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에스겔은 아름다운 환상을 보았습니다.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물이 솟아나서 동무과 남문으로 흘러 내려갔습니다. 그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인 참빛이
예루살렘을 찾아오셨을 때 성전을 아버지집이라 하시고 그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공사역을 시작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오셔서 행하신 첫 사역이 성전을 깨끗이 하십니다.
성전 회복은 하나님의 관심사입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고
성전을 통해 그 자녀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전회복은 성경의 소중한 주제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성전회복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성전과 그 축복을 상실했습니다.
아벨은 순교하기까지 성전회복을 사모합니다.
노아가 홍수심판 후, 성전 회복을 바라보며 제사드리고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값진 결단을 함으로 성전 회복의 소망을 지핍니다.
야곱이 돌단을 쌓음으로 성전 회복을 꿈꾸고
모세는 광야 40년를 성막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을 기울여 성전을 준비하고
솔로몬은 성전을 지어 하나님 앞에 봉헌합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은 학개 에스라를 중심으로 성전 회복에 전생애를 기울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전은 온전히 회복됩니다.
그리고 에스겔의 환상 속에서 보았던 이 성전으로부터 생명의 물이 온 세상에 넘쳐납니다.
축복을 내 삶에 넘치게 하는 성전 회복!
어떻게 이 놀라운 성전회복을 이룰 수 있습니까?
1. 성전을 아버지의 집으로 생각하십시오.
당시 유월절이면 200만 이상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운집하였습니다.
성전을 향해 나아오는 그 많은 사람들의 성전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께 예배를 올리는 처소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죄를 고하고 죄 용서함을 받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처소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성전이 '내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이는 세상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다니...... .
그런 사람은 이스라엘에 없었습니다.
세상 누구도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인 그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12살 때,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도 태초부터 계신 말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 말씀, 곧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나님은 예수님께 아버지셨고,
성전은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언제나 계셔야 할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신 성도 여러분께 묻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이 성전이 여러분에게는 무엇입니까?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비유에 나오는 두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습니까?
두 아들의 마음에 대조적인 면이 있습니다.
아버지 집에 대한 소중함입니다.
맏아들에게 아버지 집에 거하는 자로서의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비록 세상에서 그릇된 삶을 살았고,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낭비하였지만, 그 마음 속에 아버지 집에 소중함에 대한 절실함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지만, 아버지 집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아버지의 집을 향해 달려가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예배당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예수님을 영접한 자에게 이 성전은 소중한 아버지의 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성전이 생각하고 주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보좌로부터 솟아나 흐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회복되면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채우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내 삶에 넘치게 하는 성전 회복!
어떻게 이 놀라운 성전회복을 이룰 수 있습니까?
2.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가지십시오.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오늘이 한국인들에게는 설(구정)입니다.
신문은 부모님을 뵈러가는 귀성핼렬로 길이 온통 막혀 있다고 신문마다 보도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뵙자고 그 멀고 먼 귀경길을 교통체증을 겪으면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들의 열정에 놀랍니다.
예수님 중심에는 성전을 사모하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잘 익은 석류에 홍보석 같은 석류알이 가득한 것처럼 예수님의 중심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정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채찍을 드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집이 인간의 탐심을 채우는 장사 소굴로 바꾸어진 것을 견딜 수 없으셨습니다.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성전뜰에서 돈을 바꾸는 자들의 돈 궤는 쏟아졌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물로 준비된 짐승들은 채찍에 맞아 이곳저곳으로 튀었습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인하여 성전은 청소가 되었습니다.
탐심은 녹아져갔습니다.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집일 때 그 자녀의 마음 가운데 가득 차는 생각은 아버지의 집(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입니다.
성전이 성전다웁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세상 탐심으로 채워져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성전에 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전이 자기들의 탐심을 이루는 좋은 명분과 수단이 된 것입니다.
당시 성전은 큰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주전 24년에 시작된 성전 역사는 46년째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완공이 되려면 더많은 물질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주후 64년에 완공이 되었으니까 앞으로도 18년간이나 더 계속될 대 공사였습니다.
엄청난 물질적 필요가 요청되고 있었습니다.
이 성전이 완성되는 일이라면 그들의 어떤 행위도 합리화될 수 있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들로부터 성전세를 받았습니다.
한 사람당 성전 화폐로 반 세겔을 내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일하는 사람들의 이틀 간 벌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돈을 바꾸어 주는 과정에서 차액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돈을 버꾸는 과정세서 이권이 발생했습니다.
제사에 쓰이는 짐승을 바꾸고 팔고사는 일에서도 그들의 탐욕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번제로 쓸 짐승이 조금이라도 흠이 있다고 판결하면 그 짐승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은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짐승을 헐값에 팔고 비싼값에 다른 짐승을 사서 제물로 바치다 보면 그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서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어떤 기록에 보면, 성전에서 사는 짐승은 시장의 16배나 값을 받았다 하니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이 탐욕을 채우는 기관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의 마음을 미혹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 축복의 물줄기를 막는 이런 탐심을 주님께서는 끊어주고 싶었습니다.
탐심은 마치 인간의 몸 안에서 혈관을 막아버리는 콜레스테롤과 같습니다.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런 탐심으로 인하여 그들은 성전이 완성된지 불과 7년이 못되어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낭패를 당했습니다.
인도에 아륙대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사형수를 불러 기름이 가득 담긴 병을 주었습니다. 그 병에 담긴 기름을 조금도 쏟지 않고 온 시내를 돌아오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전심을 기울여 기름을 쏟지 않고 시내를 돌아왔습니다.
"시내를 다 돌아왔느냐?"
"예. "
"어떤 건물들이 곁에 있었느냐?"
"모르겠습니다. "
"그런데 어떻게 시내를 다 돌았는지 아느냐?"
"오직 기름에만 정신을 쏟았기 때문에 길 곁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왕은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한 눈 팔지 말고 오직 한 가지 바른 뜻만을 따라 살라는 의미였겠지요?
성전된 내 안에 있는 성령의 기름이 쏟아지지 않도록 전심을 기울이는 신앙 자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세상 것들을 탐하여 세상만 두리번 거리다가 내 안의 성령 기름이 다 쏟아지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은 불쌍한 존재입니다.
이사야 57:17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의 전을 사모하는 예수님의 열정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예수님의 열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성전된 우리 몸에서 탐심을 제하시길 바랍니다.
콜레스테롤이 없는 혈액이 순환과 건강을 가져오는 것처럼 탐심을 제한 성전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칠 줄 믿습니다,
축복을 내 삶에 넘치게 하는 성전 회복!
어떻게 이 놀라운 성전회복을 이룰 수 있습니까?
3. 주님께서 성전을 일으키시도록 잘못된 성전을 헐어야 합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당시 성전을 헐라고 농담이라도 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원수들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가기 위헤 끈질기에 물고 늘어진 말이 바로 이 성전을 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마26:61)
일반 사람들도 성전을 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면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마27:39,40)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어야 한다는 말씀은 성전다웁지 못한, 성전의 기능을 상실한 성전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그런 성전은 다시 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성전은 참으로 거룩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성전은 헐어버려야 합니다.
루우불 박물관에 가면 모나리자란 그림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것은 세계가 사랑하는 값진 보화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BOX에 담습니다. 온도유지에 많은 경비를 들입니다. 경비도 철저하게 합니다. 보배로운 것은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 그림을 헤치는 보관함이라면 어떻게 하여야겠습니까?
그 아름다운 미소를 찡그린 모습으로 바꾸어버리는 보관함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그 보관함을 허물어버려야 합니다.
대신 잘 관리할 수 있는 보관함을 만들어 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죄와 마귀의 자녀 노릇하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전다웁게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도록 보관을 잘해야 합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리라는 말씀은 성전다웁지 못한 부분이 무너져야 하고, 중요한 것은 그 성전이 성전다웁게 다시 세워져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전은 하나님의 사랑과 성도의 사랑으로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성전으로 회복될 때 그 성전은 존재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성전이 하나님의 사랑 대신에 탐욕과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찰 때 그 성전은 허물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고 세속화된 성전은 무너져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무너진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인류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심으로 새성전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몸을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채울 성전으로 제공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성전을 회복시키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당신의 성전은 사랑 대신 미움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이 성전을 헐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권능으로 당신의 성전을 사흘만에 세우실 것입니다.
피카소란 화가는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고통과 불안과 고민 등 긴장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고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어느 시대 보다 더 여유있고, 풍요롭고, 모든 삶의 질이 이렇게도 많이 발전했는데도 어느 시대보다 더 긴장하고 고통당하며 불안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전이 바로 이런 세상 염려와 고통과 불안으로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성전을 헐어버리십시오. 예수님께서 부활의 권능으로 당신의 성전을 사흘만에 세우실 것입니다.
벤츠를 타고 가던 중년부인이 벤츠를 탔다는 이유로 잡혀서 피살을 당했습니다. 좀더 좋은 차를 타야 안전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경그룹하면 엄청난 재벌인데 그 책임을 맡으신 분이 67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미국에서 수술을 받으셨답니다. 그런데 그 수술이 너무 힘든 수술이어서 그 수술을 지켜보던 부인이 충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62세에요.
세상 것들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을 혹시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잘못된 믿음으로 채워진 당신의 성전을 헐어버리십시오. 예수님께서 부활의 권능으로 당신의 성전을 사흘만에 세우실 것입니다.
성전 회복은 그릇된 것들로 채워진 성전을 허는데서 출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희생적인 사랑 위에서 부활의 권능으로 우리 성전을 회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사랑하시되 성전의 회복을 위해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몸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성전 사랑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 성도들 안에서 희생과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성전에 하나님 사랑, 성도간의 사랑으로 가득찬 성전이 회복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세속적이고 이기적으로 가득한 성전 그대로입니까?
주님께선 여러분의 성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으로 회복되시길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 마무리하는 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전는 생수가 솟아나는 우물과 같습니다. 성전이 회복되면 그 성전으로부터 신령한 생수가 흘러 나옵니다. 무릅을 채웁니다. 허리를 채웁니다. 가슴을 채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강같이 흘러 나오는 곳이 바로 성전이기 때문에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은 영원히 복을 받습니다.
[성경본문]
요2:12-25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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