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세례 받으면 뭘 해? '
이렇게 세례를 가볍게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심지어 세례 받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반대로 콘스탄틴 황제 같은 분은 세례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여 죽기 전에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양쪽 다 세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세례 받으신 그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세례 받은 자의 특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례 요한이 전한 세례는 '오실 왕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여 그분과 연합하는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선지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에 대하여 의아스럽게 생각합니다. 영적 순서가 틀렸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주는 것이 옳지요. 어떻게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 역시 처음에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마13)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마14)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과 다른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5)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께 세례를 주는 일에 동의했습니다.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여기서 우리는 '모든 의'란 말씀을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양한 의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입니다.
우선 예수님 세례 받으시는 모습에서 위대한 왕의 성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왕의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야로서 왕적 권능을 지니셨지만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으심으로 스스로 겸손한 왕이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겸손은 비둘기같이 임하시는 성령을 통해서도 입증이 되었습니다. 여기 비둘기는 구세주의 '온유하심, 겸손하심, 죄 없으심'을 나타냅니다. 즉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온유와 겸손함으로 성취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는 중요한 사실은
우리 죄를 대신 씻기시는 모범으로서의 세례를 볼 수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죄 사함을 받는 세례를 받으실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좋은 답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처음부터 십자가를 지시는 순간까지 자신을 위한 일은 없으십니다. 성육신 하신 사건도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공생애를 말씀과 사역하신 것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는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것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 받아야할 세례의 모범을 손수 보이신 것입니다. 세례 받기를 거부하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외식적 오만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세례를 인류의 왕으로 오신 왕의 대관식으로 생각하면 매우 의미 있는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왕의 공생애를 시작하는 첫 대관식에 제사장인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기름부음으로 제사장 임무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겸손히 낮아지셔서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하시는 왕의 대관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엄숙한 사실을 영접할 때,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는 이런 세례의 의미를 아름답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 대신 죽으실 메시야 사역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이 준비한 길을 따라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세례 요한의 세례는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세례는 그것을 받는 자가 성령의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새 생명 안에 살게 되는](롬 6:4,7) 신앙의 시작입니다. 신자는 세례에 의해 [그리스도 예수에 동참하는]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의 지체가 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신자 개인과 [한 성령에 의해 한 몸으로 되게 하는](고전 12:13) 교회의 예전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예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유기적으로 연합하는 것입니다(롬 6:4, 고전 12:13). 이 세례를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가 행하고 있습니다(마 28:19).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짐을 의미합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참여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세레에 나타난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으실 때 어떠한 영광을 얻으셨습니까?
1.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이 놀라운 세례를 성도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늘이 열립니다.
(마3: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성도에겐 하늘이 중요합니다. 하늘이 열린 인생은 영적으로 축복을 받은 인생입니다.
헤롤드 쿠시너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제가 '내게 소중한 하늘'이란 작품으로 적어놓은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선녀를 붙든 청년은 그녀의 육신보다 그녀가 지닌 하늘이란 세계와 하나님을 붙들어야 했습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형을 피하여 도망하던 중에 벧엘에서 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의 인생에 열린 하늘의 발견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그발 강가에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상을 보이셨습니다.(겔1:1)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유배 중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하늘을 보았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계 21:1)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
어제 대한민국의 이 형택 선수가 세계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결승에 진출했을 때, 그는 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승할 자신이 있느냐?
해볼만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그 동안 세계적인 대회에 참가하는 중에 시야를 넓혔다고 했습니다. 테니스의 세계적 안목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께 열렸던 하늘이 우리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자아에 갇혀 살던 나 중심적인 인생이 하나님을 향해 열린 하나님 중심적 인생으로 변화되지요.
자신의 가정에만 갇혀 살던 인생이 세계를 향해 열린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 교회에만 갇혀 사고하는 인생이 세계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열린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바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님이 보이는 열린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493장의 찬양 가사는 이런 하늘에 대한 체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생명 얻은 자 영생을 맛보니
주님을 모신 맘 새 하늘이로다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493장 3절)
2.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마3: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 위에 임하셨습니다.'
성령은 새들 가운데 왕인 독수리의 형체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무해하고 악의가 없는 비둘기의 형체로 내려 오셨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령의 뜻은 변호자, 상담자, 돕는 자 또는 거룩한 위로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지울 수 없는 모성애를 일컫는 말이다."
나를 변호해 주십니다.
어려운 문제를 상담해 주십니다.
나를 도와주십니다.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1974년도에 이건희 회장이 시작했습니다.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 하니 모든 중역들이 반대했습니다. 그때 우리 나라 기술로는 겨우 트랜지스터 라디오 정도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칼라 TV도 우리 손으로는 조립만 했지 만들지 못할 때이니 그 정교한 반도체 사업을 어떻게 하겠느냐며 모두들 반대했습니다.
이 회장은 사재를 털어 작은 연구실을 만든 다음 일본에 가서 그 나라 최고 기술진들을 만나 정성을 다해 설득했습니다. 결국 그 기술진들이 토요일에 우리 나라에 와서 우리 기술진들에게 밤새껏 기술을 가르쳐 주고 주일에 다시 돌아가기로 설득을 당했습니다. 이 회장은 매주 일본에 가서 그 기술진들을 모시고 와서 우리 기술진들에게 기술을 전하게 했습니다. (지용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성도는 사랑이 풍성한 어머니 같으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비둘기는 많이 우는 동물입니다(사 38:14). 그리스도께서는 자주 우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서 고통 당하는 인생을 생각하며 우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영혼들은 골짜기의 비둘기들로 비유됩니다.
'암은 빨리 발견해서 수술해야 되듯이, 죄도 빨리 잘라내야 합니다. 죄는 빨리 회개할수록 좋습니다.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 죄가 우리의 행복, 우리의 축복을 앗아갑니다. 우리의 남편과 아내, 자식을 망하게 하는 것이 죄입니다'(지용수)
나는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사38:14)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의 특징은 죄를 범할 때 비둘기처럼 울며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날짐승 가운데 제사에 드려진 유일한 조류였습니다(레 1:14).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께 흠없이 드리신 산 제물이십니다.
예화]
어느 큰 도시에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잣집 양쪽에 대장쟁이와 목수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믿는 신자였습니다. 그들은 매일 일하면서 망치 소리에 맞춰 찬송을 부릅니다. 그러나 부자는 망치소리도 시끄러운데 찬송까지 하니 비위가 상했습니다. 그들을 억지로 보낼 수는 없고 스스로 떠나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장쟁이가 와서 "이사하게 되어서 뵙고 가려고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자는 내심으로는 기쁘면서도 "섭섭하게 됐네, 식사나 하세" 하면서 그들 방으로 데리고 와서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대장쟁이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식사 중에 목수가 부자 영감을 찾아 왔습니다. "영감님, 집을 옮기렵니다. 그래서 인사차 들렀습니다" 목수 마저 이사를 간다니 부자 영감은 기쁘면서도 "섭섭해서 어쩌나, 둘이 다 떠난다니, 식사나 하세, 마침 대장쟁이도 있으니 들어오게" 하면서 그들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들이 떠날 때 부자 영감은 "종종 들리게 편지도 하고" 하고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수는 "섭섭해하실 것 없습니다. 우리 둘이 집을 서로 맞바꾸기로 했습니다". 부자는 맥이 풀리고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둘 다 떠나는 줄 알고 괜히 섭섭해했네. 하여간 같이 지나게 됐으니 찬송소리 듣기 싫어도 들어야겠네"라고 하였답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세상이 가질 수 없는 축복을 받습니다. 비둘기와 같은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물질에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사함의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와 평강이며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감해진 소식은 그 입에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온 비둘기에 의해 전해졌습니다.
조만식 선생은 부잣집 아들로 서당에서 공부도 많이 했지만 술도 잘 마시고 도박도 하고 싸움도 잘 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조만식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나라가 이렇게 망해 가는데, 똑똑한 자네가 술만 퍼 마시고 이렇게 살면 어떻게 하나?"
그 말에 조만식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해. 새 사람이 되어야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어."
"예수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되나?"
"예수님을 믿으면 새 사람이 되지."
그는 그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고 술친구들을 식당으로 불러 음식을 대접하며 말했습니다.
"자네들은 나의 좋은 친구였네. 자네들과 더불어 산 생활이 즐거웠네. 하지만 나는 이제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 계속 내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면 자네들도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게."
그는 숭실 학교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술과 도박을 끊고 싸움도 하지 않고 인격을 다듬어 예수님을 닮아갔습니다. 그가 겨레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고당 조만식 선생이십니다.
홍수가 쓸고 지나간 방주에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온 비둘기처럼 성령께서는 폐허같은 우리 심령을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의 기쁜 소식을 비둘기 같은 성령께서 전해주십니다.
비둘기 같이 우리 위에 임하시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3. 하늘로서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마17)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습니다(17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목소리로써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세례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의미를 알려 주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 구주 예수님을 어떻게 인정하시고 계십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이 말씀은 변화산에서도 확인하신 그 말씀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그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구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속자로서의 사역과 직무에 특별히 임명된 하나님의 아들이이십니다. 중보자로서 인간 구속의 사역을 떠맡으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를 기뻐하시며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든 자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진노는 사라지고 '그의 사랑하시는 자'로 우리를 받아들이십니다(엡 1:6).
전광인 집사님(의류업체 시온상사의 대표)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한쪽 다리가 짧은 5급 장애인입니다. 가정살림도 어려워서 중학교만 겨우 마치고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가까운 봉제공장에 다니며 봉제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는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아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술만 마셨습니다. 담배도 하루에 5갑이나 피웠습니다. 그는 이미 관절염과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교회를 갔습니다.
하나님께 “하나님, 내 몸은 장애인의 몸입니다. 나는 담배와 술 중독이고 이제는 병까지 들었습니다. 비록 내가 장애인이지만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나처럼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좋은 일만 하면서 살겠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장애자들에게 좋은 일을 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양평에 조그마한 공장을 허락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여기는 장애자들만 쓰는 공장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장애인들만 채용한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신앙인들을 엄선해서 열명을 채용해 공장을 가동했습니다. “우리는 장애인이다.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제대로 만들겠냐고 하겠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불량률 0%를 만들자.” 하고 불량품이 하나도 없도록 철저히 감독했습니다. 그리고 시온상사라는 이름으로 백화점에 물건을 납품했습니다.
물건이 잘 팔리자 회사의 규모가 점점 커져서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게 되었고, 매일 아침마다 30분씩 회사의 직원들과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쁘게 여김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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