
위로부터 아들을 가장 낮은 나사렛에 보내셨습니다.
가장 낮은 사해바다로 물을 보내시듯
가장 비천한 땅 나사렛에 위로부터 오신 이를 보내셨습니다.
이는 나사렛에게 있어 큰 은혜입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가 육신을 입고 처음 찾아오신 곳은 베들레헴 이전에 나사렛이었다는 것은 나사렛의 영광입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기 10개월 전, 마리아의 몸 안에 찾아오셨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나사렛에, 여자의 몸에, 아기로, 찾아 오셨습니다.
위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나사렛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위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답답한 마리아의 몸 안에 10개월 동안 머무셨습니다.

    2천 년 전, 위로부터 오시는 이가 나사렛 마리아에게 왜 찾아 오실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2]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전사가 일러 가로되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런 놀라운 하나님 말씀을 어디서 들을 수 있습니까?
신문을 밤새워 뒤져보십시오.
여러분이 좋아하는 책들을 일생동안 뒤져보세요.
우리가 꾸는 꿈들을 다 모아보세요.
우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사는데 이런 말 들으셨습니까?
없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땅에서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소식을 듣을 수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로부터만 들을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마리아가 여인 중에 행복한 이유는 '위로부터 오신 이'로부터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감사함으로 받는 신앙입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찾아오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 마리아의 신앙은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나사렛의 수태고지 장소에 찾아가서 새롭게 생각하였던 것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귀한 점이었습니다.
저는 구교도가 아닌 장로교인입니다. 마리아를 경배하지 않습니다.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위로부터 오신 이가 전해주신 하나님 말씀을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위로부터 오신 이가 전해주신 하나님 말씀에 자신의 몸을 열었습니다.
마리아는 위로부터 보내신 이가 주시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위로부터 오신 이의 주신 말씀을 기쁨으로 받을 뿐만 아니라, 10개월 동안, 나아가 더 많은 시간을 위로부터 오신이의 성령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고 30년 동안 그분과 함께 동거하였습니다.

    이런 마리아를 생각할 때, 참 귀하고 존경이 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생각 속에 조차도 제대로 채우지 못합니다.  10개월은 커녕 몇 분간 지속적으로 모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늘 딴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내 생각을 점령하곤 하니까요.
    저는 이른 새벽 2시! 나사렛 수태고지 교회 앞에 앉아서 주님께 새벽 기도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찾아오신 수태고지 교회 앞에 앉아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무엇을 잉태하고 있습니까?
주님 저는 지금 무엇으로 충만하여 있습니까?
마리아는 찾아오신 주님을 온 몸을 열어 모셔 들인 유일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찬양]

고개 들어 주를 맞이 해
엎드리어 경배하며 찬양
왕의 위엄을 신령과 진정한
찬양으로 영광돌려 만왕의 왕께

우리도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충만히 모셔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지금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아처럼 모셔들이고 계십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땅의 것들에는 배가 터지도록 충만해 있으면서도 위로부터 오시는 이에 대하여는 가난하기 짝이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31)

할렐루야!

    위로부터 오시는 이가 주시는 말씀과 성령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을 축원을 드립니다.


    이 세대의 특성 중 한 가지는 세속화입니다.

    얼마 전에 박재훈 목사님으로부터 찬송시 부탁을 받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윤춘병 선생님께서 시를 쓰시고 박재훈 목사님께서 작곡하신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동요로 잘 알려진 노래입니다.

'어머님 은혜'란 노래지요.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키우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아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 게 또 하나 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아

    이 노래가 우리들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가는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동요로 쓴 것이 아니고 찬송으로 쓴 것이랍니다. 원래 3절이 있는데요. 세상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3절을 임의로 빼버리고 1,2절만 사용하면서 동요로 전환되버렸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 3절을 인용합니다.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어머님의 그- 사랑 거룩한 사랑
날- 마다 주님 앞에 감사 올-리자
사-랑의 어머님을 주신 은-혜를!


    2천 년 전에 위로부터 오시는 이가 나사렛 마리아에게 왜 찾아 오셨습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2]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땅으로부터 오는 세속의 소리에 빠져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성지 순례를 마치고 결심한 한 가지는 세상 신문 보는 시간을 대폭 줄인 것입니다. 그렇게 의미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중요한 사실은
하늘로서 오시는 이가 우리 곁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늘로서 오시는 이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해주신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격하고 사십니다.

[찬송]

나 이제 주께 감사하리라
나 이제 주께 감사하리라
오늘 하루 하루도 주께 감사하리라
나 이제 주께 감사하리라.

주 말씀 받아 승리하리라
주 말씀 받아 승리하리라
오늘 하루하루도 주의 말씀 들으며
주 말씀 받아 승리하리라.

주 성령 인도 받아 살리라
주 성령 인도 받아 살리라
위로부터 오신 이 성령충만 주시니
주 성령 인도 받아 살리라

[노하덕 목사]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도 위로부터 오시는 분은 성령 안에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오늘도 위로부터 오시는 분은 말씀안에서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위함입니다.

날마다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성령을 위로부터 오시는 분께 충만히 받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일까요?

2. 위로부터 오시는 분이 만물을 주관하십니다.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물을 사랑하는 아들의 손에 다 맡기셨습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그 손으로 다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입니다.
만물을 악의 권세가 주관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 파멸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저는 자신의 인생을 이단에 맡겼다가 패망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무너짐이 정말 무섭습니다.
하나님을 부른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예요.
아무 것에나 내 인생을 맡길 수 없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오신 이의 손에 내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사랑하는 아들의 손에 다 맡기셨습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의 손에 내 인생을 맡겨야 참된 삶이 있습니다.

[예화]

    다음은 지난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아시아권에서 1위를 확보한 김인식 감독에 관한 글입니다. 그는 중국 대만에 이어 일본까지 꺾고 예선에서 1위로 통과한 후 그 리더십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런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리더십]

김인식 감독은 말 한마디의 위력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소외된 선수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좌절을 맛본 선수들을 향해서는 자신감을 안겨 주려고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그런 지도자입니다.
그가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김동주는 고질적인 손목부상에 시달리는 선수입니다. 대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손목통증이 엄습하면 그는 어쩔 수 없이 감독을 찾아옵니다. “오늘 경기는 쉬고 싶은데요.” 김동주의 요청에 대해 김 감독은 “그래 알아서 쉬어라.”라는 딱 한마디 말만 할 뿐입니다. 다른 감독 같았으면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네가 지금 쉴 때냐.”라는 위협형에서부터 “어떻게 안 되겠느냐.”는 읍소형, 그리고 “정 그러면 한 타석이라도 안 될까.”라는 타협형까지, 적어도 김 감독처럼 선수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예상 밖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결장 요청은 김동주가 했지만 정작 게임이 시작되면 가장 갑갑해하는 사람이 김동주가 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경기가 팽팽하게 돌아가면 언제 아팠냐는 듯 김동주가 방망이를 들고 연습스윙을 하는 등 의욕을 내비칩니다. 이윽고 경기 후반 황금찬스에선 자신이 결장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감독 앞으로 달려가 통사정을 합니다. “감독님 제가 한번 대타로 나갈 테니, 믿고 기용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충성심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샘솟아야 합니다. 결코 강압적인 분위기나 외형적인 체계나 틀에 의해서 만들어져서는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충성심이어야 자발적인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멍석을 깔아주는 리더십]

2005년 시즌 김 감독이 맡았던 한화는 시즌 전 약팀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을 깼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물갔다'고 여겼던 선수들이 분발했습니다. 타선에선 초반 김인철이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기억에도 가물거렸던 만 서른여섯의 지연규는 대뜸 마무리투수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에이스 문동환은 6년 만에 10승 투수로 돌아왔습니다. 시즌 후반 조성민이 승리투수가 됐을 때는 모두가 놀랐습니다.
정규 시즌을 마치고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도 김 감독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습니다. 준 플레이오프 3차전 승리투수 최영필은, 2002년부터 3년 동안 1승(6패)밖에 올리지 못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준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3차전에 등판, 7이닝을 넘게 던지면서 승리투수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올해 무엇이 달라졌기에 정규시즌(8승)에서도, 포스트시즌에서도 갑자기 잘하는 겁니까?” 최영필은 잠시 뜸을 들였습니다. 그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자리가 없었습니다. 올해 달라졌다면 그 부분입니다. 올해는 자리가 있고,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 감독의 '멍석' 리더십입니다. “야구는 선수들이 한다.”는 말은 야구계의 금언(金言)입니다. 감독이 아무리 뛰어나고, 수읽기가 탁월해도 직접 야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감독의 가장 큰 역할은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멍석을, 제대로 된 선수에게 깔아주는 게 바람직한 리더십입니다.
리더는 이끄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혼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리더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믿고 그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기회를 주는 사람입니다.

[믿고 기다리는 리더십]

그런데 김 감독에게는 ‘재활공장 공장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한물간 선수들을 다시 그라운드에 서게 하는 데 있어 그에게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부상, 가정불화, 모난 성격 등으로 야구를 접었던 선수들이 그의 지도하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온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앞서 예를 들었듯이 30대 중반의 나이로 은퇴를 고려했던 지연규는 마무리 투수로서 훌륭한 성적을 냈습니다. 가정불화와 부상으로 야구판을 떠났던 조성민도 불펜투수로 거듭났습니다.
당연히 재활의 특별한 노하우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세간의 질문에 김 감독은 '별거 없어, 지네들이 다 알아서 잘해'라며 다소 김빠진 대답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감독에게는 특별한 재활방식이 없습니다. 굳이 언급하면 '신뢰'와 '믿음'이 그만의 노하우입니다. 그 신뢰 덕에 선수들이 자신이 가진 기량을 뛰어 넘는 활약을 펼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축구를 재부흥시킨 딕 아드보카트 국가대표 감독도 경기 중 벤치로 돌아오는 선수들 개개인에게 격력하며 악수를 합니다. 그가 가진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신뢰로 선수단을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한 야구 감독의 선수 관리도 이렇게 많은 영향력을 주고 있는데,

주님께서 만물을 그 손으로 다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입니까?

    욥이 주님께서 만물을 그 손으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그 모진 고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외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그 손으로 다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당하고 있는 기도제목을 위로부터 오시는 분께 맡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분만이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되십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일까요?

3. 위로부터 오신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누리게 하십니다.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이번 여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성전 기능을 잃고 예수님의 저주 아래 있던 예루살렘 성전은 철저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회교 사원이 황금빛을 발하며 자리잡고 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들어선 것을 보거든 말세가 가까운 것을 알라시던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 얼마나 웅장했는가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성전 벽 맨 밑 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그 성전의 웅장함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제가 양 손으로 재어보니까 길이가 양 팔로 다섯 번이 넘습니다. 여섯 번 가까이 재어졌습니다. 12m란 말이 옳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 무너졌습니다. 성전 한 쪽 벽만 남겨두어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며 통곡하도록 남겨두었습니다. 이름하여 통곡의 벽입니다.

    오늘 말씀대로입니다.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다윗의 궁궐도 무너져 있었습니다.
    헤롯의 궁궐도 무너져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은 나의 노래 가운데 수없이 등장하고 내 입술의 반주가 되었으면서도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지역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루살렘은 더 이상 낯선 이방지역이 아닙니다. 내가 몸을 실은 버스는 전속력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뚫고 들어오고 있는 것입나다.
   주일을 맞습니다. 함께 온 한국인 동행인 5인을 초대하여 함께 주님께 예배를 올렸습니다. 사회자 기도자 특송자 설교자 헌금봉사자 한 가지씩 나누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참 은혜롭습니다.
   아침을 나누고 달려간 곳은  다윗의 궁궐입니다. 다윗이 심혈을 기울여 세운 거대한 왕궁은 이미 완전히 무너져 있습니다. 그냥 저것이 침실이고 저건 화장실이었나보다, 이런 정도의 흔적만 수고한 발굴자들을 통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왕궁과 연결된 이스라엘 백성의 젓줄을 찾아 깊고 깊은 동굴을 들어가면서 압도당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단단하고 견고한 굴을 수십 분 더듬어 내려간 우리에게 물이 있는 곳에 다녀오려면 40분이 더 걸린다고 하니  열린 입을 다물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스라엘의 영광은 무너졌습니다.


    맛사다의 성터 역시 철저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맛사다란 영화를 보셨습니까? 정말 높은 요새입니다. 헤롯이 그 높은 요새에 궁궐을 지어놓았는데요. 참 기가 막힌 천연 요새입니다. 그러나 그 요새도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그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해 두고 관광지 내지 학습장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가이샤라의 성터 역시 무너져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의 영광을 구현하기 위해서 세워진 도시였습니다. 수로만 12Km가 된다는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지금도 원형 경기장이 남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곳에 갇혀 2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견고한 황제의 도시가 지금은 비참하게 무녀져서 관광객들의 발에 짓밟히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만인의 마음에 남아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만
가이샤라는 무너져서 밀려오는 바다 파도물에 씻기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대로였습니다.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감람 산에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왜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
지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36)란 말씀입니다.

      저는 다윗의 왕궁터 가까운 곳에, 겟세마네 동산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의 무너진 왕궁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기드론 골짜기가 있고 그 곳을 지나자마자 감람나무들이 과수원을 형성하고 있는 동산이 있습니다. 그곳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겟세마네 동산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기념하는 교회를 우리는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신 그 기도처소가 비록 천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있긴 하지만 다윗의 범죄 현장 근처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던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쓴 잔을 옮겨주십사고  기도하셨건만 옮겨주실 수 없던 성부 하나님의 마음이 특별한 아픔이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천년 전의 사랑하는 다윗의 죄를 감당해야만 했기 때문이지요.
이천 년 후의 내 죄까지 대신 져야만 하는 온전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대신 피땀 흘려 기도하시던 주님을 생각하면서 그분이 엎드려 있던 바위에 엎드려 한참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것만으로 부족하였던 우리 일행은 그 옆에 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그 한 시간의 졸음을 어쩌지 못하고 잠들어 있던 장소에 가서 엎드려 한없는 회한을 토해내었습니다. 아예 풀이 덮힌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냥 땅의 한 부분이 영원히 되어야 하는 것만 같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성찬을 나누기 위해 부르는 어떤 목사님의 두드리는 손길을 따라 일어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습니다.
성찬이 끝나고 저의 마음에서 조용히 한 찬양이 울려나왔습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고난 받으셨네

낮은 목소리로 찬송하는 나를 따라 몬트리얼에서 오신 목사님 한 분이 영어로 함께 찬양을 합니다.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들을 믿는 자에겐 영생이 있습니다.
    다윗이 위로부터 오시는 이를 곁에 계심을 믿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가 그리고 골고다의 희생이 그의 모든 죄를 씻고 영생을 준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들을 믿는 자에겐 영생이 있습니다.
우리가 위로부터 오시는 이를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가 그리고 골고다의 희생이 나의 모든 죄를 씻고 영생을 준 것을 믿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38)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기 천년 전이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2천 년 후든,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마무리하는 말]

    위로부터 오시는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한량없이 주십니다.
2]  위로부터 오시는 분이 만물을 주관해 주십니다.
3]  위로부터 오신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 놀라운 예수님의 증거를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분의 증거를 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침을 받았습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일까요?

말씀과 성령을 한량없이 주십니다,
그분이 모든 만물을 주관해주십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주십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분이 주시는 이 놀라운 하늘의 신앙 기쁨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성경본문]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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