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March 2015

요3:1-10 거듭나야 하는 이유


[들어가는 말]


    20세기 초,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시카고 무디교회 담임)이 시장 앞을 지나가다가 그 입구에서 형제전도단을 만나 간증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에수님을 영접하게 된 동기와 예수님을 믿고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전했습니다.
    그때, 제일 앞쪽에서 말씀을 듣던 신사가 자신의 명함 뒷편에 몇 글자를 적어 내밀었습니다.
    "선생님 주일 오후 4시에 아카대미 과학관에서 선생님과 토론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는 성경을 부인하는 유명한 자유주의 신학자였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가지 요청을 하고 싶습니다. 과저 구제불능이라고 할 만큼 부끄러운 생활을 하던 사람들(알콜중독, 전과자, 사창가의 여인 등) 중에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변하여 새사람이 된 두 사람을 데려오시면 됩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 변하여 새사람이 된 사람 백 명을 데려오겠습니다."

     옆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도 100명 중 한 사람으로 끼워주세요."
다른 사람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그런 사람 60명을 데려 오겠습니다."
또 다른 형제가 끼어들었습니다.
"저는 악단을 데려와 예수님 이름을 높이겠습니다."
    당황한 신사가 당황하여 말했습니다.
"선생님,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도망치듯 총총한 발걸음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고상한 교수님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거듭남입니다. 도망치듯 총총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결함이 바로 거듭남의 부재입니다. 그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서는 않될 일들이 있습니다.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고상한 인격만으로 신앙은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유대관원입니다.
유대인 사회의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진 소수의 관원 중 한 사람입니다. 관원이라면, 요즈음 국회위원이나 법관을 겸한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더욱 귀한 것은 다른 공회원들이 갖지 못한 고상한 인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본 사람들은 단지 니고데모만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적과 권능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비뚤어진 시각으로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많은 표적을 주의 깊게 보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님으로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면 이런 일을 행할 수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그에게는 메시아에 관한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난 당하고 있는 민족의 구원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그 빛이신 예수님께 대하여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고상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이곳, Lakeshore 성전으로 이사 온 후, 하나님께서 이 건물에 아름다움을 더해주셨습니다. 성전 내부가 놀랍게 변모한 것입니다. 이전의 낡은 부분은 아주 새로워졌습니다. 교회당과 선교관으로 깨끗하게 변신을 하였습니다.

    40년이 훨씬 넘은 교회당이 이렇게 아름답게 변모한데는 여러 성도들의 지혜와 헌신이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선 많은 옛 것을 내버렸습니다. 낡고 더러워지고 쓸모없는 것들을 가득가득 담아서 버렸습니다. 어떤 물건들은 아깝게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버렸습니다. 커다란 트럭으로 다섯 번 이상을 오가며 불필요한 쓰레기를 내버렸습니다. 건물하나가 새로워지는 데는 버릴 것이 많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꼭 채워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건축자의 구상을 따라, 새 기물을 여러 가지 구입해 넣었습니다. 한국인들 교우들에 적합한 도서들로 도서관이 채워졌습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한국 교회 특성 상 자녀들을 위한 예배실과 교육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일을 감당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시간을 내어 놓으면서 즐거워했습니다. 많은 물질을 내어놓으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성전이 새로워지는 것을 보는 것으로 흐뭇하고 배가 든든해짐을 누렸습니다. 성전이 새로워지는 일은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하였습니다.
  이 일을 시종 지켜보면서 저는 소중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없는 건물 한 동이 거듭나는 경우에도 이렇게 즐거운데, 영원히 어두움의 권세에 사로잡혀 죽어가는 인간이 새로워질 때, 하나님은 얼마나 즐거워하실까? 외아들을 죽게 하시게까지 희생하신 예수님이시니 피로 값주고 사신 자녀가 새로 거듭나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실까?

    니고데모의 또 한 가지 고상한 인격은 예수님을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찾아온 점입니다.
비록 그가 신분을 고려해서 공개적으로보다는 밤에 찾아왔다는 비난을 면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할 때, 메시아가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메시아를 만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과 사역을 보고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인 것을 알았다는 것만 해도 귀한데,나아가 인생과 민족의 답을 얻기 위해 시간을 내어서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열정입니다.
니고데모는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다가 메시아가 바로 이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지체하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세상에서 단지 잘 나가는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위엣 것, 즉 영적인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복된 분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단지 세상적으로 출세한 인물 이상이었습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예수님을 찾아 올 수 있는 신앙인격의 니고데모를 예수님은 매우 귀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어떤 고상한 인격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심을 믿었던 니고데모만한 인격이 있습니까?
밤이 깊을지라도 그 예수님을 찾아가서 그분께 고백하고 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인격이 있습니까?

이런 고상한 인격은 우리 인간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입니다.
이런 고상한 인격을 갖추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앙인격자를 귀히 생각하십니다.

    서머나 교회가 이곳으로 이사온 후, 하나님께서 이 건물에 은혜를 주셨습니다. 건물하나가 새로워지는 데 트럭으로 다섯 번 정도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새 물건을 많이 구입해 넣었습니다.
건물하나가 새로워지는 데도 버릴 것이 많고, 채워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전의 낡은 건물은 아주 깨끗해지고 있습니다. 교회당과 선교관으로 깨끗하게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건물이 물로 깨끗함을 받는 경우입니다. 사람에게도 물로 깨끗함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하물며 사람이 새로워지는데 버릴 것이 얼마나 많고 채울 것이 많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린 것도 없는 인생, 채우는 일이 없는 인생을 산다면 우리는 주님으뢰부터 중요한 말씀을 들어야 마땅합니다.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듭남은 본질적입니다.
    이 고상한 지성인에게 예수님께서는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위의 세계라고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이 고상한 지성인에게 예수님께서 그가 가야할 곳은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물로 거듭나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고상한 신앙 인격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도 많은 존경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니고데모와 같은 분은 훌륭하지만 훌륭한 자연인일 뿐입니다. 훌륭한 자연인은 자연성이  고갈 될 때, 한계성에 빠지는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비록 인격과 사회적 지위는 출중하지만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할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 물은 영혼의 갈증을 해갈시켜줍니다.

    사55:1에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은 물로 나아오라고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만납니다. 돈없는 자도 값없이 사서 마시라 초대하십니다.
세계 만민을 값없이 베푸는 구원의 잔치에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영생으로 초대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늘 구원으로, 영생으로 초대하십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하루에 몇 잔씩 물을 마시는 일에 대하여 사명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몇 십 년 살지 못할 몸을 위해서도 그토록 많은 힘을 기울이면서, 영원한 영적 건강을 위해 영적인 물을 사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들어야 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 물은 죄에서 깨끗함을 얻게 합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겔36:25-28)

    지금 한동대 총장으로 계시는 김영길 박사님께서 미국 유학 중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대체 예수님이 오셔야 했는지, 왜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성경과 신앙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깨달음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하려면 죄 없는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 하고 죄인을 대신해 죽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 죽어야 만 한다 하지만 신이신 하나님은 죄인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없다 사람이 아니시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이 되게 하셨고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 그의 어두운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달라보이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은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있지 못함에도 무심히 사는 기독교인이라면 우리는 오늘 주님의 말씀을 심각히 들어야 합니다.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죄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 영혼을 소성케 하는 물이 있습니다.

에스겔서에서 물은 하나님 전의 문지방에서 나와 세상 만물을 소성케 합니다.(겔47:1-5)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의 영혼을 소성케 하는 물로 거듭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다윈이 남미 파타고니아 원주민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들 가운데서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을 보았습니다.
    한 선교사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추장부터 시작하여 온 부족이 거듭났습니다. 생활습관이 달라졌습니다.
    두번 째 그 부족을 방문하였다가 이변을 본 다아윈은 그 선교사님께 선교헌금을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소성케 하는 물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주시는 물을 인하여 영혼의 소성함을 체험하셨습니까? 주 안에서 영혼의 물로 인하여 영혼의 살아남을 체험하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 물은 다시 목마르지 않게 합니다.

    인간의 내면에 있어 영생하도록 솟아날 물입니다,
    물을 길러 나아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나에게 물을 달라 하였을 것이다 하시면서 그 여인의 근본 해답을 주셨던 바로 그 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외쳐 가라사대 아무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선포하신 바로 그 물입니다.

    이 만재씨의 글을 소개합니다.

    "참 별 희한한 일도 있다. 내 나이 머지않아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별일은 별일이다. 세상에 나처럼 한 평생 엉덩이 뿔을 높이 달고 휘저어 대며 오로지 술과 벗과 객기를 인생의 낙인양 믿고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참으로 갑자기 그 좋던 술벗들 대신에
'예수님 사랑해요 어쩌고'를 움얼거리며 이미 이 세상의 호적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까닭에 일찍이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먼 나라 목수간 집네 털보 아들을 은근히 혼자서 속으로 짝사랑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영생의 물은 위로분터 영생하도록 솟아나오는 영적인 물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다음 말씀을 잠시 묵상해 보십시다.

수고하고 목마른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물로 거듭난다는 말은 구원으로 들어오는 삶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말은 영생으로 들어오는 삶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은 인간의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귀한 필수요소입니다.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필수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런 물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런 물을 마시고 영적 갈증을 해갈시켜야 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영생수입니다.

예수님께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서서 외쳐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주시고 싶어하시는 물은 무엇일까요?
    영원한 생명의 물입니다.

목마른 자들을 초대하시는 음성을 들으십니까?

사람들은 명절에 충분히 먹고 마셨다고 포만감에 취해 있는데, 그런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초대하였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고!

오늘 이 복된 주님의 초청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돈없이 값없이 사서 마시기를 바랍니다.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성령으로 거듭나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육의 일을 넘어갑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자연인으로서의 태어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한복음 3:6)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5:26)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사명을 감당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1:8)

    성령으로 거듭난 초대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담대하게 세상을 이긴 것을 우리는 압니다.

    베드로가 어린 계집 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떨었지만, 성령으로 거듭났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처형하였던 관원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봅니다.
3천 명 5천명을 우리가 어찌할꼬 회개하게 한 것은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어제 순장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하셨던 분 가운데 자신에게 남은 연수가 얼마나 되는가 계수해 보았습니다. 10-15년 정도!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그냥 보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남은 짧은 기간에 우리가 어디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인가?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삶은 거듭나야 할 부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 인격의 많은 부분을 보실 때, 주님은 거듭나야 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직까지 고하지 않고 께끗하게 용서받지 못한 나의 죄를 보실 때, 주님은 거듭나야 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직까지 자아를 의지하고 하나님 없이도 살려는 모습을 보실 때, 주님은 거듭나야 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 무엇으로 어떻게 거듭났습니까?
거듭나야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이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를 거듭나게 하시려고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거듭나야 할 부분을 헤아려 보면서, '거듭나야겠다'는 주님의 음성을 기이히 여기지 않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복을 받기 바랍니다.


[성경본문]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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