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어떻게 살 것인가?
이는 우리 모두의 깊은 관심사입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관심사를 함께 말씀 안에서 풀어가길 원합니다.
세례 요한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노년까지 자녀를 갖지 못하던 스가랴와 엘리사벳 슬하에서 하나님 은혜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나, 그 역시 제사장 반열에 서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에게 더욱 귀한 점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정확히 수행하였다는 점입니다.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의미를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왕의 길을 예비하며 삽시다.
1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세례요한의 존재 의미를 이해하려면, 다른 복음서를 참조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와 그 존재의미를 직접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메시야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더러 그가 누구인가를 물었을 때, 그는 메시야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대신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 왕의 오심을 위해 길을 광야에 준비하는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메시야가 바로 뒤에 오심을 말하고, 자신은 그의 종 직분을 감당하기에도 부족한 존재임을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마3:11)
"나는 그의 신들매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요1:27)
사람들은 그를 메시야로까지 생각하였고, 그가 사형 당한 후까지 많이 추종하던 선지자였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자신을 철저히 낮추었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요1:20) 그래도 무엇인가를 궁굼해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답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그를 아무리 크게 볼지라도, 주님 앞에서 그는 소리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가 위대한 겸손자임을 우리는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겸손은 신랑과 그 친구 비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그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하면서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하십니다.
세례 요한은 대답을 겸손하게 하였을 말하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 생활 모습도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그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의 옷은 약대 털옷이었고 음식은 메뚜기였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 통념을 거부하고 오시는 하나님 나라 왕의 신하로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말을 겸손하게 하는 것만 해도 그것은 굉장히 귀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과 같이 생활까지 겸손하게 한다면 요한과 같은 왕의 신하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 왕의 길을 예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왕의 길을 예비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왕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도록 말했습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당시 로마 황제가 길을 나설 때는 선발대가 먼저 나서서 황제가 나가기에 합당한 환경을 마련합니다. 세례 요한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철저히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그는 출생 자체가 하나님의 강권적 은혜입니다. 그가 걸어간 검소한 삶의 모습이 또한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 석청을 먹으며 살았던 모습이나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삶은 같은 길에 서 있습니다.
설교의 내용이 같은 맥락에 서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외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는 설교는 하나님 나라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서기관이나 바리세인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회개의 대상으로 부각되는 점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역의 방향이 왕의 오심을 분명히 예비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그의 왕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분명히 드러내는 지점에서 절정에 도달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의 죄사함의 사역을 명확하게 요약하여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세상 죄를 지시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죽음의 방법이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헤롯의 죄를 길를 과감히 지적하다 처형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은 빌라도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불의한 자들의 손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신 모습이 유사합니다.
우리는 다시 오시는 재림의 주를 기다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고, 그를 믿는 우리 중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원하십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서서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 우리 왕의 모습과 유사합니까?
왕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며 사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때로 우리는 광야에 서게 되고 약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검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때로 소리와 같이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오직 예수님만 드러내는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때로 대신 죽으시기까지 구속한 주님만 바라봄으로 죄사함 길을 예비할 수 있습니다.
2, 좋은 열매를 맺으며 삽시다.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좋은 열매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심판 날에 구원을 주기 때문에 좋은 열매입니다. 천국 창고에 들여지는 알곡을 의미합니다. 그런 열매를 소유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천국을 보장받은 셈이니 엄청난 보배를 가진 셈입니다.
심판 날에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열매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질 마음이 바로 회개입니다.
죄와 죽음의 창고가 되어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세상 죄가 왕노릇 하던 마음이 변화되어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마음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삶의 양식이 변화한 것입니다. 왕이 바꾸어진 것이지요. 대한민국에 통치자가 바꾸어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통치자가 바뀐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합니다! 하는 말은 '후회합니다'란 말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란 말 이상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여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죄의 종이었을 때,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게 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이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변화된 생활의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고후5:17 말씀처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런 복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죄 아래 팔려 일생 종노릇을 하고 살아 온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회개할 수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통곡할 수 있는 사람이 회개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충분히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나 노력을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당대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로 하여금 회개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긍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자긍심은 나만은 이방인과 다르다는 바로 선민의식이지요. 그러나 아브라함 자손도 죄아래 태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런 선민의식이나 자긍심은 회개를 막는 무서운 장벽일 뿐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런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나무라는 이유를 이해하신 줄 압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선포합니다. 전통, 지위, 문벌이 그런 사고에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진다는 선고였습니다. 죄 아래 태어나 죄와 사망의 종노릇을 하고 살아왔으면서 몇 차례 선행을 했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하는 것입니다. 일 주일이면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꼬박꼬박하였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면, 이 얼마나 가증한 일입니까?
죄의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선행을 할 수 있고, 금식을 할 수 있고, 십일조를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우리 가운데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시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딛3:3)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죄의 종노릇해온 사실을 회개해야 합니다. 죄의 종노릇을 하며 죄의 열매를 맺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고 그분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이 회개의 열매입니다.
따라서 회개는 천국을 향해 가는 성도의 좋은 열매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를 천국에 가장 귀한 열매로 생각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회개가 필요합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우리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회개입니다. 죄의 통치를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겁니다.
세레 요한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외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 복음을 전하실 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외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포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한의 예언적 메시지를 그들이 받고 회개하였다면 한 세기가 가기 전에 밀어닥칠 엄청난 재난을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회개란 임박한 진노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인간의 생존의 방법임을 깨닫게 됩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어떤 회개를 해보셨는지요. 무엇을 구체적으로 회개하였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타인에게는 회개할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저런 점을 심각히 회개해야 해!'
아마 그런 말은 대부분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회개할 점은 엄격하게 찾는 우리들이 나 자신의 회개할 점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리를 정죄하는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의인이다는 영적 교만을 걷어냅시다.
세리와 같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통곡하는 심령 위에 회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는 선민의식을 떨쳐버립시다.
나만은 바로 살았다 생각하십니까?
남과 다르게 살았다고 자부하십니까?
회개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대신 내 삶의 열매를 점검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개의 열매 말입니다.
회개란 열매를 사랑하십시오. 천국에 들어갈 준비는 회개의 열매입니다. 그 열매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성도는 기쁨으로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이 준엄한 심판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시켜주고 싶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는 회개를 선지자를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회개는 천국을 사모하는 백성들이 맺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열매입니다. 천국이 있기에 회개하라신 준엄한 꾸짖으심은 사랑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좋은 열매를 맺으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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