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March 2015

요2:1-11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다

[들어가는 말]


    목회를 처음 시작하던 몇 년 동안, 저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욕과 몸부림으로 몇 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사실은 나는 절대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설교를 해도, 성경공부를 해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제게 절망이었습니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변화지 않는다는 속담이지요. 참으로 힘들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목회 후반에 들어오면서 깨달은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능력은 없지만, 믿음 안에서 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소망이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의 변화를 본질로 삼고 있습니다.
믿는 자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인 거듭남이란 말은 본질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가장 사랑하는 성화란 말도 점진적인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기독교인 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베드로 사도를 통해 주신 말씀을 보면, 이런 변화는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자의 믿음 안에서 구원에 이르는 변화는 가능합니다.
    다만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1. 변화의 예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시작됩니다.(파종단계: 변화의 씨가 뿌려짐)

    예수님께서는 기쁨이 넘치는 혼인 잔치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혼인잔치 집에서 예수님을 초대하였다는 것은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을 혼인 집에 초대한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 지은 모든 것이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는 말씀을 초대하였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시던 주님을 초대하였습니다.
혼인을 창조하신 분께서 혼인집을 찾아오심으로 혼인 잔치 집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권세를 주시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예수님의 초대는 바로 물이 포도주로 변화할 수 있는 기초입니다.전깃불이 없는 집에 전원이 연결된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다.
변화는 다만 힘들 뿐입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나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인생에 변화의 씨를 심으셨습니다.
빛을 가져올 전원을 연결하여 주셨습니다.

'주 예수 내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되고....     .'

이 놀라우신 예수님을 내 인생에 영접하셨습니까?
내 삶의 중심에 모셔들이셨나요?
그분께 내 삶의 주권을 양도하셨습니까?

   생명되시는 예수님께서 내 안에 찾아오셨을 때, 벌써 내 인생의 변화는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2. 변화는 믿음 안에서 싹이 틉니다.(변화의 발아단계)

    주님께서 초대받아가신 바로 그 혼인 잔치집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타신 바로 그 배에도 풍랑은 밀려왔듯이 말입니다.
그것도 잔치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결핍된 것입니다.

    주님을 잘 믿으려 하는 우리 인생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결핍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목적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사랑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감사가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온유함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용서가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기쁨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때에 어떻게 합니까?

    수군수군거리지요.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30년간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이 결핍을 어떤 형태로든 해결하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3)

    마리아는 이 잔치집과 각별한 사이로 생각됩니다. 아마 포도주를 책임졌을 수도 있구요. 포도주가 부족한 것이 자기 문제로 생각될 만큼 혼인 잔치집의 중요한 인물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의 귀한 점은 결혼 잔치를 진행하는 중에 포도주의 결핍으로 인하여 곤고함에 빠져있는 가정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해결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실입니다.
마리아의 마음 속에는 이 어려움을 해결하실 수 있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형제자매의 가정에 닥친 결핍 문제를 나의 아픔으로 생각하고 그 문제를 예수님께서 해결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은 것!
이것이 마리아가 존경받아야 할 점입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 성도들도 궁핍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모든 죄는 이 궁핍과 연관이 됩니다.
도덕성의 궁핍이 죄가 됩니다.
율법을 온전히 행할 수 없는 행위의 궁핍이 죄가 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하나님의 선한 것의 궁핍으로 인한 죄가 바울 사도의 탄식을 토해낼 수밖에 없도록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궁핍의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감사보다는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까?
궁핍으로 인하여 다투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시 많은 사람들은 잔치가 시작할 때는 좋은 술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잔치가 무르익어가고 사람들이 거나하게 취하여 술맛을 알 지 못할 때에는 질이 덜한 술을 내놓았습니다.
취한 사람이 뭐를 알겠습니까?    
우유를 먹으면서 그 술맛 좋다 하는 것이 술취한 사람들의 허기입니다.
아무러면 어때?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속이기 위해 좋지 않은 포도주를 내 놓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그 궁핍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이런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혼인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일로 인하여 이를 아는 사람들은 많이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 궁핍의 문제를 세상적인 방법으로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해결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3. 변화는 기도 가운데 자랍니다.(성장)


    그러나 마리아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많은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갈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귀합니다. 당시에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 사람이 여럿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께 그 문제를 가져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누구보다 더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겨서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구원함을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예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의 이야기

      사랑하는 서머나교우 여러분,
    우리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너무 아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 하느라고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 맡길 틈이 없습니다. 실재로 오늘 본문 상황에 마리아와 같이 내가 서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갈 교우가 몇 분이나 될까요? 참 답답하십니다. 그런 걸 뭐하러 예수님께 가져갑니까? 주인하고 상의해서 존을 좀 내놓으라 하든지, 아니면 내가 한턱 쏘든지, 연회장에게 말하여 해결하든지,....   . 그래서 포도주를 파는 사람에게 가서 사오면 될 일이지요. 이래저래 우리는 우리 힘으로 모든 일을 합니다. 이런 문제를 예수님께 맡기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결혼 잔치에 일어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결혼 문제를 두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까?
마리아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예, 당연히 예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나왔을 것입니다.

   역대하 9:1에 보면,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예를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였습니다.

전도서 7:29에 보면 솔로몬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공동번역]입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깨달았다. 하느님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공연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동방에서 가장 의롭고 지혜로운 욥은 이렇게 욥기 5:8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기도는 때로 거절당한 것처럼 생각이 듭니다.
    마리아의 기도는 거절 당한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전해준 답변은 매우 싸늘해 보였습니다.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때로 No!라는 응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No!는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No!하는 것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어른들이 Yes하는 일보다 No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끈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응답해주실 것을 믿고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4. 변화는 순종을 통해 열매를 맺습니다.(변화의 결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한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중요한 지침을 보냅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물을 포도주로 바꾸실 줄로 생각한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마리아까지 그런 생각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인은 아무튼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오지 않을까요?
그것이 참 쉬운 일 같은데 어렵습니다. 어려워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참 우스운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바보가 군대에 갔다오면 똑똑한 사람이 되어 나온답니다. 그런데 똑똑한 사람이 군대에 갔다오면 바보가 되어 나온답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시골 청년이 군대에 가면 모든 것이 새롭고, 좋아 보입니다. 먹는 것이 좋습니다. 입는 것이 좋습니다. 새총 대신 장총을 쏩니다. 시키는 대로 척척하니 하는 일마다 기쁘고 잘 됩니다. 그런데 많이 배우고 잘 살던 사람이 군대에 가면 하는 일마다 못마땅합니다. 먹는 것이 시원치 않습니다. 입는 것이 못마땅합니다. 하는 일이 양에 차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 합니다. 그러다가 얻어 맞습니다. 이래저래 바보가 되어 나온답니다.

참으로 변화하길 원하십니까?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십시오. 변화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원하십니까?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십시오. 성령충만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기 원하십니까?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십시오. 변화될 것입니다.


    순종해본 사람들만 압니다. 그 순종 안에 담아두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립니다. 신앙은 결국 비밀이랍니다.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데요. 그 체험이 분명할수록, 그 체험이 클수록, 그 체험이 많을수록 신앙은 견고하게 마련입니다.

    안타깝게도 연회장은 알 지 못했어요.
그는 기도하지 않았어요.
그는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현장에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너무도 가까이 계셨는데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어서오십시오 영접한다고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좋은 자리 앉으십시오 깎듯이 인사한다고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 한 그릇이라도 가져다가 예수님 말씀대로 물동이에 채워 본 순종자가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회장과 같은 외형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을 유념하여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기도할 수 있는데 기도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하인들처럼 순종할 수 있는데 순종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세계에서 변할 수 있는데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한 것처럼 변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무리하는 말]

    김 세정 자매가 4월에 결혼한다는 소식이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저도 열살 때, 그를 지도하는 전도사부터 오늘날까지 그를 기도로 후원하고 지켜 보았습니다. 이제 좋은 형제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많이 기쁩니다.
   결혼 소식은 참 기쁜 일이 잖아요? 결혼하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세정 자매는 많이 변했습니다.
외모만이 아닙니다.
내면 역시 많이 변했어요.
주님께서 그를 찾아와서 그를 믿는 그 안에서 이루신 기적인 줄 압니다.
포도주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기적입니다.
그러나 무미건조한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는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보다 더 대단한 기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이런 기적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설교본문]

    요한복음2:1-12


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은 우리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일곱 가지 기적 가운데 최초의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 보이시는 표(기적)를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생명과 빛을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1.  혼인 잔치 집은 예수님을 초대하였습니다.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혼인잔치 집에서 예수님을 초대하였다는 것은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을 혼인 집에 초대하였음을 의미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 지은 모든 것이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는 말씀을 초대한 것입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시던 주님을 초대하였습니다. 혼인을 창조하신 분께서 혼인집을 찾아오셨으니 이 혼인 잔치 집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권세를 주시6는 이 놀라운 예수님의 초대는 바로 물이 포도주로 변화할 수 있는 기초입니다.
.전구에  전원이 연결된 것과 같습니다.  


2.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가나에서 열린 결혼 잔치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참석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포도주는 일상 음료로서 잔칫집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료입니다.
이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그 잔치의 파장을 뜻합니다.
주님을 잘 믿으려 하는 우리 인생에도  중요한 것이 결핍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목적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사랑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감사가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온유함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1.
   하나님께서 두신 용서가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기쁨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때에 어떻게 합니까?
수군수군거리지요.
살다가 무슨 문제가 생길 때 사람들은 수근거립니다. '아니, 혼인 잔치 집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합니다.
자녀의 결혼잔치니 얼마나 정성스럽게 준비했겠습니까? 그런데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일도 생기는 것처럼 살다 보면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생길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합니다.
"주님,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자기 딸의 건강이 떨어졌을 때 주님을 찾아와 말씀드렸습니다.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건강이 떨어졌을 때 주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마리아와 마르다는 이 사실을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십니까?
우리의 삶의 문제들을 주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에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어려울 때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운 것을 주님께 말씀 드리는 것을 소중히 생각할 일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찬송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함께 불러봅시다.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내 모든 짐 내려놓고!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건은 우리의 내면적 상황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포도주는 잔치에 있어서 기쁨을 공급해 주는 음료수라고 볼 때, 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이 삶의 의미와 기쁨과 낙을 상실한 무기력한 우리 내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 가정이나 공동체가 안고 있는 영적 상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영적 상황이 하나님께서 주신의 존재 의미와 기쁨을 상실한 채, 텅 빈 항아리와 같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곤고한 환경에서 외침일 수도 합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에게 나가 솔직하게 우리의 실상을 드러내어 고백합시다.

렘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무엇보다 주님 자신을 구하십시오.
중세 수도사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일화입니다. 어느 날 그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서 "나의 사랑하는 종 아퀴나스야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네가 무엇을 원하기에 그토록 밤낮 부르짖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 제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주님 무엇을 주시려거든 주님 자신을 제게 주옵소서 주님은 저의 것이고 저는 주님의 것이 옵니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주인은 주님이시오 주님을 소유하면 천하를 얻는 것이요 주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혼인잔치는 일생일대 중에 제일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 집은 그 혼인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까요? 신랑 신부는 얼마나 행복에 부풀어 있을까요?
그런데 거기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룀입니다.


우리는 텅빈 나의 인생 안에서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연약함, 허물, 죄, 한계 등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오십시오. 맡기십시오 .


3. 예수님의 응답은 즉각 오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로 가서 포도주가 없다고 고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들은 예수님의 대답은 멀어보였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아직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여자여' 하는 말은 하대(下待)를 한 것이 아닙니다. '여자여' 한 말은 '귀나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그 당시 그 나라에서는 여인을 높여 부르는 존칭호격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헬라어 <귀나이> 라는 말은 왕후나 사랑하는 여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존칭어라고 합니다.
이 가정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실 하나님의 때가 아직 아닙니다.
당신은 내게 무슨 권한을 가지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알아야 합니다 정도의  의미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아직 십자가를 져야 하고, 부활하시어 다시 하나님 우편으로 오르실 때를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4.  하인들의 순종은 소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인들에게는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요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하인은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는 노예나 종(둘로스)이 아니라 오늘의 용어로 말하면 집사(디아코노스)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고 디아코노스에게 권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언제든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이 주인이 되게 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을 참 주인,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들은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종도 아니었고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의지나 견해와는 다른 명령이었지만 이들은 실천적 복종으로 응답하였습니다. 그랬기에 포도주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로 인한 잔칫집의 걱정과 불안을 없애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 순종할 때 우리는 풍성한 생명과 삶을 누리고 주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려면 순종과 행동하는 신앙이 요구됩니다. 때로는 비록 의견이나 견해가 다르다 할지라도 법과 제도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역사는 순종의 결과입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그리스도에게 초점을"(Focus on Church)이라는 저서에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 간의 차이는 놀라울 정도로 명백해야만 한다. 그럴 때 불신자들이 그리스도께 매혹된다"고 했습니다.
인도인을 교육하는 어느 힌두교 강사가 불순종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러분 중 다수가 그리스도인임을 알고 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산다면 인도가 내일 여러분 발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선셋 장로교회(Sunset Presbyterian Church)의 론 킨케이드(Ron Kincaid)목사는 「성도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불신자들을 실망시키지만 성도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불신자들을 매혹시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주님! 이제부터주님을 저의 주인으로 모시며 살겠습니다. 저는 주님의 하인으로 살겠습니다. 내 이론이나 생각을 깨뜨리며 주님의 참된 하인답게 살겠습니다.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중심으로 설 때 우리는 주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며 주님의 풍성한 표적과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5. 예수님은 항아리에 물을 퍼다 붓게 하셨습니다.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주님께서는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집에는 통상적으로 외출해서 돌아오거나 식사 전후에 손을 씻는 항아리 물통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그 항아리가 6개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인들에게 명하시기를 그 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가득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자 명하심 따라서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인들은 자신들의 이성에 다 이해되지 않았지만 순종하였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수 있었지만 순종하였습니다.
너무 바빠서 순종하기 힘들었지만 순종하였습니다.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빌립보서 2:5-8]
예수님은 순종의 모델입니다.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신 주님은 자신이 친히 순종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꿈은 순종하는 자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6.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물아 포도주로 변화된 것입니다.
포도주는 물과 빛깔이 다르고 냄새가 다르고 맛이 다릅니다. 또한 값이 다릅니다.
ex)H2O ⇒ C2H5OH :

이는 분명히 화학적인 변화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물이 순식간에 포도주로 변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그러나 확실하게 바뀌어졌습니다.

예수님의 가나 혼인잔치의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의 의미가 어디에 있습니까?

1) 예수님은 만유를 창조하신 만유의 주시며 창조주이심을 나타내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어떤 화가가 가나안 혼인 잔치에 대한 상상화를 그리고 있었읍니다.
그때 한 친구가 와서 그의 작품을 보고
[저 멋진 항아리 좀 봐] 하고 탄성을 질습니다.
그러자 화가는 그 자리에서 항아리를 지워버리며
[내가 보여 줄려고 하는 것은 돌항아리가 아니란 말일세]
2)  포도주가 되게 하신 사건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음을 알려주는  서곡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의 메시지의 중심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표시요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는 표시입니다.
아담 이후 단절된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되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천국이 어떤 곳인가를 물이 포도주로 변함으로 우리에게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롬14:17절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합니다.
.

3) 예수님은 물과 같이 무의미한 우리 인생을  포도주와같이 의미있는 존재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밖에서 물 같은 인생이 많습니다.
때로 우리는 옆에 가기도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1분 1초도 같이 있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입만 열면 불평불만 부정적이고 투털거리는 그런 사람과 함께 앉으면 괴롭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은혜를 받으면 변화가 됩니다. 완전히 본질적으로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가치가 달라지고, 인생의 맛과 멋이 달라지고, 색깔도 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쓰임새와 세계관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면에서부터 본질적으로 바뀌어집니다. 똑같은 사람인데도 예수님 때문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옛날엔 물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전에는 의미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예수님 밖에서 물 같은 인생이요 무덤덤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10:10에서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영접하고 구원과 생명을 얻었습니다.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함이니라"
그런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전혀 다른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한국 초대교회의 김익두 목사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소문난 깡패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믿고 변했다고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질 않습니다. 결국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보냅니다. 동네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몇 일 후 김익두가 성경과 찬송가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누군가가 시험해보기 위해서 그에게 오물을 끼얹었습니다. 그러자 김익두 목사는 미소를 지으며 "김익두는 죽었다. 만약에 그가 죽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오늘이 제삿날이었을 것이다."
사는 맛이 다릅니다. 사는 재미가 다르고 삶의 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달라져요. 물 같은 사람이 포도주 같은 사람으로 달라집니다. 무덤덤한 인생이 달콤한 포도주 인생으로 달라져요. 보기가 좋습니다. 향기가 있습니다.  분위기가 있습니다. 향기롭고 달콤한 냄새가 납니다. 맛을 보면 정말 좋아요. 같이 있으면 맛이 납니다. 이야기를 해봐도 맛이 있어요. 같이 있고 싶고 가까이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요.
어떤 분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 졌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의 단점만 보곤 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장점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자기 집만을 아름답게 꾸몄는데 이제는 교회당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세상 친구들이 좋았는데 예수 믿은 다음에는 믿는 친구들이 제일 좋아 졌습니다.
어떤 분은 남편에게 순종하며 남편을 극진하게 대했습니다. 그런 일이 전에는 슬펐는데 이제는 기쁩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된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초가집에 산다고 해서 슬픈 것이 아닙니다. 고대광실에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고 싶고, 가까이하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7. 순종한 하인들에게 이 사건은 비밀이 되었습니다.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명하므로 하인들은 포도주를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줍니다. 연회장은 이렇게 좋은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집의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서 말하기를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 기적을 통해서 영광을 얻으려 하심이 아닙니다. 그런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전혀 다른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나타날 생명의 풍성함을 포도주 사건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로이 퍼다 부은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의식적으로 인간의 죄를 정결케 할 수밖에 없는 옛 율법종교의 빈곤함과 대조적으로 인간의 죄를 근본부터 정결케 하며 동시에 참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룩되는 새로운 신앙의 풍성함을 비교하여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무기력한 율법종교 대신에 새롭게 진정한 교회의 탄생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몸을 내주시어 우리의 양식을 삼으시며 우리의 음료가 되게 하시므로 우리 속에 참된 생명을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4-55
 예수 그리스도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물로 포도주 되게 하시어 사람을 기쁘게 해 주었으나 때가 이르렀을 때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어 그 피로 우리의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피를 우리로 마시게 하시므로 우리 속에 참된 생명을 주셨고, 이 때문에 우리는 마르지 않는 영원한 기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영적 생명을 풍성케 하는 "좋은 포도주"
예수님이 주신 새 포도주는 "좋은 포도주"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 되셔서 주시는 생명은 시들거나 마르거나 죽지 아니하는 영생입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요 4:13-14
    이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과 같 습니다.
"너희는 썩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여라. 그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요 6:27)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좋은 포도주"는 우리의 육적인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음료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삶을 위해 준비된 영생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혀진 열매로 만들어진 포도주가 성도마다 교회마다 가득 차고 넘쳐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 생명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포도주를 공급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포도주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생애, 우리의 가정에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가 주시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포도주를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소멸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삶에 미련을 둘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 사람을 위해 참 기쁨의 포도주를 여러분의 텅 빈 항아리 속에 가득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점점 우리 앞에 분명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거기에 기대를 걸고 그 잔치에 참여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시는 생명의 포도주를 우리가 누릴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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